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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훔친 여름 ㅣ 김승옥 소설전집 3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푹푹 찌는 여름, 지쳐서 침대에 누워서 무슨 책을 읽을까 하고 가만가만 눈으로 책장을 훑다가 눈에 들어온 한 권의 책. 바로 김승옥의 <내가 훔친 여름>이었다. 더이상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김승옥. 하지만 어디서 국문과 나왔노라고 얘기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그의 작품을 '자발적으로'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같은 작품의 기억 때문인지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 등을 그린 작가라고 나도 모르게 규정하고 있었는데, 표제작인 <내가 훔친 여름>의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나의 그런 선입견은 산산이 부서졌다.
표제작인 <내가 훔친 여름>은 어느 날 두꺼비 같이 생긴 한 청년(장영일)이 주인공(이창수)을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울대 뱃지를 달고 나타난 영일은 절에서 '고신가 지랄인가'를 준비하다가 놀러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창수는 자신 앞에 나타난 영일이 자신이 어린 시절 알던 그 영일이가 맞는지 영 의심쩍다. 하지만 "마치 뚱뚱보는 다른 뚱뚱보에게, 포마드는 다른 포마드에게, 철모는 다른 철모에게, 개는 개에게 친밀감을 느끼듯" 서울대생인 창수는 서울대 뱃지를 한 영일에게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얘기를 늘어놓는 영일에 대해 창수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가져갈 것도 없기에 영일의 구라를 즐기다 결국 그와 함께 무작정 무전여행을 떠나게 된다. 돈 한 푼 없이 시작한 여행. 여행의 시작과 함께 영일과 창수의 소소한 사기극 또한 시작된다.
<내가 훔친 여름>이 유쾌한(하지만 날카로운) 청춘소설이라면 <60년대식>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아내와 이혼을 암묵적으로 약속한 주인공(도인)이 유서를 쓰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의 짐을 하나씩 정리한다. 하지만 신문사에 간곡히 자신의 유서를 게재해줄 것으로 요청했지만 그것이 묵살되자 자신의 죽음이 흔해빠진 염세 자살로 취급돼버릴 것만 같아 선뜻 자살을 감행하지 못한다. 다음 날까지 일단 자살을 유예하고 수첩을 뒤적이다 잊고 지냈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는 도인. 하숙집 주인 딸인 돌싱 애경양을 임신시키고는 냅다 도망쳐버렸던 기억이 떠오른 도인은 마지막으로 용서를 빌기 위해 애경양을 찾아 길을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도인은 애정양이 결혼상담소에서 맞선녀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 날, 도인의 마지막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
<내가 훔친 여름>(1967)과 <60년대식>(1968) 두 작품은 모두 1960년대 후반에 지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2011년인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내가 훔친 여름>에서 만난 '재기발랄함'이었다. 미워할 수 없는 두 청년의 사기행각(?)을 읽다보면 그들이 속이는 것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인지, 아니면 서울대 뱃지로 상징되는 '간판'에 현혹되는 소설 밖의 독자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오늘날 잊을만 하면 신문을 장식하는 학력위조, 학력사기 같은 사건과 창수의 영일이 카바레 장식을 해주겠노라며 강동우에게 얹혀 지내는 모습은 거기서 무엇을 어느 정도 얻었느냐만 다를 뿐 사실 사기라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지방 유지인 강동우네 일가가 서울대생으로 상징되는 지식인(하지만 그 또한 사기)에게 농락당하는 모습은 킥킥 웃게 하다가도 슬몃 가슴 한 켠을 쿡쿡 찌르고 들어온다.
<내가 훔친 여름>이 다소 에둘러 뜨끔하게 했다면 <60년대식>은 조금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촌철살인을 날린다. 도인(道仁)이라고 한자가 병기되어 있지만 어딘가 도인(道人) 같은 주인공 도인은 "본인의 죽음이 작으나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같은 얼토당토한 내용의 유서를 신문사에 보내고, 유서가 신문에 실리지 않자 어떤 죄책감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침 생각이 났으니 용서나 빌어보겠다며 총각딱지를 떼어준 애경양을 찾으러 나선다. 그렇게 만난 애경양은 "제가 맡은 역은 돈 많고 가정적이고 젊은 과부 역이거든요. 호호호, 왜 그렇게 어리둥절해하세요? 남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자가 바로 그런 종류의 여자가 아닌가요?"라며 "필요 이상으로 용서를 구하려 한다는 건 죄악에 속하는 것일 거예요. 전 요즘 행복해요. 제 직업에 대해서도 만족하고 있고, 그러니 도인씨는 저로부터 용서받은 게 아니겠어요?" 하고 우문현답을 한다.
애경양과의 사건 외에도 자살을 유보한 하루 도인은 여기저기 발길 닿는 데로 떠돌며 짧은 시간 동안 온갖 군상을 만난다. 누군가는 도인에게 "식료품을 공업용 색소를 넣어 만들어 판다고 야단이지요? 난 그런 놈이 많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놈이 있어야 소비자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단결합니다. 무장간첩? 얼마든지 오라지요. 그놈들 덕택에 국민의 단결심은 더욱 강해지지. 사기꾼? 얼마든지 있어도 좋습니다. 한번 사기를 당해봐야만 자기 재산을 관리하는 데 영리해지는 법이거든. 살인강도? 좋아요, 경찰 기술이 발달됩니다. 어떤 미련한 친구가 한탄하더군. 요즘은 살인하는 수법도 끔찍해졌다고 말야. 하지만 그것이 바로 좋은 징조란 걸 모르는 멍텅구리가 하는 소리지. 요컨대 먹겠다는 놈과 먹히지 않겠다는 놈이 있어야 발전이 있는 거요. 먹겠다는 놈이 극악스러우면 극악스러울수록 먹히지 않으려는 놈도 극악스러워지는 거지. 그걸 알아야 해요"라고 자뭇 인생의 선배처럼 충고한다. 도인이 사표 낸 학교의 교장은 "우리 이런 내기 하나 합시다. 십 년 후에 말야, 누가 더 재벌이 돼 있나 말야. 어떻소?" 하며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재벌'이라며 도인에게 내기를 건다. 도인이 만난 다양한 사람을 통해 김승옥은 돈에 대해, 정숙에 대해, 사랑에 대해 비꼬듯이 비난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형에게서 제가 느낀 바로는, 형은 많은 지식도 가지고 계신 것 같고 교양도 있어 보이고 선량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만, 뭐랄까요, 정열은 없는 사람 같습니다. 정열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저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결국 무엇보다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정열을 잃은 도인(혹은 독자)이라고 한다. 김승옥은 이렇게 "과도한 정열" "정열로 위장한 추잡한 욕망"이 아닌 "이성과 지성에서 나온 판단을 밀고 나갈 힘이 되어줄 최소한의 정열"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비판소설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저 한바탕 웃고 넘길 수 있는 청춘명랑소설. 3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60년대식'인 한국사회를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60년대식'에서 나아가지 못한 우리를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책을 놓은 뒤에도 망설여진다. 하지만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한국문학사에 있어 김승옥이라는 작가가 있었음에, 그리고 그가 남긴 <내가 훔친 여름>을 함께 훔칠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