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호랑녀 > 일장기를 찢었다는 아이들을 보면서

4학년이 된 아들놈이 그런다. 아이들끼리 공책에 일장기를 그린 후 찢고 물에 적시고 밟고... 그랬단다, 오늘.

몹시 충격이었다. 멍~ 했었는데... 차분히 아이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왜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거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일반적인 견해는 우리나라가 힘이 약하니까 다시 야금야금 우리땅 차지하려고 그런다는 생각이다. 또 독도 주변의 지하자원과 고기잡이 때문에 그렇다고도 얘기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정말 궁금하단다. 일본이 이 문제를 재판하자고 한다는데, 그럼 그 재판관들은 전부 일본이 매수해둔 거냐고 묻는다. 전부 다 뇌물 받고 이미 매수당한 거냐고.

나는 요즘의 언론 보도들이 정말 못마땅하다. 온통 우기기밖에 없는 듯하다. 일본의 주장은 이러이러한 것인데, 그것의 근거는 어떤 것이며, 그렇다면 그 대응논리는 무엇인지 차분히 얘기한 기사나 방송을 보지 못했다. 혹시 있다면 지난번의 손석희 시선집중뿐이었는데, 직접 듣지는 못하고 후에 뉴스검색으로만 봤으니...

아이와 함께 일본의 근거들을 찾았다.

일단 두 가지였다. 첫째는 선점했다는 것,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관련된 것.

   우선 선점의 문제다. (김종성 이라는 분의 글을 읽고 재정리한 것이다.)

국제법상 주인 없는 땅을 자국 영역으로 만드는 방법 가운데에 선점(先占)이라는 것이 있다.

선점이라는 함은, 국가가 무주(無主)의 지역을 타국보다 먼저 실효적으로 점유함으로써 그것을 자국의 영역으로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선점이 인정되려면 대략, 4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선점의 대상이 되는 지역이 주인 없는 땅이어야 하고,

(2)선점 주체가 국가이어야 하며,

(3)선점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4)그 지역을 실효적으로(그러니까 행정적·군사적으로) 지배해야 한다.


일부는 선점의 사실을 이해관계국에게 통고해야만 선점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여기까지는 필요 없다고 보는 분위기란다. 또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점유를 해야 선점이 인정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100년설·200년설·300년설 등이 대립하고 있다니, 뭐 정답은 없나보다.


일본측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첫 번째 근거가 바로 이 선점이론이다.

일본은 주인 없는 땅인 독도를 자신들이 300년 이상 선점했다는 점을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세종실록지리지 50페이지 셋째줄만 따지지 말고 걔네 얘기도 함 들어보자.)


잘 알려져 있듯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정권은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이었다. 그래서 고려 잔존세력은 조선정부를 상대로 끊임없는 반정부활동을 전개했다. 반정부세력이 특히 울릉도를 근거지로 투쟁을 벌이자, 조선정부는 1416년(태종 16년)에 이른 바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시행했다. 울릉도에 주민이 거주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반정부세력의 근거지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울릉도에 주민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일본인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지역에서 벌채도 하고 어로작업도 했다.


이렇게 300년 이상이 지난 뒤인 1905년 2월 22일(을사오조약 이전), 일본 시마네현에서는 ‘독도를 다케시마로 칭하고 이를 오끼섬 관할에 두기로 한다’는 내용의 고시(告示) 제40호를 발포했다.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는 일본 정부가 내린 독도는 종전에 무주의 섬이었으며 일본이 국제법상의 선점 요건을 취득했으므로 이제부터는 일본 땅’ 이라는 1904년 결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대략 위와 같은 점들이 독도영유권에 관한 일본측 주장의 근거다.

태종 이후로 주인 없는 땅이 된 독도를 일본인들이 300년 이상 점유했으므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국제법 하에서는 일본측 주장이 합법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엄연한 국제적 현실이다.

그것은 일본의 국력이 강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일본이 국제법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국제법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관 중에는 일본인도 있고, 재판소 유지비용을 매년 일본이 매우 많이 부담하고 있다고는 들었다.)


그러므로 한국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주장하는 선점 이론을 바탕으로 일본측 주장을 논박하든가, 아니면 선점이론이 아닌 새로운 국제법적 근거를 통해 한국측 주장을 관철시키든가 하는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만약 선점이론을 통해 일본측 주장을 반박하려면,


공도정책 당시 조선정부가 울릉도·독도를 임시 비워둔 것일 뿐 공식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점,

1416년 이후에 이 섬을 찾은 일본인들이 정부의 감독을 받고 있지 않았다는 점,

1416년 시점에서 일본정부가 선점의사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

1416~1905년 기간에 일본 정부가 이 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한 게 아니라는 점


등을 입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는 2차대전후 연합군과 일본 사이의 협약 문제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포츠담선언의 규정들을 집행했다. 한반도 문제들은 주한미군정으로 이관되었다. 이들은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을 발표해서 일본과 그 주변국들에 흩어져 있는 섬들의 국적을 가렸다.

 

그. 런. 데...

처음에는 울릉도 독도 제주도 등의 섬을 원래의 주인인 한국으로 반환하기로 결정하고 일본으로부터 분리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그 후 미국측에 대한 로비에 착수했다. 이들이 내민 당근은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하면 거기에 레이다기지 같은 걸 세워서 북한이나 소련쪽을 감시하기에 용이할 것이다... 뭐 그런 거였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은, 지들이 손해볼 게 없으니 넘어갔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대 일본 강화조약. 이것이 문제인데, 1차 초안부터 5차초안까지는 이전의 협약대로 독도가 명문화되어 한국측으로 인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6차 초안부터는 독도가 일본 영토에 포함되도록 명문 규정을 넣으려고 했다. 그래서 7, 8, 9차 초안까지는 죽도가 일본 영토로 포함되어 표기되었다.

 

다행히 다른 연합국은 미국의 수정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늘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야 하는 처지가 참 기분 나쁘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외교부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한국전쟁중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겠지. 이해는 하지만 속 터진다...ㅜㅜ)

 

예전의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을 바꾸려면 48개 연합국의 동의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수정 동의 문서를 보내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은 합동으로 다시 초안을 만들면서 독도라는 이름을 아예 빼버렸다.

 

이후 일본은 1952년부터 '독도영유권논쟁'을 시작했다. '분쟁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그 최종결정을 위임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쭈욱~~~ 이어진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라는 곳은 한 쪽만 제소한다고 해서 재판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양쪽 모두 응소하여야 안건이 성립된단다. 그러니 당분간 재판이 이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일본은 한 가지 성공했다. 일본이 지속적으로 영유권 주장을 하는 이유는, 한국이 독도를 장기간 점유함으로써 독도가 한국영토로 ‘굳어질’ 것에 대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끊임없이 이의제기를 하는 이유는, 민법식으로 표현하면, 독도에 대한 한국의 ‘취득시효’를 깨기 위해서이다. 취득시효란 진정한 소유권자가 아니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권을 행사하면 그 소유권을 인정받게 되는 제도를 말한다.


한국정부가 공식적으로 대응하든 않든 간에, 일본정부가 이의제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는 그대로 인정되는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이의제기를 축적하다가 훗날 ‘기회’가 생기면 독도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길고 긴 스터디 후에, 그럼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쉽게 대답한다면 외교부장관 감이지...ㅜㅜ)

 

일단, 너희들이 그렇게 일본 국기를 가지고 그런 식의 대응을 하는 것은, 아마 어른들에게 배운 것이겠으나 실망스러운 모습이라고 얘기했다. 이제 아이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확 불붙기보다는 좀더 냉정하게 판단하고 논리적으로 행동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엄마는 너희들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면 욕심이냐고.

 

내 집을 빼앗으려고 가짜 소유권등기부를 들고 온 사람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각종 퍼포먼스를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내 말을 믿는 건 아니다.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긴 하지만, 나도 그의 소유권등기부가 가짜임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준비해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코를 납짝하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세종실록지리지 50페이지 셋째줄을 되뇌어도, 아무리 대마도는 일본땅을 대마도는 몰라도 라고 고쳐 불러도, 아무리 대마도의 날을 지정해도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아들놈 덕에... 독도 공부 많이 했다. 나도 바쁜데,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독도 이야기만 보다 보니 갑자기 열이 확 받는다... 나쁜 시마네현놈들... 일본놈들... 미국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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