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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ㅣ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08년 10월
평점 :
지금도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는 노래를 기억할 정도로 어린 시절 퍽 좋아했던 만화 중에 하나였던 <빨간 머리 앤>. 하지만 정작 책으로는 앤을 만난 적이 없어서 '언제 시간나면 10권짜리로 나온 앤 시리즈를 읽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미뤄왔었다. 그러던 차에 <빨간 머리 앤> 100주년을 기념해 여기저기서 <빨간 머리 앤>이 출판됐고, 그 중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나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가기 시작했다. 약 15년쯤 전에 만화로 봤을 뿐이라 그런지 앤하면 다이애나와 개울가에서 손잡고 맹세하던 모습만 어렴풋이 떠올랐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새록새록 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초록 지붕 집에서 살고 있는 마릴라와 매슈는 자신들을 도와 농장일을 할 남자아이를 한 명 입양하려 한다. 하지만 중간에 말이 잘못 전해져 온 것은 앤.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어느새 앤의 매력에 빠져버린 마릴라와 매슈. 우여곡절 끝에 초록 지붕 집에서 앤의 생활을 시작되고 앤은 갖가지 사건들을 경험하며 성장하게 된다는 줄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상력이 풍부한 앤의 수다와 앤이 저지르는 갖가지 사건, 사고가 유쾌하게 그려져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다 하여도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빨간 머리라는 저주받은 운명(?)때문인지 앤은 가족애를 느끼지 못하고 성장한다. 하지만 초록 지붕 집에 온 뒤부터 앤은 가족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느끼게 되고,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누기도 하며 성장해간다. 초반에는 귀찮을 정도로 수다스럽고, 조금만 기쁜 일이 있으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이 좋아하고, 조금만 슬픈 일이 생기면 내일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이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앤의 모습을 보며 너무 오버스럽지 않나라는 생각을 잠시 품기도 했는데 그런 점들이 앤을 앤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 아닐까 싶었다. 나 또한 마릴라처럼 어느새 앤이 할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으니까 말이다.
<빨간 머리 앤>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단순한 엉뚱소녀 앤의 일화만이 아니다. 공상을 하느라 갖가지 실수를 하는 앤은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들에 대해 반성할 줄 알고, 똑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앤을 얌전한 아이로 키우려고 했던 마릴라의 소망은 불가능스러웠지만, 나이가 들면서 앤은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길버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대놓고 드러내기보다는 성적을 두고 경쟁해 어느샌가는 선의의 경쟁을 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자신의 목표를 변경해 자신을 위해 희생한 마릴라를 위해 섬에 남고, 오랜 라이벌이었던 길버트와도 화해하는 모습을 보니 이 뒤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사뭇 궁금했다.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는 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새삼 예전에 봤던 만화도 다시 보고 싶어지고, 이 이야기의 후속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예쁜 일러스트가 곁들여져 괜히 소녀가 된 기분으로 설레며 읽었던 책. 다음 기회에 또 앤과 즐거운 만남을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