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껴본 적이 있나요? 달리기를 오래하다 보면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과 같은 환희를 느낀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숨이 차고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이 발바닥을 무겁게 짓누를 때 달리기를 그만둔다고 한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 순간 참고 계속 달리다 보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상쾌해집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완주(完走)한다는 것은 삶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비가 내리는 5월, 삶의 기적하면 잊혀지지 않는 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장영희 교수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유작『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은 지 어느덧 1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그 책을 읽고 난 이후 내내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문학전도사였던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도 삶을 사랑했습니다. 비록 때묻은 목발에 의지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으로 이겨내는 그녀의 명랑함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마음을 마구 휘저으며 눈물나게 했습니다.

헛되이 살지 않겠다는 그녀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의 노래를 다시 한 번『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번 책은 그냥 에세이가 아니었습니다.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였습니다. 그 향기는 ‘머리를 즐겁게 쳐들어라/갈색 소녀 나무들아/보드라운 갈색 곱슬머리를/너의 갈색 얼굴 주변으로 흔들어라’(엔젤리나 W. 크리크의「4월에」)는 초록의 달, 4월이었습니다.

또한 ‘사랑에 빠졌으니 1월 속의 6월이네.’(레오 로빈의「1월 속의 6월」)라는 청춘의 달, 6월이었습니다. 그리고 ‘꽃피는 나무 하나하나/커다랗고 아름다운 꽃다발/새들과 꽃들의 달인/향기롭고 아름답고 즐거운 5월에’(모드 M. 그랜트의「5월은」)의 꽃비내리는 5월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0월이 내 단풍나무 잎을 황금색으로 물들였네/이제 거의 다 떨어지고 여기저기 한 잎씩 매달렸네’(토머스B. 올드리치의「10월」) 라는 아쉬움의 달, 10월이었습니다.

그녀의 글을 찬찬히 읽으면 일상의 무거움이 점차 사라지면서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살면서 해야 하거나 하지 않아야 되는 문제를 그녀는 영미문학을 통해서 쉽게 풀고 있습니다. 영미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아주 당연하겠지만 그녀는 참으로 우리말을 아름답게 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아주 가까이 곁에 있다는 느낌이 날 정도로 자상하면서도 명쾌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보게끔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들 모두의 천사였습니다.

이 책에서 그녀는 “Yes, I can”과 “I think I can”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전자가 “난 할 수 있어” 라고 한다면 후자는 “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하는 것입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미덕이라 여겼는데 그녀는 그러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고집 때문에 자신의 꿈이 저당 잡히게 한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녀 말대로 하면 된다, 라고 아무리 아우성쳐도 안 되는 일은 안 됩니다. 그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보는 것이 알맞은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있어 그녀는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것보다/사랑해보고 잃는 것이 차리리 나으리’(앨프레드L. 테니슨의「사우보 思友譜」) 라고 격려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사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한 사랑이 괜찮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자라온 사랑을 일깨운다’(카슨 메컬리스의『슬픈 카페의 노래』)고 했습니다.  

그녀의 글은 삶의 따뜻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삶의 지침으로 삼아 늘 마음에 간직해야 할 소중하면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꽃비가 축복처럼’ 내렸습니다. 이해인 수녀는「우리에게 봄이 된 영희에게」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순간마다 최선의 성실을 다하는/선하고 열정적인 삶으로/재밌고도 유익한 감동적인 글로/그대는 우리에게 따뜻하고 겸손한/희망의 봄이 되었습니다/그대와 영이별한 슬픈 5월이/눈물로만 얼룩지지 않기 위하여/우리도 영희를 닮은 봄이 되려합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장영희 교수처럼 산다면 ‘I shall not live in vain', 헛되이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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