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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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압생트(Abstinthe)를 탐닉하며 마실까요? 녹색 술로 불리는 압생트에게 무슨 마술이 있는 걸까요? 오스카 와일드는 “계속 마시다 보면 당신이 보기 원하는 것들을 보게 되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들 사는 만큼 산다고 한다면 우리는 시시때때로 상념에 빠져들지 모릅니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 지루하거나 사랑하다가 두렵거나 할  때 은근히 압생트를 마시면 인생을 사는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경린의 장편소설『풀밭 위의 식사』를 읽으면서 겹꽃잎처럼 피어 있는 눈을 가진 여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에두아르 모네가 그린「풀밭 위의 점심」에 나오는 벌거벗은 여자를 보고 우리가 난처했다면 이 소설에 나오는 누경이라는 여자는 ‘자신의 눈물로 제 뿌리를 적시며 생존하는 기이한 사막 식물’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겹꽃잎처럼 피어 있는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슬픔이 겹겹이 쌓여 단단해지다가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면 눈물이 되어 몸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누경에게는 그런 힘마저 없었습니다. 그만큼 누경의 상처는 깊었습니다.

누경에게 열여섯 살은 아찔했습니다. 남모르게 좋아했던 서강주가 결혼하던 때이었으며 그와 함께 들판에서 보낸 봄날을 잊지 못해 풀밭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 데 그날 풀밭에서 낯선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열여섯 살의 상처로 인해 그녀는 우울해졌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녀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잔인해졌습니다. 다른 남자와 조금 익숙해지거나 사랑에 빠지려고 하면 그녀는 당혹스러우리만치 일방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연애란 ‘두루뭉술한 의중들 속의 밀고 당김’이었는데 그녀는 두루뭉술한 의중들마저 두려워 했습니다. 누경에게 사랑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었던 탓이었습니다.

이런 누경에게 작가는 소풍을 가자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공휴일 같았던 누경에게 풀밭 위에서 ‘바삭하게 구운 빵에 치즈를 바르고 살라미와 야채샐러드를 얻고 붉은 와인을 잔에 부어요. 풋사과와 검붉은 포도도 먹어요’라고 명랑하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상처로 얼룩진 열여섯의 당신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기억을 앓는 병에 걸린 누경에게 작가는 ‘부정된 기억’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기를 바랐습니다. 기억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부정하는 것’ 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풀밭은 망각 저편의 낭떠러지거나 남들과 함께 식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네가 그린「풀밭 위의 점심」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에 나오는 벌거벗은 여자를 보면 삶의 의외성이 달리 보였습니다. 여자가 그것도 대낮에 옷을 벗고 점심을 먹는 다는 것은 여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는 여자는 둥그스름한 얼굴마냥 행복했습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습니다.

이 소설의 끝에 가서야 왜 제목이 ‘풀밭 위의 식사’가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풀밭 위의 점심」에 나오는 여자처럼 자기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도 웃을 수 있는 행복을 누경에게도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삶에 낙심한 사람은 눈과 눈 사이, 뼈와 뼈 사이가 헐거워져 넓적한 얼굴이 된다고 했을 때 열여섯 살의 질긴 상처를 털어내지 못한 누경의 얼굴이 어떤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누경에게 ‘어제의 무게’를 내려놓았으면 하기를 바랐습니다. 마치 빛살을 중화시키고 내부로 빛을 범람하게 하는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삶을 붙잡으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릴케의 시 ‘사랑은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햇살처럼, 꽃보라처럼, 또는 기도처럼 왔는가’를 인용하면서 누경에게 사랑은 다름 아닌 ‘풀밭’에서 왔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풀밭에서 ‘행복이란 다른 게 아니라 내 몸의 고요’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슬픔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어야 한다는 것을 귀 기울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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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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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껴본 적이 있나요? 달리기를 오래하다 보면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과 같은 환희를 느낀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숨이 차고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이 발바닥을 무겁게 짓누를 때 달리기를 그만둔다고 한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 순간 참고 계속 달리다 보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상쾌해집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완주(完走)한다는 것은 삶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비가 내리는 5월, 삶의 기적하면 잊혀지지 않는 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장영희 교수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유작『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은 지 어느덧 1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그 책을 읽고 난 이후 내내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문학전도사였던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도 삶을 사랑했습니다. 비록 때묻은 목발에 의지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으로 이겨내는 그녀의 명랑함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마음을 마구 휘저으며 눈물나게 했습니다.

헛되이 살지 않겠다는 그녀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의 노래를 다시 한 번『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번 책은 그냥 에세이가 아니었습니다.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였습니다. 그 향기는 ‘머리를 즐겁게 쳐들어라/갈색 소녀 나무들아/보드라운 갈색 곱슬머리를/너의 갈색 얼굴 주변으로 흔들어라’(엔젤리나 W. 크리크의「4월에」)는 초록의 달, 4월이었습니다.

또한 ‘사랑에 빠졌으니 1월 속의 6월이네.’(레오 로빈의「1월 속의 6월」)라는 청춘의 달, 6월이었습니다. 그리고 ‘꽃피는 나무 하나하나/커다랗고 아름다운 꽃다발/새들과 꽃들의 달인/향기롭고 아름답고 즐거운 5월에’(모드 M. 그랜트의「5월은」)의 꽃비내리는 5월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0월이 내 단풍나무 잎을 황금색으로 물들였네/이제 거의 다 떨어지고 여기저기 한 잎씩 매달렸네’(토머스B. 올드리치의「10월」) 라는 아쉬움의 달, 10월이었습니다.

그녀의 글을 찬찬히 읽으면 일상의 무거움이 점차 사라지면서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살면서 해야 하거나 하지 않아야 되는 문제를 그녀는 영미문학을 통해서 쉽게 풀고 있습니다. 영미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아주 당연하겠지만 그녀는 참으로 우리말을 아름답게 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아주 가까이 곁에 있다는 느낌이 날 정도로 자상하면서도 명쾌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보게끔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들 모두의 천사였습니다.

이 책에서 그녀는 “Yes, I can”과 “I think I can”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전자가 “난 할 수 있어” 라고 한다면 후자는 “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하는 것입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미덕이라 여겼는데 그녀는 그러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고집 때문에 자신의 꿈이 저당 잡히게 한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녀 말대로 하면 된다, 라고 아무리 아우성쳐도 안 되는 일은 안 됩니다. 그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보는 것이 알맞은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있어 그녀는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것보다/사랑해보고 잃는 것이 차리리 나으리’(앨프레드L. 테니슨의「사우보 思友譜」) 라고 격려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사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한 사랑이 괜찮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자라온 사랑을 일깨운다’(카슨 메컬리스의『슬픈 카페의 노래』)고 했습니다.  

그녀의 글은 삶의 따뜻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삶의 지침으로 삼아 늘 마음에 간직해야 할 소중하면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꽃비가 축복처럼’ 내렸습니다. 이해인 수녀는「우리에게 봄이 된 영희에게」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순간마다 최선의 성실을 다하는/선하고 열정적인 삶으로/재밌고도 유익한 감동적인 글로/그대는 우리에게 따뜻하고 겸손한/희망의 봄이 되었습니다/그대와 영이별한 슬픈 5월이/눈물로만 얼룩지지 않기 위하여/우리도 영희를 닮은 봄이 되려합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장영희 교수처럼 산다면 ‘I shall not live in vain', 헛되이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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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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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신화의 힘』에서 “인디언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들소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무, 돌 같은 것도 그렇게 불렀지요. 사실 이 세상 만물을 다 ‘그대’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렇게 부르면 우리의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 걸 실감할 수 있지요? 2인칭인 ‘그대’를 보는 자아는 3인칭인 ‘그것’을 보는 자아와 다를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2인칭인 그대와 3인칭인 그것의 차이는 ‘너와 나’의 친밀함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2인칭인 그대는 서로가 친밀해서 불편하지 않다면 3인칭인 그것은 친밀하지 않아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김두식은『불편해도 괜찮아』에서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권리입니다. 온갖 사회적인 문제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인권의 확대내지 축소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회의 민주화가 어떠한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권은 누구나 주의를 기울일 만한 주제입니다. 인권 대 비인권이라는 기본적인 갈등은 그 동안 억눌려왔던 사회 문제가 표출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인권이라고 하면 아직도 ‘제 몫 찾기’라는 후진성을 타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저자는 인권에 대한 구조적, 제도적 문제보다는 우리의 삶을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제목 그대로 불편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령,「300」은 BC 480년 페르시이왕 크세르크세스가 유럽 정복에 나섰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영화에서 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스파르타 친위대를 이끌고 크세르크세스왕의 264만 대군과 놀라운 전투력을 보이면서 전사합니다. 영화의 서사(敍事)로만 본다면 영웅의 상품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자 말대로 ‘타잔이 10원짜리 팬티를 입고 20원짜리 칼을 차고 노래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오락영화를 보면서 불편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역사적인 왜곡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종주의, 여성차별, 장애인 차별’에 대한 불편함과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왜 영웅은 근육질 남성인데 악마는 장애인이어야만 하는가? 라는 감수성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런 불편함이야말로 인권감수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권감수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말한 황금률이 그 출발점이라고 했습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가 말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한 다른 사람을 영화로 본다면 자신과 동일시되는 영화 속 주인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다보면 인권감수성 즉 불편함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오아시스」는 ‘빗나간 과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빗나간 과녁이란 ‘별것 아닌 일에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버하는 것은 아닙니다.「오아시스」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불편했던 것은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는 남자 친구(종두)가 교도소에 가는데도 무기력하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회적 편견이 너무나도 계산적으로 작용한 나머지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뇌성마비는 지적인 면에서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외면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랑은 억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편견의 억울함을 뒤집어 보는 역설에서「밀양」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밀양」을 ‘놀라운 기독교 영화’라고 했습니다.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교도소를 찾은 신애는 살인범으로부터 “나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고백을 듣고는 쓰러졌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누가 용서할 수 있느냐?’라는 강한 의문은 하나님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낸 세금으로 살인범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진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보복 심리의 장단에 맞춘다면 국가가 존재할 이유가 무색해집니다. 누군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형벌로 죄의식을 성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인권의 문제가 곤란한 것은 인권이 인과성이 아니라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과성은 말 그대로 원인과 결과만으로 문제만을 부분적으로 다루는데 그칩니다. 그러나 양면성은 인권의 당위적 가치의 논리를 바로 세우는 기준을 제시해줍니다. 가끔씩 시청이나 광화문 주의의 도로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가로막는 경찰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 우리는 누구의 입장에 서야 할지가 어렵습니다. 불투명하다는 것은 사회가 무질서해질 수 있으며 분열되기 쉽습니다. 더구나 언론이나 뉴스는 그들의 행위를 불법이라고 떠들어대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저자는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해석하라고 합니다.「빌리 에이전트」에서 보듯 탄광노동자들의 파업과 단결은 약자의 이익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노동자들에게 복잡하게 얽힌 생계의 실타래를 한 올씩 풀면서 해고, 비정규직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인권의 종착역에서「해마다 4월이면」,「호텔 르완다」에서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제노싸이드 때문입니다. 제노싸이드란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범해지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이러한 학살의 주범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살의 주범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의 거대한 씨스템이 인권의 함정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 발목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제노싸이드의 목표는 아주 단순합니다. 나 아닌 상대를 ‘그것’으로 여겨 무조건 죽이는 것입니다. 후투족이 투치족을 ‘바퀴벌레’로 부르면서 비인간화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후투족과 투치족의 DNA의 차이는 0,05%만이 다르다고 하는데 이런 사실이 얼마나 유효할까요?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인권의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권이라는 것이 그저 한 번 보고 마는 일회용 영화는 아닐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의 저자는 또 다른 문화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편함’이었습니다. 인권은 늘 뜨겁습니다. 무상급식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설전(舌戰)을 벌이고 있습니다. 설전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누가 괴물이고 누가 약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 약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성애가 아니라 동성애(同性愛)라는 차별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인권의 문제에 있어 이성이냐 동성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저자 말대로 무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서로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친구를 ‘그대’라고 부를 수 있고 그대에게 ‘불편해도 괜찮아.’라고 격려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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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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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찼습니다. 덕혜옹주의 슬픈 이야기는 허공을 향하여 울부짖는 것 같았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비참함으로 얼룩진 인생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비명이 권비영 작가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나라 잃은 슬픔이 늙은 눈물을 흘리게 했을 때 한 여자로서의 슬픔은 어떤 눈물일까요? 이제까지 나는 덕혜옹주를 안타까워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경술국치라는 분노를 삭이며 술잔에 영혼을 적셨던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작가 말대로 “처음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덕혜옹주』를 읽으면서 마음의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일찍이 수잔 손택은『문학은 자유다』에서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 작가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일은 의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권비영이『덕혜옹주』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실은 무엇일까요? 우선적으로 느끼는 것은 교과서에 씌어 있는 역사적 지식들이 때로는 허구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역사적 이면(裏面)을 파고드는 소설적 허구들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 소설에 나오듯 고종(高宗)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이라는 가장 평범한 사실조차도 식민지 상황에서는 아무 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에 대해 언제까지 불평불만만 무의미하게 늘어놓을 수 없습니다. 작가가 덕혜옹주를 ‘가슴으로 품은 여인’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러한 자각 때문이었습니다. 작가는 덕혜옹주에 대한 파편화되고 일그러진 자화상이 마치 진실처럼 굳어진 현실을 가슴 아프게 바라봤습니다. 더구나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소문에 대해 작가는 반감을 느끼면서도 소문에는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덕혜옹주를 가슴으로 이해하게 될 때 소문은 그저 소문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문보다 더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문은 떠돌다 사라지겠지만 진실은 덕혜옹주를 잊을 수 없게 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 덕혜옹주에게 가혹했던 삶이 더욱 절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1912년 덕수궁의 꽃으로 태어난 덕혜옹주는 이름 없이 자랐습니다. 그리고 13세에 덕혜라는 이름을 얻는 대신에 황족의 일원이라는 명분으로 일본에 끌려갔습니다. 그때부터 덕혜옹주는 창덕궁을 그리워하면서도 조선의 황녀라는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일본인들을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렸고 19세에 대마도 백작과 강제로 결혼하면서 그녀의 우울증은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딸 정혜와 평행선을 달리는 불협화음은 그녀를 돌이킬 수 없는 정신병원의 그늘에 발을 들이밀게 했습니다. 그 순간 덕혜옹주는 삶의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깨끗이 접어야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그래서 ‘역사의 책갈피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말라가는 작은 꽃잎’이지 않았을까요?

덕혜옹주의 삶은 고단하고 쓸쓸했습니다. 그리고 무력해보였습니다. 망국의 운명과 함께 했던 신산스런 삶은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는 운명과 다른 길을 가게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셀 수없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상처받았습니다. 무릎에 피멍이 든다고 한다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 보다는 식민지 사람이라는 차별을 견뎌내야 하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메마른 땅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유하는 먼지처럼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을 내려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 말대로 ‘죽음의 길이 삶보다 편안’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덕혜옹주에게도 한 가닥 희망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낳은 딸 정혜와의 특별하고도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아이를 낳아도 될까?’라고 걱정과 두려움으로 섞여 혼란했지만 순명(順命)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운명에 거역하지 않고 순응하겠다는 다짐에는 자신의 핏줄에 대한 감정의 고뇌가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정혜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자 등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정혜에게 조선말과 조선식 예절을 가르쳤습니다. 언젠가는 창덕궁 비선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인 동시에 자신의 치욕을 씻겠다는 의지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간격은 멀어졌습니다. 정혜가 일본 이름인 ‘마사에’라는 이라는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덕혜옹주는 무기력해졌습니다. 두 사람의 대립이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끝내 정혜가 “엄마, 나는 일본인이에요”라고 말했을 때 덕혜옹주는 숨이 멎을 듯한 충격으로 ‘아아, 정혜야. 일본인이라니, 정혜라고 부르지 말라니. 안 된다, 애야. 너는 내 딸이다, 너는 조선인이다. 나의 정혜야’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엄마 따라 조선에 가고 싶다고 했잖아. 너는 엄마 딸이야”라고 하자 “조선은 이제 없어! 망해서 없어진 나라라고! 대 일본 제국의 식민지란 말이야!”라고 매몰차게 대꾸했습니다. 정녕 정혜로부터 저 소리를 들으려고 질긴 목숨을 버텨왔단 말인가? 덕혜옹주의 가슴 한 구석이 또 한 번 무너졌습니다. 저 소리를…저 무례한 말을….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덕혜옹주의 불행이 단 한 사람에게만 들이닥칠 수는 없는 일 같아서 마음이 더욱 을씨년스러웠습니다.

2010년 2월 초『덕혜옹주』라는 낯선 제목의 책을 선뜻 집어 들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덕혜옹주’라는 이름에 있었습니다. 2010년은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고 보면 100년 동안 우리는 덕혜옹주를 모른 체 살아온 셈입니다. 그만큼 무심했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승자(勝者)의 진실을 드러낸다고 했을 때 덕혜옹주는 패자(敗者)였습니다. 일본에서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일본이 패망하고도 이승만 정부는 덕혜옹주를 외면했습니다. 이런 끔찍한 현실에서 덕혜옹주는 고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이 터져라 창덕궁 낙선재를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앙상한 덕혜옹주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심하게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덕혜옹주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덕혜옹주에 무관심한 우리라면 정신 병원에 갇혀야만 했던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식민지라는 국가의 정치적 몰락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그리워하는 딸이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딸을 둔 어머니로서의 덕혜옹주의 개인사는 그것은 그대로 또 한 시대를 보여주었습니다. 경술국치의 참다한 시대의 모습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우리들이 잃어버렸던 부끄러운 역사가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김구는『백범일지』에서 자신의 호를 백범이라고 고친 것은 “우리 나라가 완전한 독립국이 되려면 조선의 하등사회, 곧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경찰들이 자신을 몽우리돌이라고 달리 부르는 것에 격분하였습니다. 뭉우리돌은 석회질이 많은 탓에 쉽게 물컹거렸습니다. 이로 인해 김구는 뭉우리돌이 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반면에 경술국치 100년을 살아오면서 우리의 나라사랑은 어떤가요? 백범이 말한 대로 ‘뭉우리돌’을 닮은 것 같아 두고두고 한(恨)은 아닐 런지요? 많은 사람들이 조국이 독립되었다고 하면 그것으로 경술국치의 상처를 말끔히 치유하는 게 아닌가, 라고 후련하면서 편하게 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작가는 우리가 안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경술국치의 콤플렉스'를 다음과 같이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조국으로 데리고 돌아가야 하네. 낯선 땅에서 핍박 받으며 견뎠던 그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해. 그들이 이 땅에서 흘렸던 피눈물까지 모두 거두어가야 하네. 그걸 이루어내지 못하면 독립도 아무런 의미가 없네. 우리 동지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신념이 무엇인가? 자랑스럽고 떳떳한 네 나라를 세워 우리 민족을 모두 데리고 돌아가는 것 아니었나? 옹주마마는 그 시작에 불과하네” 이었습니다.

작가 말대로 떳떳한 나라를 세우는데 덕혜옹주가 그 시작이라는 데 무척이나 공감했습니다.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오늘에야 비로소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흔적도 없이 잊혀져버린 삶이 거센 바람으로 휘몰아쳤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힘이 생겨났습니다. 덕혜옹주가 슬픈 운명을 피하지 않았듯이 우리들 또한 결코 밀리거나 비켜서지 않기를 새삼 느꼈습니다. 그녀를 위한 진혼곡인『덕혜옹주』를 읽으면서 100년이라는 삶의 흔적에서 민족의식이 얼마만큼 오래되었는지 문제보다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라는 것을 진정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정확한 기록보다 불운했던 황녀의 진심이 더 깊이 읽어지기를, 좀 더 깊이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는 작가의 말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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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이데올로기는 우파, 좌파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진보와 보수다. 그래서 인문학적으로 좌파라고 한다면 마르크스의『자본론』같은 불온서적(不穩書籍)을 읽는 것이다. 반면에 인문학적으로 우파라고 한다면 사서삼경(四書三經) 같은 책을 탐독하면서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에 대해 이택광은『인문좌파를 이론 가이드』에서 ‘인문좌파’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인문좌파란 단순하게 정치적 좌파라고 규정할 수 없는 ‘다른 주체’였다. 즉 인문좌파는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였다. 또한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란 다름 아닌 이론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 드러나듯 ‘이론가이드’라는 것은 저자가 다년간 이론에 공을 들인 결과였다. 그는 ‘이론은 근육이다’라고 말하면서 왜곡되었거나 편향된 이론의 진면목을 정의하였다. 보기 좋은 근육이 아니라 힘을 쓰기에 좋은 근육이라고 했다. 이론이 쓸모 있는 근육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들뢰즈의 표현에 따르면 ‘개념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으로 받아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창조에 대해 유념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창조라는 것이 완전히 새로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이론은 없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우발적인 필연성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탈정초주의(post-foundationalism)다. 탈정초주의는 토대나 법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불변한 것을 우발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책의 본론으로 들어가면 ‘마르크스를 죽여? 살려?’로 시작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때문인데 데이비드 하비는 마르크스를 ‘자본주의의 근대화에 대한 포괄적 평가를 제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유인즉 우리가『공산주의의 선언』에 대한 단순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지젝이 말한 ‘이데올로기의 판타지’다. 가령, 근대화 이후의 한국성과 유교는 거의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국은 유교적인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이론에 대한 반성이 대두되면서 ‘문화이론’의 반작용이 나타났다. ‘마르크스로 돌아가라’는 것은 페리 핸더슨이 제시하는 것처럼 ‘역사발전에 관한 이론(역사이론)’으로 볼 수 있다. 역사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의 이론’이 되는 메타이론이 되었다. 그리고 라캉주의 좌파에서는 ‘정치적 기획’을 제시한다. 라캉주의 좌파에서 정치는 주이상스(jouissance)의 위상학에서 현실성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라캉의 주이상스에 관련하여 빼놓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그는 만보자를 새로운 지식 생산자로 봤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진리내용과 물질내용 그 사이에 조성되는 긴장 자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진리는 의도성의 죽음’이라고 했다. 이것은 곧 융의 의식성을 문제시하는데 역사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변증법적 사유는 역사적 각성의 기관이었다. 따라서 벤야민에게 ‘앎은 곧 기존의 지식을 부수는 새로운 것’이었다. 저자는 이 문제가 모든 좌파이론의 핵심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은 정신분석학을 일종의 이론으로 여겼던 알튀세르를 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알튀세르는 정신분석학을 무의식이라는 과학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이데올로기 또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이념이나 신념 체계 같은 것이 아니라 ‘재현들의 체계’ 곧 구조로 봤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이데올로기를 상상적 관계로 설정했다. 상상적 관계란 큰 주체에 작은 주체들이 귀속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호명(interpellation)'이라고 했다. 반면에 지젝은 이데올로기를 구조가 아니라 ‘구조와 주체의 틈새에서 작동하는 판타지’라고 했다.

다음으로 저자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예술을 여전히 반자본주의적’인 것에 주목한다. 즉 예술의 ‘창조적 상상력’을 반자본주의적 정치의 원동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네그리는 예술가를 ‘해방을 향한 물질적 욕망에 내재한 구성적 힘의 화신’이라고 하면서 ‘다중’이라는 존재로 규정한다. 네그리에 따르면 ‘아름다운 것’과 ‘혁명적인 것’은 같다. 이로 인해 모더니즘을 병든 예술, 리얼리즘을 건강한 예술이라고 했던 루카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끝으로 철학의 복원 문제에 있어 알랭 바디우의 ‘탈봉합’을 제시하고 있다. 바디우에게 있어 철학은 진리 이후에 가능한 것이었다. 바디우은 기존의 철학은 진리적 철차들을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어느 한 가지를 우월한 지위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진리 생산이 다른 진리의 생산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봉합’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결국 봉합이라는 것은 ‘진리 생산의 절차를 배타적’으로 하는 것이다. 반면에 탈봉합은 ‘다양한 진리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론이 쓸모 있는 근육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단순한 미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정치적이어야 한다. 이론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입장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론의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랑시에르가 파악했던 ‘정치적인 것은 언제나 미학적인 차원을 통해 출몰한다’는 것이 뚜렷해진다. 랑시에르에게 미학은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결정하는 아프리오리(a priori: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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