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선인장 > 눈 풍경

올해는 정말이지 눈이 내리지 않는다. 뭐 특별히 눈을 좋아하지는 않아도, 눈 쌓인 풍경 한번 제대로 보지 않고 겨울을 보내려니 아쉬워서, 지난 겨울 일본에서 찍어왔던 사진들을 다시 본다.
위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풍경. 나는 저렇게 맑은 겨울 하늘이 좋다. 햇살은 따스하지만, 바람이 이따금 불어준다면 금상첨화. <홋카이도 개척촌>에서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를 만났다. 유난히 눈이 많아서, 앞을 볼 수도 없었던 삿뽀로 시내관광을 생각하면, 아주 운이 좋았던 셈. 아무도 밟지 않는 흰눈과 파란하늘에 들떠서, 나는 추운 줄로 모르고, 돌아다녔는데.
지금 집으로 이사하기 전, 마지막 겨울의 어느 밤, 폭설이 내린 적이 있다. 아파트 단지가 순식간에 눈으로 가득 덮였다. 동생과 나는, 그만 신이 나서 잠옷바람으로 달려나가 눈밭을 뒹굴었다. 세상에 서른 먹은 처녀애와 그보다 한 살 어린 여자애가 눈 속으로 뒹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민망할 노릇이다. 그래도 우리는 마냥 신이 나서 눈사람도 만들고,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인사도 하고 그랬었다. 이웃들은 우리가 중학생쯤 되는 줄 알고, 그만 놀고 들어가라, 감기 걸릴라, 친절하게 대꾸했었는데.
질척거리고, 길만 막히고, 춥고, 짜증나기만 했던 눈이, 갑자기 보고 싶다. 겨울이 가기 전에 제대로 내린 눈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