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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제대로 알고 읽기

산드라 미셀 미국 가톨릭 저널리스트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에서 사용하셨다고 하는 잔, 곧 성배(聖杯, Holy Grail)에 관한 이야기는 아서왕 전설과 같은 서양의 각종 전설에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던 것이 최근 미국 소설가 댄 브라운의 메가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에 등장해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설은 루브르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의 살해 사건으로 시작되고, 하버드대 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과 소니에르의 손녀이자 암호 해독가인 소피 느뵈는 주인공으로서 이 사건에 참여한다. 이들은 소아마비를 앓는 백만장자인 역사학자 레이 티빙과 함께 경찰과 오푸스 데이의 미친 알비노 수도승 사일래스를 따돌리고 파리를 떠나 영국으로 도망친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성배에 관한 여러 가지 전설을 음모 이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곧 성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사람이며 여자이고, 그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성배는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의미하며 막달레나는 자신의 자궁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품은 그릇이며, 예수의 아이를 낳은 인물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성배 수호자들은 진실을 보호하고 그리스도의 혈통과 물질적 그릇이 아닌 막달레나의 유골을 보호해 왔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성배를 찾아 떠난 원정은 말 그대로 마리아 막달레나의 뼈 앞에 무릎을 꿇기 위해 떠난 원정”이었던 것이다.
뉴욕 타임지의 베스트셀러로 등장한 이 충격적인 책은 스릴러와 로맨스 소설의 기법을 결합시킴으로써 상업주의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왜곡된 허위의 사실(史?)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도서들을 전거로 하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통해서 “모든 신앙은 꾸며낸 거짓말에서 비롯된다.”를 반복적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

『다빈치 코드』의 수많은 오류들

저자는 금성(Venus)의 움직임이 여신을 상징하는 별 모양(이른바 이슈타르 모양)을 그린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올림피아드의 주기와 상관이 없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아프로디테가 아니라 제우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개최되었고, 현대 올림픽의 오륜기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고리가 여신에게 찬사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 또한 잘못된 것이다. 한편, 미술과 문학 작품, 심지어 디즈니 만화에서까지 여신의 의미를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소설은 메로빙거 왕조가 파리에서 세워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교황들이 한때 아비뇽에 살았던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마녀 사냥의 일환으로 5백만 명의 여자들을 화형에 처했다고 하는 저자의 주장은 역사 기록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마녀 사냥과 관련한 최근 기록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마녀 사냥 기간 동안 3`-`5만 명의 희생자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교회의 처형을 받은 것이 아니며, 여자만 처형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모든 사람이 화형에 처해진 것도 아니다. 교육 받은 여성들과 여사제 그리고 산파들이 마녀 사냥꾼들에게 잡혀갔다는 저자의 주장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신 우호적인 자료들과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오류는 고딕 건축물을 다루는 저자의 태도에서 볼 수 있다. 저자는 고딕 건축물을 여신 숭배를 상징하는 완벽한 양식으로 보고, 초심자들이 혼동을 느끼도록 메시지를 암호화한다. 『다빈치 코드』에서 주인공은 “대성당의 길고 빈 본당은 여자의 자궁에 대한 은밀한 이교도의 헌사입니다. (…) 입술 모양의 용마루와 통로 위에 있는 음핵 모양의 작은 다섯 잎 꽃 장식으로 완성된 겁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이교 사원과 같이 고딕 성당도 여신의 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내용은 소설의 주인공 랭던의 의견으로만 무시될 수 없다. 랭던은 샤르트르 대성당의 돌들에 숨겨진 여신 숭배에 관한 강의에 대해 언급한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해석은 고딕 양식 건물의 실제 발전과 건설 과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편 템플 기사단원들은 그 시대 대성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전 유럽의 성당들은 주교들과 교회법에 따라 운영되었다. 그들은 “성스러운 기하학”의 천재가 아니며 성당을 직접 짓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석공의 대가들도 아니었다. 템플 기사단의 모든 교회가 둥근 모양이었던 것도 아니며, 둥근 모양이 교회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둥근 모양은 성스러운 여성에 대한 헌사가 아니라, 성묘의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실제로 고딕 양식 교회는 여성을 상징하는 개념과 관련이 없다. 중세시대 대성당들은 일반적으로 서쪽에 세 개의 앞문이 있으며 북쪽과 남쪽에 트랜셉트(transept, 건축용어로서 십자형 교회당에서 본당과 부속 건물을 연결하여 주는 공간을 말한다.`-`편집자 주)로 들어가는 세 개의 입구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의 몸 가운데 어떤 부분이 이 트랜셉트를 상징하고 있는가?
템플 기사단이 설립되기 전에 건설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에도 입구 위에 비슷한 아치 장식이 있다. 고딕 양식 교회와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는 모두 로마 시대 건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대 바실리카식의 긴 직사각형의 회중석이 있다. 저자와 『다빈치 코드』에 영감을 준 자료들은 데니스 성인과 윌리엄 두란더스와 같은 중세 성직자들이 교회 건축물에서 읽었던 상징주의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것은 확실히 여신 숭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잘못된 주장들

앞에서는 소설 속에 나타난 사소한 오류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이 책이 얼마나 불성실하게 쓰였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로 문헌 역사를 계획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댄 브라운은 자신이 영감을 얻은 수많은 자료들을 모아 제멋대로 결합시켜 버렸다. 마이클 배전트 외 2인의 공동 저작인 『성혈, 성배』(Holy Blood, Holy Grail)의 내용을 토대로 저자는 상그랄(Sangraal, 성배)이라는 중세 불어를 제멋대로 Sang(피)와 raal(왕의, royal)로 분리함으로써 성배의 개념을 ‘성스러운 혈통’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소설에 따르면 이 성스러운 혈통은 예수와 그의 부인 마리아 막달레나에서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중세시대 프랑스의 메로빙거 왕조에까지 이르며, 이 왕조가 몰락한 이후 현재까지 그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프랑스에 있다고 한다. 시온 수도회의 지도자 피에르 플랑타르도 이 혈통에 속한다고 한다. 시온 수도회는 1956년 프랑스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한 단체로서 템플 기사단을 지지하며 고대성을 주장하였다. 이 수도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직되었으며 1962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한편 이 책에 묘사된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의 명단은 영화 감독 장 콕토를 제외하고 나머지 뉴턴, 보티첼리, 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위조된 문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저자는 시온 수도회의 정치적 동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템플 기사단의 폭로』(The Templar Revelation: Secret Guardians of the True Identity of Christ)에 나타난 이 조직에 대한 견해를 끌어들였다. 곧 이 수도회는 고대 영지주의 학문과 그리스도의 본래 사명에 관한 기록을 보호하고 있는 은밀한 여신 숭배자들과 같은 이교도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 나오는 또 다른 가설들, 곧 그리스도와 마리아 막달레나는 혼인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은 사이로서 이시스의 성적 비밀 의식을 행한다는 내용은 생략했다.
『성혈, 성배』와 『템플 기사단의 폭로』에서 저자는 성서와 예수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이미지를 가져왔다. 곧 예수는 메시아도 아니며 가난한 목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종교 지도자로서 다윗의 왕좌를 다시 얻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그의 권한은 벤자민 왕족의 부유한 여인 마리아 막달레나와의 관계로 확대된다. “그리스도에 관해 우리 아버지들이 가르쳐왔던 모든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다빈치 코드』의 등장인물은 슬퍼한다.
그러나 저자의 잘못된 그리스도론은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신약성서가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후에 위조된 문서로서 진짜 복음서는 현재 영지주의 문서에만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신성을 인정받았다. 그런 다음 평생 태양 숭배자였던 콘스탄티누스는 모든 오래된 성서 본문을 없애도록 했다. 이러한 이유로 완성된 복음서가 4세기까지 나올 수 없었다. 어쨌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 교리가 갑작스럽고 전격적으로 변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그럴듯한 변명을 토대로 보자면, 구약성서 또한 근거가 없는 내용이 될 수 있다. 히브리어 성서가 완성된 것은 단지 천 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 원문은 매우 정확하게 전해져 왔고, 천 년 전 사해에서 발견된 구약성서의 두루마리와도 일치한다. 단편적인 내용들과 인용 부분들을 비교하여 성서 원문의 가계도와 역사적 상관관계를 분석하면, 정통 복음서는 기원 후 1세기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영지주의 문서들보다 더 일찍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바오로 성인의 서간은 복음서들보다 훨씬 일찍 쓰였다.
초기 교회 문서들과 니케아 공의회 이전 교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늘 예수를 주님, 하느님, 구세주로 믿었으며, 심지어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 죽음을 의미했을 때도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성서 단편에는 2세기 후반의 날짜가 적혀있고 이미 영지주의 작품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콘스탄티누스가 예수의 신성을 받아들인 것이 저자에게는 못마땅한 일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태양 숭배를 고수해 왔던 콘스탄티누스는 태양 숭배를 새로운 신앙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알렉산더 히슬롭과 같은 반가톨릭주의자들은 가톨릭이 구약 바빌론의 이교의식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다고 비난해 왔으며, 19세기 합리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단지 또 다른 죽은 구세주로 보았다. 『다빈치 코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오래된 비난을 계속해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신 숭배와 마리아 막달레나

댄 브라운은 무엇보다도 쾌락과 성, 그리고 여성을 혐오하는 교회가 여신 숭배를 억압하고 거룩한 여성상을 없애버렸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여신 숭배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에서 지배적인 것이었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히에로스 가모스(hieros gamos, 신성한 혼인)라는 중심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출산이 아니라 성관계 때문에 다산 의식에 집중한다.
놀랍게도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초대 유다인은 솔로몬 사원에서 종교적 매춘을 통하여 야훼와 그의 상대인 여신 세키나를 숭배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솔로몬 이후 부패된 왕국의 모습일 것이다(1열왕 14,24; 2열왕 23,4-15). 더군다나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사자음(四字音) YHWH는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야(Jah)와 이브(Eve)의 히브리어 이전 이름인 Havah(하와)가 자웅동체의 물리적 결합을 한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란 실제로 16세기 아도나이(주님)의 모음이 YHWH의 자음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여신 숭배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로마 종교들에서가 아니라, 이집트나 히에로스 가모스가 행해졌던 셈족의 땅에서 성행했다. 또한 이시스 여신의 이 비밀스러운 그리스풍 의식은 성의식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저자의 주장과 달리, 타로 카드는 여신의 교의를 담고 있지 않다. 타로 카드는 15세기 순수한 놀이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18세기 말까지 신비적인 모임을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또한 카드의 네 패(스페이스, 하트, 클로버, 다이아몬드)는 성배와 관련된 상징이 아니다. 별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의 개념은 영국의 신비주의자 A. E. 웨이트가 고의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한편 저자는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 『다빈치 코드』에서 막달레나는 참회하는 창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훌륭한 배우자이자 그분의 교회의 의도된 머리로서 베드로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성직자들에게 모욕당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는 자식을 데리고 프로방스 지방으로 도망을 갔다. 그곳은 중세의 이단인 가타리파 신자들이 예수의 살아있는 최초의 가르침을 지키고 있던 곳이다. 시온 수도회는 지하 지성소에서 템플 기사단이 발굴한 막달레나의 유골과 족보를 보호하고 있다. 이 수도회는 또한 이 책의 여자 주인공과 같은 막달레나의 후손을 보호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막달레나를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죄 많은 여인으로 그리고 있으며 베다니아의 마리아와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지만, 이러한 혼합된 내용이 등장한 것은 대 그레고리오 성인의 후기 작품에서이다. 동방교회는 위 두 가지 내용을 분리해서 생각했으며, “사도들의 사도”인 막달레나는 에페소에서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막달레나가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했다는 전설은 9세기 이후에 생겼으며, 13세기까지 성녀의 유골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볼란드파를 비롯한 가톨릭 비평가들은 17세기 이후 그 전설의 정체를 폭로하고 세 명의 여인을 구분하였다.
저자는 영지주의 문서인 『필립의 복음서』와 『마리아의 복음서』를 이용하여 막달레나와 예수가 성관계 상대를 의미하는 ‘동료(Companion)’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사도들은 예수가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고 자신들보다 그녀를 더 좋아하는 것을 질투했다. 저자는 『성혈, 성배』, 『템플 기사단의 폭로』에 나왔던 부분을 똑같이 인용하였으며, 심지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을 인용하기도 한다.

템플 기사단

게다가 저자는 템플 기사단의 역사를 잘못 전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종교적 군사 단체인 템플 기사단은 1118년 성지순례를 보호하고자 세워졌다. 이 회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의 힘으로 1128년에 회칙의 승인을 받았고, 수많은 유럽 사람들이 이들을 지원하고자 많은 토지를 기부했다. 1291년 마지막 십자군의 근거지가 함락당한 후 템플 기사단은 자신들의 과다한 자존심과 부로 사람들의 적개심을 사게 된다.
저자는 템플 기사단이 억압받게 된 이유를 ‘군주적’인 교황 클레멘스 5세의 탓으로 돌렸다. 기사단은 클레멘스 5세에게서 성배의 비밀을 얻어낸다. 클레멘스 5세는 “교묘한 계획”을 세워 갑자기 모든 템플 기사단원들을 잡아들여 악마 숭배, 남색, 신성 모독 죄를 뒤집어씌운다. 이들은 고문을 당하고 이교도라는 이유로 화형 당한 뒤 “그대로 티베르 강에 던져졌다.”
그러나 실제로 템플 기사단이 몰락하게 된 원인은 프랑스의 필립 왕과 관련이 있다. 필립 왕은 1307년 이단자라는 자백 때문이 아니라 그랜드 마스터 자크 데 몰리와 관련하여 기사단원들을 체포하고, 지방 종교 재판소에서 약 120여 명에게 화형 선고를 내렸다. 템플 기사단은 1312년에 폐지되었으므로 다른 곳에서 죽음의 고통을 받은 단원들은 거의 없었다. 클레멘스 5세는 자신의 왕에게 조종당하는 나약한 교황이었다. 당시에 그는 아비뇽을 통치한 최초의 교황이었기에 로마에서는 아무도 화형에 처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템플 기사단원들은 다산과 관련 있는 돌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하지만 이는 백여 개의 자백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남색은 수도회에 수치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상숭배 의식은 아니었다. 템플 기사단은 신비주의자들의 찬사를 받는다. 성스러운 지혜와 믿어지지 않는 보물의 주인으로서 그들의 신화는 18세기 신비주의와 합쳐지게 된다. 프리메이슨단과 심지어 나치조차도 이들을 형제로 인정하고 있다.

다시 돌아보는 다빈치

다빈치에 대한 저자의 재해석은 그의 다른 주장들처럼 왜곡되어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세비야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는 동안 “암굴의 성모(Madonna of the Rock)”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은 이미 『템플 기사단의 폭로』에 나오는 것이다.
한편 다빈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분석 또한 우스울 뿐이다. 저자는 “모나리자”를 남녀 양성의(androgynous) 자화상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그림은 지오콘도의 프란치스코 디 바르톨로메오의 부인으로 널리 알려진 마돈나 리자라는 실제 여인의 초상화이다. 또 모나리자라는 이름은 이집트의 다산 신 아몬과 리사(이탈리아어로는 이시스)의 아나그램(anagram, 철자를 순서를 바꾸어 다른 문자를 만들어내는 일-편집자 주)을 흉내 낸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템플 기사단의 폭로』의 저자가 제기한 이론, 곧 “토리노의 수의”가 다빈치의 자화상이라는 이론을 어떻게 놓칠 수 있는가?
저자의 주장은 주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집중한다. 저자는 이 그림을 예수와 성배의 진실을 드러내는 암호화된 메시지로 보고 있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테이블 중앙에 잔이 없는 것은 성배가 물질적인 잔이 아닌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다빈치의 그림은 예수가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요한 13,21)라고 경고한 순간을 극화한 것일 뿐이다. 또한, 예수 옆에 앉은 사람은 저자의 주장처럼 마리아 막달레나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 성인과 비교되는 나약한 다빈치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닮은 사도 요한 성인이다. 예수님은 그림에서 한가운데에 앉아있고 양쪽으로 세 명의 사도들이 두 무리로 앉아있다. 다빈치가 정신적으로 동성애의 문제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자신의 그림을 통해 반 그리스도적인 메시지를 암호화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힘없는 결론

결론 부분에 이르자 저자는 뒤죽박죽된 조사 내용을 토대로 형편없이 글을 써 내려간다. 그런데 왜 이처럼 가치 없는 소설을 성가시게 읽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다빈치 코드』는 숨겨진 역사 들추어내기 시리즈에 해당하는 책이다. 『다빈치 코드』는 『아발론의 안개』(The Mists of Avalon)에 나오는 이교도의 영지주의를 이용해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결국 얼마나 많은 평범한 독자들이, 묻혀버린 진실이라고 떠들면서 내놓은 내용들이 명백히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을까?
게다가 거짓된 학설로 『다빈치 코드』는 독자들이 가톨릭에 대해 적대감을 갖도록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거짓말로 가득 찬 수많은 신비주의 역사책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가톨릭 교회에 대한 댄 브라운의 공격은, 빈정대는 찬사일 수도 있지만 분명 즐겁게 견뎌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원문__ Sandra Miesel, “Dismantling the Da Vinnci Code”, Crisis Magazine, 2003년 9월호, 18면
(http://www.ewtn.com/library/issues/DaVincde.htm), 한길자 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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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아이가 엄마를 만났어요 -- 다시 쓰는 엄마마중



어느 분이 나의 <엄마 마중> 포토 리뷰에 댓글을 남기셨다.

'아이는 엄마를 만났습니다. 어른들은 이 장면을 놓치기 쉽죠. 대충 읽느라......'

"아니, 이게 무슨 소리댜?" 하면서 얼른 책을 가져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니 정말 엄마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가 보인다. 계단 밑, 엄마는 왼손에 보따리를 들고 있고 아이는 오른손에 빨간 막대사탕을 들고 있다. 아이가 엄마를 만난 이 중요한 장면을 보지 못하고 우쭐우쭐 사진을 찍어 포토리뷰로 올린 것이 심히 부끄럽고 민망스러웠다. 나의 상상력 부재와 섣부른 비관이 낳은 명백한 실수. 댓글 남겨주신 분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엄마 마중>에 관심 보이고 추천 단추 꾹 눌러준 다섯 분들 추천 다시 가져가세요. 아무튼 아이가 엄마를 만나서 정말정말 다행입니다.

 

<엄마 마중 >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588010

(포토리뷰 다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여길 눌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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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별 통신
요시토모 나라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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빳빳한 종이 케이스 안에 책이 담겨있습니다..

케이스를 열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선착순 한정수량으로 드리는 나라 요시토모의 엽서 3장과 포토 다이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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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숨은아이 > 작은 책방의 먼지와 햇빛이 구워낸 이야기
작은 책방 길벗어린이 문학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11월
절판


전에 아영엄마님의 리뷰를 읽고 사두었던 책인데, 며칠 전 조선인님이 인생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들었던 책이라 쓰신 걸 보고, 설에 조카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선물하기 전에 나도 읽어야지, 하고 이틀 동안 읽었다. 아, 전에 드라마 "나는 달린다"에서 무철이와 희야가 이야기하던 동화 "보리와 임금님"이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구나.

책머리의 "작은 책방 이야기"는 지은이 엘리너 파전(1881~1965)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먼지 가득한 "책방"을 소개한 글이다. 집안의 서재와 심지어 식당에까지 그 방에 어울리는 책들이 가득 정돈되어 있었지만, 청소 한번 하지 않은 채 온갖 책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던 그 작은 책방에서 지은이는 꿈과 마법과 환상과 진실을 만나, 이 책에 실린 여덟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여덟 편 모두 재미있고, 마음에 울림이 남아 후딱후딱 읽고 넘기기 아까웠다. 한 편 한 편, 아껴 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그림, 에드워드 아디존(1900~1979)이라는 화가가 그렸다는 그림이 좋아서 여기 사진을 찍어둔다. 책더미를 배경으로 책에 코 박고 있는 여자 아이 그림, 참 좋다.

전에 옆지기가 가을, 익은 벼가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들판을 실제로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없다. -.- 옆지기는, 들판 가득 바람에 출렁이는 누런 벼이삭을 보면 정말 껴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보리와 임금님"은 본 적도 없는 그 풍경이 그리워지는 이야기다.

이 그림도 좋다. 하늘의 달을 따고 싶어 궁전에서 가장 높은 굴뚝에 매달려 우는 공주.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인가, 교과서에도 달이 가지고 싶어 병에 걸린 공주 이야기가 나왔다. 희곡으로 된 이야기였던 듯싶다. 그 이야기보다 훨씬 기발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왜 이 나라에선 요리는 모두 여자가 할까? 남자들은 배가 고파도 음식을 하지 않을까?

이 책의 그림 중 가장 좋은 것 세 개를 꼽으라면 "작은 책방" 그림과 "달을 갖고 싶어하는 공주님" 그림, 그리고 이 "꼬마 케이트" 그림을 꼽겠다. 다락방 창문 멀리 들판과 골짜기와 언덕배기의 숲을 바라보는 케이트. 아무도 하지 않은, 작은 모험을 시작한 케이트.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무조건 금기시하고 위험하다 하는 건, 사실은 아주 아름다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걸 처음 발견한 사람은 작고 상냥한 아가씨.
"서쪽 숲 나라"에서도 비슷한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일곱 번째 공주님"까지 보고 나면, 지은이는 여자에게 부과된 인습의 굴레가 갑갑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금붕어"는 참 재미있고 기막힌 이야기인데, 글쎄, 넓디넓은 바다에서 스스로 작은 세계에 갇혀 버린 금붕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책에서 가장 길고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일벌레 나라 사람들과 북쪽의 얼음 나라, 남쪽의 더운 나라, 동쪽의 난폭한 진흙 나라는 서로 교류할 수 없단 말인가? 그럼 임금님의 어머니는 어느 나라 공주였을까? 그림에 나오는 임금님의 시가 참 재미있고 아름답다. ^^

"일곱 번째 공주님"을 읽고 참 유쾌했지만, 한편으로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법" 하고 간단히 이야기해버리는 건, 닫힌 구조를 그냥 인정하는 듯해서 조금 찜찜했다. 아니, 스스로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다는 뜻일까?

아, 어린이는 이렇게 놀 줄 아는구나.

그럼 수잔은 어떻게 살았을까. 가슴이 짠해지면서 궁금증이 생긴다. 어린이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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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숨은아이 > 뜀뛰는 쥐 이야기(3)



이튿날 아침 뜀뛰는쥐는 잠에서 깨어 굴 밖으로 기어 나왔어요. “난 여기 있어.” 쥐가 말했어요. “나는 발 아래 대지를 느낄 수 있어. 나뭇잎을 살랑거리게 하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해는 내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 잃은 건 하나도 없어. 하지만 예전의 나는 결코 아니지. 이제 어떻게 하지?” 그리고 뜀뛰는쥐는 앙 울기 시작했어요.

“뜀뛰는쥐야.” 써걱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마법개구리, 너니?” 뜀뛰는쥐가 눈물을 삼키고 물었어요.


(눈물 흘리는 쥐의 귀여운 얼굴 클로즈업)


 

 



“그래.” 마법개구리가 말했어요. “울지 마, 뜀뛰는쥐야. 넌 남을 위하는 마음 때문에 몹시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희망과 연민을 잃지 않은 그 마음 때문에 머나먼 나라에 오게 되었어.”

 

 



“겁낼 거 하나도 없어, 뜀뛰는쥐야.”

 



“높이 뛰어, 뜀뛰는쥐야.” 마법개구리가 말했어요.

 



뜀뛰는쥐는 그 말대로 했어요. 할 수 있는 한 높이 뛰었어요. 그리고 자신의 몸을 하늘 더 높이 들어 올리는 바람을 느꼈어요. 쥐는 해를 향해 발을 쭉 뻗고, 강한 힘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어요. 쥐는 기쁨에 차서 위, 아래 놀랍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땅과 하늘과 생명들의 향기를 맡았어요.
“뜀뛰는쥐야.” 마법개구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네게 새 이름을 줄게.”

 



“네 이름은 이제 독수리야.”




“넌 이제 머나먼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어.”

(마지막 장면의 독수리 클로즈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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