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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ㅣ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불황 탓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합니다. 직장에 다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또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살면서 느끼는 희망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포자기하며 갈수록 자살이 늘어나고 추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의 병(病)이 심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을 몰락의식(沒落儀式)에서 찾고 있습니다. 몰락의식이란 말 그대로 개인이 가지고 있던 가치들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생기는 피해의식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설 땅이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막막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몰락이 갑자기 오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람들은 정신적인 아노미 증세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데이비드 폰더 또한 그렇습니다. 삶의 막다른 골목길에서 그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합니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이 있다고 해서 자살을 위대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하지 않습니까.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7명의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삶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들이 위대한 것은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세도 목숨을 다하여 살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너무 나약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7명 중에 링컨의 말이 무엇보다도 내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에게 불어온 슬픈 운명을 남의 탓이라 돌립니다. 하지만 곰곰이 되새겨 보면 불행의 씨앗은 다름 아닌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아무리 용서한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폰더가 살아서 온 것도 자신을 용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지인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는 것 마저 너무 급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약하다는 인간적인 오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살다보면 슬픈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판단이 흐려져 뜻하지 않는 결과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자살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 즉 삶에 대해 절망하는 그들에게 '슬픔에게 예의'를 다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령, 슬픔이 들어올 때도 정중히 인사하고 다시 슬픔이 나갈 때도 정중히 인사하라는 것입니다. 슬픔에게 인사를 하라는 발칙한(?) 생각은 곧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보자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