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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데이비드 린지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12월
평점 :
읽다보니 sf라기보다는 판타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판타지나 sf나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루어진 장르 아닌가? 그런 면에서는 둘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다.
각설하고, 이 책은 참 어려운 책이다.
소설은 강신술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매가 저세상에서 영혼을 불러오는 강신술을 한다. 실제로 영혼이 강림하고, 모두가 놀란다. 그 와중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영혼의 목을 꺾어 죽인다. 그 남자의 이름은 크래그다.
죽은 영혼은 원래 얼굴과는 다른, 수정인간의 비열한 웃음을 띤 얼굴로 즉시 바뀌어 있다.
강신술 현장에 있던 매스컬과 나이트스포어는 크래그를 만나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 크래그와 나이트스포어는 구면인데, 둘은 “수르트르(혹은 수정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르크투르스로 갔다고 하며, 그곳에 있는 토맨스 행성으로 가봐야겠다고 한다. 매스컬은 엉겁결에 같이 가게 된다.
우주선을 타고 토맨스로 떠난 매스컬, 나이트스포어, 크래그. 하지만 눈을 뜬 매스컬은 주변에 아무도 없고 자신 혼자만 동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토맨스에서 매스컬의 여행(혹은 방랑)이 시작된다.
토맨스에는 태양이 두 개다. 브랜치스펠과 알페인.
브랜치스펠은 노랗고 뜨겁다. 남쪽에 있다.
알페인은 파랗고 고통스럽다. 북쪽에 있다.
매스컬은 왠지 알페인의 빛에 이끌려 북쪽으로 정처 없이 가게 된다. 그 와중에 여러 사람(외계인)을 만난다. 외계인들은 각기 다른 특성이 있으나, 매스컬은 그들과 사랑에 빠지거나 그들이 죽는 모습을 보게 된다. ‘죽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매스컬이 직접 살인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모든 토맨스인은 죽을 때 ‘수정인간의 비열한 미소’를 띤 얼굴을 하게 된다. 강신술에서 불려 나온 영혼이 죽을 때 그런 얼굴로 바뀌었던 것처럼.
매스컬은 수르트르를 찾아가던 중 북소리를 듣는다. 또한 머스펠의 불(빛)을 보게 된다. 머스펠의 불은 아마도 알페인의 빛이다. 고통을 내뿜는 알페인을 향해 북쪽으로, 북쪽으로 매스컬은 향한다.
북쪽으로 가던 길에서 결국 매스컬은 다시 크래그를 만난다. ‘나이트스포어는 어디 있냐’는 매스컬의 질문에 크래그는 “나이트스포어는 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칼로 찔러서 매스컬을 죽인다. 자신의 죽은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는 나이트스포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 나이트스포어는 크래그에게 몇 가지 묻는다.
“수르트르는 너지?” / “응”
“그렇군. 그런데 지구에서는 뭐라고 불리지?” / “고통”
소설은 그들이 어둠 속으로 나아가면서 끝난다.
대충 스토리를 들으면 알겠지만, 이 책은 일부러 이해하기 어렵게 쓰였다. 마치 다른 사람의 꿈 얘기를 듣는 기분이다. 꿈은 주관적이기에, 꿈 내용을 들은 뒤에도 꿈을 꿀 때 느꼈던 그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다.
아주 뭉뚱그려 말하기에 오히려 영감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 다만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부조리함과 <요한계시록>의 상징성(형이상학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수르트르를 쫓으려고 토맨스라는 행성에 가지만, (어려운 상징들을 다 제거하면) 결국 그곳에서 매스컬이 하는 일은 살인, 사랑, 고통(끝)을 향한 이동뿐이다.
이 소설이 그렇듯 우리 삶도 무언가 알기 힘든 고차원적 진리, 신의 섭리 같은 것을 쫓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어쩌면 결국 일련의 무의미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희망처럼 빛이 언뜻언뜻 비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