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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과거를 반복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흘러가는 물이라고 한다면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손으로 잡으려고 애쓴다고 해도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진실일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있는 그대로 사는 현실에서 과거를 반복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과거의 못다한 사랑을 지금에 와서는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이게 과연 진실일까요? 진실이라고 한다면 남들이 보면 고통이겠지만 자신만은 즐거운 고통이라고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피츠 제럴드의『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개츠비가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남들과는 다른 민감한 개성을 가졌습니다. 개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성공적인 몸짓이거나 마치 1만 마일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하는 복잡한 기계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것에 불과한 맥빠진 감수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소설에서 개츠비가 위대한 개츠비로 불린 까닭은 그의 ‘낭만적인 인간성’에 있습니다. 작가는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일찍이 발견된 적이 없고 앞으로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개츠비는 아름답고 부유한 데이지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장래가 아무리 찬란하다고 해도 그는 무일푼의 청년에 불과했습니다. 가진 것이 없었던 그는 거짓 맹세를 하더라도 데이지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있지도 않는 수백만 달러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보다는 자신이 얼마든지 그녀를 충분히 보살펴 줄 수 있다는 안도감을 불어넣어 주어습니다. 차라리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렇게까지 사랑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富)가 가두어 보호하는 젊음과 신비에 감싸인 덕분에 그녀가 은처럼 빛을 발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사랑이 아닌 돈 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톰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5년을 악착같이 일을 한 후 개츠비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사는 호화로운 주택에서 주말마다 파티를 열었습니다. 억울했던 자신의 젊은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그는 낯선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밤마다 자신의 집에서 ‘초록색 불빛’을 쳐다봤습니다. 그가 초록색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온 것은 아주 우연 같았지만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초록색 불빛은 자신이 사랑했던 데이지가 사는 집에서 나오는 연민의 불빛이었습니다. 그는 데이지에게 부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집에서 데이지와 재회했습니다. 5년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환상에 사로잡혔습니다. 행복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로서는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 그 환상의 힘은 그녀를 초월하였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직접 그 환상에 뛰어들어 그 환상이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게 했으며 자신의 길 앞에 떠도는 모든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정열이나 순수함도 한 인간이 유령 같은 마음 속 깊숙이 품은 것은 어찌할 수 없게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환상은 데이지가 톰에게 “난 결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자유로운 몸이 되면 5년 전으로 되돌아가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라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말했던 절박함이 묻어났습니다. 하지만 데이지는 “지금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과거는 어쩔 수 없잖아요. 저 사람(톰)을 한 번쯤은 사랑했단 말이에요…하지만 당신도 사랑했어요”라고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아팠던 사람들이라면 개츠비가 바라봤던 ‘초록색 불빛’이 아릿할 것입니다. 과거를 반복할 수 있다는, 그래서 사랑을 반복할 수 있다는 개츠비의 낭만은 반짝이는 별과 같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놀랐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지치게 하여도 사랑은 고통보다 더 큰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것은 경이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하나의 희망이라고 한다면 그 희망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 희망이 때로는 저 너머로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