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모에 접수된 충격적인 제보, 내신 빌미로 학부모와 부적절한 성관계 현직 교사의 성적조작 사건이 신문지면을 장식하던 지난 1월말. 연수원과 박물관 건립을 위해 매입했던 충남 연기군 내 한 폐교를 둘러보던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 대표인 고진광씨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썩은 교사’를 고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내신성적을 빌미로 학부모와 성적 접촉을 한 교사를 알고 있으며 이번 기회에 총체적인 내신성적 조작 비리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고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학사모’ 관계자들은 ‘개인적 연정 문제를 침소봉대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연수원 위치를 설명했다. 전화를 끊고 2시간이 되지 않아서 제보자가 찾아왔다. 4명의 여성이었다. 모두 대전 시내 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자모였다.
자리를 함께 한 제보자들은 “그런 선생 X들 (교단에서) 들어내야 한다” “끝장을 내겠다”며 흥분하고 있었다. 학생의 내신성적을 빌미로 학부모와 성적 교제를 요구한 한 교사를 교단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사모 관계자들이 전한 사연은 기가 막혔다.
“한 여학생이 교사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고백했고 그 대책 마련을 위해 일부 학부형이 모였다. 대책논의 과정에 내신성적을 빌미로 학부형에게도 성관계를 요구했으며 부적절한 관계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를 찾아온 학부모 모두가 그 교사에게 ‘당한’ 사람들이고 그 속엔 피해 여학생의 어머니도 있었다. 이 문제를 인터넷 전교조 게시판에 올렸으나 교사의 품위손상을 우려해서인지 곧 삭제되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한 교사에게 여러 학부모 당해 그들은 증거품을 내놓았다. 성인물품점에서 볼 수 있는 성기구였다. “(교사가)이것을 그 엄마에게 건네주면서 다음에 만날 때 들고 나오라고 말했다더라”고 학사모 관계자들은 전했다. 학사모측은 또 “성접촉한 당사자와 ‘학사모’는 문제의 교사를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학사모 사무처장인 전성민 변호사는 “학교에 아이를 맡긴 부모가 무슨 죄인이냐”고 반문하면서 “내신성적을 핑계로 학부모에게 부적절한 관계를 요구한 일부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분개했다.
휴대폰을 이용한 수능부정, 서강대의 입시부정, 배재고의 답안지 대필사건, 문일고의 내신성적 조작비리.... 학교 안팎의 비리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일부 교사들이 내신성적을 빌미로 학부모와 성접촉까지 했다는 사실이 시민단체에 고발돼 충격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부적절한 관계는 개인적 양심 차원을 떠나는 문제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학벌지상주의와 목적제일주의, 그리고 자녀에 대한 과잉헌신 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교육의 실패’를 넘어선다.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게 교육계 전반의 공통된 분석이다. 교사의 성상납 요구가 대전 지역에 국한된 사례는 아니라는 게 학부모들의 얘기다.
문일고 성적비리에 대한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도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경찰은 2월 24일 문일고 성적조작 사건발표에서 “일부 학부모는 교사들의 노골적인 요구를 뿌리치지 못해 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로 발전한 경우도 있었으며, 이처럼 성적 조작에 연루된 학생 7명 중 일부는 서울소재 유명대에 합격하는 등 모두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자녀가 문일고를 졸업한 어느 학부형의 증언은 더 생생하다. 이 학부모는 “아이가 1학년 때 한 교사가 ‘차나 한잔 하자’고 전화를 해 그를 만났더니 ‘내신성적과 상장 관리권한을 교장이 50%, 교감이 25%, 내가 25%를 갖고 있다’면서 노골적인 성적 관계를 요구한 적이 있는데 결국 그가 2년 전 성적조작 사건으로 학교당국에 의해 퇴직처리되더라”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지난해 4월 ‘학사모’는 폭행이나 뇌물수수 등으로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현직 교사 62명의 명단을 공개한 일이 있다. 이 단체의 고진광대표는 “지난해 전국 학생 및 학부모로부터 문제 교사 620명에 대한 제보를 받아 자체적으로 현장조사를 한 뒤 부적격 교사 62명의 명단을 작성했다”면서 “학사모의 부적격 교사 선정 기준에 적시되지 않았지만 극히 일부 교사는 학부모와 부적절한 관계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발표된 부적격 교사 기준은 ▲학생-학부모-동료교사에 대한 폭행 ▲교실폭력 방관 ▲뇌물수수 ▲학생 선동 등 학교현장 혼란 ▲잦은 무단결근 ▲음주상태에서 수업진행 등 수업지도 태만이다. 이에 대해 전교조 소속 57명의 교사와 전교조는 명예훼손으로 학사모를 고발한 상태여서 추이가 주목된다.
“선생님 유흥접대 늘어 큰 문제”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은 매우 은밀하게 전개된다. 뿐만 아니라 사건의 성격상 잘 공개되지도 않는다. 한 학부모는 “선생님에 대해 유흥접대가 늘어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경찰이나 시민단체에 고발된 부도덕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학부모 사회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가정파탄, 자녀의 학교 명예뿐만 아니라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할 때 쉽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전 지역의 고발자 대부분은 이런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런 사건이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배경에는 교육개혁 방향을 둘러싼 교육단체들간의 다툼도 은근히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문일고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보수-개혁단체들의 다툼 속에서 이 사건이 다시 불거졌다는 얘기다.
보수성향의 교육단체들은 문일고 사건은 이미 2년 전에 벌어졌고 사건 당사자가 사죄하고 퇴직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것은 일부 진보적 교육단체들의 입김 때문인 것 같다. 어떻든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개혁단체들과 달리 학사모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수시성적 확대반영에 대한 반박 자료로 이 문제를 활용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교사의 신뢰 문제를 수시성적 확대와 연계시키려는 것이다. 고진광대표는 “교사들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신성적의 비중확대는 교육환경을 더욱 황폐케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경은기자 jjj@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