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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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요약하자면 임신중절에 관한 것인데 아버지가 매독에 걸려있고 어머니는 결핵에 걸려있다. 이미 자식을 넷이나 낳았는데 첫째는 맹인이고, 둘째는 사산했고, 셋째는 농아이고, 넷째는 결핵에 걸려있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본다면 “임신중절을 시켰겠지요.”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당신은 베토벤을 살해한 겁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 베토벤의 오류에 대해서 우리에게 진화생물학자로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는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바로『만들어진 신』을 통해서이다. 그는 이 책에서 앞서 말한 상대방을 다름 아닌 종교를 맹신하는 근본주의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스타일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논쟁거리의 핵심이다. 즉 저자는 신에 대한 창조론에 맞서 진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화에 대한 믿음을 바꿀 수 있는 불가피한 증거가 나온다면 주저 없이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반면에 근본주의자들은 신(God)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절대적인 믿음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저자가 종교에 대한 불신을 가지는 요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종교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고 한다. 오늘날 인종청소라는 명분으로 잔행 되고 있는 전쟁내지 테러를 인류 문화사적인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면 종교청소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성서(聖書)』속의 예수에 대한 찬반은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듯 말 그대로 만들어진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오는 요셉이 다윗왕의 28대 후손이라고 하고 누가는 41대 후손이라는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키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당돌한 주장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은 종교 없는 세상에 두려움으로 다시금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다. 즉 그들은 도덕이라는 것으로 위로받으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일찍이 그는『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이라는 문화적인 유전의 단위를 선보였다. 이는 자연선택에 있어 문화의 전달 또는 모방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이 과정에 있어 유전자들은 협력하는 집단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확장해보면 밈복합제가 되는데 종교라는 것도 결국은 진화에 만들어진 문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근본주의자라는 돌연변이에 있다. 유전에 있어 돌연변이는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생물학이 가진 돌연변이의 특성상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작 인간의 문화에 있어 기도의 힘을 믿는 종교학이라는 돌연변이가 진화의 발목을 붙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창조론과 진화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구나 이 책을 읽고 난후 무신론에 가까운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는 쉽지 않았다. 만약 신을 믿지 않는다면 불경죄를 받을 것 같고 반면에 신을 믿는 다면 구원을 받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종교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한 신은 종교 이전의 신을 말한다. 그것은 유일신(이 책에서는 세 가지 종교가 나오는데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같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심리적인 만족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초자연적인 대상이다. 일찍이 니체가 “신(유일신)은 죽었다.” 말하며 초인(超人) 즉 위버멘쉬를 주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불가능한 산에 도전하고 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가능한 산에 오르려고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정상까지 완만한 비탈을 오르는 진화론을 말하고 있다. 이 방법을 발견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다는 것은 저자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신에 대한 정체성을 대한 대답을 요구받으면서도 회귀 논리로 대응했던 종교의 오만함이 아닐까, 라는 현실을 조목조목 질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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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진화 - 사랑, 연애, 섹스, 결혼. 남녀의 엇갈린 욕망에 담긴 진실
데이비드 버스 지음, 전중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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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벌레가 있다. 보통 수컷 10마리가 암컷 1마리를 차지하기 위해 짝짓기 경쟁을 한다. 여기에서 성공한 수컷은 암컷과 섹스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정자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수컷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이로 인해 수컷은 길게는 사흘에 걸쳐서 암컷과 사랑을 나눈다. 그래서 사랑벌레라고 한다.

이처럼 자연의 생태계에 있어 사랑은 우리와 다른 맥락이다. 무엇보다도 섹스와 관련있다. 섹스는 곧 자손을 번식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을 나누는 일정한 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수컷은 섹스의 심벌을 최대한 자랑하며 암컷을 유인하는데 이것이 그들의 성(性)전략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 복잡한 현상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앞서 말한 사랑을 섹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도덕주의적(반자연적 오류)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사랑을 섹스로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자연적 오류라고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오류를 연구한 학자가 있는데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이다.  그가 이번에 [욕망의 진화]라는 아주 흥미로운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다윈의 성선택을 확대하고 재생산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오해 속에 놓여 있었던 남녀의 성적 욕망이 자유롭게 보여지고 있다.

가령, 남자는 나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나이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 왜? 이유인즉 나이 어린 여자는 성적 매력이, 나이 많은 남자는 경제력이 나이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상이몽(同床異夢) 즉 한 이불 아래 두 욕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여자가 한 평생 함께 할 남자를 꿈꾸는 반면에 남자는 하룻밤만 함께 할 여자를 꿈꾼다. 이는 성적 흥분하는 현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사랑과 섹스 그리고 결혼에 있어 남녀의 엇갈린 욕망을 보다 과학적으로 파헤지치고 있다. 일찍이 라캉은 [욕망 이론]에서 ‘욕망은 은유이고 환유이다.’라고 했다. 덧붙이면 앞서 말한 ‘남자는 S라인 여자를 좋아한다.’라고 했을 때 그 남자의 욕망의 다른 데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성선택을 재발견을 하고 있다. 즉 남자는 여자의 생식력을 갈망하고 여자는 남자의 헌신을 바란다는 것이다. 이들의 상호작용의 맥락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랑에 대한 남녀의 욕망에 도전하고 있다.

평소에 이점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얻은 의미는 남달랐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내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결혼이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아름다움이 못지않게 진화의 당당한 승리자들의 기쁨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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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의 인간경영법
김영수 지음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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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라는 대단한 책이 있다. 동시에 이 책을 지은 사마천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흔히 사성(史聖)이라고 불리는 사마천에게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궁형(宮刑)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궁형이라는 치욕을 참아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선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보다는 그에게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사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치욕대신 죽음을 선택했다면 총130편, 52만 6천 5백자의 분량인『사기』는 그와 함께 사라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마천의 처세술이『사기』를 살아남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사기』의 의미를 연구해온 학자가 우리 곁에 있는데 그가 바로 김영수이다. 그가 이번에 쓴『사기의 인간경영법』은 제목에 나와 있듯 ‘백 개의 전략, 천개의 전술을 능가하는 사람의 힘’을 다루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최후의 승자가 갖춰야 할 미덕이기 때문이다.

가령, 진나라가 망한 후 제국의 주도권을 항우와 유방이 서로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겉으로 보자면 명문 귀족에다 호걸인 항우가 승자가 될 것 같은데 역사는 유방을 선택했다. 이유인즉 유방의 카리스마는 내용에 충실했다. 반면에 항우는 현상에 집착했다.

일찍이 엘리아스 카네티는『군중과 권력』에서 권력자는 살아남는 자라고 했다.『사기』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호걸들 중에서 제국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앞서 말한 당대의 권력자들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처세술은 궁극적으로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해박한 지식을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즐거움은『사기』라는 고전을 압축해서 읽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즉 인간 경영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우리가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지 알 수가 있다.

저자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살아나는 방법으로 덕(德)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덕이 없는 사람은 권력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의 단맛이란 소진(蘇秦)이 말한 새부리(鳥喙)와 같다. 한순간 배를 채우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먹을수록 배가 고파져 끝내는 굶어 죽는 것 같은 고통을 주는 것이 새부리라는 독초의 특성이다. 따라서 덕이 있는 사람이란 새부리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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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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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비가 내렸다. 장마가 끝났는데도 며칠 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와 한바탕 비를 뿌리고는 다시 허겁지겁 사라지면서 햇빛이 비친다는 것이다.

이런 불규칙한 날씨를 두고 기상청의 분석이 더욱 우울하다. 우리나라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특색인 사계절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 까지 겨울이 짧아지면서 봄이 빨리 왔는데 지금은 봄이 짧아지면서 여름이 한 걸음 먼저 와서는 지루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고 있다. 해마다 지구 온도가 1-1.5도씩 올라간다고 한다. 이로 인해 환경 생태계가 심각한 오염에 빠져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환경 파괴의 주범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마구잡이식 개발이 가져온 환경 파괴 때문이다. 이는 생물학자인 최재천은『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인간이 가장 잔인한 동물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오늘날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도시병에 걸려있다. 도시는 너무 편하고 풍요롭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쁘다. 그래서 우리가 걸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이쯤에서 우리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지은『월든』에 주목하는 것은 이 문제에 있어 고전(古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 ‘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불멸의 책’이란 말이 있어 조금은 묵직할 것 같은데 사실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명상록에 가깝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정말로 잘 살아야 하는 삶의 지혜들을 들려준다. 사람의 행복에 관하여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좋은 말들을 해왔다. 그런 면에서 소로우가 말하는 삶의 예찬은 비슷할 수 있으나 자연의 경이로움에 있어서는 남다르다.

그는 몸소 월든이라는 호숫가 근처에서 2년간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하였다. 그는 먹는 것에서부터 잠자는 것까지 자기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이렇다보니 예전보다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쩌면 불편한 것이 많을수록 자연적인 삶이고 가난한 삶이다.

이러한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방법과 가까운 과정을 통해 그동안 따라다녔던 이런 저런 생활 필수품이 많았던 것을 자랑했던 것이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꼭 필요하지 않는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고 한다.

어쩌면 쓸모없는 생활필수품에 무한한 욕망이 우리를 나약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우선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백가지 일을 해야 하고, 많이 먹으면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비만해지면서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지고, 게을러져서 자동차를 타야하는 등 삶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일까? 그는 자연 속에서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고 거듭 말한다. 그가 1년 중 약 6주일 간 만 일하고도 필요한 모든 것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지금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만큼 우리들은 많이 먹고 많이 일해야 살 수 있다. 자연 속에서 바라보면 지옥이 따로 없다.

이와는 달리 자연은 말 그대로 천국이다. 천국의 삶은 경쟁하지 않는다. 모든 일들이 필요한 만큼 살아간다. 도시의 삶이 욕구에 의해서 지나치게 팽창하는 것과는 다른 만족이다. 또한 천국의 삶은 나눔이다. 그가 먹을거리를 자연을 통해서 얻었듯이 그에게 꼭 필요한 만큼만 남겨두고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주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알지 못하는 작은 생명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일찍이 침팬지와 동고동락했던 제인 구달은『희망의 이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환경 파괴와 인간 고통, 이를 테면 과잉 인구와 과소비 삼림 남벌, 사막화 등에 부딪치면서도 어떻게 낙관적이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바로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라고 말했다.

이 책을 쓴 소로우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물질만능주의와 자연 파괴에 따른 인간의 불필요한 욕심을 경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가 머물렀던 ‘월든’이라는 호수는 자연인 동시에 우리들 마음의 호수이다. 호수의 어떻게 생겼으며 그 인접 지역이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가는 곧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진심으로 호수의 건강을 위해 자연처럼 소박하게 살라고 한다. 그리고 대추야자나무와 삼나무에 비유하여 실천하라고 한다. 즉 “그대가 가진 것이 많거든 대추야자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라. 그러나 가진 것이 없거든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되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도 과연 삼나무처럼 살 수 있을까?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바로 소로우가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념이 중요하다.

비록 몸은 도시에 있지만 꼭 그렇다고 해서 삶을 뒤로 하고 ‘월든’같은 호수를 찾아 무작정 자연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이 ‘월든’의 호수라는 순수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곧 삼나무처럼 사는 방법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지구를 모독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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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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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그것은 이 책에 나오는 지문의 심정과 같았다. 연암이 누구인가?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다. 그러니 그분에게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인생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가 쓴 책들이 하나같이 금서(禁書)에 속한다. 이유인즉 정치적으로 험난한 탓도 있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의 글쓰기가 문제였다. 바로 문체반정(文體反正)을 파격적으로 휘몰아치고 있다.

가령, 연암은 우리에게 적오(赤烏) 즉 붉은 까마귀에 대해 아는 바를 써보라고 한다. 우리가 아는 한 까마귀는 검다. 그런데도 굳이 붉은 까마귀를 고집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유몽인의『어우야담』에 나오는 제비와 개구리에 비유할 수 있다. 놀랍게도 제비는『논어』를 일고 개구리는『맹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비는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謂知知 不知謂不知 是知也)라고 지저귀며 개구리는 ‘독락악여중락악숙락’(獨樂樂與衆樂樂孰樂)이라고 운다는 것이다.

연암이 말한 붉은 까마귀라는 것도 실상 이렇다. 그는『연암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까마귀를 보라. 세상에 그 깃털보다 더 검은 것은 없다. 그러나 홀연히 유금(乳金)빛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녹색 빛을 반짝거리기도 하고, 더욱이 해가 비추면 자주빛이 튀어 올라 번득이다가 비취색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 새를 두고 푸른 까마귀라 해도 좋을 것이고, 붉은 까마귀라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라는 것이다.

이처럼 연암의 비판적 글쓰기는 새롭다. 하지만 새롭다고 해서 언제나 파격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암은 이를 경계하고자 글쓰기의 세 단계를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는 법고(法古)의 원리이다. 책을 정밀하게 객관적 입장에서 관찰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원리이다. 옛 것을 따르는 것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조하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사이의 원리이다. 이는 법고와 창신의 대립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연암의 사상을 현실감있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호인다운 인간적인 면도 느낄 수 있다. 이 모두가 ‘인문실용소설’이라는 독서를 위한 쉽게 풀어 쓴 덕택이다. 이로 인해 옛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까이 하기가 어려웠던 연암이 오늘날 우리 곁으로 친근하게 다가와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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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0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아님, 연암이 요새 너무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아요. 꾸욱^^

오우아 2007-10-0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반갑습니다. 연암의 글쓰기는 남다르지요. 개성만점이라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