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펌)썸데이서울-100대 193

요즘 제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 `특명 아빠의 도전'에서는 특명 아빠를 선정하기 위한 가족 면접을 실시합니다. 특명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저희가 나름대로 정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우선 아빠 자신이 최소한 카메라 앞에서 주눅들지 않을 끼가 있어야 하겠고, 가족들 역시 노래를 시키면 못 부를망정 안 부르지는 않는 활달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기준이 있다면 아이들 수는 다다익선입니다. 지금까지 출연한 가정의 자식 수를 평균 내 보면 적어도 3.5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3남매는 흔했고, 5남매도 가끔 있었으며 8남매까지도 출연시켜 봤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자식 많은 집을 선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경향이 발견되더군요. 대개 자식이 많은 집은 줄줄이 딸들의 행진이거나 그 끄트머리에 떡두꺼비같은 아들이 끼었을 경우가 전부라는 겁니다. 즉 2녀1남, 3녀1남, 4녀1남 등의 형태 말입니다. 반면 아들 3형제 이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3남1녀 4남1녀 등의 가족 구성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몇 가지 기억이 눈 앞에 떠 옵니다. 언젠가 대구 촬영을 갔다가 지하철에서 "대구 지역의 신생아 남자 성비가 전국 최상위권이니 이러지 말자!"고 호소하던 캠페인을 보았었지요. 대구 사람들의 아들 선호 의식이 좀 유별난가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만 얼마 뒤 그것이 대구만의 문제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는 통계를 보고 정말로 기절할만큼 놀랐었습니다.

그 통계는 셋째 아이의 성비였습니다. 즉 대한민국 표준인 두 명의 아이 (요즘은 더 줄었다고 합니다만)에 더하여 태어난 신생아가 딸인 경우를 100으로 할 때 아들의 비율은 우리나라 평균 136.6명이었습니다. 이만해도 혀를 찰 만한데 지역별 통계 가운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수치가 하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땅 강남의 셋째 아이 여남 비율은 무려 100대 193이었던 겁니다.

이 수치를 뒤집어 보면 이건 셋째 아이를 임신했을 경우 아들이 아니면 거의 세상 빛을 못본다는 얘기겠지요. 신생아의 성감별이 불법화한 지 오래임에도 삼신할미의 친척이라도 되는지 강남 지역의 엄마들은 아들만 골라 임신해서 순풍순풍 낳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딸을 배구팀 수준으로 낳고 그 뒤에 아들을 본 분들이 면접을 보러 의기양양(?) 대부대를 이끌고 오실 때 저는 위에서 말한 그 끔찍한 통계들을 떠올리면서 빈말로라도 장하다(?)는 말을 전하곤 합니다. 어쨌건 그분들은 생명을 버리지는 않았으니까요. 아들을 낳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한국인이 되었을지언정 고추가 없다는 이유로 소중한 생명의 씨앗을 무리하게 없애지는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면접 보는데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두 번 실패(?)한 뒤에 태어난 애예요."라고 자랑스레 말하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돌려 보냈었지요.

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정말 모릅니다. 아들이 없으면 `대'가 왜 끊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의 성을 이은 고추 달린 남자가 대대손손 있어야 저승에서도 편안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그 소중한 아들을 얻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생명들이 딸이라는 이유로 죽어가야 하는 세상은 문명보다는 야만에 가깝다는 것이겠지요. 

한 변호사님이 `성감별의 금지'가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는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저는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물론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출산 준비물을 행복하게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만, 그 변호사님의 선의보다는 당장 태아성감별이 불법화되어 있음에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수준이 높다는 지역의 셋째 아이 성비가 100대 193이 되는 끔찍한 현실이, 그리고 언젠가 두 번의 `실패'를 얘기하던 특명 아빠 지망생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김형민 SBS프로덕션 PD `특명! 아빠의 도전'연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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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나온 글임다. 저 숫자들의 의미에 대해 곱씹으며 부르르 떨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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