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묵자(墨子)』에 이런 말이 있다. 천명을 다스리지 못하는데 사람이 만 명을 다스리는 벼슬자리에 앉게 되면 이것은 그가 받은 벼슬이 그의 능력의 10배가 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오랜 세월을 두고 만들어지는 것이나 그 세월을 하루아침에 뜻대로 늘어날 수 없다. 또한 지혜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인데 그 지혜 또한 하루아침에 10베로 커질 수 없다. 그런데도 능력의 10배에 해당하는 벼슬자리를 준다면 그는 하나 만을 다스리고 나머지 아홉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해 12월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청년정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와 담대한 도전 정신이며 지금이야말로 청년 여러분이 청년 정신을 발휘할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청년 정신은 대량 실업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더구나 이런 저런 자격증으로 10배의 능력을 갖추고도 취업의 문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런 암울한 현실은 우선적으로 경제적인 여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른 바 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의 변화다. 포디즘은 포드 자동차의 창업주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자동차를 대량 생산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고 그 월급으로 소비시장에 나서서 마음껏 소비하는 풍요의 시대(age of opulence)였다. 그러나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에서 시작된 도요타주의 즉 포스트포디즘은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하게 했다. 그리고 상품별, 부문별 그리고 국제적으로 독과점화에 따라 승자 독식(Winner-Takes-All)사회가 되었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신자유주의의 거친 물살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경제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심한 몸살을 겪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렇듯 달갑지 않는 문제에 대해 우석훈, 〮〮박권일의『88만원 세대』에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파헤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들은 경제학이라는 역사성과 공간성을 적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자극하면서 그들은 지금 한국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진단한다. 또한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 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이렇게 불편한 견해를 밝히는 이유는 ‘인질경제’(hostage economics)에서 비롯된다. 자체적으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20대 세대들을 소비와 경쟁에 중독되게 한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세대 간의 문제이며 일종의 세대 착취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기성세대들이 분배와 갈등으로 20대들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기성세대라는 상징적 자본의 부작용으로 지금의 한국의 20대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서구와는 다른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88만원 세대가 한국적이라는 사실과 전혀 독자성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는 특성을 알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사회 발전을 제약하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단순히 실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실업보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이『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날카롭게 현대성을 지적하고 있는 ‘현대를 사는 인간은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의 88만원 세대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인 장애는 경제 발전의 부산물 뿐인 인간 쓰레기 즉 ‘잉여 인간’이라는 참다한 현실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위기에 놓여 있다. 부연하자면 잉여 인간이란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당신 없이도 잘 할 수 있고 당신이 없으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위기가 기회라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지금이야말로’ 그럴 때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말한 ‘청년 정신’은 아무런 해법이 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10대를 학업에 치중하고 나서 다시 20대에 취업 전선에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그들에게 청년정신은 그야말로 ‘희망 고문’일 뿐이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너무 많은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묵자(墨子)』이야기를 해보면 ‘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남도 반드시 그를 따라 그를 사랑하게 되며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에게는 남도 반드시 그를 따라 이롭게 해줄 것이다.’라는 지혜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절망의 시대에서 희망의 경제학을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예의’와 같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20대들이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88만원 세대가 부모가 되었을 때 다음 세대들에게 더 이상 지체된 성장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