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6월
구판절판





우리가 일상생활의 마취에서 화들짝 깨어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때는 자기나 가까운 친지가 몹시 아플 때거나, 갑자기 친지를 잃었을 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타인의 죽음도 두려워한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는 슬프다. 염세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조차도 그렇다. 그렇다면 내 염세는 아직 덜 익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는 아직 사랑할 누이와 벗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확실치는 않지만.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흔히 살붙이의 죽음을 맞은 사람의 슬픔을 묘사할 때 사용되자만, 그것이 엉뚱하거나 과장된 비유만도 아니고 꼭 가족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만도 아니다. 가까운 친구가 세상을 버렸을 때, 우리는 실제 사지 하나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의 이타주의 때문이 아니라, 이기주의 때문이다. 아니, 모든 이타주의가 확장된 이기주의라면, 그것을 이타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를 묻고 슬픔을 느낄 때,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를 위한 슬픔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을 위한 슬픔이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를 묻을 때, 우리의 일부를 거기에 묻는다. 우리가 그들과 공유한 과거를 묻는다. 그들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그들과 공유했을 미래의 가능성을 묻는다. 가까운 사람의 장례 뒤에 우리가 느끼는 슬픔은 바로 그 사라져버린 우리 자신의 일부가 유발하는 슬픔이다. 그렇다면 내가 누이를 위해 마련한 사랑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해 마련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다.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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