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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최성현 지음, 이우만 그림 / 도솔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최성현이 지은『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를 읽으니 어릴 적 마음껏 뛰놀던 고향에 있는 뒷산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뒷산에는 밤나무도 있었고 칡도 있었고 그리고 토끼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개구쟁이 같은 우리들의 웃음이 산속에서 메아리쳤다. 어쩌면 그때의 동심이란 산이 마냥 우리들의 놀이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서른 해를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가깝던 산은 멀어져 갔다. 사는데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우리는 산이 아닌 빌딩 숲에서 살고 있다. 도시를 꽉 메우고 있는 빌딩은 나무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하며 그 높이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하지만 보기에는 좋은데 왠지 정(情)이 가지 않는다. 나무는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으며 우리에게 마음의 휴식을 주는데 반하여 빌딩은 언제나 무뚝뚝하다. 또 빌딩은 사람을 너무나 초라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사람이 산을 지배하더니 오늘날에는 빌딩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무섭게 하는 것이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바보 같은 짓이다.
저자는 그래서 몸소 산에서 밥 먹고 산다. 세속적인 욕망을 벗어던지고 자연인이 된 그는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생활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어쩌다 한 번 쉬었다가는 산이 그에게는 집이며 밭이다. 그래서 나무 하나 풀 한포기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사람만이 생명이다는 오만은 이곳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산에서는 너와 나의 경계가 없이 서로가 한 몸이다. 나라고 해서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고 너라고 해서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에 사는 생명들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이와는 달리『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소년은 나무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서로 대화하지 않는가? 또한 그 나무가 사람의 탐욕 때문에 잘려나간다고 하자 몸살을 앓는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끔씩 나는 등산을 하지만 산에 있으면 마음이 포근하다. 삶이라는 굴레에서 멍든 가슴을 안고 산에 들어가면 산은 언제나 다정다감하다. 계곡의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제 우리는 산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모두가 더불어 살자고 한다. 그러자면 우리도 저자처럼 산(山)사람이 되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적게 먹고 적게 쓰면 되는데 아직도 우리는 산(訕)사람으로 살고 있다. 서로가 경쟁을 하다보니 산이 마구 훼손되어도 슬퍼하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저자가 산에서 숨죽여 책 읽는 것도 실례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산을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 정말로 어리석은 셈이다. 산에 대한 예의는 곧 사람에 대한 예의다.
누군가 나에게 전기도 없고 사람도 드문 산속에서 생활하라고 한다면 한참을 망설일 것이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산(山)사람이 되는 것을 하루라도 게을리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벌거숭이 산처럼 흙먼지만 날릴 것이다. 바야흐로 산(訕)사람이 산(山)사람으로 되어야 이 세상은 희망이 있다. 만약에 이 세상이 나무 하나없이 사람으로만 우글거린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산을 사랑하자. 그래서 인지 요즘 식물도감을 보는 일이 재밌다. 더불어 머지않아 곤충도감도 준비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