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째

인문 그림책입니다,

매리 애닝 이야기이지요,

 

 

여성 연구자 매리 애닝 Marry Anning(1799~1847)

18세기 유럽에서는 화석이 귀족들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소장품 중 하나였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는 화석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애호가들은 본업을 그만두고 직접 화석을 찾아 먼 거리를 여행하기도 하고 남이 찾아낸 화석을 비싸게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중에는 여전히 자신의 지성을 과시하기 위해 진기한 화석을 사모으는 귀족들도 있었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갑부들도 있었습니다.

그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는 경제원칙에 따라 귀한 화석은 마치 골동품처럼 비싼 값으로 팔려 나갔고 화석을 팔아 돈을 챙기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중 애닝 집안은 일찍부터 화석 장사에 눈을 뜬 사람들이었습니다.

1799년에 태어난 매리 애닝이 사는 지역엔 쥐라기 시대의 해안과 여러 화석들이 있는 낭떠러지가 있었고, 매리의 아버지는 화석을 수집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불행하게도 매리의 아버지는 1810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부인과 아이들에게 화석을 채집하는 기술을 남겨주었습니다.  매리는 1820년까지는 가족들이 채집한 화석을 팔아서 생계를 꾸렸습니다. 이 무렵 애닝은 화석 채집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매리 애닝에게는 아주 충직한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이 개 또한 화석 발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상한 재주를 보였습니다. 둘은 황상 함께 해안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화석을 찾아냈습니다. 어룡과 수장룡의 화석을 발견한 것도 이들이었고 비싼 값에 팔려 나갔습니다. 매리 애닝에게 귀한 화석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매리는 화석과 화석을 그린 그림을 팔아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귀족들에게 팔린 화석보다 과학자들에게 기증된 화석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매리 애닝의 천재적 화석 사냥견은 끝까지 주인 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함께 화석을 찾으러 나갔다가 해안에서 커다란 화석을 발견했는데 매리는 늘 그랬듯 개를 그 자리에 남겨놓고 도움을 청하러 마을로 갔습니다. 발견 지점을 잊지 않기 위해 개에게 자리를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토사가 무너져 이 충직한 개는 흙에 묻혀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혼자 남은 메리의 화석 가게는 예전처럼 호황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매리가 죽은 후 그녀의 화석 소장품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매리 애닝은 어룡 익토사우루스의 화석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매리는 익토사우루스의 화석 이외에도 다른 여러 종류의 어룡의 골격을 발견했습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매리가 발견한 공룡은 플레시와우르스라고 불리는 사경룡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프랑스의 해부학자였던 "조지 쿠비에르"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쿠비에르가 애닝이 발견한 공룡의 화석들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야 매리 애닝은 정식 화석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그녀가 직접 채굴한 화석에는 애닝의 이름조차 걸려있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리 애닝과 그녀의 가족들은 과학계와 대부분의 역사학자들로부터 잊혀져 갔다.

매리 애닝은 비록 화석 장사로 더 알려졌지만 그녀가 발굴한 화석은 공룡 연구에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영국의 자연사 박물관 내 매리 애닝 갤러리

참고 :

한반도 30억년의 비밀
소년조선일보
www.dinosaur-museum.co.uk

이글은 퍼온글입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이런것도 배울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류가 아직 어려서 여성 화석 학자 라고 하면 잘 이해를 못하지만,

그래도 이책을 읽으면서 나는 배운것이 있어서 좋다,

아이도 조금 더 자라면 이해하겠지요,

그림도 너무 멋지고 이야기도 너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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