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니반메흠”
여행이 타인의 삶 속으로 한 발짝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면 로컬 버스는 바로 여행의 매력이라 할만하다. 그저 옷깃 스쳐 지나가는 우연이 아니라 한정된 공간 속에서 웃음 소리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릴 만큼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근거를 알 수 없는 동질감이 생기곤 한다. 룸비니에서 포카라로 가는 로컬 버스는 아담한 작은 버스였다. 지붕 가득 짐을 실은 버스는 계곡 옆을 깍은 아슬아슬한 길을 지날 때마다 원심력을 잃고 날아갈 듯 기울어지곤 했다. 아름답고도 위험한 길을 벗어나 산길로 들어갈 때쯤 버스 승객들 사이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 작은 산골 마을로 들어선 버스가 이유 없이 오래 머물렀고 잠시 후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 아리따운 네팔 여인이 나타났다. 분위기로 보아 운전자의 애인쯤으로 여겨지는데, 버스 안에 탄 모든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선물을 주고 밀어를 속삭이던 두 사람에게 드디어 질투에 눈이 먼 네팔 총각들의 날선 눈초리가 날아들고 급기야 거친 말다툼으로 번졌다. 애인을 뒤로 한 채 다시 출발한 버스는 나이든 노인들의 근엄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섰다 갔다를 반복하며 거친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든 적당한 시간과 거리가 존재한다. 천사 같은 애인이 그저 부러웠을 총각들의 마음이 부러움에서 질투로, 다시 분노로 서서히 넘어가던 시간을 운전자는 알지 못한 듯 싶다. 여행자의 신분이기에 적당한 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나에게는 산길을 따라 내려오던 천사 같던 그 여인의 모습만이 남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악기 소리에 잠이 깨었다. 나무를 깍아 만든 투박한 두 줄 현악기를 연주하는 소년이 올라탄 것이다. 악동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눈을 가진 열살 남짓의 소년은 변성기 이전 특유의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하는데 흡사 해금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소년은 두세 곡을 더 부른 후 승객들이 건넨 돈과 음식을 받아 사라졌다. 그 소년이 악기를 연주하던 그 순간, 여전히 덜컹거리던 버스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여유로운 승객들 사이에 흐르던 투박한 현의 소리와 꼬마 악동의 노래 소리가 꿈처럼 아스라했다.
<포카라 가는 버스 안에서 악기 연주하는 소년>
사람마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는 듯 싶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혼을 빼앗기고, 누군가는 찬란한 문화 유산에 매료되고, 또 누군가는 휘황찬란한 도시의 풍경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난 삶이 담긴 풍경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편이라 인도의 타지마할보다도 바라나시의 풍경에 훨씬 매료된 듯 싶다. 그런데 이곳 포카라는 신비스런 안나푸르나의 눈덮힌 산봉우리와 그 눈부신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 안는 페와 호수의 잔잔한 잔물결만으로도 숨이 막히지만 적어도 나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옴마니 반메흠” 이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울려대던 시내의 작은 도로였다. 도로 양 옆으로 기념품 판매점과 음식점이 즐비한 다른 도시에서 흔히 접하던 흔한 풍경이었지만 불교 음악이 끊이지 않고 인상 좋은 네팔인들이 그저 웃으며 살아가는 그 거리의 풍경은 분명 다른 도시와는 차별화된 인상이었다. 풍경과 삶이 겉돌지 않고 서로를 안는 느낌이었다. 풍경은 자연만을 담는 것은 아니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풍경이 더 친숙한 것은 아닐런지. 세월이 흘러 이 길의 돌 한조각을 주워 가만히 들여다보며 귀를 기울이면 설산의 눈부심과 호수의 일렁임이 느껴지고 “옴마니 반메흠”이 흘러나오던 거리를 거닐던 나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를 듯 싶었다.
<마을 어디든 설산을 이고 있는 풍경>
룸비니의 대성석가사에서 만난 그리스 친구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지 자신의 여행과 상관없이 나를 따라 포카라까지 왔다. 사이프러스 출신인 그는 부동산 중개업자인데 산토리나가 멋있을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싸게 집 한채 얻어 준다는 멋진 직업의식을 표출하곤 했다. 커다란 키에 대머리인 그는 서양인치곤 독특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더치패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전부 지불하는 적극 추천할만한 만행을 저질러 나를 당혹케 하곤 했다. 친한듯 싶으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마리화나를 피우기 때문이었다. 아침 나절 숙소 이층 탁자에 앉아 정성스럽게 마리화나를 종이에 마는 모습이 참 낯설면서도 깜짝 놀래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천진스러움도 느껴졌다. 한밤중이 되면 우린 탁자에 앉아 아프리카 타악기 음악을 듣곤 했다. 마리화나와 타악기 비트음의 상승효과에 열변을 토하는 그에 답해 난 술과 타악기의 궁합을 술을 마시며 몸소 실천해주었다. 그 음에 맞추어 손가락 장단으로 시작한 아카펠라는 발장단까지 더해져 밤이 이슥하도록 계속되었다
<타악기에 발장단 맞추던 테라스>
인연이라는 말에는 작은 설레임이 있다. 잔잔하던 마음이 산들바람에 일렁이듯 설레이는건 인연이 필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적한 점심 나절이면 ‘소비따네’라는 작은 식당 한 자리를 차지하고 엽서를 쓴다든지, 금새 친해진 여행자들과 ‘창’이라는 막걸리를 마시며 소일하곤 했다. 어느날,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한 눈이 맑은 아가씨가 계속 나를 주시하였다. 다시 책을 읽다 머리를 들면 마주치는 눈빛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살며시 자리를 뜨려니 황급히 나를 부르며 자신을 알지 못하냐고 물었다. 델리에서 이곳까지 거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도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수원에서 인도 여행 설명회때 만났잖아요.” 아, 첫 여행의 설레임과 두려움 반으로 찾아간 인도 여행 설명회의 뒷풀이때 내 앞에 앉아있던 아가씨였다. 나보다 여행 일정이 한달 가량 늦게 잡혀 있었고 여자 친구를 혼자 보내야 하는 근심에 안절부절하던 남자친구와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로 술을 마셨었다. 인연이 있다면 인도 어디에선가 만날겁니다. 라며 헤어진 자리였는데 네팔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다니. 만난지 이틀뒤 그녀는 동행들과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떠났고 난 카트만두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여행 수첩을 뒤적여 그 곳에 적힌 수많은 인연들을 다시 떠올렸다. 세상의 어느 언저리에서 또 다시 만날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그리움이 여행지의 풍경과 함께 살며시 피어올랐다.
<사랑코트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와 마차푸르레의 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