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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처음에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접한 것은 문학동네 카페의 연재였다. 사실 연재되는 소설들은 너무 감질나서 잘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 우연히 읽은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몇 개 읽다보니 진지한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은근 빵 터지는 구석도 있어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워낙 연재글 자체를 늦게 읽기 시작했던지라 중간쯤 읽었을 때 단행본이 출간됐고, 부랴부랴 이렇게 다시 책으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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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 버렸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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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과 똑같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처럼 이 책은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간 가장 불행했던 시절의, 가장 예뻤던 아이들의 이야기다. 넷째 딸로 태어나 이름을 지어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할아버지가 "아무거나 혀~"라고 해서 해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주인공을 둘러싸고 시국과 시극인지 구분도 못했던 아이들이 점점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과 마주하며 그 속에서 상처를 받고, 또 그 속에서 사랑도, 외로움도, 저항도 하는 모습이 이 책에서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라고 말한다. 절친했던 친구들이 저마다의 상처안고 각자의 길을 떠나지만 해금이와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80년대의 광주를 다룬 이 책을 읽으며 2009년의 서울을 생각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당함에 저항하고, 때로는 소심하게 멀찌감치서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해금이와 친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른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 청춘은 무모하기에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이 책 속의 해금이와 친구들도 때론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아름답다. 세상에 맞서 싸우다가 상처를 받아도, 때론 부조리한 세상에 질끈 눈을 감는다해도, 어쨌거나 살아있기에, 희망이 있기에 청춘이기에 그들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책을 읽으며 그들의 아픔에 함께 슬퍼하고, 그들과 함께 웃으며 즐겼더니 어느새 책을 다 읽고 다시금 해금이와 친구들을 생각하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만이 남았다.
처음 읽은 공선옥 작가의 책이었는데 등장인물들이 어떤 일을 겪더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이제 갓 걸음을 뗀 아기를 한편으론 기특한 마음으로,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낯선 느낌도 있었는데 계속 읽다보니 더 친근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때론 욱신욱신 마음 한 켠이 아파오기도 했지만, 예쁜 표지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였다. 조만간 공선옥 작가의 다른 책도 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