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정(正)의 한 획을 그으며” 

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그가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의 낙인과도 같은 문신에 대한 글인데, 그들을 사회 약자의 위치에 놓고 바라본 이야기이다. 그들의 문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카멜레온의 보호색과도 같은, 가난한 이들의 자기 보호색으로 보는 시각이 흥미로웠던 글이다. 네팔에는 분따 라는 특별한 행태가 존재한다. 과거 마오이스트들이 트래킹 대상자들을 상대로 길을 막고 통행료를 받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는데 그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분따로 인하여 여행 일정이 종종 연기되곤 하는데, 네팔인들이 하루 동안 특정 도로를 막고 통행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행의 불편함을 뒤로하고 그들이 분따를 일으키는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결국 가난한 이들의 서글픈 이야기들이다. 같은 마을 사람의 장례식 비용 마련을 위하여, 가진 자의 폭정에 항거하여 그 억울함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넘어가는 히말라야의 언저리에서 버스를 가로막는 분따를 만났다. 몇몇 사람이 직접 쓴 비뚤비뚤한 현수막을 들고 길을 가로막고 몇몇 사람이 운전석으로 다가가면 운전수는 일정량의 통행료를 지불한다. 버스 승객 모두 그 행위에 그저 일상의 일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그 작은 항거에 대한 동병상련 때문일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통행료를 지불하던 젊은이마저 환하게 씨익 웃는다.



<박타푸르 더르바르 - 리틀부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더르바르(광장)에는 쿠마리가 산다. 네팔의 미신적인 풍습에 의하여 선발되는 4세의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다.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하여 선발되면 여신으로 추앙받는데 그 마지막이 서글프다. 어린 시절을 저당 잡혀 살며 어떤 교육이나 사회화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초경이 시작되면 불경하다는 이유로 결국 쫓겨나는데 일반인으로 돌아온 쿠마리를 맞아들이는 가족은 단명한다는, 쿠마리와 결혼한 남자는 단명한다는 나쁜 속설로 인하여, 쫓겨난 쿠마리는 평생 홀로 살아가며 생계를 위하여 거리의 여자로 살아가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쿠마리는 카트만두 시내 더르바르의 한 건물에 살고 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는 여행자에게 이층 창문으로 살며시 얼굴을 보여주는 쿠마리는 운명의 서글픔을 알고는 있을까. 결국 보지 않았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서글픈 운명이 겹쳐진다면 그 운명의 무게로 발걸음을 띄지 못할 듯 싶었다. 더르바르 광장 뒷골목을 서성이다 여염집의 이층 창문에서 쿠마리 또래 인듯한 아이들을 보았다.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그들의 모습 위로 보지도 못한 쿠마리가 자꾸 겹쳐져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왠지 근접할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지던 박타푸르 광장의 노인>

로컬 버스에 흔들리며 찾아간 박타푸르 더르바르는 흡사 중세 시대로 귀환한 듯한 느낌이었다. 온통 흙색의 도시이다. 인도의 자이살메르가 풍기던 황금빛의 찬란함과는 다른, 흙만이 줄 수 있는 아늑한 온화함이 굴절된 빛으로부터, 막 응달로 접어든 벽으로부터 스며 나와 차분하게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질듯한 탑과 사원의 웅장함, 그 사원의 주변에 형성된 민가의 단촐함에서는 대조적인 이분법적 의미보다는 오랜 세월 품고 살아와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조화로움이 느껴졌다. 그러한 골목을 거닌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가장 호사스런 경험일 것이다. 아득한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을 따라 걷다 보면 흡사 내 몸의 일부가 골목이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하여 그곳을 벗어나 아득히 먼 길을 떠난다 해도 그 온화함에 살며시 눈을 감고 골목을 걷던 평화로움은 언제나 내 기억의 한 조각을 이루어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는 골목은 언제나 포근하다> 

 
내가 머물던 숙소는 한국 여성이 운영하는 네팔짱 이라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카트만두에서 유명한 곳인데 식사를 위하여 찾아 들어간 부속 식당에는 꽤나 유명한 인사들이 히말라야를 방문하기 위해 찾아 들어 남기고 간 사진들로 가득했다. 우연히 그곳에서 포카라에서 막걸리 으로 만난 여행자를 만났다. 하루 일찍 네팔을 떠나는 그와 마지막 을 마시고 들어온 날 우리도 하나의 사진을 붙였다. 포카라에서 만난 네 명의 여행자가 사랑코트에 올라 찍은 사진인데 나머지 두 명은 인도로 향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사진 밑에 우리의 이름을 쓰고 바를 정()의 한 획을 긋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다른 두 명에게는 메일로 통보해 줄 예정이었다. 그는 이년에 한번 정도 네팔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십 년의 세월이 걸릴 거라 말했다. 난 십 년 안에 한 획을 더 그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웃었다. 그 사실이 다소 서글펐지만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밑에는 한 획으로 표현된 우리의 추억이 굵게 가로 지르고 있었다



<바를 정(正) 자의 한 획을 그었다. 누가 또 다음 획을 그을런가>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orgettable. 2010-04-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인도와 네팔은 언젠가,갈수있을지 모르겠어요.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배낭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벌써 안락한 여행의 편안한 맛을 봐버렸다능 ㅠㅠ

역시 한 번 간 김에 다 돌고 왔어야 했는데..

전 여행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가는중인데 어쩜 잉크냄새님의 여행기는 묵히면 묵힐수록 점점 따뜻하고 깊어지는지요.

잉크냄새 2010-04-11 21:24   좋아요 0 | URL
가슴에 품은 열망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그 길위에 서리라 믿어봅니다.
아직 많은 도시가 남아있어요. 이제 1년의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눈만 감아도, 그 지명만 들어도 그 거리의 모습과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아마 평생동안 그 모습들은 잊혀지지 않을것 같네요.

비로그인 2010-04-1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마리 같은 여인들의 모습은 즉, 형태만 다를 뿐 여성을 학대하고 이용하는 그 근본에서는 공통인 모습은 그러나 21세기라는, 현대의 이세계 모든 도시들에서도 볼 수 있지요. 가장 진보했다는 서유럽에서조차 저는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요..
그 자식들에게 fuck you를 날리기도 했고 때려도 보았고 고함도 지르고 거리 한복판에서 미친여자처럼 싸워도 보았어요. 여자도 사람이라는 걸 시위해야 한다는 건 비참한 일이예요..

잉크냄새 2010-04-11 21:28   좋아요 0 | URL
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악습이죠. 의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 악순환의 고리를 결코 자를수 없겠죠.
시리아에 있을때 발생한 명예살인 사건이 떠오릅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다마스커스가 추해보이고 중동인들마저 비겁해보여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와버렸죠.

춤추는인생. 2010-04-1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장의 노인사진 참 좋으네요. 뼈만 앙상한 사람을 보면, 미적으로 참 정갈하다 라는 느낌이 들어요.왜 이병률 시인이 시중에 순정 있쟎아요. 살이 붙어 흉이 많다고.
때론 뼈밖에 없는 저 정갈한 사진에는 가릴것 하나도 없는 투명함이랄까. 그런데서 오는 숙연함이 있는것 같네요.
인도에 대한 여러작가의 글들이 있지만. 잉크냄새님 글 참 좋죠.^^
화이팅이예요.!

잉크냄새 2010-04-11 21:3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저 사진 제가 찍은 참 많은 사진중에서도 아끼는 사진입니다. 박타푸르 광장 초입에서 만난던것 같은데 저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보았어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갔지만 결국 노인을 만날수 없었죠. 하지만 그 잔상이 한동안 남아있더군요.

paviana 2010-05-1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부지런했다면 이 글을 한달전에 벌써 읽었을텐데...
아래 사진 속에 잉크님 계신거지요? 어떤 분일지 궁금하네요.
근데 글을 점점 더 잘 쓰시는거같아요. 사진도 그렇고. 비결이 혹 있으신가요? ㅎㅎ

잉크냄새 2010-05-18 15:14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서재초기부터 꾸준히 방문해주시잖아요.ㅎㅎ
글은....가슴에,추억에 남아있는 여행의 느낌을 풀어내기에는 전 너무 부족합니다.
 

“옴마니반메흠
여행이 타인의 삶 속으로 한 발짝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면 로컬 버스는 바로 여행의 매력이라 할만하다. 그저 옷깃 스쳐 지나가는 우연이 아니라 한정된 공간 속에서 웃음 소리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릴 만큼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근거를 알 수 없는 동질감이 생기곤 한다. 룸비니에서 포카라로 가는 로컬 버스는 아담한 작은 버스였다. 지붕 가득 짐을 실은 버스는 계곡 옆을 깍은 아슬아슬한 길을 지날 때마다 원심력을 잃고 날아갈 듯 기울어지곤 했다. 아름답고도 위험한 길을 벗어나 산길로 들어갈 때쯤 버스 승객들 사이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 작은 산골 마을로 들어선 버스가 이유 없이 오래 머물렀고 잠시 후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 아리따운 네팔 여인이 나타났다. 분위기로 보아 운전자의 애인쯤으로 여겨지는데, 버스 안에 탄 모든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선물을 주고 밀어를 속삭이던 두 사람에게 드디어 질투에 눈이 먼 네팔 총각들의 날선 눈초리가 날아들고 급기야 거친 말다툼으로 번졌다. 애인을 뒤로 한 채 다시 출발한 버스는 나이든 노인들의 근엄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섰다 갔다를 반복하며 거친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든 적당한 시간과 거리가 존재한다. 천사 같은 애인이 그저 부러웠을 총각들의 마음이 부러움에서 질투로, 다시 분노로 서서히 넘어가던 시간을 운전자는 알지 못한 듯 싶다. 여행자의 신분이기에 적당한 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나에게는 산길을 따라 내려오던 천사 같던 그 여인의 모습만이 남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악기 소리에 잠이 깨었다. 나무를 깍아 만든 투박한 두 줄 현악기를 연주하는 소년이 올라탄 것이다. 악동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눈을 가진 열살 남짓의 소년은 변성기 이전 특유의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하는데 흡사 해금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소년은 두세 곡을 더 부른 후 승객들이 건넨 돈과 음식을 받아 사라졌다. 그 소년이 악기를 연주하던 그 순간, 여전히 덜컹거리던 버스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여유로운 승객들 사이에 흐르던 투박한 현의 소리와 꼬마 악동의 노래 소리가 꿈처럼 아스라했다.





<포카라 가는 버스 안에서 악기 연주하는 소년>

사람마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는 듯 싶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혼을 빼앗기고, 누군가는 찬란한 문화 유산에 매료되고, 또 누군가는 휘황찬란한 도시의 풍경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난 삶이 담긴 풍경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편이라 인도의 타지마할보다도 바라나시의 풍경에 훨씬 매료된 듯 싶다. 그런데 이곳 포카라는 신비스런 안나푸르나의 눈덮힌 산봉우리와 그 눈부신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 안는 페와 호수의 잔잔한 잔물결만으로도 숨이 막히지만 적어도 나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옴마니 반메흠이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울려대던 시내의 작은 도로였다. 도로 양 옆으로 기념품 판매점과 음식점이 즐비한 다른 도시에서 흔히 접하던 흔한 풍경이었지만 불교 음악이 끊이지 않고 인상 좋은 네팔인들이 그저 웃으며 살아가는 그 거리의 풍경은 분명 다른 도시와는 차별화된 인상이었다. 풍경과 삶이 겉돌지 않고 서로를 안는 느낌이었다. 풍경은 자연만을 담는 것은 아니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풍경이 더 친숙한 것은 아닐런지. 세월이 흘러 이 길의 돌 한조각을 주워 가만히 들여다보며 귀를 기울이면 설산의 눈부심과 호수의 일렁임이 느껴지고 옴마니 반메흠이 흘러나오던 거리를 거닐던 나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를 듯 싶었다.



<마을 어디든 설산을 이고 있는 풍경>
 


룸비니의 대성석가사에서 만난 그리스 친구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지 자신의 여행과 상관없이 나를 따라 포카라까지 왔다. 사이프러스 출신인 그는 부동산 중개업자인데 산토리나가 멋있을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싸게 집 한채 얻어 준다는 멋진 직업의식을 표출하곤 했다. 커다란 키에 대머리인 그는 서양인치곤 독특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더치패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전부 지불하는 적극 추천할만한 만행을 저질러 나를 당혹케 하곤 했다. 친한듯 싶으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마리화나를 피우기 때문이었다. 아침 나절 숙소 이층 탁자에 앉아 정성스럽게 마리화나를 종이에 마는 모습이 참 낯설면서도 깜짝 놀래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천진스러움도 느껴졌다. 한밤중이 되면 우린 탁자에 앉아 아프리카 타악기 음악을 듣곤 했다. 마리화나와 타악기 비트음의 상승효과에 열변을 토하는 그에 답해 난 술과 타악기의 궁합을 술을 마시며 몸소 실천해주었다. 그 음에 맞추어 손가락 장단으로 시작한 아카펠라는 발장단까지 더해져 밤이 이슥하도록 계속되었다



<타악기에 발장단 맞추던 테라스>

인연이라는 말에는 작은 설레임이 있다. 잔잔하던 마음이 산들바람에 일렁이듯 설레이는건 인연이 필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적한 점심 나절이면 소비따네라는 작은 식당 한 자리를 차지하고 엽서를 쓴다든지, 금새 친해진 여행자들과 이라는 막걸리를 마시며 소일하곤 했다. 어느날,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한 눈이 맑은 아가씨가 계속 나를 주시하였다. 다시 책을 읽다 머리를 들면 마주치는 눈빛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살며시 자리를 뜨려니 황급히 나를 부르며 자신을 알지 못하냐고 물었다. 델리에서 이곳까지 거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도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수원에서 인도 여행 설명회때 만났잖아요.” , 첫 여행의 설레임과 두려움 반으로 찾아간 인도 여행 설명회의 뒷풀이때 내 앞에 앉아있던 아가씨였다. 나보다 여행 일정이 한달 가량 늦게 잡혀 있었고 여자 친구를 혼자 보내야 하는 근심에 안절부절하던 남자친구와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로 술을 마셨었다. 인연이 있다면 인도 어디에선가 만날겁니다. 라며 헤어진 자리였는데 네팔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다니. 만난지 이틀뒤 그녀는 동행들과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떠났고 난 카트만두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여행 수첩을 뒤적여 그 곳에 적힌 수많은 인연들을 다시 떠올렸다. 세상의 어느 언저리에서 또 다시 만날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그리움이 여행지의 풍경과 함께 살며시 피어올랐다. 



<사랑코트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와 마차푸르레의 일출>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anicare 2010-04-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색감의 보라색 벽, 드물게 보는군요.
마지막 사진은 많은 생각을 머금게 했던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이 연상됩니다.
포카라..오래전부터 한 번은 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요.
덕분에 내 자리에서 먼 곳의 모습을 생생히 맛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게두요.^^

잉크냄새 2010-04-08 00:50   좋아요 0 | URL
하니케어님, 오래간만이네요.
"잃어버린 지평선"에 소개된 샹그릴라를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포카라는 마음을 얻고 돌아오기에 충분한 곳이라 생각됩니다.

비로그인 2010-04-0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잉크냄새님 여행은 각자의 창으로 세상을 보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다 다르고 .. 정말..그래요..
어느분께서 글에 그러시더군요. 이세상에 몇 십억개의 세상이 있는것이 신난다고, 각자의 사람들이 각자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니 결국 하나인 세상이지만 수십억개의 세상이 있는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겠죠..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님이 바라보는 소중한 세상 이야기를요.. ^^

잉크냄새 2010-04-08 00:53   좋아요 0 | URL
수십억개의 세상이 있고, 그 수십억개의 세상을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줄때 세상은 진짜 그런 다양성속의 조화로움을 이루어갈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직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군요. 그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삶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영글어 가리라 믿습니다.

카삼 2012-07-06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보고가입니다

잉크냄새 2012-07-09 10:04   좋아요 0 | URL
하, 이 오래된 여행기를 봐주시는 분이 계시네요.
고맙습니다.
 

"다시 넘어가세요" 
인도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바라나시에서 다소 걱정이 되었던 것은 인도-네팔 국경을 넘는 문제였다.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우리 실정에 걸어서 국경을 넘어야한다는 것, 국경에서 비자를 받는다는 것이 다소 생소한 일이었다. 여행 책자와 여행자 정보를 통하여 충분히 숙지하였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족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바라나시-고락뿌르의 인도 마지막 기차에서 팔일동안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의 친구들이 건네준 비닐을 열었다. 샌드위치 하나, 바나나 하나, 그리고 삶은 계란 몇개. 계란을 까는 날 물끄러미 쳐다보는 인도인들을 바라보니 '아, 이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길도 이제는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괜시리 슬퍼졌다. 고락뿌르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세시간을 달려 도착한 국경도시 소나울리는 여느 도시와 다를바없이 혼잡하였다. 멀리 국경처럼 보이는 아치형의 석조형 문이 보이고 그 가운데로 난 큰길을 따라 사람과 소와 차량이 뒤엉켜 흡사 시장터을 걷는듯한 느낌이 든다. 국경을 넘는 현지인들에 휩싸여 걷다보니 이런, 출국신고도 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버렸다. 여권검사도 하지 않는 국경이라니 당혹스런 일이다. 총을 멘 네팔군인에게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출국신고를 안하고 넘어왔는데 어쩌지?" 하고 물으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넘어가"라고 한다. 다시 인도 국경을 넘어 한참을 헤매니 아무런 표시도 되어있지 않은 길가 작은 건물에 책상 두개를 펼쳐놓고 출국신고를 받고 있다. 두눈 부릅뜨고 찾지 않으면 힘들겁니다. 라고 웃으며 말하던 어느 여행자의 말이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다시 국경을 넘는 길, 여전히 여권을 요구하지 않는 군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인도인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짓는다. 여권검사 대신 가벼운 눈웃음과 손짓으로 대신하며 국경을 넘었다. 두 다리를 인도-네팔 국경에 걸치고 한참을 서 있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지도상에 그어버린 하나의 선이 인간의 행동양식과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수 없다. 땅바닥의 보이지 않는 국경을 발바닥으로 쓱쓱 문질러 지우며 문득 존레논의 IMAGINE을 커다란 확성기로 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팔 소나울리 국경>

소나울리 국경을 넘어 네팔로 들어오는 여행자에게 가장 큰 환희는 아마도 술이 아닐까 싶다. 술이 금지된 인도와 달리 작은 식당의 메뉴판에 즐비한 술 이름을 보니 친한 친구라도 만난듯 반갑기 그지 없다. 룸비니 성역지구 정문의 음식점에서 술 한잔을 마시고 나오니 어느덧 달이 중천에 떴다. 성역지구내에 위치한 한국절 대성석가사는 커다란 호수를 끼고 돌다 숲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간다. 달빛을 받은 언덕길은 마치 소금밭을 걷는듯 싶고 살며시 피어오르기 시작한 호수가의 안개는 꿈길을 걷는듯 몽환스러운 분위기이다. 허생원이 메밀밭을 바라보며 걷던 길이 이러하리라 싶어 불콰해진 얼굴로 김광석 노래도 몇자락 부르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시도 몇자락 읊으니 풀벌레는 구경이라도 난듯 노래를 멈추고 선잠이 깬 새와 들짐승이 다음 가사를 이어받아 줄기차게 울어댄다. 달빛조차 희미한 숲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걸어 대성석가사에 도착하니 현지인 스님이 반가이 맞이한다. 숙박명부에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스님을 따라 방으로 가는 길에 주의사항이 붙어있다. "밤에 절대 혼자 나가지 마세요. 늑대,쟈칼,들개,독사,독충 주의"  아, 머릿카락이 쭈뼛하고 일어섰다. 술기운에 흥에 겨워 노래하며 발걸음도 가벼이 걸어온 길이 저리 무서운 길이었구나. 다음날 밤 미리 정한 약속으로 어찌할수 없이 그 길을 다시 걸어야만 했을때 내 손에는 푸르게 날선 맥가이버 칼이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고 그 흥겨운 기분은 온데간데 없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서늘한 기운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름답고도 섬찟했던 숲길>

룸비니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라 세계의 절이 각 나라의 특색을 보여주며 자리하고 있다. 소림사 영화에서나 본듯한 붉은 색의 중국절, 색채나 외양이 화려하기 이를데없는 동남아시아의 절들, 가장 큰 규모로 짓기 시작한 독일절. 자전거로 그곳을 돌며 본 절만도 열개는 된듯 싶다. 하지만 한국절 대성석가사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나의 나라임도 아니고 절의 외양에도 있지 않다. 한국절을 제외하고는 여행자는 물론 현지인, 심지어 성지순례를 하는 불자들도 외면당한다고 한다. 그들만의 리그라고나 할까. 한국절의 아침공양 시간은 다국적 다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설겆이를 하는 풍경을 연출한다. 그에 비해 다른 절의 화려한 담장과 번쩍이는 탑은 중생을 외면한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중생속에 서지 않은 종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속에 천년 세월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부처가 머리를 돌릴 일이 아닐까. 어느 종교든 선지자의 아름다운 뜻은 세월에 빛바래 왜곡되고 자의로 해석되어지나보다. 회색의 단촐한 빛깔로 물든 대성석가사의 중앙에 대웅전이 올라가고 있다. 대규모 지원을 통한 것이 아니라 사월초파일 한국에서 연등의례로 모아진 지원금만으로 매년 조금씩 올리고 있다고 한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부처의 품안에서 단잠에 빠졌던 한무리의 사람들이 대웅전에 합장하고 길을 나선다. 여행이 끝나면 연등이라도 하나 달아야겠다.   



<룸비니 성역지구의 성스런 나무>

여행을 하다보면 유독 유명인의 발자취를 찾아보려는 여행객들이 있다. 류시화, 한비야..그외 유명한 여행작가들의 글을 찾으려 방명록을 열심히 뒤적이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보통 그 페이지는 찢겨져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고 한다. 아침 공양을 끝내고 나오니 뒷짐을 지고 대웅전 앞을 깊은 사색에 잠겨 왔다갔다 하는 낯익은 이가 보였다. 어디서 만난듯한 얼굴이다 싶어 한참을 생각하니 오, 만화가 허영만 화백이다. 반가이 다가가 혹시 허영만 화백이 아닌지 물으니 모르는 사람이라 한다. 흐흐 내 나이 또래에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시금 그의 초기작 무당거미와 아프팔트 사나이, 그리고 최근의 식객까지 언급하며 낯이 뜨거울 정도로 허영만 화백을 칭찬하는데도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요지부동이다. 역시 고수구나 싶고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공인으로서의 그의 입장이 이해되기에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다만 나중에 그의 작품을 꼭 읽어보라는 말만 하고 돌아섰다. 다음날 아침, 그곳을 떠날때도 그는 대웅전 앞을 서성거렸다. "선생님, 전 이제 떠납니다"라고 크게 외치니 절 정문까지 걸어와 여행 잘 마치라며 악수를 청한다. 다시 한번 그의 정체를 캐물을까 하다 그만두었다. 그냥 슬며시 웃으니 그도 머쓱하게 웃음짓는다. 네팔을 떠나기전 카트만두의 숙소에서 그를 다시 보았다. 숙소의 정원에서 떠들썩하게 떠드는 우리들과 달리 그는 이층방 넓은 창가에 홀로 서서 카트만두 시내를 하염없이 응시하다 떠났다. 공인으로서의 삶은 어쩌면 참 외로운 것인가 보다.    



<룸비니의 네팔 여인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orgettable. 2009-07-18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왠일로 첫추천 첫댓글 ㅋㅋ
이제 네팔로 넘어가셨군요, 중요도시만 꼭꼭짚고 알찬여행하셨네요 ㅎㅎ 룸비니가 그 소녀부처(?)가 있는 도시가 맞나요? 초경이 시작될 때까지만 신으로 모셔지다가 그 다음부터는 천민으로 천대하는 악습이 있다고 들었어요.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맨날 헷갈려하고 ㅋㅋ

술에 취하시면 노래도 불러주시고 시도 읊어주시나봐요, 술친구 하기에 즐거운 주사네요^^

잉크냄새 2009-07-18 21:14   좋아요 0 | URL
살아있는 여신으로 불리는 힌두교신 꾸마리는 불교도 집안에서 선발되기는 하는데 소녀부처라 칭해지는지는 모르겠네요. 꾸마리 여신은 룸비니가 아닌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의 꾸마리 사원에 있어요. 저도 근처에 갔는데 꾸마리 여신은 보지 못했네요. 아마 여신을 보려면 입장료를 내고 광장 더 깊숙이 가야 하나 봅니다.
꾸마리 여신은 초경이 시작되면 쫓겨나는데 전직 꾸마리 여신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은 죽는다는 속설이 퍼져있어 결혼은 물론 정상적인 직업도 가질수 없어 비참한 삶을 살다가 간다고 합니다.

술에 취해 노래하고 시도 읊조려 본것은 그날의 풍경에 취해서죠. 일상에서 그러면 진상이겠죠?ㅎㅎ

Forgettable. 2009-07-19 02: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꾸마리- 제가 또 이것저것 뒤섞어서 기억을 하고 있었네요 ㅎㅎ
얘기 듣고 정말 마음이 안좋았었어요. 너무 불쌍 ㅠㅠ

잉크냄새 2009-07-19 09:43   좋아요 0 | URL
빨리 없어져야할 악습이죠.
지금도 꾸마리 사원의 작은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겠군요.

2009-07-19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9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시장미 2009-07-2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잉크님의 여행후기를 보면 막막 떠나고 싶어 죽겠어요. ^^ 사진이 너무 멋지네요. 마지막의 네팔 여인네들의 모습은 정말 이색적이에요.

제가 대학생때 인도음식점에서 알바를 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인도 의상은 익숙한 편인데,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니 또 다른 느낌이네요. 저런 의상을 입고, 인도 음식점에서 서빙을 했더랍니다. 크크

웃음과 손짓으로 국경을 넘는다.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국경의 풍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유럽여행 했을 때 체코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자는데도 깨워서 여권검사를 당했던 경험이 떠오르네요. 거의 당하는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_-;;

아 갑자기 인도 음식이 먹고 싶네요. 음식은 주로 어떤 걸 드셨는지 궁금하네요..

잉크냄새 2009-07-23 17:18   좋아요 0 | URL
룸비니에서 마실가는 분들 찍은겁니다. 자전거 타고 가다 찍었죠.ㅎㅎ

인도음식점 아르바이트 하셨으면 음식 어떤지는 대충 아시겠네요. 전 향신료를 워낙 싫어해서 인도여행내내 대충 먹고 다녔어요.ㅎㅎ 맛을 떠나서 주로 걸레빵인 짜파티나 난에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싸서 먹었죠. 날라다니는 밥도 카레로 잡아서 먹어주고요. 아, 낙타사파리때 사막에서 직접 만들어준 인도음식이 지금껏 맛본 인도음식중 최고였답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란 말은 만고진리라니까요.

가시장미 2009-07-24 08:08   좋아요 0 | URL
한국의 인도 음식점이야.. 한국 입맛에 맞게 변화된 음식들이라, 인도의 음식맛과는 많이 다를 거라 생각해어요. 기회되면 저도 인도가서 인도음식을 꼭 먹고 싶었는데, 저 역시 향신료를 싫어해서 음식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을거란 생각이 ㅋㅋ

요즘처럼 더울 때는 알바하면서 얻어먹던 난과 라시가 무지 먹고 싶어요. 그래서 종종 집에서도 라시를 흉내내서 만들어 먹기도 한답니다. 다른 맛이긴 하지만요. 낙타사파리라..사막에서 직접 먹는 인도음식... 상상만해도 감탄이 나옵니다! 그렇죠. 시장이 반찬이죠. 으흐

배경사진도 직접 찍으신 사진인가요? 정말 멋지네요. 삶을 살아가는 건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잉크님의 발자국도 저 곳 어딘가에 있겠죠? 장엄하게 사막을 건너시는 모습. 저에게는 귀감이 된답니다. 앞으로도 계속 힘내주세요! :)

잉크냄새 2009-07-24 14:17   좋아요 0 | URL
인도 음식이 한국화되면서 향신료의 향을 한국인의 입에 맞게 바꾸었죠. 그래서 향이 훨씬 더할 겁니다. 카레가 그 사례죠. 커리가 한국에서 카레로 바뀐거니까요. 난과 라시가 가장 맛있었던 곳이 바라나시랍니다. 시장가 바로 옆에 있던 2층 음식적이었는데 상호가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네요. 라시는 일명 블루라시라고 화장터 가는 길에 있고요.

배경 사진은 이집트 시와 사막에서 찍은 저와 동료의 발자국입니다. 모래 언덕을 넘어서는데 첫눈을 밟듯 끝없이 따라오는 발자국에서 왠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져 한컷 찍은겁니다.

털짱 2009-07-25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께서 직접 구연해주시던 이야기를 글로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잉크냄새 2009-07-26 14:19   좋아요 0 | URL
원래 여행 이야기는 술한잔 하면서 떠들어야 제맛이지요.^^

2009-08-11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2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10-26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이런 곳도 있군요.

잉크냄새 2009-11-22 16:34   좋아요 0 | URL
네, 네팔 룸비니 라는 곳입니다. 부처님 태어나신 곳.
 

"람람싸드야헤"
마트 트웨인이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라 언급했던 도시인 바라나시는 평범한 여행객이 느끼기에도 그 대문호의 말이 전혀 허상이 아님을 알수 있다. 신성한 갠지스강, 목욕 의식을 치르는 인도인, 골목을 지나는 장례 행렬, 화장터의 불타는 시신, 저녁마다 펼쳐지던 뿌자 의식, 아침 강을 물들이던 해돋이, 저녁 강을 별처럼 수놓으며 떠내려가던 디아. 어느것 하나 신성하지 않은 것이 없다. 화장터로 유명한 마니까르니까 가트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람람싸드야헤"를 외며 지나가는 수많은 장례 행렬을 만나게 된다. 천으로 둘둘 말린 시신을 메고 지나가는 장례 행렬 뒤로 상주인듯한 사람들이 따라간다. 자주 들르던 블루라씨 가게의 앞골목은 그 장례 행렬이 지나가던 자리이다. 며칠째 가게 의자에 앉아 그 의식을 바라보다보면 죽음에 대한 그들의 의식이 내가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이미지와는 서로 다름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화장터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그 곳을 휩싸던 분위기는 슬픔이라기보다는 비장함과 엄숙함이다. 흐느낌 하나 들리지 않던 행렬과 화장터의 분위기는 이것이 그들의 종교관이고 내세관인가 싶다가도 죽음이 무엇보다 커다란 슬픔으로 각인된 나의 의식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겉돌곤 한다. 그날도 가게 의자에 앉아 골목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소 초라한 천으로 싸여진 시신이 지나가고 그 뒤를 남루한 차림의 청년이 홀로 뒤따른다. 우연히도 그 가날픈 청년과 눈이 마주친 순간,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버릴것 같은 눈망울. 그건 슬픔이다. 그동안 어색하게 느낀 비장함과 엄숙함이 아닌 슬픔이다. 얼른 골목으로 내려가 바라본 그 남루한 청년의 뒷모습에서 어깨가 다소 떨린다고 느낀 것은 환영일까. 그의 가슴과 내 가슴이 부딪히는 소리가 골목에 퍼지는 듯 싶고 눈망울이 흔들려 입술을 깨물었다.  



<바라나시 일출>

바라나시에는 두개의 화장터가 있다. 전통 화장터인 마니까르니까 가트와 전기 화장터인 하리시찬드라 가트이다. 하리시찬드라 가트는 갠지스강의 환경을 보호하고자 설치한 전기 화장터이지만 실제로는 그곳에서도 전통 화장법이 치뤄진다. 내가 전통 화장터보다 이곳을 주로 찾은 것은 자릿세와 장작비를 요구하는 협잡꾼과 사기꾼이 귀찮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동안 검게 그을려진 가트의 건물과 지체 높은 상주들에게서 느껴지던 비장함과 엄숙함이 어깨를 눌러 불편해서이다. 가트에 걸터앉아 하나의 육신이 온전히 소멸하는 것을 지켜본다. 4시간, 평생을 부딪히며 살아온 육신이 완전히 소멸하는데 4시간이 걸린다. 삶은 이토록 허망한 것인가. 재와 더불어 육신은 땅으로, 연기와 더불어 영혼은 하늘로, 마지막 타다 남은 심장이 갠지스 강으로,  그리하여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간다. 인생처럼 복잡한 골목을 빠져나온 시신이 화장터에 이르면 상주들은 갠지스 강물을 손으로 떠서 시신의 얼굴을 적신다. 그들이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는 이유가 현생의 죄를 씻기 위함이듯 마지막 떠나는 길에 그 죄를 사함인걸까. 장작더미에 올려진 시신에 불이 붙고 조금씩 타들어가기 시작한 화장 의식은 심장만이 남을때까지 계속 된다. 불이 사그러들기 시작한 시신을 수습하여 한주먹 정도 크기의 심장을 갠지스 강에 던짐으로써 어머니께 돌려보낸다. 마지막으로 흙으로 만들어진 붉은색 토기에 갠지스 강물을 담아 오른쪽 어깨에 얹은 상주가 강을 등지고 맨발로 걸어 그 토기를 깨뜨리는 것을 끝으로 장례의식은 끝난다. 그들이 그토록 갠지스 강가에서의 화장을 염원하는 것은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함이라 한다. 그들은 아마 고통스러웠던 현생의 삶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시신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는 인도인들>

다소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가장 평화로운 풍경중 하나는 빨래의 풍경이다. 20대 후반 기숙사 시절, 베란다에 널은 빨래의 펄럭임과 그 펄럭임이 만들어내던 그림자의 어른거림과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림자의 손짓으로 낮잠을 깨던 어느 봄날의 풍경은 오래도록 가슴에 각인되어있다. 그리하여 언젠가 누군가 보여준 인도 골목의 풍경에서도 내 가슴을 잡아끈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골목을 가로지르던 빨래의 펄럭임이었다. 인도 여행중 막힐듯 열리고 가까운듯 멀어지는 아득한 골목길을 홀로 헤맨 것도 그 풍경을 보고 싶어서였는데 실상 그 풍경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그리운 풍경을 바라나시 가트에서 만났다. 속칭 빨래가트라 내가 이름지은 그곳은 강가의 넙적한 돌에 빨래를 휘둘러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가트 가득 바닥에 널린 형형색색의 빨래가 뜨거운 태양 아래 잘 마르고 있다. 낯설은 목욕의식, 엄숙한 화장의식, 저녁의 뿌자의식, 얼굴 가득 물감을 칠한 사제들로 뭔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분위기가 감돌던 강가를 현실을 부딪히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덧칠하는 듯한 빨래가트의 풍경은 왠지 동질감이 느껴져 아늑하다. 아무런 어색함없이 오래도록 그 풍경속에 서 있을수 있었다.  



<가트에 가득 널린 빨래 -  사실 청바지는 내가 직접 빨았다. 왠지 갠지스 강물로 세탁한다는 건 솔직히 좀 그랬다>

저녁 나절 바라나시 하늘을 가득 메우던 연을 뒤로 하고 가트로 나가면 강가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 의식인 아르띠 뿌자 의식을 만나게 된다. 다샤스와메드 가트에서 매일 펼쳐지는 힌두교 뿌자 의식은 주로 5~7명의 브라만 사제에 의해 거행되는데 지금은 주로 힌두교를 전공한 대학생들로 거행된다. 어둠이 살며시 내려앉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의식이 진행되는데 낯설은 힌두음악과 불의 의식은 신성하다 못해 몽환적이어서 그 의식의 리듬에 몸이 절로 따라가는 듯 하다. 소리와 불의 축제라고 할까. 사제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을 갖춘 용기에 불을 담아 음악에 맞춰 한 바퀴의 의식을 끝낼때마다 나도 합장을 해본다. 가트에는 인도인들이 가득 자리하고 갠지스 강에는 뿌자의식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탄 나룻배로 가득하여 장관을 이룬다. 가트의 인도인들 틈에서, 흔들리는 나룻배 위에서 매일 같이 그 의식을 보았다. 종교와 신앙이 내재화된 곳은 그곳이 어디든, 종교가 무엇이든 그들의 염원이 나에게도 스며들곤 한다. 의식이 끝나고 어둠이 내린 갠지스 강을 나룻배를 저어가면 저 멀리서부터 강 위에 디아의 불꽃이 강을 밝힌다. 그들의 염원이 담긴 디아를 같이 띄우면 그들의 염원이 당신께 이루고 당신의 사랑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빌어본다.   



<뿌자 의식>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9-07-1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 강물에 빨래를 해도 저리 깨끗이 빨래를 하는 거 보면...
사진이라 그런가요? 볼 때마다 미스테리란 생각을 해요.

잉크냄새 2009-07-12 20:02   좋아요 0 | URL
근데 갠지스강은 생각보다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공업용수가 유입되지 않으니 강의 정화작용이 큰 문제가 없는듯 합니다.

2009-07-12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3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3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3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3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3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시시"
인도를 여행하는 여행자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고 대처하기 가장 난감한 말일듯 싶다. '박시시'를 외치며 무작정 손을 벌리는 그들의 손위로 몇푼의 돈을 주는 행위에 그들의 자립성을 운운하곤 싶지 않지만 그 순간의 혼란스러움과 망설임은 여행내내 가슴에 남는다. 아그라-쟌시 구간의 기차를 탄것은 두시간이 연착한 밤 9시경이다. 황당한 사실이지만 인도 기차는 가끔 기차 번호가 다를 수도 있고 기차표에 찍힌 기차칸이 없을 수도 하다. 기차칸을 재차 확인하며 다음 칸으로 이동하는 순간, 어두운 연결칸에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내게 달려든다. 내 가슴팍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꼬마가 '박시시'를 외치며 어둠속에서 튀어나와 배낭을 움켜질때 그 번뜩이는 눈빛에 당황하여 뿌리치고 지나가다 멈추어선다. 화장실 문앞에 누군가 쏟아버린 밥위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꼬마의 손자국임이 분명하다. 이걸 먹느라고 웅크리고 있었나 보다. 다시 돌아보니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결국 기차칸을 찾지 못하고 맨 마지막 연결칸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문에 매달려 어둠을 한동안 응시한다. 담배를 찾으려 몸을 돌리다 선반 위에 가물거리는 눈동자와 마주친다. 내 눈높이의 선반에 누은 꼬마는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지 눈망울 굴리는것조차 힘에 겨워보인다. 아이의 눈동자라고 생각하기엔 허무와 절망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돈을 손에 쥐어주며 먹는 시늉을 하니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고 힘에 겨운듯 다시 잠이 든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어디론가 사라진 뒤이다. 문을 열고 밤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문득 두 꼬마의 눈망울이 겹쳐진다. 상처입고 몸부림치는 야수의 눈동자와 죽음을 기다리는 어린 생명의 눈동자가 대조적으로 느껴졌지만 현실에서 두 꼬마는 같은 운명을 살아가는 눈동자일 것이다. 그들도 다른 인도인처럼 현실의 삶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이라 생각할까. 현실 저 너머의 세계를 동경하며 현생의 삶이 지나가길 그저 기다릴까. 인도의 내세관이 어떠하든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다. 차라리 철이 든 어른이었음 싶었다. 그럼 스스로를 위로라도 할수 있을텐데.   



<오르챠의 일몰 - 인도에서 일몰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오르챠는 일명 인도의 숨겨진 비경이다. 유명해진 많은 도시들이 여행자로 북적거리는데 비하여 알려진지 얼마되지 않은 이곳은 여행자도 적거니와 산속에 위치하여 여타 편의시설도 적은 편이다. 길을 걷다 작은 산골 마을 곳곳에서 그림처럼 마주치는 마할은 신비롭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다른 여행지와 달리 깨끗하다는 것이다. 그 흔한 소똥조차 보기 힘들다. 새벽나절 산책을 나서면 곳곳에 문을 열기 시작한 가게에서 거리 청소를 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나마스떼"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이 여느 도시보다 정겹다. 오르챠 시내에서 작은 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면 가네쉬 마을을 만난다. 이 마을의 이장격인 가네쉬 라는 청년은 시내의 힌두사원 옆에서 선물가게를 운영하는데 마을 아이들의 교육에 상당한 열의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 두달 정도 머물던 한국인 여성 여행자가 그 마을에서 무료 봉사로 교사를 하며 아이들을 가르친 이후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한다. 특히, 한국 여행자의 상당수가 교사여서 그들은 한국인 여행자를 교사와 동일시 하곤 한다. 교실로 사용되는 듯한 한 건물의 나무 대문에는 '한국인 선생님 모십니다' 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오르챠의 거리를 걷다 선한 인상의 청년이 다가와 '한국인인가요? 그럼 아이들 공부좀 가르쳐주세요' 라고 묻는다면 그가 가네쉬이다.   



<강 건너에서 바라본 오르챠 풍경>

여행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도여행 초기에 느꼈던 두려움과 어색함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곤 한다. 그들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높은 음성에 익숙해지고, 나에게도 그들의 냄새가 조금씩 배어들수록 겹겹이 나를 둘러싸고 있던 벽이 하나둘 무너져 내린다. 이곳에서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 벽을 완전히 걷어버릴수 있었다. 이곳은 인도인에게 성지이기에 술을 팔지 않는다. 술을 사려면 18킬로 떨어진 쟌시까지 가야한다. 떠나기 전날 같이 온 일행과 술을 한잔 하게 되었다.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요청을 하니 쟌시까지 가야된다며 보통 55루피인 맥주에 100루피를 요구한다. 무려 5명의 종업원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오토바이를 꺼내고 고글을 씌워주고 중무장을 하고 나선다. 그들이 대문을 나선 후 30분후 옥상으로 모이기로 약속하고 방에 들어간다. 먼저 올라갈 생각으로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나오다 쟁반에 맥주를 올려 들고가는 종업원과 마주친다. 황당한 마음에 " 어, 이게 뭐야?" 하고 외치니 당황한 그도 "어, 이거 아주 시원한 맥주야. 아주 시원해" 라고 말하며 급히 옥상으로 올라간다. 여행자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미리 냉장고에 보관하던 맥주다. 구태여 그런 연극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100루피를 요구할수 있을텐데 육십이 넘은 근엄한 표정의 인도 노인까지 가세하여 오토바이에, 고글까지 동원하여 펼친 연극에 그만 웃음이 터져버린다. 속이려했다는 불쾌감보다는 그들의 어설픈 행동이 순진하게 느껴지고 내가 쌓은 마지막 벽도 웃음처럼 그렇게 터져버렸다. 다 마실 즈음 옥상으로 슬며시 올라온 노인이 또 한마디 한다. ' 더 사다줄까?'  



< 산책길에 만난 인도 사두와 손자>

별을 본다는 것, 난 적어도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저 별들중 어느 곳에서 별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나의 지구별을 본다는 생각은 흥미롭다. 수억광년을 떨어진 우리는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이살메르의 사막에서 결국 보지 못한 사막의 별이 계속 가슴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한밤중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동행들과 한담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온 마을이 정전이 된다. 이곳은 작은 마을이어서 정전이 마을 전체에 발생하기에 그 순간 산속 작은 마을은 완벽한 어둠에 묻혀버린다. 고개를 드니 순간 하늘에 펼쳐지는 별들의 향연, 평생토록 이토록 많은 별을 본적이 있던가. 내가 이름 부를수 있는 별은 다 나타난듯 싶어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보다 그만둔다. 욕심이다 싶다. 적어도 이 순간 별이 빛난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어둠이 별들 사이로 조금씩 배어나온다는 표현이 맞을듯 싶다. 온 하늘이 은하수이다. 누군가 하얀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거친 붓으로 하늘을 한번 스윽 하고 문질러버린듯 하다. 정전은 삼십분가량 계속되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고개를 내릴수 없었다. 소행성 B612의 분화구와 양과 장미가 보일듯 싶고 노을을 보러 의자를 옮기는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마 별이 부딪히는 소리인가 보다. 



<힌두 사원의 인도 여인>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07-01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1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1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1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2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2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1 0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1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5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6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09-07-0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하
아 지금 이거 읽는데 왜이렇게 웃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읽으면서 저도 할말 백만개에요 아무래도 만나서 수다좀 떨어야겠다는!!
적다가 엄청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아쉬움으로 남기겠어요 ㅋㅋㅋ

제가 만두-라는 마을?도시?를 제일 좋아했어요. 근데 글 읽다보니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네요 ㅎㅎ 비슷한 동네여서 그런가.. 흑흑 그립다. 참 제 추억을 오롯이 되살려주는 글이로군요 ㅜㅜ

잉크냄새 2009-07-01 12:20   좋아요 0 | URL
인도인의 어설픈 사기극이 왜 그리도 순진해보이고 웃음이 나오던지요.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한가득입니다.ㅎㅎ

인도에 비슷한 이미지의 마을도 있나 보군요. 인도는 모든 마을이 이국적이잖아요. 발길만 옮겨도 마치 다른 나라에 온듯한 그런 느낌. 아시죠? ㅎㅎ

Forgettable. 2009-07-01 13:16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정전이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라던가 산속에 위치하여 조용하다던가, 문득문득 드러나는 마할의 모습- 이런게 비슷해요.
사진을 보니 이미지는 당연히 아주 다르구요 ㅎㅎㅎ
http://blog.aladdin.co.kr/catchme84/2374080
http://blog.aladdin.co.kr/catchme84/2525065
만두는 이런느낌입니다^^ 헤헤

잉크냄새 2009-07-01 17:32   좋아요 0 | URL
첫 페이퍼 두번째 꼬마의 사진이 너무 인상적이네요.
만두, 지도에서 찾아보니 산치 한참 밑이군요. 사진으로 만나는 곳이지만 마냥 그리워집니다.

paviana 2009-07-0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글이에요.부러워요.
언젠가 저도 인도에 가볼 날이 있을까요?

잉크냄새 2009-07-03 19:38   좋아요 0 | URL
절실히 희망한다면 언젠가 갈수 있겠죠.
전 앞으로 인도를 2번 정도 더 다녀올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짱꿀라 2009-07-04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챠의 일몰, 저도 잊지 못할 곳이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이곳 여행했을 때를 다시 한 번 머리 속에 떠올려보게 되네요.

잉크냄새 2009-07-04 21:53   좋아요 0 | URL
산타님도 그 곳을 다녀오셨군요. 몽환적으로 지던 노을이 참 인상적이죠. 저도 이렇게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금 꺼내어보곤 합니다.

2009-07-04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4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7-05 0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그림이네요. 특히 노을이 정말 예뻐요.

잉크냄새 2009-07-06 00:10   좋아요 0 | URL
오르챠가 특히 노을이 이쁜 동네랍니다.

춤추는인생. 2009-07-0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철이 든 어른이었음 싶었다. 그럼 스스로를 위로라도 할수 있을텐데.]

오르챠의 일몰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워요 잉크냄새님.

잉크냄새 2009-07-07 12:23   좋아요 0 | URL
산골 마을을 걷다 문득 마주친 노을 풍경입니다.
세상에는 아직 아름다운 것이 참 많습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1-0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안 보여서 아쉬워요.
조용한 마을이죠, 오르차.
전 숙소구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잉크냄새 2012-01-04 12:24   좋아요 0 | URL
님도 다녀오셨군요. 고즈넉한 마을이죠.
아직 여행지로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숙소 여건이 좋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