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Henry, Joseph, 1797.12.7~1878.5.13]
요약
미국의 물리학자.
국적 미국
활동분야 물리학
출생지 미국 뉴욕주 올버니
본문

미국 누욕주 올버니 출생. O.G.그레고리의 《실험철학 강의》를 읽고 물리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올버니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1826∼1832년 이 대학 수학 교수, 1832∼1846년 뉴저지대학(현재의 프린스턴대학) 물리학 교수로 있었다. 1830년 W.스터전(1783∼1850)의 전자기석()보다 훨씬 강력한 전자기석을 만들어 M.패러데이와는 독립적으로 1830년 전자기유도를, 1832년 패러데이에 앞서 전류의 자체유도()를 발견하였다.

이 2가지 유도현상의 발견은 전자기학() 및 전기기술에 획기적 진보를 가져왔는데, 그 자신도 전자기식() 전동기·전신기 등을 고안하였다. 그 후에도 전류계 제작, 방전에 의한 전자기진동 발생 관찰(1842) 등 전자기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1846년 스미스소니언연구소 초대 소장이 되어, 재직 중에 전신()에 의한 기상통보의 조직화, 최초의 일기도 및 과학을 기초로 하는 일기예보 방식을 만들고, 태양흑점열복사를 관찰하였다. 미국 과학아카데미의 창립회원이 되고, 1868년 회장이 되었다. 인덕턴스의 단위 H(헨리)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벨 [Bell, Alexander Graham, 1847.3.3~1922.8.2]
요약
영국 태생 미국의 전화 발명자.
국적 미국
활동분야 과학
출생지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주요수상 볼타상
본문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생. 에든버러대학교를 나온 후, 런던대학교에서 의학을 연구하였다. 헬름홀츠음향학() 연구에 뜻을 두고, 1870년 아버지 A.M.벨(1819∼1905:시화법의 창시자)과 함께 캐나다로 건너갔다. 1871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음성의 메커니즘에 흥미를 느끼다가 전기통신을 연구하게 되었다. 화술() 교육가인 아버지를 이어 보스턴에서 농아학교를 경영하였으며, 1873년부터는 보스턴대학교음성생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전화를 실험하기 시작하여, 1876년 자석식 전화기의 특허를 받았다

에디슨 [Edison, Thomas Alva, 1847.2.11~1931.10.18]
요약
미국의 발명가.
별칭 발명왕
국적 미국
활동분야 과학
출생지 미국 오하이오주 밀란
에디슨 / 미시간주 디어본에 소재하는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에디슨.
본문

오하이오주() 밀란 출생. 특허수가 1,000종을 넘어 ‘발명왕’이라 불리고 있다. 제재소를 경영하던 아버지 새뮤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7세 때에 미시간주 포트휴런으로 이사를 가 그 곳 국민학교에 들어갔으나 겨우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해 교육은 주로 어머니로부터 받았다. 집안이 가난하였기 때문에 12세 때에 철도의 신문팔이·과자팔이를 하면서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화물차 안으로 실험실을 옮겨 실험에 열중하였다. 신문팔이를 하던 어느 해 기차 실험실 안에서 화재를 일으켜 차장에게 얻어맞은 것이 귀에 청각장애를 일으키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사람들과의 교제도 끊고 연구에만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15세 때 역장집 아이의 생명을 구해준 답례로 전신술()을 배우게 되어 1869년까지 미국·캐나다의 여러 곳에서 전신수로서 일하였다. 그 무렵 보스턴에서 패러데이의 《전기학의 실험적 연구》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그 책의 설명이 복잡한 수식()을 쓰고 있지 않은 데에 많은 흥미를 느꼈으며, 그 책에 나오는 실험을 연구하다가 1868년에 전기 투표기록기()를 발명하여 최초의 특허를 받았다. 이어서 다음해에는 주식상장표시기() 등을 발명하였고 그 발명으로 얻은 자금을 기반으로 뉴저지주뉴어크에 공장을 세웠다. 그는 1876년에 멘로파크로, 1887년에는 웨스트오렌지로 연구소를 옮겼다. 이들 실험소에서 1871년에 인자전신기(), 1872년에 이중전신기, 1876년에 탄소전화기, 1877년에 축음기, 1879년에 백열전등, 1891년에 영화 촬영기·영사기, 1891~1900년에 자기선광법(), 1900~1910년에 에디슨 축전기 등을 계속 발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미국이 참전하게 되자, 한때 사업을 중단하고 해군 고문회의의 회장직을 맡아 군사과학상의 문제에 몰두하다가, 종전 후 다시 웨스트오렌지에 있는 연구소와 공장으로 돌아와 고무 대용식물의 탐구 등에 주력, 생애를 마칠 때까지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의 일생을 통해서 볼 때 멘로파크에서 보낸 1876~1881년까지의 기간이 가장 창조력이 왕성하였던 시기이었다. 발명기업은 번영하였고, 그가 말한 월가의 재벌들이 그의 특허를 손에 넣고자 서로들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전신·전화·백열등의 개량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조직적인 발명이 동시에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전등의 발명이었다. 이미 필라멘트의 재료로는 백금선이 좋은가 탄소선이 좋은가 하는 비교가 논의되고 있었는데, 1870년대에는 적당한 탄소선을 사용하는 것이 비교적 유망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1878년부터 백열전구의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 그는 수은 배기 펌프의 개량과, 탄소 필라멘트의 채용으로 다음해인 1879년 10월 21일, 드디어 40시간 이상이나 계속해서 빛을 내는 전구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였다. 필라멘트의 재료로는 대나무가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 세계 여러 곳에 있는 대나무 산지까지 사람을 보내어 재료를 모아들였다. 일본 교토[] 부근에서 나는 대가 가장 좋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은 이 대를 사용하였다.

그는 다시 전구를 보급하기 위하여 소켓·스위치·안전퓨즈·적산전력계()·배전방식 등을 고안하고, 효율이 높은 발전기배전반()의 설계 등, 전등의 부대설비에서 배전·충전·발전에 이르기까지의 전 기기체계()를 창조해 냈다. 1882년에는 세계 최초의 중앙발전소와 에디슨 전등회사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1883년에 그가 전구실험 중에 발견한 ‘에디슨 효과’는 20세기에 들어와 열전자 현상으로서 연구되고, 진공관에 응용되어 그 후의 전자공업 발달의 바탕이 되었다. 그의 회사는 전구의 특허권을 둘러싼 소송으로 많은 경제적인 손실을 보고 그 결과 그는 회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전등을 발명하였으나 전혀 이익을 보지 못했다”라고 한 말에는 월가, 즉 독점자본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 그의 비통한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대학의 강의를 경멸하였다. 보통 교육에 대해서도 “현재의 시스템은, 두뇌를 하나의 틀에 맞추어 가고 있다. 독창적인 사고를 길러내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다”라고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천재란 99 %가 땀이며, 나머지 1 %가 영감이다”라는 말은, 일생을 통한 그의 유명한 모토였다. 이것은 만년의 술회(), “나는 발명을 계속하기 위한 돈을 얻기 위하여 언제나 발명을 한다”는 말과 더불어 끊임없이 연구와 창조를 계속한 끈질긴 그의 발명가 정신을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밀란의 생가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미시간주 디어본으로 옮겨진 멘로파크의 연구소와 웨스트오렌지의 연구소는 각각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톰슨 [Thomson, Joseph John, 1856.12.18~1940.8.30]
요약
영국의 실험물리학자.
국적 영국
활동분야 실험물리학
출생지 영국 맨체스터
주요수상 노벨물리학상(1906), 메리트훈장(1912)
주요저서 《기체 내의 전기전도》(1903)
본문

맨체스터 출생. 오웬스 칼리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894년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05년 왕립연구소 교수, 1918년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을 역임하였다. 근대 원자물리학 여명기의 캐번디시연구소의 중심인물이었다.

초기연구는 논문 〈소용돌이 고리에 대하여〉(1884, 애덤스상 )에서 볼 수 있듯이 원자구조론에 관심을 보였으나 얼마 후 작용반작용의 등가성()에 기초를 둔 수학적 방법의 전개를 시도, 이를 이용하여 물리화학적 여러 현상, 특히 기체의 해리()에 관심을 쏟아 1885년부터 기체방전의 실험연구를 시작하였다.

회전거울에 의한 음극선의 속도측정 연구도 하였는데, 이것은 음극선의 본성을 파동이라고 하는 H.R.헤르츠의 학설에 대하여 영국의 학자들이 주장한 입자설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1895년 X선과 그 기체의 해리현상 등이 발견되자 이것을 기체방전 연구에 이용, E.러더퍼드와 공동으로 연구를 추진, 전기장자기장을 이용하여 음극선 입자의 비전하()를 측정하고 수소원자와 비교, 전자의 존재를 예상하였다. 열전기더미에 의한 에너지 측정으로 질량을 결정하고 광전효과와 열전자효과를 검토, 전자의 존재를 결정적으로 증명하였다(1899).

전자의 발견은 원자보다 미소한 물질의 구성요소 발견으로서, 원자구조 연구에 중요한 한 걸음이었으며, 이 연구로부터 원자구조론, 물질구성, 원소의 주기율 등으로 연구를 진행시켜 나아갔다.

1903년 출판된 《기체 내의 전기전도》에는 전자에 관한 연구가 총괄되어 있다.

한편 양극선()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여 전기장과 자기장을 작용시킴으로써 입자를 질량에 의해 분리시키는 방법을 창안하여 분석기를 제작, 1912년 네온의 동위원소 분리에 성공하였다.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여러 요직에 근무하여 학계와 과학정책면에서도 공헌하였으며, 문하에서 E.러더퍼드, J.S.타운센드, P.랑주뱅, C.T.R.윌슨 등의 많은 원자물리학자가 배출되었다. 1908년 기사작위를, 1912년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사후에 웨스트민스터사원에 안장되었다.

패러데이 [Faraday, Michael, 1791.9.22~1867.8.25]
요약
영국의 화학자 ·물리학자.
국적 영국
활동분야 화학, 물리학
출생지 영국 런던 근교의 뉴잉턴 버츠
본문

런던 근교의 뉴잉턴 버츠 출생. 12세 때부터 서점 겸 제본업자 밑에서 일하며 틈틈이 읽은 책에서 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일반 강연을 들으면서 화학실험을 시도하였다. 19세 때 H.데이비의 강연을 듣고, 그의 도움으로 1813년 왕립연구소의 실험조수가 되었다.

여기서 데이비의 실험을 보조하면서 화학 연구를 시작, 염화질소 연구로부터 여러 가지 특수강() 연구(1819∼1824), 염소의 액화 연구(1823), 벤젠 발견(1825) 등 실험화학상 뛰어난 연구를 하였고, 1824년 왕립학회 회원, 다음 해 왕립연구소 소원(), 연구소 주임이 되었다.

물리학 특히 전자기학()에 흥미를 가져 H.C.외르스테드가 발견한 전류의 자기작용()을 조사, 연쇄적 회전(전자기회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1821). 그 역현상인 자기의 작용에 의해 전류를 만들어내는 연구에 착수하여, 회로()의 개폐에 의하여 제2의 회로에 발생하는 전류, 전자석, 이어 자석에 의한 똑같은 전류를 검토하여 전자기유도를 발견하였다(1831). 이것으로 맴돌이전류지구자기()에 대한 응용에서도 성공하였으며, 자체유도()를 발견 ·해석하였다.

패러데이의 전자기학 연구는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통일적이었다. 전기화학의 기초를 만든 전기분해법칙 발견(1833)과 방전현상 연구가 있는데, 이런 성과들에서 여러 가지 전기의 동일성을 간파, 보편성을 가진 통일 개념으로서의 전기를 제창하였다. 또한 그 때까지의 원격작용론()을 버리고 전자기적인 힘의 근원을 공간적인 상태로 되돌리려는 근접작용론을 제창하여(1827),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의 길을 열고, 빛의 전자기파론의 선구적 고찰도 하였다.

이 밖에 진공방전에 관한 ‘패러데이암흑부’(1838), 자기장()에 의한 편광면()의 회전(패러데이효과), 반자성() 발견 등 중요한 공헌이 많았다. 일반 강연도 훌륭하여 크리스마스 강연집인 <양초의 과학>은 오늘날에도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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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4-1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더 올리고 싶은데 나중에 ,,내가 언제 이런 과학자들을 다 한꺼번에 알겠는가....

하이드 2005-04-14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전 보기만해도 머리에 쥐가나려고 해요. 지끈지끈

울보 2005-04-14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왜 이러세요..
하이드님 저 같은 사람도 읽었는데...님은 ~~~~~~~~~~

아영엄마 2005-04-14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큰일이다. 리뷰를 써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요. 아직 한 줄도 못 썼는데..ㅜㅜ;;.

울보 2005-04-1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살은요..
저보다 더 잘 쓰시면서,,
이런 사람도 썼는데 ㅎㅎㅎ
 

1297302

아영엄마님 이벤트를 기다리다가 류가 자는시간을 놓쳤다./

가서 재우고 읽던책 마저 읽고 리뷰를 써야 겠다,

오늘은 기필코 끝내야지..

이책 이제 다읽어간다,

너무 재미있고 즐겁게 읽었다,

내가 이런책을 이렇게 빨리 읽을줄이야...

신기하다.

아니지,,작가가 정말 재미있게  잘 쓴것일것이다,

새로운 사실도 알고 새로운것도 배우고 정말 유익하게 읽었다,

열심히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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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4-1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07303

그냥..


실비 2005-04-1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요.+_+

리뷰 기대할게요^^

1317304


울보 2005-04-14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306
 
 전출처 : 놀자 >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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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아영맘께서 이벤트를 하고 계십니다,

모두 모두 놀러가서 축하해주지요.

벌써33333이벤트라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은가요.

모두가 기다리니 다들 놀러가서 열심히 놀다가 오지요..

자 가봅시다,

출발~~~~~~~~~~~~~~~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658189

여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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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사랑한다는 말은 없어도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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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명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이슬람과 관련한 정수일 선생의 명성은 들었으되 역서고 저서고 간에 그분의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았다.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감되었다는 소식도 석방되었다는 소식도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라는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이 책이 그가 그의 아내에게 보낸 옥중편지 묶음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편지글을 엮어내며'라는 제목의 맨 앞글에서  편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상례인데 이를 어기고 책을 내는 것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밝혀놓았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 '분단의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한 지성인이 남긴 글로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써놓아 나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자신을 지성인이라고 이렇게 당당하게 칭하는 분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졸고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상투적인 겸손도 지겨웠지만 자신을 지성인이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표현하는 부분이 멋져보이면서도 조금 생경스러웠다고 할까.

그가 옥중에서 아내에게 써서 보낸 이 편지들은 나중에 책으로 묶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쓰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엄숙하고 정갈하고 한결같을 수가 없다.

13, 4년 전 나도 광주교도소에 몇십 년째 복역중인 한 장기수 어른과 몇 년 동안 꽤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환갑을 조금 지난 분이었는데 얼마나 다정하고 재기가 넘치는 편지를 쓰시는지 그의 편지를 읽으면 옥중에 있는 사람과 바깥에 있는 사람과, 또 우리들의 연령이 바뀐 것 같다고 느꼈다. 내가 편지 속에서 느꼈던 넘치는 그 에너지대로 그분은 출소하자마자 옥중에서 혼자 책으로 공부한 한의학 지식을 살려 민중탕제원에서 일을 하시고, 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식까지 올리셨다. 나는 신문을 통해 그분의 출옥 소식을 듣고 결혼 소식을 들었다.  아이를 업고 남편과 신림동인지 봉천동인지 무슨 성당에서 열린 그의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인파를 뚫지 못하고 먼빛으로 뵙고만 왔다. 영화 <송환>을 보러가서 극장 화면을 통해 본 내 옛 펜팔 남자친구(?)는 여전히 젊고 패기가 넘치는 모습이어서 기분이 좋았다.(언젠가 페이퍼로 쓴 적이 있다.)

1980년대 말, 몇 년째 줄기차게 백수였던 나는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한 구절 한 구절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엎어지고 자빠졌다. 신영복 선생은 나에게 그 책을 통해 용기를 줌으로써 인생에 어떤 모션(!)을 취하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나는 취직이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이렇듯 책은 어떤 사람의 인생 행로를 구체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 정도면 내가 사람들의 옥중서신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가 이해 될 것이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담담하고 정갈하되 어쩌면 조금은 심심한 옥중서신이다. 어느 날 불쑥 엄습한 외로움과 괴로움을 아내에게 에둘러 호소할 법도 한데 눈을 씻고봐도 그런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쓸데없는 양념을 치지 않은 담백하고 순수하고 평범한 삶이 진짜 삶'이라는 일절이나 , 민들레를 일러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수수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에서 그의 철학의 일단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배고프면 밥먹고 곤하면 잠잔다' '새끼줄을 톱삼아 나무를 베다'  '얼마간 부족한 것이 행복의 필수조건' 이라는 소제목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이 책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서울구치소에서 대구교도소로 이감하기 전날 면회온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입산수행하는 셈치고 마음 편히 보내세요." 옥중의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아내라니! 그녀의 편지까지 몇 장 실었으면 정말 얼마나 좋았을까?

화답이라도 하는 듯, '감옥은 한낱 외로움과 괴로움의 공간만은 아니고 서로의 사랑과 믿음, 연대를 확인하고 굳히는 공간이기도 하오.' 출옥 전날 그가 아내에게 옥중에서 마지막으로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얼마나 이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고결한 학자인지 실천적인 지식인인지 존경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인간의 풍모를 보았다. 읽고 있는 책 여백에 녹두장군의 시를 메모하고, 또  국어사전에서 만난 낯선 우리말을 빽빽히 독서중인 책의 여백에 적어가며 복습한 사진을 보고는 잠시 숙연한 기분에 젖기도 했다.  결혼기념일 날 아내에게 쓴 편지  '너그럽고 검소하게'는 내 수첩에 몽땅 옮겨 적고 싶었고......

어쩌면 들뜨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읽어내려간 이 책에서 나는 저자가 말한 많은 것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직접 말로 표현하진 않았어도 그가 아내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마음은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민족과 학문에 대한 한 지성인의 절절한 회고록을 두고  무슨 사랑 타령이냐고? 글쎄 말이다. 그런데 난 그런 이상한 독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수고하는 당신에게'라고 써내려간 선생의 편지. 그는 아내에게 어떤 행운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직접 만든 듯한 네잎클로버 도장으로 네 페이지의 편지 귀퉁이를 맞춘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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