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3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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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몸짓을 불멸에 대한 욕망의 몸짓이라 명명하자. 큰 불멸을 갈망하는 베티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현재와 더불어, 현재의 온갖 근심과 더불어 사라지길 거부한다. 나는 나 자신을 초극하여 역사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역사는 영원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작은 불멸을 희망할 뿐이지만, 로라 역시 같은 것을 원한다. 자기 자신을 초극하고 자신이 겪은 불행한 순간을 초극하여, 자신을 알았던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머무르기 위해 뭔가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사랑이란 매우 매우 매우 큰 감정이다. 거짓 사랑은 작은 감정이며, 진정한 사랑은 매우 큰 감정이다. 하지만 절대라는 관점에서 모든 사랑이 다 작지 않은가? 물론이다. 바로 그래서 사랑은 자신의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합리성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어떤 절제도 무시하려고 하며, 사실성에서 벗어나 ‘열정의 생동하는 광란으로’ 자신을 변모시키고자 한다. 달리 말하면 광적이 되고자 한다.
- 밀란 쿤데라의『불멸』중에서

 


  
 
사랑을 3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1단계는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가장 행복할 때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저런 간섭으로 사랑이 불안해지는 것이 사랑의 2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전망이 더 이상 없고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것이 사랑의 3단계입니다. 만약 사랑 때문에 7킬로그램을 잃어버린다면 아마도 사랑의 2단계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랑의 3단계에서는 덧없이 흩어지거나 혹은 자유롭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밀란 쿤데라는『불멸』에서 이런 사랑의 2단계 혹은 3단계를 ‘사랑 저 너머’라고 불렀습니다. 사랑 저 너머는 곧 사랑의 다른 쪽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중요시하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가 잘되어야 했습니다. 또한 누군가를 싫어하면 그는 못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1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은 그냥 사랑일 뿐이야. 사랑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에 있었습니다. 마치 ‘새장 속 새 인양 나의 가슴 속에서 파닥거리는 날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이 사랑 저 너머에 있다면 밀란 쿤데라는 사랑이 소멸한다고 했습니다. 사랑보다 삶을 선택해서 그렇습니다. 반대로 사랑을 선택한다고 한다면 즉 사랑 저 너머에 있지 않다면 이런 사랑은 불멸한다고 했습니다. 불멸! 이 소설에서 작가는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세 가지 불멸을 말했습니다. 첫 번째는 작은 불멸입니다.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큰 불멸입니다.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스꽝스런 불멸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하는 한 우화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우스꽝스러운 불멸을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괴테와 베티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스물 여섯 살의 베티나가 예순 살의 괴테를 사랑하는 것은 모호했습니다. 작가 말대로 사랑이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흥분이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그녀가 그의 무릎 위에 앉으면서 희열을 느낄 때 괴테 또한 그녀를 어린 아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솔직함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단 둘이 만나적은 불과 서너 번 정도였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베티나는 어느 편지에서 “나에겐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리라는 굳고 견고한 의지가 있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베티나는 괴테를 사랑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괴테는 역사 속 인간 이었습니다. 괴테는 유럽의 한 가운데 있는, 기막힌 중심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 극단을 두려워하여 우물쭈물 하는 소심한 중점이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는 양 극단을 유럽이 다시 경험하지 못할 기막힌 균형 상태로 유지하는 견고한 중점이었습니다. 베티나가 괴테를 사랑했던 것은 견고한 중점에 어울리는 견고한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사랑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불멸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사랑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불멸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비록 그녀가 괴테로부터 ‘쇠파리’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괴테의 젊은 여인이라는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베티나의 불멸의 몸짓은 두 명의 여자 즉 아녜스와 로라에게 되살아났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아녜스와 로라의 몸짓은 베티나에 대한 불가사의한 향수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자아의 유일성을 가꾸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덧셈 법과 뺄셈 법입니다. 아녜스는 자신의 순수한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자아에서 외적인 것과 빌려온 것을 모두 추려냈습니다. 이는 뺄셈이며 자아가 0이 되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에 로라의 그 반대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좀 더 잘 보이게 하고, 좀 더 파악하기 쉽게 하고, 좀 더 두텁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덧붙여 그것에 자기를 동화했습니다.

가령, 사랑에 있어 아녜스는 ‘보답으로서의 사랑’이었습니다. 모방할 수 없고 교환할 수 없는 그 사랑은 사랑을 심은 자, 즉 사랑의 대상을 향한 것이기에 변신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녜스의 사랑을 달리 ‘관계-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라는 ‘진정한 사랑’을 갈망했습니다. 사랑을 위해서 온갖 것으로 변신하면서 애인을 찾습니다. 어떤 천상의 손길이 인간의 영혼에 피우는 불꽃, 사랑하는 이가 손에 들고 온갖 것으로 변신하면서 애인을 찾는 횃불 같은 것이었습니다. 로라의 사랑을 달리 ‘감정-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멸』을 읽으면서우스꽝스런 불멸을 생각해봤습니다. 우스꽝스럽다는 것은  사랑이 '사랑 저 너머'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삶을 운명적으로 바꾸는 뭔가 본질적이라고 한다면 사랑 저 너머에 있는 사랑은 에피소드와 같습니다. 인과적 잠재성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괴테에게 베티나와의 만남은 양적으로 미미했지만 개념의 상대성에 있어서는 결국에는 베티나는 괴테의 삶의 일부로 통합되어 승리했습니다. 어쩌면 사랑 저 너머에 있는 사랑은 침상의 보물이 아니라 사랑의 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불멸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1단계 즉 '사랑은 사랑일 뿐이야' 라고 여겨야 가능했습니다. 사랑의 개념에 있어서 사랑은 '사랑 저 너머'에 있으면 불멸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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