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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식객 - 생명 한 그릇 자연 한 접시
SBS 스페셜 방랑식객 제작팀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누구나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음식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음식이 아니라도 '사연'이 담긴 음식은 누군가를 떠올릴 '힘'을 가지고 있다. 내게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설탕을 솔솔 뿌린 계란 토스트가 그런 존재다. 초등학생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요리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계란 토스트를 볼 때마다 할머니 생각에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진다. 여기 그런 따뜻한 마음을 담은, 정성을 담은 요리를 하는 한 사람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면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 집 주위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어찌보면 기인 같은 남자, 자연요리연구가 산당 임지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차려주는 따뜻한 한 끼 밥 같은 길 위의 이야기, 『방랑식객』이다.
열두 살에 집을 나와 전국을 떠돌며 음식을 다루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했다는 그는 요리에 빠져 들면 들수록 자신이 하고자 하는 요리가 어느 주방에도, 책에도 없는 두 발로 내딛고 선, 길 위에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물속에 땅 위에 바람결에 진정한 '맛'이 깃들어 있다는 신념으로 집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해 '자연요리연구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임지호. 단순히 패스트푸드의 반대 의미로의 슬로푸드가 아니라 집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같은 공간 속에 있는 재료를 통해 식탁 위를 채우는 것을 지향하는 그의 요리철학은 자못 충격적이다. 곰취, 우엉, 무 등 익숙한 식재료도 있지만 이끼, 갯벌, 잡초, 갯벌 같은 "못 먹을 걸 가지고 어쩐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낯선 재료도 많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재료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그들의 인생에 한 켠을 자리하게 될 요리를 정성껏 차려낸다. 요리를 먹게 될 사람의 사연과 몸 상태를 모두 고려한 배려와 애정이 담긴 요리. 그저 한 번 스쳐가는 길 위의 인연이 아니라 한 번을 만난 것이어도 두고두고 떠오를 맛난 만남을 쌓아간다.
SBS 스페셜을 통해 임지호의 삶이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방송을 접하지 않은 이도 쉽게 그와 친해질 수 있다. 지리산, 신안, 제주도, 백두산, 일본 등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종이로 한 번 걸러져 전해지는데도 아릿하면서도 따스하다. 『방랑식객』을 읽으며, 낯선 사람, 낯선 식재료, 낯선 요리와 어느샌가 거리를 둔 것이 내가 만든 편견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은 늘 밥을 먹기 전에 "이따다끼마스(いただきます)"라는 말을 한다. 무슨 의미가 담긴 것일까 하고 궁금해한 적이 있었는데, 한 일본드라마에서 식물, 동물 등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의 의미 즉 그들 덕분에 자신이 살아간다는 감사의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방랑식객』도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자연에 대한 감사,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이웃에 대한 감사, 그 모든 감사가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자꾸 손이 가는, 자연 그대로의 맛과 잘 어우러진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