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는 시를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시를 외우는 만큼 시를 사랑했습니다. 지금이야 그때의 벅찬 감동이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시는 아름답습니다. 시는 봄에 피는 조팝나무의 하얀 꽃잎을 더욱 곱게 생각하게 합니다. 살포시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를 보게 합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기 쉽지 않지만 가슴에 담아둔 시(詩)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여류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노래했던「생일」을 떠올렸던 것은 고(故) 장영희 교수님 덕분입니다. 오랫동안 신문에 ‘영미시 산책’을 연재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우리와 가깝게 했습니다. 삶이 무엇일까?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생일」이 응원해주었습니다.
 

 내 마음은 샘물가에서
물오른 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
내 마음은 주렁주렁 맺힌 열매로
휘늘어진 사과나무
(……)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보다 더 기뻐요
내 사랑이 나를 찾아왔으니까요
(……)
내 생애의 생일이 왔으니까요
내 사랑이 나를 찾아왔으니까요

 위의 시심(詩心)을 따라가 보면 사랑이 내게 온 날 내 삶이 시작된 생일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생일이면 주민등록증에 나와 있는 여섯 개의 숫자를 얄팍하게 아는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케이크에다 몇 개의 초를 꽂아야 하는지 선물을 어떤 것이 좋은지, 세상에 태어난 그날의 기쁨을 골고루 만끽합니다.

이런 자잘한 일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눈을 가진 시인에게는 뭔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일을 하염없이 좋아하고 있을 때 시인은 “당신의 진짜 생일을 알고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듣고 보면 대수롭지 않았는데도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를 읽는 순간 가슴이 물컹거렸습니다. 그제 서야 태어난 날이 생일이 아니라 내 삶을 사랑하는 그 날이 비로소 진짜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일」이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한 편의 시라고 한다면 장영희의『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한 권의 에세이입니다. 모름지기 생일 같은 책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책이라고 해야 훨씬 행복합니다. 그녀를 익히 아는 사람에게도 그렇고 소아마비, 암이라는 병에 걸려 비틀거렸던 불행을 몰랐던 사람에게도 그렇습니다. 목발에 때로는 빨간약에 삶을 맡기면서도 그녀는 문학전도사로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기적 같은 삶은 우리 모두에게 살아갈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 책에 앞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이 세상과 함께 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병상에서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삶은 분명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필요로 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녀를 영영 볼 수 없다는 슬픔도 없지 않겠지만 이제 더 이상 누추한 일상을 뛰어넘는 그녀의 마법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읽는 내내 맴돌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소박했던 마음은 훌륭한 가르침을 선물해주었습니다. 가령, ‘도둑에게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심사 날짜에 맞춰 돌아올 마음으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만 논문이 들어있는 트렁크를 도둑맞은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다독거려도 슬픔에 빠져 웅크리고 있었을 그녀의 모습이 눈물 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슬픔의 끝에서 오히려 도둑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아니, 도독을 용서하면서 삶이 더욱 행복하고 건강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일찍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부활』에서「마태복음」18장을 인용하면서 참다운 용서가 무엇인지를 말했습니다. 즉 베드로가 다가와서 예수께 “주님, 한 신도가 내게 죄를 지을 경우에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고 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용서하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둑을 용서하기 힘든 현실에서 그녀처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그리고 그녀의 고질적인 ‘미루기 신드롬’ 탓에 웬만해서는 미리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지막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왔습니다. 이런 그녀가 놀랍게도 ‘은혜를 미리 갚기’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늘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받아오면서도 그녀는 나중에야 감사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미리 갚아요」라는 영화를 보면서 ‘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즉 자신이 세 명의 다른 사람에게 앞으로 질 빚을 갚는 친절을 베풀고. 그 세 사람이 각기 또 다른 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날 은혜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시대에 그녀처럼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그녀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솔직했습니다. 미사여구 없이 담백했습니다. 병마와 싸워야 했던 고독을 품에 안고 있으면서 희망을 목 놓아 불렀습니다. 희망! 희망이 그녀에게 진짜 약(藥)이었습니다. 절망의 순간순간마다 위기를 오기 있게 넘겼습니다. 사는 게 권태롭고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소연 하는 우리에게 그녀는 “괜찮아! 괜찮아!”질거라고 말했습니다.

때로는 괜찮다는 말이 자신의 못난 인생을 위로하는 듯 들려 서럽게 울기도 했습니다. 남들과 다른 거추장스러운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삶이 가볍다고 해서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에 화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녀 말대로 “조금만 참으면 이제 다 괜찮아” 라는 믿음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그녀는 나쁜 운명으로 천천히 그리고 작게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옹골찼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저벅저벅 울리며 큰 걸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녀에게 나쁜 운명, 좋은 운명은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서로 만나는 대각선도 아니었습니다. 대각선은 나쁜 운명이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지그재그는 나쁜 운명은 머지않아 좋은 운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좋은 운명도 나쁜 운명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을 마주대하는 그녀의 비결에는 겸손함이 가득했습니다.

현실을 순탄하게 극복하려고 했던 그녀의 살아온 기적에는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소금 3퍼센트, 무릎 끓는 나무 그리고 좋은 사람입니다.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에게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퍼센트 좋은 생각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가장 명품의 바이올린을 무릎 끓는 나무가 만든다고 합니다. 해발 3천 미터 수목 한계선에서 살기 위해 무릎 끓고 산다고 합니다. 끝으로 좋은 사람은 유명해서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 그 자체라고 합니다. 마음이 넓고 정답고 남의 어려움을 잘 이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삶을 따뜻하게 조화롭게 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그녀의 책 속에는 무수히 많은 쉼표들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허투루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읽는 것을 멈추고 눈물 나는 아름다운 그녀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며 함께 울며 웃었습니다. 그녀는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가? 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절실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녀는 봄의 전령사마냥 행복전도사였습니다. 단지 봄 때문에 꽃이 피는 게 아닙니다. 꽃의 활발한 생(生)의 의지가 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삶의 치유를 노래했던 그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그들에게 교수님은 잊혀지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교수님의 커다란 영혼이 우리들을 언제 어디서나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활짝 웃는 그녀를 볼 수 없을지라도 얼마든지 “내일 뵐 수” 있다는 벅찬 그리움을 배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아온 기적이 곧 살아갈 기적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교수님!
“내일 뵙겠습니다.”라는 약속 꼭 지키며 살겠습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
한발 한발 천천히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내딛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서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희망을 크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기적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나키즘 ㅣ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
하승우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촛불을 든 민심은 무엇일까? 오스트리아의 시인 트라클은 “촛불은 높이 타오르고 그서의 주홍빛은 불끈 일어서다.”라고 노래했다. 촛불은 타오른다. 그것도 수직성으로 타오른다. 설령 한순간 바람 탓에 넘어져도 다시 수직성이다. 촛불이 하나 둘이 아니고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이면 그것은 마치 베토벤의「운명」교향곡같다. 

얼마 전 촛불 같은 책을 통속적으로 들리겠지만 운명적으로 만났다. 바로 Vita Activa(비타 악티바: 실천하는 삶) 시리즈 중 하나인 하승우가 지은『아나키즘』을 꼼꼼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촛불 민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우선적으로 아나키즘이 나쁜 사상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게 한다. 흔히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국가)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정부를 말한다. 한마디로 정부의 권력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주목하며 저자는 아나키즘을 ‘반강권주의’라고 말한다.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세상은 완전한 무질서가 아니었다. 그 보다는 내가 합의한 질서에 따라 나의 뜻을 완성하는 데 있었다.

일찍이 루소는『사회계약론』에서 이상적인 국가 모델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주권자와 국가의 관계는 연비례의 외항 관계로 나타낼 수 있으며 그 비례 중앙이 정부이다.’는 것이다. 가령, 주권자를 S, 국민을 P, 정부를 G로 하여 공식을 만들면 S:G=G=P 즉 S×P=G²이다. 이 식의 가운데 항은 정부이고 그 제곱이 주권자와 국민의 적과 같으므로 주권자와 국민의 관계가 변하면 정부의 힘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권자를 1로 하고 국민을 16으로 하면 정부의 힘은 4가 된다.

하지만 오늘날 국가 지상주의에서 주권자의 힘에 따라 정부의 힘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상에서 민심은 외면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아나키즘은 크로포토킨의 표현대로 “현실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부 없이도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협약, 자유로운 조직은 저 해롭고 값비싼 기구를 대신해서 더욱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를 하나 더 변명해보면 바로 테러리즘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국가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철저하게 탄압한 결과다. 폭력이라고 해서 모든 폭력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양심을 파는 것이 아닌 당당한 행동은 자신들의 신념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책임이다.

바야흐로 촛불 민심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를 나타내고 있다. 촛불은 든 사람들은 약자(弱者)다. 그러나 무능하거나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약자들이 단결할 때 세상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촛불은 아나키즘으로 불끈 일어서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 답사기 - 30억 년 한반도의 자연사가 살아 숨 쉬는 우리 땅의 비밀을 찾아 떠난다! ㅣ 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 답사기 1
손영운 지음 / 살림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단양에 있는 도담삼봉(嶋潭三峰)에 간 일이 있었다. 단양 8경 중 제 1경으로 알려진 남한강 맑은 물이 흐르는 강 한복판에 솟아있는 세 개의 봉우리. 옛사람들에게 그곳은 풍류의 멋진 곳이었을 것이다. 퇴계 이황은 “신선이 세 봉우리로 갈라놓은 돌섬”이라고 표현했다.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도담삼봉은 아름다운 시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도담삼봉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즉 자연과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손영운이 지은『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 답사기』는 제목에 나와 있듯 우리 땅의 비밀을 답사하는 내용이다. 이 책에 의하면 도담삼봉의 만들어진 과정을 알 수 있다. 산의 끝자락이 물에 침식되면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지질학에서 이러한 지형을 ‘라피에(lapies)'라고 부른다. 즉 석회암이 노출된 지대에 물이 흘러 용식이 잘 되는 부분은 점점 사라지고 용식이 잘 안 되는 부분만 남게 되었는데, 이러한 작용이 계속되어 형성되는 크고 작은 석회암의 돌출 부분이 바로 라피에다.

지구과학 전공자답게 저자는 한반도의 지역적인 특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가령, 경기도 연천을 ‘불의 땅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말한다. 연천에는 가장 흔한 암석이 현무암이다.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되는 용암이 식어서 된 암석이다. 특히 한탄강 주변에는 현무암뿐만 아니라 녹색을 띤 응회암이 많이 분포한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 굳어진 퇴적암이다.

다음으로 충정남도 태안을 ‘바람과 파도가 만든 땅, 황해의 실크로드’라고 말한다. 태안의 신두리 해안의 갯벌은 놀랍게도 모래펄이다. 강화나 보령의 갯벌이 진흙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태안의 해변이 경기 편마암군이 지저를 이루는 지층이기 때문이다. 경기 편마암군은 편암, 규암, 그리고 편마암 등의 암석을 말하는데 변성암을 대표하는 암석들로 결정 구조가 비교적 단단한 편에 속한다. 따라서 이런 암석들이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모래가 되어 크기가 작아졌을 뿐 다른 암석이 만든 모래펄보다 그 구조가 단단해서 그런 것이다.

반면에 파도리 해수욕장에는 ‘모오리돌’이라고 불리는 자갈 해변이 특징이다. 이는 이 지역의 지층이 서산층군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서산층군의 규암층으로 인데 규암은 굳기가 다른 암석에 비해 단단하여 쉽게 풍화작용을 받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남제주군 우도(牛島)를 답사한다. 이곳의 서빈백사(西濱白沙)때문인데 풀이하자면 ‘서쪽 물가의 하얀 모래’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산호사 해변으로 불렸는데 산호가 모래처럼 부서져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홍조단괴 해빈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한다. 홍조단괴(紅藻團塊)는 광합성 작용을 하면서 바다에 서식하는 조류 중 하나인 홍조류가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형성한 것이다. 원래는 짙은 갈색을 띠자만 해안에서 건조된 후 파도에 의해 침식되어 하얀 모래가 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자연을 흥미롭게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그저 하나의 산이며 하나의 강에 불과했으나 저자 덕분에 우리 땅의 역사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었다. 더불어 역사 못지않게 지질학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유동하는 공포 ㅣ 산책자 에쎄 시리즈 2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있다. 호화여객선 타이타닉 호에서 펼쳐지는 불멸의 사랑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빙산과 충돌하면서 타이타닉 호는 이제까지 안전했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부서지고 만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랑만큼 훌륭한 것이 없다는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남자 주인공의 잭의 가치 있는 죽음 때문에 이들의 사랑이 더욱 돋보인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타이타닉>은 빙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빙산 때문에 타이타닉 호는 침몰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침몰하지 않았다. 만약 빙산이 아니더라도 이것과 파괴력이 다를 바 없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을 빙산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것은 폴란드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의『유동하는 공포』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와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빙산을 공포라고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빙산은 그 자체의 물리적인 힘은 고정적(solid)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빙산이 불러일으키는 정신적인 불안감은 유동적(liquid)이라는 사실을 파헤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주장하는 타이타닉 콤플렉스, 즉 유동적 공포다.

바우만은 공포를 세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1차적 공포(바우만의 2차적 공포에 비유)와 2차적 공포 그리고 유동적 공포다. 1차적 공포는 우리의 신체와 재산을 위협하는 공포다. 여기에는 사회질서의 지속성과 가능성을 위협하거나 사회적 지위 및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2차적 공포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순환하며 파생되는 공포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경험에서 나오는 침전물이며 이에 반응을 보이게 되는 자가 발전하는 공포다. 끝으로 유동적 공포는 언제 어디에나 있는 공포며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공포다.

이 책은 유동적 공포의 여러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죽음의 공포에 있어 한 번 걸러낸 죽음이 아니라 두 번 걸러낸 죽음이다. 자크 데리다의 표현대로 죽음은 한 세계의 종말이며 회복 불가능성이다. 이때 전자는 나와 너의 세계의 종말이며 후자는 사람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종말이다. 또한 전자가 질병이나 노쇠에 따른 자연적인 죽음이라면 후자는 살인, 범죄라는 인위적인 죽음이다.

그리고 악과 공포는 말 그대로 불가분의 관계다. 한나 아렌트는『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파헤치고 있다. 우리는 아이히만 같은 사람들과 이웃으로 지내고 있는 탓에 그들을 식별한다는 것은 어렵다. 아니 무감각하다고 해야 옳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들은 악한 사람들이 되었을까?

바우만은 적당한 조건이라는 것을 비판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적당한 조건은 칸트가 말한 인간의 이성에 따른 보편적인 입법이 아니었다. 칸트는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을 하지 마라.” 고 했다. 그러나 아이히만에게 살인은 자기 자신에 맞는 이중 잣대였다. 규칙에 복종한 아이히만은 근대적 관료의 완성품이자 희생자였다.

이밖에도 통제 불가능한 것과 공포에서는 이해 불능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공포에서는 부정적 세계화를 경고하고 있다. 특히 통제 불가능한 것과의 공포에 있어 그는 태풍이나 테러 같은 천재든 인재든 피할 수 있는 재난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도덕적인 문제 즉 도덕 지체에 따라 무방비 상태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유동적 공포가 노골적으로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예리하면서도 낯선 유동적 공포에 전율하게 된다. 한마디로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유동적 근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유동적 근대는 저자 말대로 끊임없는 의심과 휴식이 없는 경계의 삶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가 빠르게 분열했다가 이루어진다. 더 이상 이성이 공포의 탈출로가 아니라 단지 우회로(detour)에 불과했다.

이러한 바우만의 따끔한 충고와 달리 공포에 맞서는 유일한 치료법은 단순하다. 공포의 실체를 바로 보는 것이다. 앞서 말한 <타이타닉>에 나오는 잭의 죽음은 분명 효과가 있다. 개인적 불멸성은 삶을 치열하게 살 것을 주문한다. 따라서 공포가 출렁거리는 시대에서 그람시가 말했던 ‘역사적 행위자’로써 문명화의 부작용으로 심각한 위기에 놓인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엄마에게 가는 길 - 일곱 살에 나를 버린 엄마의 땅, 스물일곱에 다시 품에 안다
아샤 미로 지음, 손미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비가 내리는 창밖보다 창가에 매달려 있는 빗방울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올망졸망한 빗방울이 하나 둘 미끄러져 어느새 서로 하나의 빗줄기가 되어 내려갑니다. 그것도 살짝 사선(斜線)으로 말입니다. 왜 그들은 직선으로 내려가지 않는 것일까요?

아마도 빗방울이 힘이 약해서 그럴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 내려 갈 수는 없어 그들은 사선으로 만나야만 했을 것입니다. 혹은 그리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구름에서 하나였다가 빗방울이 되어 수천만 갈래로 흩어져 창가에 내려앉게 되는 운명. 이렇게 그들은 영영 이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선으로 만나야만 했을 것입니다.

아샤 미로의『엄마에게 가는 길』에서 우리는 아릿한 눈물과 벅찬 감동의 사선을 천천히 걸어야 했습니다. 일곱 살에 자신을 버린 엄마의 땅을 스물일곱 살에 다시 품에 안으려는 그녀였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미묘한 감정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끝내 할 수 없으리라는 초초함과 절박함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인도 빈민촌에서 태어난 아샤 미로는 일곱 살에 스페인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수녀원에서 고아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에게 엄마아빠가 생겼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었습니다. 더구나 자상한 양부모님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하게 된 것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만약 그때 입양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인도의 빈민촌에서 악착같이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스물일곱 살이 된 그녀는 자신이 받은 인생의 선물에 보답하고자 자신의 고향으로 첫 번째 여행을 떠납니다. 인도에서 자원 봉사를 하게 되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엄마, 버릴 거라면 나를 왜 낳으셨어요?”라는 서글픔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20년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원망의 실마리가 무엇인지 그녀는 알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잃어버린 7년의 조각을 하나하나 알게 됩니다. 그녀 말대로 기억 속에 엉망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조각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앞만 보고 사는 것이 더 값진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녀가 갠지스의 딸이라고 해서 꼭 갠지스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에서 소중한 것은 좋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첫 번째 여행에서 그녀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녀에게 잃어버린 7년을 들려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도 그들이 일인칭 시점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뒤늦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녀의 과거를 제대로 알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그녀에게는 보다 가족이라는 일인칭 시점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야 그녀의 진짜 삶이 무엇인지를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인도로 향하는 두 번째 여행은 바로 자신의 친언니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언니를 만난다는 것이 고통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세상에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희망이 있고 삶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 우샤와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엇갈린 운명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샤라는 그녀의 이름은 당시에는 우샤였는데 아버지가 이제는 볼 수 없는 딸의 인생에 행복을 빌어주기 위해 언니의 이름이었던 아샤(희망을 간직한 이름)와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아샤의 놀란 감정이 어땠을까요? 이렇듯 그녀의 잃어버린 7년에는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인도에 사는 아샤와 스페인에 사는 또 한 명의 아샤의 극적인 만남이 따뜻한 눈물로 눈망울을 적셨습니다. 그 눈물에는 인도의 참다한 현실과 스페인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미안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비록 두 명의 아샤는 20년 동안 떨어져 살아왔지만 그녀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가난한 탓에 불완전했던 그녀들에게 이것만이 완전한 희망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얼마 후 집안일 때문에 고향에 갔다 왔습니다. 고향에 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마을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빈집들은 쓰레기가 되어 버렸으며 논밭은 이름 모를 잡초만 무성했습니다. 얼마나 더 버림받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삶은 갈수록 직선으로 달려가고 우리 또한 그것이 싫다고 하면서도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고향없이 각박하게 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차츰 고향을 잃어버린 것이나 아샤 미로의 잃어버린 7년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서 그녀가 아무리 생각해도 찾지 못했던 해답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어디 출신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는 해답을 몰랐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