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과 함께 읽는 李古本 춘향전
성현경 지음 / 열림원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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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고본 춘향전? 고를 때는 그저 그림과 책이 함께 있다고 해서 고른거였는데, 책을 보니 이고본이란 이명선 소장 고사본의 약칭으로 춘향전의 이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춘향전의 이본만 해도 백여종이 넘는다는데 그 중에 이고본은 당대 사회가 용인하고 권장하는 여러 규범들 내지는 가치관을 전도하는 장면이 많다는 점과 그러한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는 행문의 재담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으나 원본이 행방불명되고 오·탈자가 많은 문장지 수록본만 남아 있어서 그 자료적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여튼, 수많은 이본중에 이고본과 만난 것을 반가워하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춘향이는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춘향이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간 내가 춘향이에게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변사또가 수청을 들라고 하여도 이도령을 지고지순하게 기다리는 착하디 착한 여인(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어리다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의 초장부분에 방자가 이도령의 심부름으로 그네뛰는 춘향에게 갔을 때 춘향은 방자에게 욕을 하고 음담패설도 일삼지 않는다.(맙소사!) 초반의 박살난 이미지를 회복하려는지 어쩐지 뒤로 갈수록 춘향은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부합은 되어가긴 했다만 초반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왠지 이몽룡을 상대로 춘향이 내숭을 떠는건가 싶기도 하고...-_-;; 음. 여튼 춘향전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본이라고 하여도 거의 비슷하니 이정도에서 넘어가도 무방할 듯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띈 점을 꼽으라면 단연 많은 고사와 설화의 인용이라고 할 수 있다. 춘향과 이몽룡은 초반에는 거의 설화와 고사를 인용하여 서로 노닌다. 더불어 이몽룡은 방자와도 고사를 인용하거나 각종 서적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을 꼽으라면 방자와 이몽룡의 관계가 굉장히 자유분방하다는 점이다. 방자는 이몽룡의 하인이긴 하지만 이몽룡과 친구처럼 지내기도 한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춘향이네 집으로 안내하겠다고 하며 자신의 성이 '아'이며 이름은 '버지'라고 하지를 않나, 자신이 몽룡보다 나이가 많으니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지를 않나, 어찌보면 방자는 좀 건방진 하인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어느정도 친밀감이 쌓여있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튼간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춘향전을 다시 읽어보면서 함께 곁들어진 김홍도, 신윤복 등이 그 당대의 시대를 그린 그림들을 곁들여 보여줘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기회가 닿는다면 춘향전의 다른 이본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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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96년 제 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던 작품인 이 책은 다른 사람의 자살을 도와주는 주인공, 뭐 굳이 직업명을 붙이자면 자살보조업자쯤되는 사람과 그의 고객이었던 여자들, 그리고 그 여자들의 주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들어 부쩍 알려진 작가인 클림트의 유디트와 같았던 여자가 등장하고, 책의 표지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이었고, 책의 마지막은 사르다나팔의 죽음이라는 그림으로 마무리 된다. 얼핏 이 사실만 보기에 진주귀고리소녀처럼 그림을 보고 그 주인공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 책은 그저 그의 개인적인 취향을 그림을 통해 보여줬을뿐, 그림을 통한 허구는 아니었다.

 이 책 속에는 자살을 권하는 사람과 그로 인해서 자살을 하고자하게 된 사람이 등장한다. 자신의 욕망에 휩싸인 사람과 자신의 욕망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피하려는 사람도 등장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그들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살을 한다고 해도 현실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글쎄...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이라는 말처럼 죽음을 선택한다고 하여도 그리 변하는 것은 없지 않을까?

  내가 읽은 김영하의 다른 소설들보다는 좀 덜 날카롭고, 좀 덜 냉소적이긴 하지만, 이 책도 다른 책들처럼 굉장히 술술 읽혀나갔다. 김영하는 독자가 어떻게 하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가를 잘 파악하고 있고, 그래서 독자가 쉽사리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군더더기가 붙어있지 않고,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들을 읽어갈 때면, 그에게 점점 매료되어 감을 느낀다. 얼마전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앞으로 문단계를 이끌어갈 인물로 김훈과 더불어 뽑히기도 했던 김영하. 다음에는 어떤 작품으로 매료시켜줄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사실 김훈보다 김영하쪽이 더 매력적이다. 적어도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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