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시"
인도를 여행하는 여행자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고 대처하기 가장 난감한 말일듯 싶다. '박시시'를 외치며 무작정 손을 벌리는 그들의 손위로 몇푼의 돈을 주는 행위에 그들의 자립성을 운운하곤 싶지 않지만 그 순간의 혼란스러움과 망설임은 여행내내 가슴에 남는다. 아그라-쟌시 구간의 기차를 탄것은 두시간이 연착한 밤 9시경이다. 황당한 사실이지만 인도 기차는 가끔 기차 번호가 다를 수도 있고 기차표에 찍힌 기차칸이 없을 수도 하다. 기차칸을 재차 확인하며 다음 칸으로 이동하는 순간, 어두운 연결칸에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내게 달려든다. 내 가슴팍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꼬마가 '박시시'를 외치며 어둠속에서 튀어나와 배낭을 움켜질때 그 번뜩이는 눈빛에 당황하여 뿌리치고 지나가다 멈추어선다. 화장실 문앞에 누군가 쏟아버린 밥위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꼬마의 손자국임이 분명하다. 이걸 먹느라고 웅크리고 있었나 보다. 다시 돌아보니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결국 기차칸을 찾지 못하고 맨 마지막 연결칸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문에 매달려 어둠을 한동안 응시한다. 담배를 찾으려 몸을 돌리다 선반 위에 가물거리는 눈동자와 마주친다. 내 눈높이의 선반에 누은 꼬마는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지 눈망울 굴리는것조차 힘에 겨워보인다. 아이의 눈동자라고 생각하기엔 허무와 절망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돈을 손에 쥐어주며 먹는 시늉을 하니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고 힘에 겨운듯 다시 잠이 든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어디론가 사라진 뒤이다. 문을 열고 밤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문득 두 꼬마의 눈망울이 겹쳐진다. 상처입고 몸부림치는 야수의 눈동자와 죽음을 기다리는 어린 생명의 눈동자가 대조적으로 느껴졌지만 현실에서 두 꼬마는 같은 운명을 살아가는 눈동자일 것이다. 그들도 다른 인도인처럼 현실의 삶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이라 생각할까. 현실 저 너머의 세계를 동경하며 현생의 삶이 지나가길 그저 기다릴까. 인도의 내세관이 어떠하든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다. 차라리 철이 든 어른이었음 싶었다. 그럼 스스로를 위로라도 할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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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챠의 일몰 - 인도에서 일몰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오르챠는 일명 인도의 숨겨진 비경이다. 유명해진 많은 도시들이 여행자로 북적거리는데 비하여 알려진지 얼마되지 않은 이곳은 여행자도 적거니와 산속에 위치하여 여타 편의시설도 적은 편이다. 길을 걷다 작은 산골 마을 곳곳에서 그림처럼 마주치는 마할은 신비롭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다른 여행지와 달리 깨끗하다는 것이다. 그 흔한 소똥조차 보기 힘들다. 새벽나절 산책을 나서면 곳곳에 문을 열기 시작한 가게에서 거리 청소를 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나마스떼"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이 여느 도시보다 정겹다. 오르챠 시내에서 작은 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면 가네쉬 마을을 만난다. 이 마을의 이장격인 가네쉬 라는 청년은 시내의 힌두사원 옆에서 선물가게를 운영하는데 마을 아이들의 교육에 상당한 열의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 두달 정도 머물던 한국인 여성 여행자가 그 마을에서 무료 봉사로 교사를 하며 아이들을 가르친 이후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한다. 특히, 한국 여행자의 상당수가 교사여서 그들은 한국인 여행자를 교사와 동일시 하곤 한다. 교실로 사용되는 듯한 한 건물의 나무 대문에는 '한국인 선생님 모십니다' 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오르챠의 거리를 걷다 선한 인상의 청년이 다가와 '한국인인가요? 그럼 아이들 공부좀 가르쳐주세요' 라고 묻는다면 그가 가네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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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에서 바라본 오르챠 풍경>
여행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도여행 초기에 느꼈던 두려움과 어색함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곤 한다. 그들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높은 음성에 익숙해지고, 나에게도 그들의 냄새가 조금씩 배어들수록 겹겹이 나를 둘러싸고 있던 벽이 하나둘 무너져 내린다. 이곳에서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 벽을 완전히 걷어버릴수 있었다. 이곳은 인도인에게 성지이기에 술을 팔지 않는다. 술을 사려면 18킬로 떨어진 쟌시까지 가야한다. 떠나기 전날 같이 온 일행과 술을 한잔 하게 되었다.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요청을 하니 쟌시까지 가야된다며 보통 55루피인 맥주에 100루피를 요구한다. 무려 5명의 종업원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오토바이를 꺼내고 고글을 씌워주고 중무장을 하고 나선다. 그들이 대문을 나선 후 30분후 옥상으로 모이기로 약속하고 방에 들어간다. 먼저 올라갈 생각으로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나오다 쟁반에 맥주를 올려 들고가는 종업원과 마주친다. 황당한 마음에 " 어, 이게 뭐야?" 하고 외치니 당황한 그도 "어, 이거 아주 시원한 맥주야. 아주 시원해" 라고 말하며 급히 옥상으로 올라간다. 여행자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미리 냉장고에 보관하던 맥주다. 구태여 그런 연극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100루피를 요구할수 있을텐데 육십이 넘은 근엄한 표정의 인도 노인까지 가세하여 오토바이에, 고글까지 동원하여 펼친 연극에 그만 웃음이 터져버린다. 속이려했다는 불쾌감보다는 그들의 어설픈 행동이 순진하게 느껴지고 내가 쌓은 마지막 벽도 웃음처럼 그렇게 터져버렸다. 다 마실 즈음 옥상으로 슬며시 올라온 노인이 또 한마디 한다. ' 더 사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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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길에 만난 인도 사두와 손자>
별을 본다는 것, 난 적어도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저 별들중 어느 곳에서 별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나의 지구별을 본다는 생각은 흥미롭다. 수억광년을 떨어진 우리는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이살메르의 사막에서 결국 보지 못한 사막의 별이 계속 가슴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한밤중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동행들과 한담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온 마을이 정전이 된다. 이곳은 작은 마을이어서 정전이 마을 전체에 발생하기에 그 순간 산속 작은 마을은 완벽한 어둠에 묻혀버린다. 고개를 드니 순간 하늘에 펼쳐지는 별들의 향연, 평생토록 이토록 많은 별을 본적이 있던가. 내가 이름 부를수 있는 별은 다 나타난듯 싶어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보다 그만둔다. 욕심이다 싶다. 적어도 이 순간 별이 빛난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어둠이 별들 사이로 조금씩 배어나온다는 표현이 맞을듯 싶다. 온 하늘이 은하수이다. 누군가 하얀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거친 붓으로 하늘을 한번 스윽 하고 문질러버린듯 하다. 정전은 삼십분가량 계속되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고개를 내릴수 없었다. 소행성 B612의 분화구와 양과 장미가 보일듯 싶고 노을을 보러 의자를 옮기는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마 별이 부딪히는 소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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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 사원의 인도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