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
하승우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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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촛불을 든 민심은 무엇일까? 오스트리아의 시인 트라클은 “촛불은 높이 타오르고 그서의 주홍빛은 불끈 일어서다.”라고 노래했다. 촛불은 타오른다. 그것도 수직성으로 타오른다. 설령 한순간 바람 탓에 넘어져도 다시 수직성이다. 촛불이 하나 둘이 아니고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이면 그것은 마치 베토벤의「운명」교향곡같다. 

얼마 전 촛불 같은 책을 통속적으로 들리겠지만 운명적으로 만났다. 바로 Vita Activa(비타 악티바: 실천하는 삶) 시리즈 중 하나인 하승우가 지은『아나키즘』을 꼼꼼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촛불 민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우선적으로 아나키즘이 나쁜 사상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게 한다. 흔히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국가)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정부를 말한다. 한마디로 정부의 권력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주목하며 저자는 아나키즘을 ‘반강권주의’라고 말한다.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세상은 완전한 무질서가 아니었다. 그 보다는 내가 합의한 질서에 따라 나의 뜻을 완성하는 데 있었다.

일찍이 루소는『사회계약론』에서 이상적인 국가 모델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주권자와 국가의 관계는 연비례의 외항 관계로 나타낼 수 있으며 그 비례 중앙이 정부이다.’는 것이다. 가령, 주권자를 S, 국민을 P, 정부를 G로 하여 공식을 만들면 S:G=G=P 즉 S×P=G²이다. 이 식의 가운데 항은 정부이고 그 제곱이 주권자와 국민의 적과 같으므로 주권자와 국민의 관계가 변하면 정부의 힘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권자를 1로 하고 국민을 16으로 하면 정부의 힘은 4가 된다.

하지만 오늘날 국가 지상주의에서 주권자의 힘에 따라 정부의 힘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상에서 민심은 외면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아나키즘은 크로포토킨의 표현대로 “현실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부 없이도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협약, 자유로운 조직은 저 해롭고 값비싼 기구를 대신해서 더욱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를 하나 더 변명해보면 바로 테러리즘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국가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철저하게 탄압한 결과다. 폭력이라고 해서 모든 폭력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양심을 파는 것이 아닌 당당한 행동은 자신들의 신념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책임이다.

바야흐로 촛불 민심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를 나타내고 있다. 촛불은 든 사람들은 약자(弱者)다. 그러나 무능하거나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약자들이 단결할 때 세상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촛불은 아나키즘으로 불끈 일어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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