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자라날 때 문학동네 청소년 4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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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미진. 처음 들어본 작가이지만 이 책의 제목과 표지는 본 기억이 난다. 쪼그리고 앉아있는 소녀, 턱을 괴고 있는 손의 손톱에서 나무가 자라 뻗어가고 있다. 아름답기도 하고 어딘가 섬뜩하기도 하다. 이 표지 그림을 그린 이 정웅 일러스트레이터는 최근 소설 '은교'의 표지 그림도 그렸다고 한다.

2005년 서울 신문 신춘 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작가의 다섯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모두 중학생 정도의 나이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별 이유 없이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한 아이가 어느 날 교실 벽 속으로 사라지고, 그 벽의 일부가 되어 자기를 힘들게 하던 주인공에게 소리로 신호를 보내고 말을 건다는 내용의 <하얀 벽>, 쌍동이 자매 지영이 교통 사고로 죽자 늘 지영에게 뒤쳐진다는 열등감 속에 살던 주영은 이제부터 지영으로 살아보기로 한다. 두번 째 이야기 <난 네가 되고>의 내용이다.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의<붉은 곰팡이>를 읽으면서 부터이다. 기울어지는 집안 형편때문에 반지하 집으로 갑자기 이사를 오게 되는데 이 집의 벽을 덮고 있는 곰팡이. 이 곰팡이 속에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이야기의 후반부에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아버지의 '곰팡이처럼 살아' 라는 느닷 없는 한 마디가 글의 주제를 짧고 강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손톱이 자라날 때>에서 담임선생님은 정작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온 미림이를 야단치려다가 그 화살을 원래 길어보이는 손톱을 가진 주인공에게 돌려 손톱 모양을 지적하며 무안을 주는 일이 일어난다. 학교와 밀착관계에 있는 부모님을 두고 있는 미림이의 배경때문에 맘 놓고 야단을 못치는 선생님을 보며 중학교 2학년생 주인공 한 유지는 위선적인 기정세대에 대한 반항심으로 손톱을 정말 길게 기르기로 결심한다. 길게 자라난 손톱은 다름 아닌 자기 보호 내지는 방어를 위한 무기 역할을 하여 실제 다른 사람의 얼굴에 상처를 내게도 하는데 이 손톱은 언제까지 그 역할을 다 해줄 것인가. 마지막에 실린 글 <고누다>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데 이름만큼 특이하고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다. 원하는 대상을 향해 '둘!'이라고 외치면 똑같은 개체 둘로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 주인공 아이 고누다. 이때 원본은 '진짜'가 되고 복사본은 '가짜'가 된다. 어느 날 이 진짜와 가짜 사이에 혼동이 오게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혼동 속에서 주인공 고누다는 결국 자기 자신 조차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을 못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자기가 속한 상황에 대한 불만과 불합리를 느끼고 벗어나고 싶어하며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지 행동으로 나타내 보인다.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반에서 제일 만만한 상대를 향해 따돌리는 행위를 하고 상처를 주고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와하는 <하얀 벽>의 조 민희, 자매간의 경쟁과 갈등이 이렇게 뿌리 깊은 흔적을 남기는구나 섬찟했던 <난 네가 되고>의 주영의 연극,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구차한 가난,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의지마저 꺾인 가족들의 무기력이었고 이것이 닦아도 닦아도 없어지지 않고 계속 퍼져나가는 곰팡이로 비유되어 그려진 <붉은 곰팡이> (왜 제목이 그냥 곰팡이가 아니라 '붉은' 곰팡이인지는 의문이다.), 누군가를 할퀴고 싶은, 할퀴어 피를 흘리게 만들고 싶은 속마음이 그저 속마음으로 감춰지는 정도를 넘어서 끝없이 자라나고 그 손톱이 결국 자신을 남들로부터 소외시키는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손톱이 자라날 때>는 참으로 특이한 발상이었다. 작가의 개성은 마지막의 <고누다>에서 절정을 이루어,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어 나중엔 어느 것이 진짜 자기의 모습인지 자기도 헷갈리게 되는 현대인들의 복잡 다단한 면을 주인공 고누다를 통해 잘 나타내고 있으며 그런 복잡한 자아가 결국 어디로 향할지를 은근히 제시하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잠시 생각해보았을까. 나의 '그' 손톱은 지금 어느만큼 자라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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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5-22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선물해주신 님, 감사드려요 ^^

이매지 2010-05-2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어쩐지 섬뜩한 느낌이 들면서 기묘한 느낌이라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

hnine 2010-05-23 04: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 책으로 제일 먼저 손이 가더라고요. 지금은 보내주신 책 중의 강 영숙 소설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읽고 있는데 이것도 재미있네요. 서평단 책 다 읽지도 않고 이 책 읽고 있어요 ^^

순오기 2010-05-23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미진...저는 창비에서 나온 '금이 간 거울'로 만난 작가네요.
2007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책이었는데...
제가 읽은 책보다 주인공들이 성장해 청소년들이군요.^^

hnine 2010-05-23 07:56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은 이 작가를 아시는구나~ 작가 소개에 나오더라고요 '금이 간 거울'이요. 미스터리 기법이 들어간 동화로 주목받았다더군요.

순오기 2010-05-24 00:30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책들을 다 리뷰하지 못해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내기 전에 올리는데 집에 있는 책은 언제라도 올릴 수 있다 생각하니~ 잘 안되더라고요.ㅜㅜ
금이 간 거울엔 다섯 편의 중단편이 실렸는데, 2007년 6월 1일에 봤다고 속지에 써 놓았네요.^^

같은하늘 2010-05-25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를 그냥 봤을때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손톱이 자란거라니 섬찟하네요.
전 <손톱이 자라날 때>를 보고 울컥했어요. 제가 손톱 모양이 길어서 고등학교시절 시험끝나고 용의검사할 때 일부러 손톱 안깎았다고 무지하게 혼난 기억이 있거든요.ㅜㅜ 선생님들이 항상 참 좋았는데 유독 그 선생님과 전 인연이 아니었나봐요.

hnine 2010-05-25 07:22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인데 손톱 안 깎았다는 것이 그렇게 야단맞을 일인지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으시군요.
이 책을 읽다보니 요즘 중학생들의 대화 장면, 교실 풍경이 보이는 듯 했어요.

같은하늘 2010-05-27 03:05   좋아요 0 | URL
그게 정말 손톱을 안깎은거면 혼나도 억울하지 않은데 제가 손톱 모양이 길어서 오해를 받았기에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요. 그 선생님과 저는 1년 동안 악연이었어요. ㅜㅜ

hnine 2010-05-27 04:28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나오는 경우랑 같네요. 주인공 손톱이 원래 그런 모양인데 선생님은 무안을 주시지요.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런 손톱 모양, 예쁘겠네요. 저는 손톱 모양 정말 안 예쁘거든요.
 

 

부처님 오신 날. 
 
혼자 동학사에 갔다. 

108배를 하고 왔다.

 ......
 

 



 

 

 

 

 

 

 

 

 

 

 

 



 

 

 

 

 

 

 

 

 

 

 

절에 가서 등을 다는 것은 오늘 처음 해보았다.
등 접수하는 곳에서 스님께 얼마냐고 여쭸더니 웃으시면서 마음대로 내라신다.
 

 



 

 

 

 

 

 

 

 

 

 

 



 

 

 

 

 

 

 

 

 

 

 

 

 

 

삼성각으로 가는 계단.
계단이란 단어 말고 더 예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던 돌계단. 올라와보라고 이끌었지만 못 올라갔다. 절하고 나니 다리가 아파서.



 

 

 

 

 

 

 

 

 

 

 관음전 담벼락의 담쟁이. 도 종환의 시 <담쟁이>가 떠올라서 담아왔다.

 (그의 시는 여기에



 

 

 

 

 

 

 

 

 

 

보이는 저 산이 '계룡산' 되겠습니다.

 



 

 

 

 

 

 

 

 

 

 

 

 

 

 

 
어라~ 이 부처님 좀 봐...

"부처님, 안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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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5-2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선명한 색상. 자연이 그대로 안겨와요. 마음의 덕을 쌓고 오셨군요.^^

hnine 2010-05-22 08:41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 정말 햇빛 짱이었지요. 푸른 신록을 맘껏 눈에 담아왔답니다.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초파일이라고 동학사 들어가는데 입장료도 안 받고 (국립공원이라 원래 입장료 받거든요), 저는 안 먹었지만 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점심 식사 대접도 하더군요.

웽스북스 2010-05-2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8배라니. 정말 대단해요. 무엇에 그리 간절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hnine 2010-05-22 00:48   좋아요 0 | URL
별로 간절할 것도 없었어요. 그래도 절을 하는 동안엔 뭔가를 마음 속으로 빌어볼까 했는데 이상하게 절을 하는 동안엔 절을 하는 행위에만 신경이 갈 뿐 머리 속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108배 정도는 누구든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3,000배 하시는 분들도 계신걸요 ^^

프레이야 2010-05-2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등에 어떤 소망을 담아 띄우고 오셨어요?
혼자 가셔서 백팔배를 하시구요.^^
담쟁이 사진 특히 마음에 들어요.

hnine 2010-05-22 00:50   좋아요 0 | URL
연등에는 그냥 가족 이름과 사는 곳만 적어 넣었어요.
오늘은 그게 한번 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담쟁이 사진, 초록과 회색이 은근히 잘 어울리는 것 같지요?

비로그인 2010-05-22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학사..
제 고향이랑 가까운 곳이지욥. 차로 30분 거리인데 어릴적엔 가끔 버스타고도 가곤 했는데 혼자 나와살면서부터는 잘 가지 않게 되네요..

가끔 올리시는 사진보면, 가끔 가던 생각이며 가서 보던 그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

hnine 2010-05-22 00:52   좋아요 0 | URL
동학사에서 가까운 곳이 고향이시군요.
지금 제가 사는 곳에서 차로 운전해서 가면 3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인데 오늘은 버스 갈아타면서 갔더니 시간이 꽤 걸리더군요. 도로가 어찌나 막히던지.
동학사는 아마 횟수로 제가 가장 많이 간 절일 것 같네요.

순오기 2010-05-22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도 멋지고, 홀로 이런 저런 생각하셨을 님의 시간은 더 좋았을 듯...
마지막 사진과 멘트~~~~~~~~~ 짱!^^

hnine 2010-05-22 06: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꾸벅~ ^^

세실 2010-05-22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홍색 연등이 참 예뻐요.
성당에 다니기는 하지만 부처님 오신날은 절에 가고 싶다는 생각하는데 그저 생각에 그치더라구요.
저는 친정나들이 다녀왔습니다.

hnine 2010-05-23 04:54   좋아요 0 | URL
부처님 오신 날엔 절에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점심 무료 공양 때문인가? ^^ 늦게 온 사람들에게도 모두 점심을 대접하더라고요 '다음엔 좀 일찍 오세요~' 하면서요.

bookJourney 2010-05-2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께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도 참 곱게 담아내시네요. hnine님의 고운 마음이 담겨서일까요? ^^

hnine 2010-05-23 04:56   좋아요 0 | URL
책세상님께서 그렇게 봐주시기 때문이지요 ^^
마음에 아무 걱정 근심 없을 때보다 오히려 기분이 좀 가라앉아 있을때 평소에 무심히 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올 경우가 많더라고요.

꿈꾸는섬 2010-05-2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대단하세요. 108배...
연등도 달고 내려오셨군요.^^

hnine 2010-05-23 04:54   좋아요 0 | URL
108배 별로 어렵지 않아요. 그나 저나 현수가 아파서 어째요...

같은하늘 2010-05-25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8배를 하시면서 어떤 간절한 소원을 비셨을까요?
혼자서 그렇게 다녀오실 수 있다니 부럽네요.^^

hnine 2010-05-25 07:23   좋아요 0 | URL
몸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사실 혼자 못 갈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동학사는 저희 집에서 그리 멀지 않고 아이는 마침 다른 곳에 갔었고요 ^^

미즈행복 2010-05-25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참 잘 찍으시는 것 같아요. 무심히 넘기기 쉬운 것을 잘 포착하신달까요? 여튼 님의 사진을 보면 매일 보던 것도 달라보여요. 꽃 한송이, 나뭇잎 한 잎도요. 일상이 더이상 일상이 아니게 느껴져요. 동학사에 가실 수 있는 게 넘 부러운 하루입니다...

2010-05-25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담쟁이 2010-05-2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칠팔년 전 대전에 갔다가 잠깐 들렸었는데..
그때 대전이 한창 지하철 공사중이라 굉장히 번잡했던 기억이 나요.
버스 타고 가는 길이 재밌었던 기억도 ㅎㅎ

그땐 동학사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네요.
hnine님 사진이 동학사의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하시는 듯~
오래된 돌 담벼락의 담쟁이가 젤 맘에 들어요^^

hnine 2010-05-25 13:32   좋아요 0 | URL
칠팔년전이라면 저도 지금처럼 대전에 살때는 아니지만 친척 결혼식 참석하느라 왔다가 말씀하신 것처럼 지하철 공사판 목격한 기억이 나요.
저, 가슴뭉클님의 사진 팬인데, 님께서 보잘 것 없는 제 사진에 대해 말씀해주시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지네요 ^^ 아무튼 감사합니다, 꾸벅~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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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부터 우리 귀에 익은 산티아고.
산티아고를 제목에 담고 있는 책이 이미 수 십권 나와있고, 그 중 내가 읽은 책만 해도 이 책이 세권 째이다. 이 책은 저자의 지명도와 한번 보면 오랫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표지때문에 단연 돋보였다.  걷는 사람의 그림자 사진과 벽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 사진이 합성되어, 제목이 표지 속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고 책 속 페이지에도 군데 군데 노란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어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서영은이라는 작가. 한국 문학계의 거봉이라 할 수 있는 김 동리 작가의 세 번째 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김 동리 작가가 투병중이던 때, 김 동리 작가의 자제들과 서 영은 작가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서였다. 김 동리 작가가 타계한 후에도 재산권 문제를 둘러싼 가족 간의 불화설 기사가 몇 번 신문 지상에 올랐었다. 이 책에도 고달팠던 그 시기에 대한 얘기가 군데 군데 언급되지만 아마도 언급된 횟수와 정도 이상으로 그 시기를 거쳐 오는 동안, 또 그 이후로 저자가 받은 영향은 엄청났으리라 짐작된다.
글은 말할 수 없이 유려하다. 요즘의 젊은 작가들의 글에서 느껴지지 않는 연륜과 깊이, 성찰이 들어가 있지 않은 페이지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날이 서 있는 그녀의 특별한 감성때문일까. 산티아고로의 출발부터 여행 내내 계속된 동행한 파트너와의 갈등, 불편함, 그것을 또 혼자 속으로 삭이고 극복해가는 그녀의 심정의 기록들이 단순히 여행 기간동안의 그녀의 경험이 아니라 그것 너머로까지 확장, 해석 되어 읽는 내 마음에까지 그 고단함이 전해지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느닷없이 모든 일상적인 것을 뒤로 하고 산티아고를 향하여 길을 나서는 것일까. 그 곳이 꼭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되리라. 걷는 동안 우리의 뇌와 마음은 멈춰 있을 때와 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한 자리에 머물면서 하나의 풍경만 보며 한가지 생각에 머무는 것과, 몸을 움직이면서 계속 바뀌는 시야를 경험하며 하는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지나보다. 낯선 풍경, 처음 마주치는 상황, 처음 걷는 길, 이런 것들이 곧 생각의 전환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마인드 오프너 (mind opener) 역할을 해주는 것이겠지. 산티아고가 따로 있나, 하루 하루 이어가는 나의 이 삶의 행보가 곧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라던 예전의 생각에 변화가 왔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그 자리를 제대로 보기란 힘든 법. 길을 떠나 걷고 싶다. 걷기란 온몸으로 하는 기도이고 두발로 추구하는 선이라고, 제주 걷기 여행의 저자 서명숙 님도 쓰지 않았던가.
얼마나 극복하기 힘든 삶이었을까. 죽고만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여기 저기 고개를 돌릴 때마다 죽음만 생각났 다는 저자의 고백이 처절하다. 마음 속에서 커져만 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성때문에 너무나 괴로왔다는 그녀는 산티아고로의 여행 도중 눈이 뜨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고 마음의 개기일식을 맞는다. 이미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그녀가 경험한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짐작으로 헤아릴 수 밖에 없으면서도 부럽기도 하다.
여행하는 동안 아주 작은 부피의 짐 조차도 하나씩 내려 놓아야 했던 여정처럼, 글 조차도 아주 솔직하게, 다 내려놓는 기분으로 쓰여졌다는 느낌이 오는 이 책.
마지막 문장이 '기쁘고 행복하다'. 책의 시작과 얼마나 다른가. 그렇게 기쁘고 행복하게 마쳐져서 다행이다. 하지만 그 기쁘고 행복함을 얻기 까지 그녀의 피흘림과 고통을 생각하면 그냥 부러워할수만은 없다.
모든 고통 뒤에 그런 결말이 올 수 있다면 누구든지 기꺼이 그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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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란  

한쪽 뺨을 세게 얻어 맞고도 다시 맞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사람. 

 

 

  

 

'마이 시스터즈 키퍼'에 나오는 문구에서 인용했다.
이 세상의 엄마들이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오늘도 걸으며
혼자서 눈물 훔치는 모든 엄마들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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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5-2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래대라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이 말의 깊이를 엄마가 되보지 않고서야 어찌 알겠습니까?ㅜ

hnine 2010-05-20 13:53   좋아요 0 | URL
예수님이나 가능할 일을, 엄마가 되고 보니 해야할 때가 참 많더군요. 쉬울리가 없지요...ㅠㅠ

세실 2010-05-20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지요.
5남매 무탈하게 키우신 저희 엄마가 존경스럽습니다.

hnine 2010-05-21 00:30   좋아요 0 | URL
다섯 남매이시군요. 세실님의 부모님, 정말 존경받으실만 합니다. 다섯 남매분들 키우시면서 참아야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으셨을까요. 그래도 지금은 든든하시겠지요?

bookJourney 2010-05-21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hnine 2010-05-21 18:29   좋아요 0 | URL
저는...한쪽 뺨 맞고는 다시 맞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기 보다는 화가 나서 두배로 갚아주려고 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랍니다 ㅠㅠ
 

 

여름같은 날씨.
아이 데리고 일주일에 하루 가는 피아노 레슨 가려고 집을 나서다가 오늘이 마침 스승의 날이라는 게 퍼뜩 생각나서 아이 손으로 감사 카드를 쓰게 했다. 꽃이라도 한 송이 사드리고 싶었는데 시간도 없고 가는 동안 꽃 파는 곳도 눈에 안 띄길래 그냥 카드만 드렸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내년엔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겠다 

레슨 마치고, 피아노 선생님께서 벌써부터 가보라고 추천해주셨던 음악회에 갔다. 청소년 음악회라고 이름이 붙어 있지만 8세 이상이면 입장 가능하여 객석에 아이들이 꽤 많았다. 지휘자가 따로 없고 대신 리더 연주자만 있는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분위기를 보니 바이올린 하는 서울대 이 경선 교수가 그 리더 연주자인 것으로 보였다. 귀에 익숙한 곡들을 그림책 영상과 함께 연주하는, 나름 신경은 쓴 기획 공연인데 나레이터가 읽어주는 동화의 내용이 너무 뻔한 내용인데다가 뒤에 영상으로 보여주는 그림책의 그림도 그다지 보는 사람의 주목을 끌 정도가 아니었고 촛점도 잘 안 맞아 큰 효과는 없어 보었다. 솔직히 약간 지루한 감마저 있었는데 아이도 그랬는지 가지고 온 책을 꺼내어 그 컴컴한 데서 읽으려고 하길래 주의를 주어야했다.

  

 

 공연장 내에는 'The sound of music' 이라는 이름의 크지 않은 음반 매장이 있다. 거길 들어가보자고 한다. 주로 클래식 음반을 파는 곳인데 둘러보며 이것 저것 꺼내어 살펴 보는 아이의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아일랜드 음악 CD를 빼서 들고 오더니 그걸 사고 싶단다. 응???
일단 후보로 하고 한번 더 둘러보며 사고 싶은 것이 있는지 보라고 했다.
조금 있으니 큼지막한 케이스의 아래 상품을 들고 오길래 이거 혹시 DVD인가? 아니면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지레 겁을 먹고 보았더니 CD두개가 세트로 들어있는 뮤지컬 노래 모음집 CD인데 가격이 20,000 원이 채 안되었다. 아이가 한참 즐겨 듣던 Mammamia 노래의 영향으로 아마 표지의 Mammamia 포스터를 보고 이 CD도 고르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엄마는 여기 표지에 있는 이것들 다 봤다~" (우리가 산 것과 아래 사진의 표지가 약간 다르다. 우리가 산 CD 표지에는 AIDA대신에 미스 사이공 포스터가 그려져 있는데.)
"정말요?"
그러더니 하나 하나 이건 무슨 내용이냐 묻기 시작.

집에 와서 제일 먼저 틀어준 음악은 뮤지컬이 아니라 영화로 보았던 Annie 에 나오는 노래 Tomorrow.  엄마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라고 하니 더 쫑긋해서 듣는다. 다 커서 대학생 때였음에도 수첩에 가사까지 적어가지고 다니면서 부르곤 했었다.

이 외에도 평소 귀에 익은 노래들이 잔뜩.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잘 골랐다고 했다.

 


 

 

 

 

 

 

 

 

저녁을 먹은 후엔 오늘도 어김없이 요즘 일과중 매일 거르지 않고 해야만 하는 축구를 하러 집 앞 공원에 나갔다. 남자 아이라도 어릴 때 내 남동생은 운동과는 담 쌓고 커서 몰랐는데 내 아이는 정말 아침부터 잠 잘때까지 축구 얘기만 한다. 운동에 대해서라면 종류를 막론하고 무지할 뿐 아니라 별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나인데, 자식이 뭔지. 아이와 대화가 안 통하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입한 책, 

 

 

 

 

 

 

 

어, 그런데 이 책 재미있다. 별로 집중하지 않고 페이지를 쓱 쓱 넘기면서도 배우는게 많다.
그래도 이 책 역시 주문한 나보다는 아이가 더 열심히, 자주 읽고 있긴 하다.
"여기 제목 안 보이니? '여자'들이 읽는 책이란 말야. 엄마 책이니 이리 내놔."
이보다 더 유치한 대화도 한다.
"너 박 지성 선수 좋아하지? 원래 박 씨들이 축구를 잘 하거든 (hnine의 본명은 박 xx). 게다가 엄마는 박 지성 선수랑 이름도 비슷하잖아?  (가운데 자만 다르다) "
그러면 아이 (김 씨)가 얼마나 약 올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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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5-1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아이를 약올리는 hnine님이군요!
운동에 대해서라면 종류를 막론하고 무지할 뿐 아니라 별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건, 저도 그래요. 휴..

hnine 2010-05-16 15: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운동에 관심이 없으시군요. 그런데 저를 보셨듯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상미 2010-05-1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린이 약 오를만 하다.ㅋㅋ
나 초등학교 때 울 엄마 박씨는 대통령도 하는데, <김>씨 대통령 하나 있니?
그러셨단다.ㅋㅋㅋ

hnine 2010-05-16 15:15   좋아요 0 | URL
다린이보고 급기야는 '김 다린 하지 말고 박 다린 하면 어떨까?' 그랬더니 그건 싫단다...ㅋㅋ

비로그인 2010-05-1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소개그림을 hnine님께서 그리신거군요.

ㅎ.. 오늘도 좋은 날씨입니다. 저는 더 더워지기전에 시간을 즐겨야겠습니다. 잠시 음악들으면서 태평하게 말이죠 ^^

hnine 2010-05-16 15:17   좋아요 0 | URL
무슨 사막 기후도 아니고, 낮에는 후끈하고 밤에는 쌀쌀하고, 그런 날씨네요.
전 정말 더위에는 맥을 못추는데 말이지요.
바람결님 음악 올리실때마다 냉킁 달려가 듣는답니다.

세실 2010-05-1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순진한 다린이. 김주성이 있단다.
책으로 연구까지 하시니 참으로 훌륭한 엄마십니다.

hnine 2010-05-16 15:17   좋아요 0 | URL
아, 맞아 김 주성! 있다가 알려줘야겠습니다. 정말 김 씨 중에는 유명한 축구 선수 없는 줄 알면 안되니까요 ^^

마노아 2010-05-1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소하고 예쁜 일상 이야기에요. 다린이는 안목도 좋아라. 엄마는 유머 감각이 있구요~

hnine 2010-05-16 15:19   좋아요 0 | URL
저는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아닌데 그냥 재미로 약올리기 라고나 할까요. 이제 아이가 좀 크면 그것도 안 통하겠지요.

순오기 2010-05-1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나도 지금 이 책 보고 있어요. 오늘까지 리뷰 써야 해서...
절반쯤 읽었는데 정말 재밌어요.
이 책 보고 나면 축구 좀 안다고 거들먹거려도 될 거 같죠?ㅋㅋ
다린이랑 엄마랑 알콩달콩 재밌어요.^^

hnine 2010-05-16 17:0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이 책 읽으시는군요.
우리 이 책 다 읽으면 '나, 축구 좀 아는 여자야~' 이러고 다녀볼까요? 책 제목이 재미있잖아요? ㅋㅋ

순오기 2010-05-16 23:24   좋아요 0 | URL
아아악~ '나, 축구 좀 아는 여자야~'
내가 리뷰 제목으로 쓰려고 했는데...여기 있네요.ㅋㅋ
5.18 30주년 오페라 보고 왔더니 울 아들이 컴퓨터 연결 잭을 제 방에 가져다 잠들어서 아직 못 올리고 있어요. 이따 깨어나면 가져와야 될 듯...

hnine 2010-05-16 23:5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리뷰 제목으로 쓰세요. 뭐 어때요 ^^

꿈꾸는섬 2010-05-16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스포츠를 책으로 보면서 즐기는 것도 참 재밌겠어요.^^

hnine 2010-05-16 23:54   좋아요 0 | URL
책 제목도 잘 지은 것 같아요. '축구 기본 상식' 뭐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면 아무래도 덜 호감이 가지 않았을까요?
꿈꾸는 섬님은 축구 좋아하시는지 ^^

하늘바람 2010-05-1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축구하는 여자를 구입하셨다고요? 어머나 제가 드릴걸

hnine 2010-05-17 20:5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도 그 책 갖고 계시군요.
곧 있을 월드컵을 대비해서 소장하고 있으세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

2010-05-18 0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9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0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9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zydevil 2010-05-1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요, 가운데 글자 맞추기 놀이하고 있는 저는요...^^;;

hnine 2010-05-20 07:47   좋아요 0 | URL
뭔가요, 가운데 어떤 글자가 들어가면 제일 멋진 이름이 될까 궁금해하는 저는요... ^^

같은하늘 2010-05-20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와 hnine님의 사이가 너무 좋아요.
운동엔 영 관심이 없는 저도 월드컵을 대비해 저 책을 봐둬야 옆지기와 대화가 될 듯 싶어요.ㅎㅎㅎ

hnine 2010-05-20 07:48   좋아요 0 | URL
에이, 다 아시면서... 이런 날도 있는가 하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날도 있고,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
저 책은 한권 가지고 계서도 좋을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