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법의학자에게 던지는 서늘한 경고
죽은자들은 토크쇼 게스트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 마이클 베이든의 법의학 이야기
마이클 베이든 지음, 안재권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죽은 자로 하여금 말을 하게 만드는, 그럼으로써 실종될 뻔한 정의를 바로잡는 학문이 바로 법의학이다. 차 안에서 나온 콘택트 렌즈가 강간 후 살해된 소녀의 것이라는 걸 입증한 것도, 가해자의 바지에 붙은 부러진 손톱이 희생자의 것임을 증명해 살인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다 법의학의 힘이다. 최근에는 철로 부근에서 나온 뼈조각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것이었음을 증명하기도 했고, 무덤 속에 묻힌 시체를 재조사, 30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뒤늦게나마 감옥에 보냈다.

“이 머리카락은 피고의 것과 일치합니다”라는 법의학자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릴 판사가 어디 있겠는가?


어느날, 어드만이라는 법의학자가 작성한 보고서를 읽던 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드만이 검시를 하면서 사망자의 비장을 꺼내고 무게를 달았다고 적어놓았기 때문. 하지만 사망자는 어릴 때 배를 다쳐 비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가족들이 시신을 발굴해보니 시신에 칼을 댄 흔적도 없었다. 즉 어드만은 하지도 않은 검시로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낸 것. 그가 관여한 수백건의 사건은 모두 재조사되었다. 어드만은 “나는 인간이고 따라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의학적 증거가 재판에 미치는 위력을 생각해보면 그런 변명은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어드만 같은 사람은 한두명이 아니다. 피해자의 의류에서 발견된 정액이 자신의 것과 일치한다는, 또 다른 법의학자의 증언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데이비스는 재조사 끝에 무죄임이 입증되었는데, 죄도 없이 4년을 복역해야 했던 데이비스의 인생은 어떻게 보상되어야 할까.


저자는 말한다. 법의관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검찰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증거를 검찰에 유리하게 조작한다고. 경찰이 “사망시각을 오전 3시로 잡아주시면 좋겠다”고 한다고 거기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법의학적 증거가 재판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과학이란 건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당장의 유혹에 눈이 멀어 나온 결과를 조작한다면 법의학의 신뢰도는 크게 떨어지리라. 첨단 기술이 인간의 사악한 마음과 결합한다면 공룡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법의학자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윤리의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중간중간 지루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의학을 통해 진실을 밝혀진 사건들이 나열되어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현장에서 뛰는 전문가가 법의학의 실상을 알기 쉽게 기술했다는 점에서 별 다섯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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