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봉우리 5
다니구치 지로 지음,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 / 애니북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주말마다 빼놓지 않고 산에 가는 부모님 때문에 어느새 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도 내가 당장 산에 오르는 일은 없을 듯 싶지만.) 얼마 전, 오은선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반 성공 소식이 들려오며 새삼 이 책이 떠올랐다. "정복이란 말은 쓸 수 없다. 산이 잠시 내게 허락했을 뿐. 눈이 시리도록 생생한 산경의 묘사에 내 입에서 입김이 서려나오는 듯하다!"라는 엄홍길 대장의 추천사에 이끌려 겸사겸사 읽기 시작한 책. 책을 읽으며 나는 점점 산사나이들의 세계에, 그리고 강인한 의지를 가진 하부라는 사나이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조지 맬러리가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에베레스트 정상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그들은 그 뒤로 소식이 끊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후카마치라는 한 사진가가 우연히 네팔의 한 상점에서 맬러리의 것으로 추정되는 카메라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카메라는 도난당하고, 이 과정에서 후카마치는 그 카메라의 주인인 하부 조지와 만나게 된다. 어디선가 하부 조지를 본 적이 있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후카마치. 일본으로 돌아와 그는 하부 조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고, 그가 사람들의 호감은 사지 못해서 해외 등반은 못했지만, 전설적인 클라이머였음을 알게 된다. 이에 맬러리의 카메라에 담긴 에베레스트 초등정에 대한 수수께끼와 하부 조지에 대해 좀 더 조사하기 위해 다시 네팔로 떠나는 후카마치.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하부에게서 그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무산소 등반 계획을 듣게 된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자신의 삶을 건 하부의 계획. 그 계획에 후카마치는 사진사의 역할로 동행한다.

  맬러리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른다고 말하지만, 하부는 "내가 여기 있으니까" 산에 오른다고 답한다. 자신의 삶의 이유를 산에서 찾는,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순간을 산에서 찾는, 무모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지만 산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한 하부. 근육 좀 키워서 옷을 북북 찢어 근육을 자랑하는 이들보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하부야말로 진정한 짐승남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이미 간 길을 따라서 그나마 편안하게 갈 수도 있는 코스라도 최초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고집하고, 목숨이 위험하다면 로프를 끊을 수 있다고 했다는 다른 사람의 기억 속의 하부와 후카미치가 직접 만난 하부는 결국 하부였다. 때로는 눈보라가 몰아쳐도, 때로는 낙석이 떨어져도, 하부는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묵묵히 걷는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자, 까탈스러운 산에 자신의 등반을 허락해달라는 노력이다. 처음에는 하부라는 인물이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고 고집스러워서 정이 가지 않았는데, 조금씩 그를 알게 되면서 그의 아픔을, 그리고 산에 대한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산악인 사이의 경쟁. 그리고 쉽게 자신을 허락해주지 않는 고고한 에베레스트 등정. 목숨을 걸고 함께 산을 오른다는 뜨거운 동지애. 산의 정상, 그것이 환상이라 하여도, 그것은 산을 오르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산을 오른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내려올 것 뭐하러 산에 오르는 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했던 내가 산사나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그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양사> 시리즈의 작가인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인데, 1998년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6위에 랭킹되었던 책이니만큼 원작도 기대가 된다. 유메마쿠라 바쿠도, 다니구치 지로도 이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에베레스트를 너무나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해줘서 그 역략에 놀랐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더 실감나게, 나처럼 등산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가슴 뜨겁게 볼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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