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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잊지 않습니다'라는 뒷표지 문구에 대체 무슨 의미가 담긴 것일까 궁금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그 글을 보니 가슴 한 켠이 짠해졌다. 보통 장애인을 다룬 에세이의 경우에는 장애와 상관 없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희망과 열정을 불어넣어주는데 반해 이 책은 선천적 뇌 질환으로 인해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말도 하지 못하는 아들 유유와 함께 한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이야기가 유머러스하게 그려졌다.
유명 소설가이자, 텔레비전에서 책 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저자 마리우스 세라. 그에게 남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특별한 아이 유이스를 아들로 뒀다는 것. 처음에는 장애가 있는 줄 모르고 그저 기지개를 편다고만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간질 발작이었고, 아이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7년 남짓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선고를 받는다. 절망은 잠시, 아빠와 엄마, 그리고 누나 카를라는 유유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유유의 장애를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가능한 한 많은 나라를 여행하기로 계획한다. 어차피 신이 유유를 데려갈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온전히 유유와의 시간을 보내기로 하는 가족.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해 늘 휠체어 신세를 지고,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유유지만 가족들은 그를 귀찮아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고 한없는 애정을 쏟는다.
사실 장애인을 가족원으로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장애인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결코 곱지만은 않다. 가볍게는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좀 심할 경우에는 흉한 것을 본 것 같은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그런 시선이 강한 것일까 싶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유유네 가족도 그런 시선을 많이 마주친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시선을 유쾌하고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유로 디즈니에서 유유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기 시간 없이 출구 쪽으로 입장을 하게 해준 것을 VIP 카드라고 이야기하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유유의 휠체어 때문에 예약한 식당에서 꺼려할 때도 기꺼이 유유를 위해 투쟁한다.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유머 있게 대처하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유유가 제대로 걸을 수 없음을, 제대로 된 삶을 만들어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도 분명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보다 아무것도 못한 채 스러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픈 것이리라. 그런 안타까움은 책의 후반부에 유유가 달리는 것처럼 만든 활동사진을 통해 분출된다. 자신의 힘으로는 걸을 수 없었던 아이가 가족과 사진작가의 도움을 통해 마침내 뛸 수 있게 되는 모습. 책장을 빠르게 넘겨보며 작가는 아이가 이렇게 뛰노는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역자 후기를 보니 유유는 2009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아서는 제대로 몸도 가눌 없었던 유유가 모쪼록 저 세상에서는 활동사진의 모습처럼 마음껏 달리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유는 떠났지만, 세상에 사랑을 남기고 떠났다. 그렇게 가만히, 조용히 사랑하며 떠난 유유. 유유의 가족의 삶에도 행복과 사랑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런 책들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