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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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여기저기서 광고도 많이 접하고, 통일 대한민국을 그리고 있다는 소재에 좀 끌리기도 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가 얼마 전에는 작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아 영화로 만든다는 기사를 보고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라는 궁금증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했던가. 2011년 드디어 통일이 이뤄진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6년. 통일 대한민국은 여전히 혼란과 무질서가 지배하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폭력 조직 '대동강'의 조직원인 병모가 죽는다. 문 형사가 병모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조직원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뭔가 석연찮았던 리강은 병모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어느새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어 자신의 목숨도 위험해지는데...

  저자는 많은 참고자료를 통해 북조선에 대해, 그리고 분단된 대한민국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세계를 구현한다. 객관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지 작품은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60년이 넘게 분단되어 있었던 만큼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졌던 남과 북. 물리적으로는 '통일'이 되었지만, 2016년의 통일 대한민국은 여전히 남과 북이 반목한다. 아니, 오히려 통일이 되면서 둘의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동강' 단원들은 그림자처럼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사회를 장악하려 한다. 주민등록도 뭣도 없는 대포 인간이기에 그 실상조차 파악되지 않는 이들. 실제로 통일이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더 오싹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감상은 딱 거기까지.

  통일 후 대한민국이라는 소재는 굉장히 대중적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대중적인 소재를 대중적으로 풀어가지 않는다. 김진명처럼 아예 대중소설로 가던지, 아니면 통일에 대한 고찰을 담아 좀더 진지한 소설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좋았을텐데, 260페이지 남짓한 분량은 진지한 이야기를 담기엔 너무 짧았고, 가볍게 가기엔 내용이 너무 무거웠다. 책 소개에는 느와르라 표방하고 있지만, 이 책은 느와르 적인 '요소'는 있을 지 몰라도 본격 느와르라고 하기엔 또 영 어설프다.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인 리강을 제외한 인물들의 캐릭터는 개연성이 떨어진다. 이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야 하는데,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에겐 그게 없다. 뭐 아무 이유 없이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통일 대한민국이 주는 혼란에서 온 것이라고 끼워맞춰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런저런 어설픔과 어정쩡함이 이 책을 이도저도 아니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기대를 안고 읽은 책이었는데, 읽고 나니 왠지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 영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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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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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혀 기대치도 않았다가 잡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후 급호감을 느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몇 번 다른 작품도 접해봤지만 그 때마다 뭔가 2% 부족한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올해도 또 다시 한편으로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혹 보석과 같은 멋진 작품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고 올해 당선작인 <열외인종 잔혹사>를 읽어가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으니, 작가는 이들을 '열외인종'이라 부른다.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살아가는 4명의 인물이 이 책에 등장한다. 퇴역군인으로 허구헌날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시국연설을 하는 칠십대의 장영달, 한 때는 용역회사에서 일했지만 아내가 바람나서 헤어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까지 부도나는 바람에 졸지에 일을 그만두고 노숙자의 길을 걷게 된 김중혁, 몇 달째 무급으로 외국계 제약회사 인턴신분으로 살아가는, 지갑에 돈이 없어도 짝퉁 명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르고 다니는 윤마리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피씨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기무까지. 그저 '조금 특별하다'기에는 부족한 이 열외인종들은 정상적인 삶과 어느 정도 떨어져 지낸다는 점 외에는 사는 곳도, 주요 활동무대도 다르다. 그런 이들이 온갖 우연(혹은 필연)에 의해 11월 24일에 코엑스몰로 모인다. 그리고 4시가 되자, 갑자기 코엑스몰의 가득 채웠던 모든 불빛이 사라지고, 양머리를 하고 연미복을 입은 괴상한 사람들이 등장해 총질을 하며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과연 4명의 주인공들은 이 난국을 무사히 헤쳐갈 수 있을까? 

  '가끔 소설과 만화책을 탐독하거나 또 가끔은 희랍어나 히브리어로 된 성서를 읽으며 종교적 경외감에 사로잡힌다'는 저자의 이중적인(?) 프로필처럼 이 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엑스몰에서 일어나는 사건 자체도 4명의 인물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다양한 해석의 바탕이 되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신자본주의라는 경쟁체제하에서 도태되어버린 인간들이 코엑스몰에서 겪는 '십헤드 카니발'을 통해 궁지에 몰리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신자본주의와 나 아니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하는 보수주의자, 대안도 없이 비판만 하는 진보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나름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어서인지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지고, 뭔가 심오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메시지에 관계없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코엑스몰이라는 상업성이 극대화된 공간에서 네 명의 주인공은 저마다 자신이 약점(?)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한다. 장영달의 경우는 단지 '예순이 넘었다'는 이유로 "어르신들은 끊임없는 변화를 촉구하는 우리의 메시지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아주 파렴치한 인생으로 일관해오셨"다고 "장렬한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셔서 이 참에 역사의 죄인노릇도 청산하고 이제껏 버텨온 추한 인생도 마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리고 그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20대의 펄펄한 젊은이들과 이종 격투기 게임을 해서 이기는 것 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20대 청년들을 이겨도 주위의 다른 인질들로부터 호감을 얻지 못한다.) 한편, 윤마리아의 경우에는 70키로그램이 넘는다는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맥도날드에 냉장보관되어 있던 하루치 재료를 20분이라는 시간 동안 먹어 모두 없애는 것. 살기 위해서 젊은 사람과 싸워야 하는 장영달도, 살기 위해서 더이상 음식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음식물을 입에 쑤셔넣어야 하는 윤마리아도, 그리고 총을 들고 양머리를 쏴죽이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기무도, 한때 코엑스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전기를 복구하려고 자신만의 작전을 펼치는 김중혁도,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저 무기력하게 살아갔던 이들은 십헤드 카니발을 통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신의 인생을 모처럼만에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게 비록 일시적이라 할 지라도)

  저자가 이 책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머리를 한 사람들이 등장해 무자비하게 총질을 해대는 '십헤드 카니발'이라는 극단적인 형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누군가를 이겨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은(그것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현실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보였다. 현실을 뒤틀어 블랙유머를 구사하는 저자는 유쾌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이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등장인물들을 희화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모습이 느껴졌다. 그동안 억울한 일이 있어도, 사회가 자신을 부당하게 대해도 그저 참고 억눌려 지냈던 이들이 십헤드 카니발을 통해 그동안 자신을 억압했던 사람들, 자신을 억압했던 세계와 맞서 싸우는 것이 (비록 그 방법이 잔혹했지만) 이해가 갔다. 하지만 우습게도 결국 그들의 소동(혹은 반란)은 그저 그들만의 것으로 끝나버렸다는 것이 허무했다.

  앞으로는 소설쓰기에 전념하겠다는 저자의 포부처럼 좀더 주원규라는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데뷔작이라 그런지 몇몇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에도 뭔가 2%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한겨레문학상이라는 네임벨류는 아직까지는 믿을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내년 수상작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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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쇼킹 ! &lt;열외인종 잔혹사&gt;
    from 노란나비 날아 오르다. 2009-08-05 21:25 
    열외인종 잔혹사 저자 주원규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펴냄 | 2009.07.15 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얽히고설킨 네 명의 열외인종 잔혹사가 펼쳐진다! 제1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주원규의 소설『열외......
 
 
순오기 2009-08-04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비야 강연회 갔다가 친정으로 갔는데 다음날 고향으로 내려가서 연락하지 못했어요.
3박4일의 온전한 휴가를 마치고 귀가~ 내일부턴 아침에 수업있어요.
오늘 날새면 학교 갔다와서 한비야후기도 올리고 휴가얘기도 올려봐야죠~ ^^

이매지 2009-08-04 00:48   좋아요 0 | URL
아아. 순오기님 연락이 없으시길래 친정에 가서 바쁘신가보다 했어요^^;
오늘 푹 쉬시고 내일 수업 잘하고 오세용~~~
다음에 서울에 오면 꼭 뵈어요 :)

다락방 2009-08-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이런 소설이군요!!

좋았어요, 저도 보관함에 넣겠어요. 저야말로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미치도록 재미있게 읽었었죠. 선물도 많이 하고 말예요. 심윤경은 [달의 제단]도 좋아요. 정말이지 가슴이 찢어진달까요.

이매지 2009-08-04 09: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달의 제단>도 좋아요.
그래도 <나의 아름다운 정원>쪽이 더 좋았어요 ㅎㅎㅎ

이 책은 굳이 따지자면 <삼미 슈퍼스타즈> 쪽에 더 가까울 것 같아요~
가볍고 술술 읽히는 점에서는요 ㅎ

하늘바람 2009-08-0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무척 궁금했어요.

이매지 2009-08-04 10:55   좋아요 0 | URL
ㅎㅎ 강추까진 아니지만 은근슬쩍 재미있어요~

순오기 2009-08-0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블로거 특종 먹었어요~~ ^^
어제 도서관에 색, 마술쇼에 빠져볼까? 들어왔기에 빌려왔어요. 독서마라톤은 구매영수증이나 대출기록이 있어야 인정돼서 선물받은 책도 빌려와야 해요.^^

이매지 2009-08-08 21:48   좋아요 0 | URL
오옷. 블로거 특종 ㅎㅎ
순오기님의 블로거 베스트 특종도 축하드려요 ㅎㅎㅎ

독서마라톤하고 계시는군요.
순오기님이라면 1등하실 수 있을꺼예욤! 홧팅! ㅎㅎ
 
반걸음 내딛다 보름달문고 33
은이정 글, 안희건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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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깔끔하고 예쁜 표지에 혹해서 읽게 됐는데, 읽다보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감돌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주인공 희영. 말수가 적어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책을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이제 갓 새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여전히 남동생과 같은 방을 써야 하는 상황에 부모님께 용기를 내 "내 방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한다. 결국 아빠가 쓰던 컴퓨터방을 자기의 방으로 갖게 된 희영이.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빠가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면서 엄마와 아빠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크게 드러내놓고 싸우지는 않지만 부모님 사이가 뭔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한편 집의 무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학교에서는 좋아하는 남학생때문에 늘 하굣길에 설레는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 제대로 말도 나누지 못하는 희영. 과연 희영은 한걸음, 아니 반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반걸음 내딛다>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하나같이 용기가 없어 현실에 저항하려 하기보다는 순응하며 살아간다. 아빠에게 불만이 많았던 엄마는 아빠에게 품은 불평, 불만을 직접 토론하기보다는 그저 매서운 눈빛으로 아빠를 본다던지, 아빠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고 그저 아빠에 대한 짜증과 화를 참으며 살아간다. 내성적인 주인공 희영이도 함께 집에 가자는 반친구의 호의를 거절하고 친구를 사귈 기회를 놓쳤다고 후회하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재준이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속으로 재준과의 대화를 상상하는 등 현실과는 약간 동떨어져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낸다. 엄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이들에게는 "밥 먹자" 한마디만 하고, 컴퓨터로 바둑만 두는 아빠도 모두 티격태격하며 큰소리 내기보다는 그저 마음속으로 꾹꾹 뭔가를 참으며 지낸다.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속은 점점 곪아가는 희영이네 가족. 하지만 엄마가 일주일동안 연수를 떠나며 가족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용기를 내자는 말을 할 때 한걸음만 내딛어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반걸음이라도 큰 용기고, 큰 걸음임을 보여준다. 마치 작은 꽃방울이 피어나 커다란 꽃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뒷표지를 보니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었지만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읽어도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예쁜 삽화들과 알싸한 성장담이 묘하게 잘 어울렸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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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리뷰를 보니 개콘의 대화가 필요해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가족간 의사 소통이 중요성을 말한 책인것 같네요

이매지 2009-07-03 09:25   좋아요 0 | URL
가족간의 의사소통뿐 아니라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2009-07-05 0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5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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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접한 것은 문학동네 카페의 연재였다. 사실 연재되는 소설들은 너무 감질나서 잘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 우연히 읽은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몇 개 읽다보니 진지한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은근 빵 터지는 구석도 있어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워낙 연재글 자체를 늦게 읽기 시작했던지라 중간쯤 읽었을 때 단행본이 출간됐고, 부랴부랴 이렇게 다시 책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 버렸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이 책의 제목과 똑같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처럼 이 책은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간 가장 불행했던 시절의, 가장 예뻤던 아이들의 이야기다. 넷째 딸로 태어나 이름을 지어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할아버지가 "아무거나 혀~"라고 해서 해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주인공을 둘러싸고 시국과 시극인지 구분도 못했던 아이들이 점점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과 마주하며 그 속에서 상처를 받고, 또 그 속에서 사랑도, 외로움도, 저항도 하는 모습이 이 책에서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라고 말한다. 절친했던 친구들이 저마다의 상처안고 각자의 길을 떠나지만 해금이와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80년대의 광주를 다룬 이 책을 읽으며 2009년의 서울을 생각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당함에 저항하고, 때로는 소심하게 멀찌감치서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해금이와 친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른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 청춘은 무모하기에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이 책 속의 해금이와 친구들도 때론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아름답다. 세상에 맞서 싸우다가 상처를 받아도, 때론 부조리한 세상에 질끈 눈을 감는다해도, 어쨌거나 살아있기에, 희망이 있기에 청춘이기에 그들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책을 읽으며 그들의 아픔에 함께 슬퍼하고, 그들과 함께 웃으며 즐겼더니 어느새 책을 다 읽고 다시금 해금이와 친구들을 생각하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만이 남았다.

  처음 읽은 공선옥 작가의 책이었는데 등장인물들이 어떤 일을 겪더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이제 갓 걸음을 뗀 아기를 한편으론 기특한 마음으로,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낯선 느낌도 있었는데 계속 읽다보니 더 친근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때론 욱신욱신 마음 한 켠이 아파오기도 했지만, 예쁜 표지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였다. 조만간 공선옥 작가의 다른 책도 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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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16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공선옥 작가는 제가 사랑하는 작가지요. 전라도 사투리도 이젠 착착 감겨들만큼 알아듣고요~ 이게 80년 광주를 얘기한다면 당근 봐야겠네요. 공선옥의 따뜻한 시선~~ 발견하셨군요. 그게 매력이면서 때론 내게는 버거운 작가이기도 했어요.

이매지 2009-06-16 10:14   좋아요 0 | URL
따뜻한 시선이 매력이면서 때론 버거웠다...
순오기님의 말씀을 들으니 더 궁금해지네요~

2009-06-16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6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6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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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200편이 넘는 리뷰가 올라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라 어째 안 읽어도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던 책 <완득이>. 읽기 전에 작가의 전작인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를 읽었던지라 꽤 기대가 컸는데 큰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니 기대치를 너무 낮게 잡은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읽었다. 

  시작부터 똥주를 죽여달라는 기도를 하는 주인공 완득이. 대체 똥주와 무슨 사연이 있길래 진지하게 똥주를 죽여달라고 기도를 할까? 알고 보니 똥주는 완득이의 담임 선생님으로 학교에서나 밖에서나 퍽하면 완득이를 괴롭힌다. 난쟁이 아버지와 정신지체 삼촌과 함께 가난하게 살고 있는 완득이는 세상에 별 관심이 없는 소년이다. 하지만 똥주때문에 완득이는 킥복싱을 시작하고, 완득이와 정반대의 삶을 사는 모범생 윤하와 풋풋한 로맨스(?)도 시작하고, 게다가 그동안 몰랐던 저쪽사람인 베트남인 엄마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자꾸만 자신의 인생에 참견하는 똥주가 귀찮고 싫었던 완득이. 하지만 완득이는 똥주덕분에 세상에 마음을 열고 자신만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가난한 삶, 장애가 있는 아빠와 삼촌, 엄마의 부재 등 완득이는 세상에서 소외받는다. 하지만 그런 완득이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건 똥주다. 욕을 입에 달고 살고 기초생활수급자인 완득이의 밥을 뺏어먹는 건 기본이고 달밤에 완득인지 만득인지를 불러대고, 반 아이들에게 완득이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등 제발 똥주 좀 죽여달라는 완득이의 기도가 이해될 정도로 똥주는 정말 완득이를 못살게 군다. 하지만 그 방식이 조금 거칠었을 뿐이지 사실 똥주는 소외당한 외국인 노동자를 지키고 싶어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완득이를 세상과 마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생각보다 괜찮은 선생이다. 그 방식이야 어찌됐건, 완득이는 똥주와 치고받고 싸우면서 애늙은이같았던 완득이가 고교생의 순수함이나 열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똥주의 교육방식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에게 관심을 쏟고, 한 아이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독자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뭐 굳이 교훈을 찾아야하나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겠지만)

  주요 인물인 완득이와 똥주 외에도 새침하면서도 은근 강단이 있는 윤하, 춤 하나는 끝내주지만 입만 열면 깨는 삼촌, 고무처럼 질긴 폐닭을 좋아하는 아버지, 맨날 완득이를 외쳐대는 똥주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정이 든 이웃집 아저씨, 똥주 좀 죽여달라고 완득이가 기도하러 갈 때마다 '자매님'이라며 완득이를 반겼던 핫산 등 정말 개성넘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워낙 개성있는 등장인물들이 잇달아 등장해서 살짝 만들어진 시트콤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이런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는 동네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고나서도 피식피식하면서 공상 아닌 공상을 했다.

  세상을 향해 가볍게 훅을 날리는 완득이의 경쾌한 성장담.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소설이었다. 전작보다 더 빼어난 작품이라 앞으로 김려령이라는 작가가 들려줄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완득이>의 성공으로 다소 작가로서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은 있겠지만.) 무료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완득이!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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