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2 : 국내편 - 완결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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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 시절 만화책을 빌려보던 도서대여점에서 빌린 첫 소설은 『퇴마록』이었다. 소설이라면 쉽게 풀어쓴 고전이나 『클로디아의 비밀』 『빨간머리 앤』 같은 성장소설, 셜록 홈스 시리즈를 즐겨 읽던 그 당시 내게 『퇴마록』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동시대가 배경인 소설을 거의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낀 충격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이야기에 사람을 휘어잡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탐닉하듯 『퇴마록』 시리즈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거의 15년만에 다시 만난 『퇴마록』. 추억 삼아 읽어보자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 그때에 비해 그래도 책이라면 좀 읽었는데 과연 지금 읽어도 재미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앞섰다. 잔뜩 기대하고 읽었지만 그 기대를 채우고 남을 정도로 『퇴마록』힘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국내편에는 총 열아홉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박 신부, 현암, 준후, 승희. 이 네 명의 주인공이 어떤 능력을 지녔고, 그들이 어떤 일을 겪어 퇴마사의 길에 들어섰는지, 그리고 네 사람이 함께 퇴마를 하러 다니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현암과 박 신부, 준후의 강렬한 첫 만남을 그린 「하늘이 불타는 날」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분명 주인공은 같지만 같은 장르의 소설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초등학교 때 종종 하던 분신사바를 소재로 한 「영을 부르는 아이들」이나 저주받은 산장이라 불리는 산장에서 벌어지는 힘과 힘의 한판 대결을 그린 「측백산장」, 혼자 집을 지키던 한 소년이 겪는 보이지 않는 방문자의 이야기를 담은 「아무도 없는 밤」 등은 여느 공포소설보다 더 오싹하다. 한곳을 바라보고 죽어 있는 유골이 500구나 발견되어 거기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는 「초치검의 비밀」은 팩션으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모험담, 판타지적 성격도 가지고 있으니 『퇴마록』은 그냥 장르문학이라고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장르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퇴마록』이 가장 매력 있을 때는 역시 네 주인공의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전면에 부각될 때다. 준후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하늘이 불타던 날」을 비롯, 박 신부의 과거에 대해 다룬 「파문당한 신부」나 현암과 동생인 현아의 이야기를 다룬 「태극기공」, 현암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월향과 현암의 이야기를 다룬 「귀검 월향」, 승희의 첫 등장이자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 등에서 만나게 되는 네 사람의 사연은 한편으론 짠하면서도 한편으론 세상에서 악함을 몰아내기 위한 의지나 퇴마에 대한 번뇌 등이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우리가 귀신이라 하며 삶에서 배제해온 것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퇴마록』 속의 네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퇴마를 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생함을 『퇴마록』은 전해준다.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우혁은 새롭게 책을 펴내는 심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퇴마록-국내편』은 지금의 제 눈으로 보기에도 전체적인 스토리나 구성은 나쁘지 않지만, 문체 면에서 본다면 글공부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출간하게 된 당시의 제 어수룩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미숙한 점투성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전면적으로 개정을 할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이미 수백만 권 이상이 팔린 만큼 독자분들이 아껴 주신 부분을 손대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 생각되어 오자나 문구 몇 줄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대로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18년 전의 집필한 작품이라 지금 다시 읽으신다면 어색해 보이는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중략) 그리 멀지는 않지만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잠깐의 시대인데, 그 시대가 자취로 남았다는 면에서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작가는 전면 개정도 생각했다고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워낙 힘이 있기 때문인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다거나 어색하지 않다. PC통신에서 한 채팅이 긴 분량으로 나오는 「아무도 없는 밤」처럼 PC통신 세대가 아니라면 낯설게 느껴질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야기의 힘은 반감되지 않는다. 국내편을 시작으로 엘릭시르에서는 외전-세계편-혼세편-말세편을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 네 퇴마사는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시대는 변해도 이야기의 힘은 변하지 않는구나 싶었던 『퇴마록』. 이어질 『외전』에서는 그동안 소개하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된다. 새 옷을 입고 새롭게 다가왔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매력.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소장할 가치가 충분한, 한국 장르문학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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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1-09-2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마록... 국내편만 읽었지만 재미있게 읽었죠. 세계편도 빌려 읽었던 기억인데 국내편만큼은 재미를 못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손 대지 않았는데... ㅎㅎ

이매지 2011-09-28 17:28   좋아요 0 | URL
이번에 새로 쓴 <외전>이 곧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혼세편>까지 미친듯이 달렸던 터라 ㅎㅎ
지금 읽어도 재밌더라구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