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 -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
쥘리앙 부이수 지음, 이선주 옮김 / 버티고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쥘리앙 부이수의 소설로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파리가 아니라 어디 도시에도 있을 법한 젊은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원제는 <비닐 봉지의 추락>이라는데 번역되면서 소설 속에 나오는 또 한 권의 책인 <펄프>로 제목을 바꿔서 출간됐다. 프랑스 소설이지만 분위기는 하루키 풍의 일본 소설같은 느낌이 들었던 책이라 평소 일본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인 트리스탕 포끄는 <펄프>라는 한 권의 책을 출간한 풋내기 작가. 하지만 그리 잘 팔리는 책은 아니었기에 생활 보조금을 받아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창작 지원금의 대상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트리스탕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책 16부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먹고 살 돈도 없는 판에 자신의 책을 16부나 구입해야 하는 건 힘들었던 트리스탕은 서점에서 다른 작가의 책을 훔쳐 헌책방에 팔고 자신의 책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야금야금 책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트리스탕의 일탈은 주운 열쇠로 남의 집에 들어가 음식 축내기, 자신이 거주하는 건물의 현관 매트를 앞 건물에 팔기 등 점점 익살을 더해가는데...

  트리스탕은 '더는 무리'라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위기를 모면한다. 작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순간에서 트리스탕은 절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유쾌한 추락을 통해 생을 이어가고, 자기애도 키워간다. 원제인 비닐봉지의 추락처럼 트리스탕은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땅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약간의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다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야기는 아쉽게 끝났지만 저자가 이 책의 후편도 만든다고 하니 트리스탕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일탈을 생활화하게 됐는지 다음 기회에 엿볼 수 있을 듯. 

  혹독한 폭염으로 15,000명의 노약자가 사망했던 2003년 파리의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폭염으로 인한 죽음은 등장하지 않고,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지만 투신자살의 내용은 아니니 그저 유쾌하게 트리스탕의 일탈기를 즐겨봄은 어떨까 싶다.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익살을 자아내지만 한편으로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꼬집음이나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프랑스 소설이지만 분위기는 하루키 풍의 일본 소설같은 느낌이 들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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