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 기사 데스페로 - 팝업북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김경미 옮김, 브루스 포스터 그림 / 비룡소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아이들에게 좀 더 재밌는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생쥐기사’에 솔깃했습니다. 내용도 흥미진진해보였고 무엇보다도 팝업북이라 충분히 살만 했습니다. 며칠 후 기대하던『생쥐 기사 데스페로』가 왔습니다. 그런데 봉투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하고 펼쳐봤는데 영화예매권이었습니다.  





 

 

 

 

 

 

 

 

 

 

 

 

 

 

 

 

 이 책이「작은 영웅 데스페로」라는 영화의 원작이었습니다. 뜻밖의 선물을 감사히 받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가 얼마 전 표 2장을 추가해서 온 가족이 이 영화를 봤습니다. 재미와 감동이 좋았습니다. 시궁쥐가 무섭다고 눈을 찡그리며 감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들의 눈은 마냥 신났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제목에 나와 있듯 ‘생쥐 기사’ 데스페로가 나옵니다. 하지만 데스페로를 보면 전혀 기사답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키가 작았으며 이상하게도 귀만은 커다랗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생쥐라는 놀림을 받을 만 했습니다. 더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해야만 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생쥐하면 겁이 많아야 하는데 데스페로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글쎄 미술 시간에 고양이를 그렸습니다. 





 

 

 

 

 

 

 

 

 

 

 

 

 

 

 

 

 

데스페로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제멋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엄마 아빠는 어쩔 수 없이 펠로 형에게 동생을 잘 가르쳐달라고 당부합니다. 왜냐면 펠로는 생쥐답게 겁이 많았습니다.

이들 형제가 처음으로 간 곳이 도르 왕실 도서관이었습니다. 펠로는 데스페로에게 책을 갉아먹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데스페로는 책을 먹지 않는 대신에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책 속에 나오는 용감한 기사에 푹 빠져 버립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기사처럼 살고 싶다고 다짐합니다. 책 덕분에 데스페로는 꿈을 먹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꿈이란 배고플 때 먹는 밥(食)과 다릅니다. 배고프지 않아도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것이 꿈이 아닐까요?

이러한 데스페로의 꿈은 도르 왕실의 피 공주와 대화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 공주가 사랑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도르 왕국의 ‘수프 먹는 날’ 행사에서 그만 왕비가 죽고 맙니다. 놀랍게도 왕비의 수프 속에서 로스쿠로라는 시궁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왕비를 잃은 왕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왕국에서 더 이상 수프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궁쥐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도르 왕국의 하늘에는 빛바랜 슬픔이 우중충하게 드리워졌습니다. 피 공주가 기다리던 사랑은 다시금 도르 왕국이 행복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자신 때문에 도르 왕국이 불행해지자 로스쿠로 시궁쥐는 지하 감옥으로 쫓겨납니다. 지하 감옥은 온갖 악(惡)이 말 그대로 시궁창처럼 지저분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로스쿠로는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에서 놓이게 됩니다. 이 때 데스페로를 만나게 됩니다. 데스페로도 생쥐 신분에 피 공주와 이야기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 벌로 생쥐 세상에서 추방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쿠로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공주에게 용서를 빌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신사다운 행동이라고 덧붙입니다.

하지만 데스페로와 로스쿠로의 바람과는 달리 피 공주는 로스쿠로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받지 못한 로스쿠로는 또 한 번 상처를 받고 결국에는 피 공주의 하녀를 속여 공주를 지하 감옥으로 납치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데스페로는 용감하게 지하 감옥 대장과 싸우게 되고 이것을 넌지시 바라보던 로스쿠로는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반성하면서 데스페로와 함께 피 공주를 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데스페로의 모험담을 통해 기사답게 사는 용기를 알게 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사는 것입니다. 어디론가 도망간다고 해서 자신의 불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누군가 진정으로 용서를 바랄 때 우리 또한 진정으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지 데스페로의 귀가 커다랗다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쥐는 생쥐답게 사는 것만이 옳다고 믿으며 데스페로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쩌면 도르 왕국의 문제는 수많은 오해에서 생겨났습니다. 이제 우리도 데스페로처럼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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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더루스트? 2009-02-21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얼마전에 영화보고와 책으로 아이에게 읽어주려검색하다 보고가네요 집도 이쁘고 아이들도 너무 귀여워요 잘보고 갑니다
 
철학 콘서트 2 철학 콘서트 2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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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 좋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아무리 좋다고 귀가 따갑게 들어본들 다리품을 팔면서 안양루(安養樓)를 올라 본 것보다 못하다. 눈의 즐거움은 마음까지 상쾌하게 한다.

하지만 백견(百見)보다 더 좋은 게 있다는 것을『철학콘서트 2』를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황광우는 “백견이 불여일독(百見不如一讀)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취향은 제각각이다. 여행일수도 있고 음악일수도 있고 미술일수도 있다. 책과 함께 살아온 저자에게 일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강조하는 것은 일독이 최고의 좋음(最高善)이기 때문이다.

최고선하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최고선을 행복이라고 했다. 좀더 자세하게 말해보면 의술이 목적이 건강, 병법의 목적이 승리라고 한다면 최고선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고 싶냐, 는 질문을 받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행복이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말하기는 쉽다. 기쁨 혹은 즐거움보다 그 위에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행복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제 성장률이 -4%로 곤두박질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지면서 우리의 가슴을 소스라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사이버 폭력 및 사이코패스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고 있다. 예전만큼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래저래 불행하다고 하소연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위로를 받기는커녕 아이러니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이런 부조화가 생긴 것일까?

저자 말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일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행복을 찾는 인간의 삶을 세 가지 유형을 구분하고 있다. 먼저 쾌락적인 삶이다. 이는 노예와 짐승의 목적이다. 반면에 정치적인 삶이 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지만 불완전하다.

마지막으로 관조적인 삶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한 삶이다. 그러면서 그는 행복한 삶은 탁월성에 따른 삶이라고 한다. 즉 인간의 탁월성은 지성이며 지성의 활동이 곧 관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성을 따르는 삶이 가장 좋은 것이다.

황광우의『철학콘서트 2』에는 탁월한 사상가 10명이 나온다. 저자는 그들의 책을 중심으로 하여 위대한 지혜를 재밌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뜻밖의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전히 철학의 중심인물로 나오는 것 못지않게 시인 호메로스가 나오며 과학자인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등이 나온다. 또한 무함마드가 나오며 볼테르가 말했던 동양의 철인 왕 세종이 나온다.

흔히 철학자라고 하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물론 틀리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10명의 철학자를 통해 모든 철학자는 혁명가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말대로 “ 그 어떤 권위도 거부한 채 끊임없이 진리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그 모든 사유의 집이 주는 안정을 포기하고 새로운 항해에 나서는 사람, 그가 바로 철학자다.”라는 것이다.

일찍이 조선의 18세기 실학자였던 최한기는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책을 샀다고 전해진다. 이유인즉 책장 문을 열면 공자와 맹자, 서역의 학자 등을 만날 수 있는데 책을 사지 않고 이들을 직접 만나러 다니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겠냐. 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이것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일독이다. 일독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단지 사는 데 있어 편리한 것이 행복이라는 헛된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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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기술 - 심리학자의 용서 프로젝트
딕 티비츠 지음, 한미영 옮김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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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때문에 이웃과 한바탕 설전(舌戰)을 벌였다. 같은 또래의 이웃집 아이가 어느 순간 우리 아이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아이들이 놀다보면 그럴 수 있지만 다른 부위도 아닌 얼굴이라 마음이 편치 못했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아이에게 손짓을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웃집 엄마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구나 살다보면 용서하기 힘들 때가 있다. 나이를 한두 살 먹다보니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누군가를 용서하고자 한다면 얼마만큼 해야 하는 것일까? 문학의 거장 톨스토이의『부활』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때에 베드로가 다가와서 예수에게 말하였다. “주님, 한 신도가 내게 죄를 지을 경우에,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의 일흔 번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용서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설령 누군가를 용서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마음을 다해서 용서했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저 입버릇처럼 한다면 그것은 용서가 아니며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정신의학자 토머스 사스에 의하면 멍청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순진한 사람들은 용서하고 잊어버린다.

하지만 용서하는 데 있어 평온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용서의 기술』을 지은 심리학자인 딕 티비츠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앞서 말한 토머스 사스에 의하면 저자는 현명한 사람이다.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어버리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진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온전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살아가기 위해 용서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불공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어느 누구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는 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게 하거나 혹은 불공평에 맞서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서로가 공평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용서를 하라고 한다. 삶에서 중요한 순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현재를 살고 있더라도 과거의 암울한 싸움에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지혜는 다름 아닌 용서에 있다는 것이다. 용서 없이는 삶의 희망마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렇듯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용서하는 법을 다시금 배울 수 있다. 용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 결국에는 내가 책임지어야 한다. 내 삶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인생은 아무것도 없다. 용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용서는 내가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고통을 넘어 희망으로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용서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게 된다.

되돌아보면 인생에 있어 용서는 금(金)과 같지 않을까? 금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가치는 고귀한 아름다움에 있다. 그런데 황금이라고 불리는 금색은 사실 금의 고유한 색이 아니다. 금속은 원래 고유한 색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금이 노란 색인 이유를 찾아보면 여러 파장의 빛이 섞인 백색광에서 노란 색만 반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머지는 흡수한다.

우리도 용서를 반사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다운 제 빛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바쁘게 살면서 용서하기 힘든 세상에 우리들 마음이 밝게 빛난다면 그만큼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용서의 기술』을 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우 과학적으로 증명된 용서의 방법이 우리의 불합리한 마음을 한결 부드럽게 해주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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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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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묵자(墨子)』에 이런 말이 있다. 천명을 다스리지 못하는데 사람이 만 명을 다스리는 벼슬자리에 앉게 되면 이것은 그가 받은 벼슬이 그의 능력의 10배가 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오랜 세월을 두고 만들어지는 것이나 그 세월을 하루아침에 뜻대로 늘어날 수 없다. 또한 지혜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인데 그 지혜 또한 하루아침에 10베로 커질 수 없다. 그런데도 능력의 10배에 해당하는 벼슬자리를 준다면 그는 하나 만을 다스리고 나머지 아홉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해 12월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청년정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와 담대한 도전 정신이며 지금이야말로 청년 여러분이 청년 정신을 발휘할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청년 정신은 대량 실업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더구나 이런 저런 자격증으로 10배의 능력을 갖추고도 취업의 문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런 암울한 현실은 우선적으로 경제적인 여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른 바 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의 변화다. 포디즘은 포드 자동차의 창업주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자동차를 대량 생산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고 그 월급으로 소비시장에 나서서 마음껏 소비하는 풍요의 시대(age of opulence)였다. 그러나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에서 시작된 도요타주의 즉 포스트포디즘은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하게 했다. 그리고 상품별, 부문별 그리고 국제적으로 독과점화에 따라 승자 독식(Winner-Takes-All)사회가 되었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신자유주의의 거친 물살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경제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심한 몸살을 겪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렇듯 달갑지 않는 문제에 대해 우석훈, 〮〮박권일의『88만원 세대』에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파헤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들은 경제학이라는 역사성과 공간성을 적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자극하면서 그들은 지금 한국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진단한다. 또한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 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이렇게 불편한 견해를 밝히는 이유는 ‘인질경제’(hostage economics)에서 비롯된다. 자체적으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20대 세대들을 소비와 경쟁에 중독되게 한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세대 간의 문제이며 일종의 세대 착취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기성세대들이 분배와 갈등으로 20대들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기성세대라는 상징적 자본의 부작용으로 지금의 한국의 20대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서구와는 다른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88만원 세대가 한국적이라는 사실과 전혀 독자성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는 특성을 알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사회 발전을 제약하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단순히 실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실업보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이『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날카롭게 현대성을 지적하고 있는 ‘현대를 사는 인간은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의 88만원 세대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인 장애는 경제 발전의 부산물 뿐인 인간 쓰레기 즉 ‘잉여 인간’이라는 참다한 현실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위기에 놓여 있다. 부연하자면 잉여 인간이란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당신 없이도 잘 할 수 있고 당신이 없으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위기가 기회라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지금이야말로’ 그럴 때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말한 ‘청년 정신’은 아무런 해법이 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10대를 학업에 치중하고 나서 다시 20대에 취업 전선에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그들에게 청년정신은 그야말로 ‘희망 고문’일 뿐이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너무 많은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묵자(墨子)』이야기를 해보면 ‘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남도 반드시 그를 따라 그를 사랑하게 되며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에게는 남도 반드시 그를 따라 이롭게 해줄 것이다.’라는 지혜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절망의 시대에서 희망의 경제학을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예의’와 같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20대들이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88만원 세대가 부모가 되었을 때 다음 세대들에게 더 이상 지체된 성장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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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체인징 - 세상을 바꾸는 월드체인저들의 미래 코드
알렉스 스테픈 지음, 김명남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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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방법 중에 ‘꾸물거리기'(slugging) 가 있다. 몇몇 도시에서 아주 독특한 형태로 즉석에서 자가용을 합승하는 관행을 말한다. 자동차가 필수품인 시대에 혼자 운전하는 사람이 정해진 장소에 들러서 모르는 사람을 한두 명 태운 뒤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버스전용차선제와 같은 다인차량 전용차선의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떳떳하면서도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자동차 배기가스를 최대한 줄이는 효율적인 방법에 있다.

이렇듯 지구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책이 바로 알렉스 스테픈의『월드체인징』이다. 이 책에는 제목에 나와 있듯 세상을 바꾸는 방법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온다. 산업화와 고도성장에 따른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러한 충격으로 인하여 녹색혁명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지구를 살리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각 분야별로 소개되고 있다. 대단히 흥미로운 방법 덕분에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브루스 스털링(사이버 펑크 운동의 개척자)는 “이 경이로운 책을 소개하는 일은 내게 매우 중요한 도전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책을 읽는 것은 아주 경이로운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알렉스 스테픈은 지구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노후계획을 하는 것으로 비유한다. 자연이라는 자본을 우리들이 필요한 정도만 쓰고 나머지는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 온전하게 남겨 두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먼저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을 초과하고 있다. 생태발자국이란 인간이 지구에 살면서 자원을 생산하고 그것을 폐기하는데 비용을 토지면적으로 환산한 치수다. 따라서 생태발자국이 넓을수록 환경파괴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우리가 지구를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나치게 소모하고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면 에너지 문제에 있어 값싼 동력의 부작용에 빠져드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스위치만 켜면 발전소에서 온 전기를 마음껏 낭비하며 쓴다. 그 사이 에너지에 대한 갈망이 높을수록 환경비용 부담은 심각할 정도다. 이는 단지 값싼 에너지 중독 때문만은 아니다. 에너지 쇼크로 인한 기후의 변화가 덩달아 무질서해지면서 우리의 미래가 불행하다는 전망 때문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절약폭발’(conservation boomb)를 갈망한다. 이는 매년 3퍼센트의 에너지 절감(clean three)를 따른 아주 큰 변화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두루 살피면 단지 전구를 콤팩트형 형광등으로 바꾸는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작은 실천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이유인즉 토머스 프리드먼이『코드그린』에서 말한 대로 녹색혁명이 지루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프리드먼은 지루하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인디언들에게 ‘느투템’이란 말이 있다. 풀이하자면 이상한 종족의 친척이라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부족의 사람들이 흐르는 물속으로 달려가 이 세계의 동물로 변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월드체인징’도 그렇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서로를 필요로 하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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