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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미국드라마 Las Vegas(라스베가스 카지노 보안요원, 직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카지노의 화려함과 함께 그 뒤에 가려진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드라마를 보며 느낀 점은 카지노는 결코 손님이 이길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지노로 인해 인생역전을 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돈을 잃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점이었다.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본 카지노는 인간의 향락의 정점에 놓이는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책 <슬롯>은 바로 그 '도박'과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시절 사귀었지만 선배와 덜컥 결혼까지 해버린 옛 애인 수진. 그녀가 찾아와 10억을 쓰기 위해 카지노에 간다. 왜 하필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왜 하필 돈을 쓰기 위해 카지노를 선택했는지 모든 것은 베일에 싸여있지만 어쨌거나 그는 그녀와 함께 강원도에 있는 oo랜드로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슬롯머신, 블랙잭, 바카다 등의 게임을 하며 때로는 돈을 따기도 하고, 때로는 돈을 잃기도 하며 조금씩 조금씩 돈을 잃어간다. 돈을 잃겠다는 생각으로 갔지만 정작 돈을 잃기 시작하자 기분은 썩 좋지 않다. 도박 중독은 되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 확신은 날이 지날수록 사라져 자신도 다른 도박중독자들과 마찬가지로 까칠해진 피부와 함께 커피를 삼키며 게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이름이 같은 호텔직원, 꾼으로 보이는 20대 여자,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에서 놀고 있는 7살배기 여자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 등 다양한 양상의 여자들을 만나게 된다. 도박과 여자. 과연 작가는 일련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람들이 카지노에 가는 것은 어쩌면 꿈을 쫓기 위해서다. 나도 크게 한 방을 터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은 사람들에게 허왕된 꿈을 심어주기도 한다. 입장권을 사서 게임장에 앉아 조금씩 잃어가면서도 운이 트여 다시 딸 수 있다는 생각, 돈이 직접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칩을 잃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잃었는지조차 깨달을 수 없는 상황, 사방에 창문과 시계가 없는 구조. 그 속에서 사람들은 꿈을 찾고, 희망을 잃고, 심지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도박 중독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들의 중독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카지노를 없애면 되는 것이지만 카지노는 여전히 합법적으로 운영되며 건재하고 있다. 무엇이 카지노를 유지시키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 인간의 본능? 아니면 보이지 않는 권력의 술수? 그 원인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책을 보면서 카지노는, 그리고 일확천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박이란 인간 내면의 본성을 교묘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다. 이 소설도 바로 그런 본성을 소재로 삼고 있다. 하지만 소재에 비해 스토리는 부실하다. 하지만 전문가(일명 꾼)의 입을 빌려 그럴싸하게 도박에 대해 소개를 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신선한 느낌도 들지만 갑자기 왜 수진의 남편이 카지노에 등장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갑자기 윤미의 언니가 방화를 해서 주인공이 해결하러 따라가는 것인지, 그리고 왜 갑자기 명혜(꼬마아이)의 엄마가 나타나 주인공과 함께 술을 마시고 모텔에 가서 대성통곡을 하고 우는 것인지 등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한 것 같았다. 신인이라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적어도 1억원이라는 고료를 받을 정도라면 프로에 가까운 글을 보여줘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욕망과 그 속의 어두움, 그리고 자본주의의 이중성 등에 대해 잘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의욕이 앞서 제대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