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매너, 19단 열풍에 광분하다.

"야, 이 씨뻐꾸야." 전라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선배는 매너가 뻘짓을 할 때 마다 내 등짝을 아프지 않게 후려갈기며 잔소리를 하곤 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그 선배와 소원해진 지금까지도 저게 무슨 뜻인지 아직 매너는 잘 모른다. 그저 입에 적당히 달라붙는 밉지 않는 비속어 중 하나일 뿐이다.

사무실에서는 세종로 근처에서 대규모 호텔 관광업을 하며 부업으로 찌라시를 팔아쳐먹는 몰지각한 이익집단 - 이 표현도 매너 많이 자제한 거다 - 의 종이뭉치 두 부가 매일 배달되온다. 쳐다보지도 않는 그 종이뭉치를 어쩔 수 없이 마주할 때는 점심밥 먹을 때 사무실 탁자에 '어제의 정보'가 '오늘의 자원'으로 재활용될 때이다. 어제 점심삼아 돼지머리 국밥을 꾸역꾸역 밀어넣던 매너, 재수없게 눈을 잘못 깔아 지랄같은 굵은 글자와 눈이 마주쳤다. "인도 조기 수학교육이 랄지랄지... 19단을 줄줄줄..."

그러고보니 지난 달 아침을 먹다 흘러나온 아침방송에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19단 외우기 열풍이 분다는 이야기를 호들갑스럽게 전하는 리포터들을 보고 입맛이 상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진도 남들보다 빨리 나가는 것을 지자식이 남들보다 공부 잘 하는 것으로 자주 헷갈리는 강남의 덜 떨어진 학부모들의 호들갑에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맞장구치는것인갑다 했는데, 300만부나 종이자원을 낭비하는 찌라시에 저런 글자까지 찍혀나오는 걸 보니 이거 만만한 일은 아닌갑다. 생각난김에 웹 검색엔진에서 '19단'을 긁어보니 별의 별 호들갑스런 이야기들이 죽죽 흘러나온다. 민물매운탕 잘 밀어넣은 속이 쓰려올려고한다. 아 저 19단 타령 읆어대는 저 씨뻐꾸들을 어이한단 말인가.

 

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공돌이들의 썰렁한 농담의 세계에 잠시 발을 들여놓아보자. 미분나라 적분나라의 처절한 전쟁 이야기에 버금가는 공대 비전 유머, 공대 1학년과 공대 4학년의 차이점; 공대 새내기에게 두 자리수 곱셈을 물어보면 3초 안에 대답한다. 83 * 47이 뭐냐 물으면 머릿속 순두부 잠깐 데우는 것 만으로도 3901! 이라고 외치는 절정의 암산 능력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갈고 닦은 장하다! 공대 새내기! 버뜨 그러나. 공대 4학년에게  1 + 1을 물어보면? 숫자놀음에 찌들은 공돌이들, 계산기를 꺼내어 두드리고 자신있게 '2!'라고 외친 다음에 "아 씨바. 내 대XX병신됐구나" 좌절한다.

거짓말같다구? 멀리 갈 필요 없다. 작년 기사 시험 준비하던 매너, 64 +36 을 계산기로 두드리고 나타난 황당한 결과에, 잠시 3분간 매너 머릿속 순두부를 위해 묵념 올린 적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말랐던 시절, 나름대로 수학 잘 한단 소리 듣고 살던 매너, 이게 사람 대XX가 하구 말이다. OTZ...

물어보자. 그렇다면 공대 4학년이 새내기만 못하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새내기만도 못한 공돌이들 대다수가 10조 순익을 낸 삼성전자, 기타 한국을 먹여살린다는 이런저런 곳에서 대접받고 멋지게 일하고 있단 것만 짚고 넘어가자.

뭔 소리냐고? 일정 레벨 이상, 실제 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영역의 수리 영역에서, 단순 계산 능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는 이야기다. 이해가 안가신다면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매너가 관심있게 공부하던 영역에서 6000 * 6000 크기의 행렬을 다룬 적이 있다. 그 셀 안을 채우는 숫자들은 보통 네자리. 이녀석들을 가지고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가 나온다. 중요한 건 저녀석들을 어이하면 빠르고 정확하게 잡아내느냐 하는 논리적 사고와 오차에 대한 감각(이것 역시 수치해석이란 녀석으로 해결 가능하다)이 중요한 거지, 그 계산 과정을 사람 머리론 할 짓이 못 된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고등학교만 졸업해 봐라. 과연 암산으로 계산할 수 있는 문제를 얼마나 접하게 되는지. 모든 공돌이들의 동반자 공수의 미방 예제부터가 소수점 이하 세네자리 반올림 미적 문제가 나오고, 아주 당연스럽게 옆에 "계산기"그림이 그려져 있다.

자, 그럼 왜 인도에서 19단 외우게 시키냐고? 그건 저 이익집단의 찌라시 기사에도 대강 설명이 되어 있다. 그동네에선 아이들에게 계산의 여러 공식을 가르친단다. 이를테면 25 * 11 = 2 ( 5 + 2 ) 5 = 275, 즉 어떤 수에 11을 곱하면 십의 자리 수와 일의 자리 수를 서로 더해 십의 자리에 쓰고 앞 뒤로 그대로 그 숫자를 가져다 붙이면 계산이 된다는 식이다. 보라. 이 양반들에게 방점이 찍혀 있는 건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원리'이지, 25 * 11 = 275 가 된다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저 과정에서 '공식의 논리'를 배워나가는 게 훨씬 중요하다다. 19단을 외워 계산이 빠르게 된다는 건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그럼 도대체 왜 19단 열풍이 불고 있나? 간단하다. 시간제한이 있는 객관식 시험체계 있는 한, 계산능력이 좋다는 건 제한시간 내에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는 걸 이야기한다. 100분 시험 중 단순 계산에 쓰이는 시간이 30분인 애보다 10분인 아이가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거고, 그에 따라 '제한된 시간에' 답을 찾을 확률은 높아진다. 결국 저 19단 열풍 뒤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은 '제한시간 내에 수학 점수 잘 따기'에 그치는 거다. 자, 당연히 제한시간 있는 시험의 점수가 같다면 계산능력은 떨어지나 수학적 논리력이 좋은 아이와 계산능력이 좋지만 수학적 논리력이 부족한 아이는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개 무식한 논리가 발전하게 된다. '연산 능력 = 수학적 논리력' 자, 저 이익집단의 邪說, "'수학 강국'에서 국가 활로 찾은 인도 '를 보자.

다른 나라 어린이들이 계산기로 곱셈을 할 때, 인도 어린이들은 19단을 줄줄 외운다. 국민들의 수학적 논리력과 연산력이 뛰어난 나라가 지식 정보산업에서 앞서가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http://news.empas.com/show.tsp/cp_ch/20050308n09860/?kw=

어린이들의 계산능력과 암기력에 대한 단순 비교는 그냥 무시하자. 정말 유치한 건 어린 시절의 계산능력을 '수학적 논리력과 연산력'과 동일시하는 단순무식함이다. 아 이러니까 글쟁이들이 욕 쳐먹는거다. 계산 잘하는 것과 수학 잘하는 걸 동일시하는 국민학생스러움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고있다. 고등학교 이과에서 미분방정식을, 문과에서도 banking/accounting을 놓고 가르치는 넓고도 깊은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수박 겉핣기 정도로 지나치고, 가장 자극적인 측면 19단 타령뿐이다. 글팔아 아구리에 밥 넣어 사는 포유류들이라면 제발 좀 알고 글 써야 할 거 아닌가?

이 개소리의 압권은 단연 마지막이다.

 

그러나 이 정부가 들어서서 내놓은 국가 생존처방이라곤 수도권에 있는 정부부처와 공기업들을 이곳저곳으로 흩어 놓겠다는 ‘균형발전전략’밖에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후손들이 “국가 장래를 위해 그때 무슨 준비를 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아, 인도의 수학교육을 끌고 와서 국가 장래를 걱정하더니 결국엔 일로 빠진다. 정말 경탄스런 능력이다.

 

제발 뻘짓들 말라. 오심 그림 박박 그려가며 외우게 시키지 말고 그 시간에 유클리드의 '원론'을 같이 읽어나가는 과정을 못 집어넣나? 수학 교과서 한가운데 뉴턴의 '프린키피아'원문을 집어넣는 멋진 교과서 없나? 0부터 무한까지에 나오는 즐거운 정수론 이야기하는 교과서 안되나? 무식하게 숫자 때려박은 머릿속 순두부 얼마나 갈 거 같나? 아니, 제한시간 주어진 시험 벗어나 얼마나 굴러갈 거 같나?

부디, 알라딘에서만이라도, 19단 못 외워서 스트레스받는 아해들이 없길 바라마지않는다. 검은비님의 별소년이, 마냐님의 서영/준영 남매가, 너굴님의 유진이가, 진/우맘님의 예진/연우 남매가, 19단 가지고 스트레스 받지 않길 바라마지않는다. 구구단만 잘 이해하고 적당히 뗀 다음, 숫자 자체에서 자유로운 숫자놀음의 세계에서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단 어쩌구 하면서 나오는 책, 역시나 저 이익집단의 종이뭉치에 19단 외우면 좌뇌/우뇌 어쩌고 하면서 게거품 물어댄 재능교육 모 실장 - 매너가 주장하건데, 한국의 어린이/청소년들이 수학 하면 진저리내게 만드는 50%의 원인이 눈높이/재능 등등의 문제 노가다 찌라시에 있다. 밀리면 엄마한테 두드려맞고 울면서 이갈면서 똑같은 숫자놀음 하는 게 도대체 뭔짓인가 - 기타 등등 19단 입에 물고 사는 인간들에게 매너 공식 반응 한마디 던진다. "씨뻐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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