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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교양 교양인 시리즈 4
박석무 지음 / 한길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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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을 만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 책의 분량이 두꺼운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네 정치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심스러워서 더욱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는 국민을 밭으로 삼을 뿐 국민에게 다가서는 정치 및 경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모두가 자기들 밥그릇에만 관심 있을 뿐이어서 마음이 허허로운 게 사실이었다. 어쩌면 우리시대에 정약용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혹,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서학(西學)에 물들었다고 어느 누군가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정약용이 누구인가? 그는 성리학으로 피폐해진 사회 속에서 참다운 학문의 길을 찾은 위대한 사상가이며 개혁가이다. 그의 위대한 사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그의 핵심 키워드는 위인(爲仁)이었다. 기존의 학자들이 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사람은 모름지기 어질어야 한다고 혀만 내두를 뿐이다. 하지만 당장 하루 세끼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들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밥이 되지 않는 정치나 학문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래서 정약용은 위인을 말한다. 인은 그 자체로는 옳고 그름이 없는데 사람이 인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이로 인해 비록 논밭을 일구는 농부는 아니었지만 농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그는 너무도 잘 알 수 있었다. 위인이란 바로 농부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전근대적인 모순을 탈피하려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는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의 선비정신은 오롯하다. 만약에 그가 죄인이라는 사슬에 얽매여 자포자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가 말한 대로 아침 이슬처럼 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까지 살아 숨쉬며 못난 사람들을 깨우치고 있으니 절망 앞에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더구나 그가 남긴 500권에 이르는 저서들을 보더라도 세상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스스로 '세상을 구하는 책을 읽어라'고 당부했듯이 그의 책들은 그야말로 세상을 구하는 책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그의 책들이 먼지 속에 쌓인 체 외면 당하고 있으니 우리가 다름 아닌 죄인들이다. 그런데도 역사에 대해 무관심한 우리들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E.H.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아는 것은 단순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즉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가 지금 정약용을 만나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제 그가 말하는 세상을 구하는 길을 배워야 한다. 가령,「기증가도설」(起重架圖設)을 요약해보면 성을 쌓는 돌을 어린아이 한 팔의 힘으로도 들어 올릴 수 있는 기구를 만드는 일은 절대로 평범한 사고 방식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분명 특별하지만 단순히 근대적이라는 획일적인 시각으로 보면 안 된다. 그 보다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현실 속에서 실용적이면서도 실리를 추구하고 있는 인간 정약용을 만나야 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 말로만 하는 혹은, 책상에서 머리만 굴리는 껍데기 같은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저자가 어렵게 유배지에서 정약용을 만난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그의 학문을 세상에 알려서 부끄러운 현실을 벗어나려는 진실된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 답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안다. 특히 요즈음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쓴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유쾌한 책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국민을 밭으로 생각하는 대역죄인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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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최성현 지음, 이우만 그림 / 도솔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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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현이 지은『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를 읽으니 어릴 적 마음껏 뛰놀던 고향에 있는 뒷산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뒷산에는 밤나무도 있었고 칡도 있었고 그리고 토끼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개구쟁이 같은 우리들의 웃음이 산속에서 메아리쳤다. 어쩌면 그때의 동심이란 산이 마냥 우리들의 놀이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서른 해를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가깝던 산은 멀어져 갔다. 사는데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우리는 산이 아닌 빌딩 숲에서 살고 있다. 도시를 꽉 메우고 있는 빌딩은 나무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하며 그 높이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하지만 보기에는 좋은데 왠지 정(情)이 가지 않는다. 나무는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으며 우리에게 마음의 휴식을 주는데 반하여 빌딩은 언제나 무뚝뚝하다. 또 빌딩은 사람을 너무나 초라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사람이 산을 지배하더니 오늘날에는 빌딩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무섭게 하는 것이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바보 같은 짓이다.

저자는 그래서 몸소 산에서 밥 먹고 산다. 세속적인 욕망을 벗어던지고 자연인이 된 그는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생활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어쩌다 한 번 쉬었다가는 산이 그에게는 집이며 밭이다. 그래서 나무 하나 풀 한포기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사람만이 생명이다는 오만은 이곳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산에서는 너와 나의 경계가 없이 서로가 한 몸이다. 나라고 해서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고 너라고 해서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에 사는 생명들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이와는 달리『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소년은 나무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서로 대화하지 않는가? 또한 그 나무가 사람의 탐욕 때문에 잘려나간다고 하자 몸살을 앓는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끔씩 나는 등산을 하지만 산에 있으면 마음이 포근하다. 삶이라는 굴레에서 멍든 가슴을 안고 산에 들어가면 산은 언제나 다정다감하다. 계곡의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제 우리는 산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모두가 더불어 살자고 한다. 그러자면 우리도 저자처럼 산(山)사람이 되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적게 먹고 적게 쓰면 되는데 아직도 우리는 산(訕)사람으로 살고 있다. 서로가 경쟁을 하다보니 산이 마구 훼손되어도 슬퍼하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저자가 산에서 숨죽여 책 읽는 것도 실례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산을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 정말로 어리석은 셈이다. 산에 대한 예의는 곧 사람에 대한 예의다.

누군가 나에게 전기도 없고 사람도 드문 산속에서 생활하라고 한다면 한참을 망설일 것이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산(山)사람이 되는 것을 하루라도 게을리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벌거숭이 산처럼 흙먼지만 날릴 것이다. 바야흐로 산(訕)사람이 산(山)사람으로 되어야 이 세상은 희망이 있다. 만약에 이 세상이 나무 하나없이 사람으로만 우글거린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산을 사랑하자. 그래서 인지 요즘 식물도감을 보는 일이 재밌다. 더불어 머지않아 곤충도감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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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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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불황 탓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합니다. 직장에 다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또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살면서 느끼는 희망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포자기하며 갈수록 자살이 늘어나고 추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의 병(病)이 심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을 몰락의식(沒落儀式)에서 찾고 있습니다. 몰락의식이란 말 그대로 개인이 가지고 있던 가치들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생기는 피해의식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설 땅이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막막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몰락이 갑자기 오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람들은 정신적인 아노미 증세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데이비드 폰더 또한 그렇습니다. 삶의 막다른 골목길에서 그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합니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이 있다고 해서 자살을 위대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하지 않습니까.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7명의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삶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들이 위대한 것은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세도 목숨을 다하여 살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너무 나약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7명 중에 링컨의 말이 무엇보다도 내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에게 불어온 슬픈 운명을 남의 탓이라 돌립니다. 하지만 곰곰이 되새겨 보면 불행의 씨앗은 다름 아닌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아무리 용서한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폰더가 살아서 온 것도 자신을 용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지인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는 것 마저 너무 급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약하다는 인간적인 오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살다보면 슬픈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판단이 흐려져 뜻하지 않는 결과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자살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 즉 삶에 대해 절망하는 그들에게 '슬픔에게 예의'를 다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령, 슬픔이 들어올 때도 정중히 인사하고 다시 슬픔이 나갈 때도 정중히 인사하라는 것입니다. 슬픔에게 인사를 하라는 발칙한(?) 생각은 곧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보자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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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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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된다면? 반쯤 벗겨진 머리와 안경 너머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은 짙은 눈썹과 마찰을 일으킬 것이다. 그 불꽃으로 인해 살며시 웃고 있어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사람이 좋아 보이는 그의 매력은 상상력이 풍부한 뇌의 덕택이다. 그의 <나무>를 읽는 재미는 여기에 있다.

푸코의 말대로 경계를 허무는 일인데 그와 나 사이에 상상력이라는 벽이 있다. 그의 만화적 상상력을 보고 있으면 나는 마치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신세이다. 가령,「투명 피부」에서 그는 투명 피부의 인간이 되고자 한다. 이와는 달리 나는 얼마나 투명 인간이 되기를 원했던가?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즐거운 모험이다. 그런데도 그는 투명 피부를 갈망하면서 자신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신체의 오장육부 등이 훤히 보일 정도이다.

이를 통해 그는 투명의 개념을 360도 회전시킨다. 즉 진정한 투명이란 인간이라는 존재를 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투명 인간이란 오히려 불투명한 존재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 눈에 보이는 우리들이 갈수록 불투명해진다는 것이다. 인간성이 상실되다 보니 오죽했으면 자신들 앞에서 심장이 마구 뛰는 투명한 그를 도둑보다 못하다고 조롱했을까.

이 세상이 머지않아 기계들의 손과 발에 의해서 사람이 움직이는「내게 너무 좋은 세상」이 아니라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어두운 미래가 우리들 운명이라면 운명을 받아들여도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괴롭다.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다. 어느 철학자의 말에 빗대어 보면 ‘나는 꿈꾼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영혼은 없다. 꿈속에서만 사람이라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이 책의 원제는 <가능성의 나무>라고 한다. 무엇이 가능하기를 바란다면 거꾸로 무엇이 불가능해서 그렇다. 저자가 염려하는 문제들이 단순히 상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될 수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모순의 시대에 살다보니 두려움에 가슴이 철컹거리는 게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투명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저자 말대로 과거를 연구함으로써 미래의 재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었던 모든 시간들이 진정으로 과거 속에 있는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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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로 교수 배종수의 생명을 살리는 수학
배종수 지음 / 김영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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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말이면 흥미로운 방송을 볼 수 있다. 바로 퀴즈 프로그램이다. 한 문제 한 문제를 참가자들이 풀 때마다 희비가 엇갈리면서 긴장감이 맴돈다. 마지막 승자에게 주어지는 상금과 퀴즈영웅을 위해 그들은 지식을 무기로 싸우고 있다. 나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TV를 보면서 지식의 폭을 넓혀 나갔다. 하지만 내가 알아야 할 지식은 방대한데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으니 가능한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잡다하게 공부해야 한다. 즉 벼락치기식으로 공부해서 한 순간 번쩍이면 되는데 그 중요한 열쇠는 암기력에 있다. 가령 a은 b이다, 에서 무조건 b만 외우는 꼴이다. 이로인해 a에서 b가 되는 과정은 생략되고 만다. 오로지 b만 알고 있으면 된다. 왜,라는 질문보다는 그냥 b이다는 식으로 달달 외우다보면 하루 만에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다.

이른바 주입식 교육의 악순환이 우리 시대의 퀴즈영웅들을 만들고 있다. 즉 퀴즈영웅들은 암기공식을 따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공식은 생각하는 힘을 빼앗아 버린다. 그래서 아이들이 수학을 만나면 미로에 갇혀 버릴 수 밖에 없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로스의 미궁과 같아서 아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속된 말로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 어려운 수학을 어느 누가 머리를 싸매가며 공부하겠는가? 수학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번번히 패배자였다.

내가 <삐에로 교수 배종수의 생명을 살리는 수학>을 읽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아픔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자면 수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저자는 '활동하는 수학'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3 ÷½=6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6이 되는지, 의문을 가져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보다는 무조건 외웠다. 즉 분자와 분모를 역으로 한 다음에 3을 곱하면 6이 된다는 것이다.

수학에도 분명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공식이 있다. 공식을 토대로 문제를 풀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수(數)에 대한 올바른 이해없이 오로지 공식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느 누구도 수학의 미로에서 벗어날 수 없다.이때 사과 3개를 아이에게 주면서 반으로 나누어 보라고 하자. 그러면 아이는 눈 앞에 보이는 사실을 토대로 해서 왜 6이 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저 막연한 사실이 아닌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서 아하, 그렇구나!라며 아이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것이다.

앞으로 수학교육은 이래야 한다. 아이에게 사과 하나를 통째로 주는 것보다 반으로 나눠주면 훨씬 먹기가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교육을 생각한다면 사과 하나를 통째로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만큼 생가하는 힘이 많아질 것이다. 아이는 사과를 먹기 위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고(창의력), 반으로 쪼개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논리력)을 저절로 알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 속이 후련해졌다. 다시 수학을 공부하라고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없이 오로지 성적만을 위해서 공부했던 시간이 무척이나 답답했다. 문제를 풀때마다 왜?라는 물음 앞에 한계를 드러내고 보니수학이 마냥 어려웠다. 그때 사과를 가지고 놀면서 수학을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만유인력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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