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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브래지어


박영희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팽이는 서고 싶다 - 창비시선 209 
박영희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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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시인들의 엄살 - 한 알의 밀알에서 우주를 보는 - 에 군밤을 먹이고 싶어진다.
기껏 아내의 브래지어 하나 빨면서 호들갑스럽긴...
여기 아내의 브래지어는 물론 빤쓰도 빨아주는 남편도 있건만.

시적 형상화란 점에서 "아내의 브래지어"에 토를 달 부분은 없지만,
어쩐지 공연한 아내 사랑에 토를 달고 싶어진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참, 아전인수도....
아내의 젖가슴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어쩜 숫컷들의 위대한 자위가 아닐까.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앞서는 한 남자만이더니 이제는 그 대상을 명확히 나 하나만으로 국한시킨다.
갑자기 어제 아내가 욕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우연히 손에 잡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가 떠오른다.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도미설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글이야 최인호니까. 그렇다치고, 삽화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내용이나 시대배경은 모두 "삼국유사"에 나오는 그대로이고,
문장과 몇몇 사건들만 최인호가 손을 보았다.

혹시 도미설화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와 흡사하다.
다만 밧세바가 다윗의 유혹에 넘어가 통정하여 솔로몬을 낳았다면
도미의 아내 아랑은 끝끝내 개로왕의 유혹을 거부하고
개로왕의 분노를 사 눈알을 뽑힌 남편 도미와 더불어 세상을 떠돌며 산다.
개로왕을 본의아니게 유혹시킨 자신의 얼굴과 몸에 깊고 깊은 상처를 새겨
더이상 그녀의 외모에 미혹되는 남성이 없도록 한 채...

도미는 자신의 아내 아랑이 자신을 위해 정조를 지켜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것을 드러내놓고 개로왕 앞에서 확신해보였다.
물론 아랑은 정조를 지켰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도미의 확신과 어쩐지 시인의 확신이 내게는 흡사하게 느껴진다.

아내의 유방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아내의 브래지어를 빨면서 홀로 흐뭇해했을 ....
브래지어 호크를 푸는 일이 나의 기쁨을 위한 일이었고,
그 호크를 다시 닫아 거는 일도 나를 위한 일이었다면
아내의 브래지어를 빠는 일도 나를 위한 일이지 않았겠나.

아내가 남편의 팬티를 빨면서
남편의 성기에 대해 저런 상상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나의 공연한 생각이 괜스레 멀쩡한 시 한 편이 시비를 걸게 만든다.

냉동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잠깐 돌린다고
그 깊은 속까지 해동되는 건 아니다.
그 깊은 속까지 데워지기 위해선 좀더 오랜 시간 돌려야 한다.
굳이 마음의 향기까지 전하고 싶다면... 엄살도 엄살스럽게 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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