종의 기원 드디어 다윈 1
찰스 로버트 다윈 지음, 장대익 옮김, 최재천 감수,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의 기원>만큼 유명한 책이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진화˝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물론 진화라는 개념을 다윈이 처음으로 떠올린 건 아니다. ‘종이 변한다‘는 개념은 이미 그 이전에도 경험적으로 알려졌으며, 다만 그 원리를 납득할 만하게 설명하지 못했을 뿐이다.

책의 초반부에선 각종 비둘기에 대한 얘기가 자꾸 나오는데, 다윈이 살던 19세기 영국에선 비둘기, 닭 등 각종 가축을 교배해서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는 게 유행이었다(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강아지 종들도 이때 생겨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람이 인위적으로 품종을 개량할 수 있다면, 자연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단순한 아이디어다. 즉 ˝자연선택˝의 개념이다.

다윈은 비글호 20대 중반에 떠난 비글호 탐사에서 갈라파고스의 핀치새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핀치새들은 부리 모양이 각기 달라서 처음에 다윈은 각기 다른 종이라서 생각했으나, 근연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어떤 영감을 받는다. 어쩌면 이들이 같은 종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비둘기를 교배해서 각기 다른 외형적 특성과 습성을 갖는 비둘기종들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자연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이 변이를 축적시킴으로서 종을 분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에겐 너무 당연하게 들리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먼저 종교적인 도그마가 ‘종은 영원불변의 것‘이라는 개념을 강요했기 때문이고, 지금처럼 과학적 도구(지질학, 생물학적)들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질학자였던 다윈이 쓸 수 있었던 과학적 도구는 지층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화석들 정도였다.

길어봤자 100년을 사는 인간의 눈으로는 오랜 시간을 거쳐 종이 분화한다는 걸 믿기 힘들다. 당연한 일이다. 물이 돌을 뚫을 수 있을까? 100년을 지켜본다 한들 거의 뚫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돌은 물을 뚫지 못하는가?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뚫을 수 있고, 진화적 시간대는 그런 긴 시간대를 상정한다.

그렇다면 자연이 어떻게 종을 분화시키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1. 생물은 생존 가능한 수보다 더 많은 개체를 낳는다.
2. 각 개체들 간에 생존 투쟁이 벌어진다.
3. 돌연변이가 일어나 약간의 형질적 변화가 생긴다.
4. 환경에 더 잘 맞는(살아남은) 개체들이 후손을 남기며 변이가 축적된다.
5.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다.
6. 종이 분화된다.

여기서 핵심은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다. 변이가 없다면 자연선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존 투쟁은 거의 기후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고 다윈은 말한다. 이는 우리 시대의 기후 위기를 떠올리게 하는데, 약자에게 기후 위기가 진정 위협인 것처럼 전체 생물 종에서도 또한 그렇다.

자연 선택은 형질 분기와 대량 멸절을 야기한다. 새로운 종이 분기되려면 ‘빈 곳(니치)‘이 있어야 한다. 한 종이 있는 자리에 다른 종이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으면 포유류는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룡에게 다 잡아먹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다행스럽게도 기후 변화로 공룡이 멸종하고, 그 빈자리를 포유류가 채운 것이다. 이를 보면 생물의 역사는 멸종과 진화를 반복해왔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심각한 경쟁은 ˝가까운 관계에 있는 근연 형태들 간의 경쟁˝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단순히 같은 종 내의 투쟁 뿐만 아니라, 약간의 변이를 거친 종-아종 간의 투쟁이 가장 격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가 진화의 ‘중간 다리‘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근연 형태들 간의 경쟁으로 인해 근연종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근연종 중 인간(homo) 속에 속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하다. 그 이유는 침팬지와 인간을 이어주는 ‘중간 다리‘들은 근연종 간의 격렬한 투쟁으로 인해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 속에 속한 유일한 종이 되었다.

또한 어떤 종의 평균 개체수를 결정하는 것은 ‘먹이‘보다는 ‘얼마나 잡아먹히냐‘의 문제라고 말하는데, 이를 인간사회에 적용시켜보면 왜 인구가 그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났는지를 깨닫게 한다.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이기에 잡아먹힐 일이 없다. 또한 기술발전(특히 농업 분야)을 통해 식량 문제를 해결했기에 인구가 줄어들 일이 없는 것이다.

<종의 기원>을 읽다 보면 왜 ˝사회 진화론˝이 나왔는지 이해가 가능한데, 개체가 모여 사는 사회란 결국 생물학의 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윈의 책을 읽으며 <총균쇠>가 많이 떠올랐는데, 결국 <총균쇠>가 주장하는 굵직한 큰 틀은 다 <종의 기원>에서 따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총균쇠의 기본 주장은 ‘밀집된 경쟁으로 인해 경쟁력을 획득한 유럽이, 경쟁이 덜한 다른 문명을 멸종시켰다‘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정확히 <종의 기원>에 나오는 내용이다.

<종의 기원>에서는 대륙(특히 유라시아 대륙)의 종이 더 많은 경쟁에 노출됨으로써 생존투쟁에 강한 종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대륙종과 섬종이 만났을 때 섬종이 멸종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러한 논리를 북반구와 남반구 종들 간에도 적용 할 수 있는데, 북반구에는 남반구보다 육지가 더 많기에, 북반구는 남반구에 비해 대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반구 종들이 남반구 종들보다 더 강한 생존투쟁력을 갖게 되어, 북반구 종들이 남반구 종들을 멸종시킨 것이다.

자연이 비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 자연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으며(가치중립적), 투쟁에서 진 쪽은 그저 사라질 뿐이다. 이를 사회의 차원에 적용한 게 바로 사회 진화론이다. 사회 진화론은 강대국의 논리로 이용되었는데, 이는 진화가 가진 개념, 즉 ˝살아남기 위해서는 투쟁(경쟁)을 피할 수 없다˝와 ˝개방과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획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가 정확히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할 때 쓰는 논리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는 경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경쟁을 피해 새로운 환경을 찾아나선 생물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으로, ˝진화는 진보다˝가 있다. 하지만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다. 그저 환경에 대한 적응이 있을 뿐이다. 생물 간 투쟁으로 꽉 찬 수중에서 벗어나 뭍으로 올라온 생물처럼, 진화에는 그저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있을 뿐이다.

경쟁을 하든 안 하든, ˝삶의 본질은 변화˝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즉 삶의 본질은 변화이며, 그 변화는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한 염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속도를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 - 한가로이 걸을 수 있는 시공간의 중요성
천천히 가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산책의 목적은 이동이 아니다 ‘인지(관찰)‘이다. 즉, 세상을 느끼는 것이다.
걸어 다님으로써 우리가 우주적 존재임을 인지 하는 것.
책에 나왔던 밥 아저씨가 왜 ˝긴 산책으로 마음이 열린다˝고 하는지 알 거 같다. 걸음으로써 우리는 자연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자연이고, 인간이 만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일 뿐이다.
천천히 걸어 다님으로써 자연을 관찰하는 것은 신을 찬양하는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름답고도 냉혹한 자연, 태양 빛에 의해 살아가는 가련한 존재들
계절이 있어서 시간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 - 감사한 일이다.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

우주는 위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기에
경외감은 저 멀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
창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60세의 주인공이 자신의 지난 30년 간의 교수 생활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공부를 등한시했던 젊은 날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급습을 받고 개과천선해서 지방의 대학으로 간다(베를린->지방). 거기서 영문학 교수님을 만나고 학문의 열정(을 가장한 교수님을 향한 인정욕구)을 불태운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묘하게 비밀에 싸여있는 듯하다. 처음 만났을 때 교수님은 굉장히 활기찬 모습이었는데, 다음에 만났을 땐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명력이 전혀 없어보이는가 하면, 어떤 때는 갑자기 며칠 동안 휴가를 내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기도 한다.

주인공은 교수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학문을 시작하는데, 교수님이 이런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주인공을 밀어낸다. 그래서 주인공은 채워지지 않는 인정욕구에 괴로워한다. 또한 교수님이 가진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또한 교수님에게는 젊은 부인이 있는데, 이 부부는 데면데면한 것이 마치 남을 대하듯이 서로를 대한다. 이렇게 교수님과 정서적으로 단절된 그의 부인은 수영 같은 육체 활동을 할 때만 진솔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주인공을 지속적으로 경계하며 거리를 둔다.

교수님을 향한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젊은 부인과 수영장에서 만나며 어떤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된다. 주인공과 교수님 부인과의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아서, 둘은 결국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주인공은 교수님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얼마 뒤 교수님이 자신과 주인공 사이에서 나온 학문적 성취(논문)을 축하하기 위해 술자리를 가지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문밖에서 부인이 듣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서 그 자리를 피하려 한다.

교수님은 결국 부인과 주인공이 불륜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교수님은 주인공을 사랑한다고 갑자기 고백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 얘기를 해준다. 동성애자로서 살아온 힘든 삶에 대해서 얘기해주시는 교수님은, 이제 친구로서 이별하자고 하면서 작별 키스를 주인공에게 한 뒤 어서 가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 주인공은, 그 뒤로 교수님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으며, 살면서 만난 사람 중 교수님에게 가장 큰 고마움과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감정의 혼란>이라는 제목답게 혼란스러운 책이었다. 동성애가 소재라는 걸 전혀 모르고 봐서 더 큰 혼란을 느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 경우에, 즉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성적 취향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삶이 정말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이성애자다. 이 말인즉슨, 짝사랑을 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상대와 내가 맺어지게 될 가능성이 주위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성 간 사랑은 공공연하지 않다. 매우 비밀스러우며, 만약 상대방이 나와 같은 취향을 갖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가능성도 있다. 즉 동성 간 사랑의 감정은 두려움이 근간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두려움과 사랑, 이 두 감정의 혼합이 바로 동성애자의 사랑이며, 그래서 <감정의 혼란>이라는 제목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성적 취향은 개인의 근간을 이루는 정체성이기 때문에, 그런 두려움이 계속해서 쌓이면 스스로를 혐오하거나 부정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교수님은, 진정 사랑하는 주인공을 위해서 당당하게 이별하는 쪽을 택한다. 만약 이 둘이 이성애자고, 남자와 여자였다면, 자연스럽게 성적인 관계를 맺게 됐을 것이다. 마치 교수님 부인과 주인공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인생을 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주관(특질)이고, 어떤 특질을 타고 태어날지는 아무도 선택할 수 없다. 오직 우연에 의해 주어질 뿐이다. 삶이란 것은 이리도 잔인하다. <감정의 혼란>을 통해 나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대리 체험으로써 평소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는 것, 그것이 소설의 진미가 아닐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대여 페이백] 나쓰메 소세키 기담집
나쓰메 소세키 / 글항아리 / 2024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살려달라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에도 당연히 진심이 담겨 있다. 그러나 말의 의미가 통하면 그만큼 진심은 줄어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대여 페이백]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 / 돌베개 / 2024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조망 효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도 밥은 그 느낌을 상상할 수 있다. "예전에 개를 몇 마리 키웠어요. 그 애들을 데리고 긴 산책을 나가서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며 완전한 평화를 느끼곤 했죠. 가끔은 바다로 데려가서 해가 질 때까지 걸었는데 수평선에 갖가지 색이 펼쳐지는 광경이 정말 마법 같았어요. 그럴 때면 모든 것이 그냥 소리 소문도 없이 증발해 버리는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광대함을 체감했던 것 같네요."

보통 제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요.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나는, 나는, 나는’ … 그런데 긴 산책을 하고 나면 그런 생각이 전부 사라져요. 완전히 이완되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이완되면 마음이 열리고요. 그러면 생각할 수 있어요.

……

서두르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하게 되잖습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가 생기고요. 말하자면 넓게 볼 수 있게 되죠. 그래서 제가 그쪽 질문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제 대답은 ‘걷기’고, 그쪽이 그런 느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면 그 사람과 같이 걸어 봐요."

-알라딘 eBook <[대여 페이백]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 중에서

저녁 햇살 한줄기가 실내로 비쳐 든다. 나는 작디작은 무수한 입자들의 춤사위를 지켜보다가 시속 약 10억 8천만 킬로미터로 우리에게 달려드는 빛에 또다시 경외감을 느낀다.

-알라딘 eBook <[대여 페이백]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