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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공부법
지쓰카와 마유 외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이리 휩쓸렸다가 저리 휩쓸렸다 방향을 잡지 못한다. 백년은 커녕 오 년, 아니 일 년 앞도 제대로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그 때문에 학생도, 학부모도 저마다 바뀌는 교육제도를 따라가기 급급할 뿐 멀리 내다보는 눈을 갖지 못한다. 그런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얼마 전부터 핀란드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책이나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 시작해 나름 하나의 열풍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이 책은 바로 그 '핀란드 교육'에 대해 한 일본 고교생의 눈으로 바라본 책이다.
평범한 일본의 여고생이었던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칠레로 유학을 갔던 언니에게 자극을 받아 유학을 결심한다. 보통 유학이라고 하면 미국이나 영국 같은 영어권 국가를 생각할 텐데, 재미있게도 저자는 핀란드에서 여자 탤런트가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핀란드에 호감을 갖고, 핀란드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한다. 핀란드의 교육 제도에 대해서도 별다른 지식이 없었고, 핀란드어는 한마디도 못했던 저자는 그저 핀란드에 대한 호감 하나만을 가지고 핀란드로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본과 다른 핀란드의 독특한 교육제도를 하나씩 접하며 변하기 시작한다.
책 중간중간에 소개되는 일본의 교육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뒤처지는 학생들을 챙기는 교육이 아닌 우수한 학생들만 집중적으로 공부시킨다는 점, 시험은 그저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암기를 하는 것이라는 점, 교사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는 잃은지 오래됐다는 점, 학교 수업이 끝난 뒤 학원에 가서 본격적인 공부를 한다는 점 등 공교육은 무너졌고 소수의 우등생 혹은 재력이 있는 이들만을 위한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별 차이가 없어보였다. 그렇기에 일본 학생의 눈으로 핀란드의 교육현실을 바라봤지만 저자와 같은 부분에서 충격을 받고, 같은 부분에서 부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핀란드의 교육에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 충분히 탐색할 시간을 준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경우 재수나 삼수를 해서 대학에 늦게 진학한 경우 졸업하면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어학연수나 휴학을 꺼리고 뭐에 쫓기듯이 졸업을 향해 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 뿐 아니라 졸업 후 구직활동을 할 때 텀이 길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실패에 인색하다. 누구나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 한 번 선택을 한 다음에 그 선택을 뒤엎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핀란드는 중학교 때부터 경험을 통해 다양한 직업을 접하게 도와주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바리부오시'라는 휴식하는 해를 두어 그동안 대학에 진학할 지 혹은 취업을 할 지, 혹 취업을 한다면 어떤 분야가 좋을 지 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애초에 정해진 룰에서 벗어났으니 '실패'했다는 개념은 없고 조금 늦어도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중, 고등학교의 유급제도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유급을 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유급을 통해 모르는 것을 확실히 알고 넘어간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신선했다.
그 밖에 핀란드에서의 공부는 '암기'가 아니라 '읽기'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사지선다 혹은 오지선다로 출제된 문제를 보며 모르면 찍기라도 하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써내려갈 수 있는 연습을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채점도 점수를 매겨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첨삭을 통해 하나씩 배워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쟤는 수학은 잘하는데 영어는 좀 부족해"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는 점도 신선했다.
물론 이 책은 '자, 여기 이렇게 우수한 교육법이 있다. 우리도 이를 받아들이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차이 등으로 분명 그대로 도입한다면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핀란드 교육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입장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부모들이 무엇이 아이의 장래를 위한 것인지,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할 것인지 등을 배워 조금씩 변화를 이룬다면 지금과 같은 오로지 경쟁을 위한, 오로지 우등생을 위한 교육 정책이 아니라 보다 많은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차츰 조성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핀란드 공부법에 대해 궁금했던 이들이 읽으면 가장 좋겠지만, 아기자기한 구성때문에 핀란드 유학에 대한 에세이로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재미와 정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책이 아닐까 싶다.
덧) 중학교 때 혼자 K-POP에 빠져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저자는 현재 한국에서 두번째 유학중이라고. 기회가 닿는다면 저자의 한국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