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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2010년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이라 그런지 신문 광고나 인터넷 광고로 자주 접한 책. 하지만 그런 광고보다는 대학 시절 이옥의 매력에 빠져 지낸 적이 있어서 과연 이옥과 김려의 우정을 어떤 식으로 풀어갔을지가 궁금했다. <소년, 아란타로 가다>에서는 마지막으로 조선통신사가 떠난 계미사행을 배경으로 청유라는 소년의 이야기가 그려졌었고,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에서는 연암의 아들 박종채를 내세워 팩션의 형식으로 글쓰기에 대해 풀어갔다면,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이옥과 김려라는 두 실존 인물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진행한다.
정조의 문체반정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양반전>을 쓴 연암이 문체반정의 가장 큰 희생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연암도 어느 정도 꾸중을 듣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사대부였기에 비교적 가벼운 수준의 벌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이옥은 문체반정의 가장 큰 희생양이라 할 수 있다. 이옥은 죽은 글쓰기가 아닌, 살아 있는 글쓰기를 시도하다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하고 유배형에까지 처해진다. 하지만 이런 시련 앞에서도 이옥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세상을 살아간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는 바로 그 이옥과, 그의 절친이었던 김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과거 문체반정에 휩싸여 유배를 당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현감이 되어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김려. 평온하기만 한 봄날, 그의 앞에 한 청년이 들이닥친다. 남루한 옷차림에 무례한 태도.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벗 이옥의「백봉선부」를 읊는다. 김려는 그 청년이 이옥의 아들 우태임을 알게 된다. 우태는 그냥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하며 아버지가 남긴 글 뭉치를 김려에게 보여준다. 그리운 벗의 글. 우태의 등장으로 김려는 글 때문에 모진 고초를 당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유배생활도 떠올린다. 그리고 그때를 추억하며, 그는 이옥과의 우정에 대해, 글쓰기의 본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얻는다.
이옥과 김려라는 일반 대중에게는 낯설게 다가갈 수 있는 두 선비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글쓰기와 신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단순히 두 문사의 우정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유배지에서 싹튼 사랑,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켜준 하인에 대한 고마움 등 얇은 책 속에서도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단순히 옛이야기를 읽어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옥과 김려의 글을 통해 당시의 문체반정의 중심에 있었던 소품체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 될 듯하다. 어느 정도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읽으면 분명 더 재미있을 책이지만, 별다른 사전 정보가 없는 독자가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과연 청소년들이 읽으면서는 어떤 느낌을 가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