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이웃집 남자 - 아오야마 나나에
스무 살의 성장통, 소녀에서 여인으로
대학생활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퇴한 마리모는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추리작가 소설을 읽으며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하던 그녀는 평소 즐겨 찾던 카페 ‘시벳civet’의 여주인, 미카도의 제안을 받아들여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위층 빌라에서 생활하게 된다. 뇌쇄적이며 관능적인 미카도는 그녀를 따르는 무수한 애인을 두었지만, 어느 한 명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따르는 남자들의 심리나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즐길 뿐이다. 마리모는 미카도에게서 여성성을 지닌 동경의 대상이면서도, 사회에서 낙오한 천박한 여자라는 극단적인 두 이미지를 갖는다.
미카도가 연모하는 유메지의 등장으로 마리모의 이중적인 감정은 증폭을 더한다. 유메지 앞에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순진한 사춘기 소녀가 되어버리는 미카도를 보며 마리모는 실망하면서도 더욱 집착하게 된다. 한편으로 유메지에게 궁금증을 갖고 유심히 바라보다가 차츰 애정을 품게 된다. 극단적인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면서 마리모는 두 사람 앞에서 자기의 존재를 알리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무시당한 듯한 느낌만 받을 뿐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는 ‘여성성’을 동경한다. 관능적인 여인의 삶을 바라보며 이상형을 찾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한다. 동경과 질투의 이중적인 감정은 소녀들이 성숙하기 위한 통과의례의 한 과정이다. 저자는 간결한 문체로 한창 성장통을 겪고 있는 소녀의 일상을 꾸밈없이 간결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젊은 작가다운 생기 넘치는 문체와 섬세한 심리묘사는 성장의 과정을 겪고 있거나, 과정에서 벗어난 독자들 모두에게 공감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커튼 속에 가둔 소통의 갈망, 세상은 창 너머에 있다
마리모는 소통을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타인에게 직접 다가가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애를 태울 뿐이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주목받는 미카도가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하다. 수동적인 그녀는 소통의 대상을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몰래 엿보는 것으로 해소한다.
소통하기를 열망했던, 뇌쇄적이고 관능적인 미카도와 과묵한 교수 유메지 사이에서 자기 존재감을 잃은 마리모는 처음 호기심으로 엿보았던 이웃집 남자의 방 안을 더욱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훔쳐보기는 이웃집 남자뿐 아니라 요가 하는 낯선 여인이나 텔레비전 앞에서 쉴 새 없이 채널을 돌리는 중년의 남자에게로 향한다. 평범한 타인들의 모습을 훔쳐보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의미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며 위로받는다. 그러나 타인의 일상을 엿보는 행위는 세상에서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에 불과하다.
마리모는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슴속에 쌓이는 소통에 대한 열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토해내듯 미카도와 유메지에게 쏟아낸다. 그러나 그녀의 열정은 미카도와 유메지에게 엉뚱하고, 공허한 외침처럼 들린다.
잠에서 깨어난 마리모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삭여야 했던 욕망이나 슬픔이 드러난 솔직한 얼굴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미카도와 유메지 앞에서 보였던 자기의 얼굴이 그러한 표정을 드러냈다는 것도 인식한다. 마리모는 서툴렀지만, 처음으로 커튼 속에만 감춰두었던 자기를 타인에게 드러내고 표현한 것이다. 때문에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성교를 하는 언니의 방을 훔쳐보며 욕망에 젖은 이웃집 남자와 대면했을 때 그녀는 거울을 보듯 덤덤하게 손을 흔들 수 있다.
저자는 마리모의 엿보기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면서 자기 존재를 느끼고 싶은 이십 대의 열망을 보여준다. 마음속에는 혈기 왕성한 열정이 가득하지만, 마리모는 아직 자기 자신을 둘러볼 만큼 성숙하지 못하고 제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 서투르다.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마리모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저자는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손을 뻗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 속에 저자의 강렬한 메시지가 크고 따뜻한 울림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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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내가 옆집 남자만 쳐다보면 딱 이 책 주인공인데...
나이 초월해서...
그러나 쳐다볼 남자가 우리 옆집에는 없다는게 문제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