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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자라날 때 ㅣ 문학동네 청소년 4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방 미진. 처음 들어본 작가이지만 이 책의 제목과 표지는 본 기억이 난다. 쪼그리고 앉아있는 소녀, 턱을 괴고 있는 손의 손톱에서 나무가 자라 뻗어가고 있다. 아름답기도 하고 어딘가 섬뜩하기도 하다. 이 표지 그림을 그린 이 정웅 일러스트레이터는 최근 소설 '은교'의 표지 그림도 그렸다고 한다.
2005년 서울 신문 신춘 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작가의 다섯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모두 중학생 정도의 나이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별 이유 없이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한 아이가 어느 날 교실 벽 속으로 사라지고, 그 벽의 일부가 되어 자기를 힘들게 하던 주인공에게 소리로 신호를 보내고 말을 건다는 내용의 <하얀 벽>, 쌍동이 자매 지영이 교통 사고로 죽자 늘 지영에게 뒤쳐진다는 열등감 속에 살던 주영은 이제부터 지영으로 살아보기로 한다. 두번 째 이야기 <난 네가 되고>의 내용이다.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의<붉은 곰팡이>를 읽으면서 부터이다. 기울어지는 집안 형편때문에 반지하 집으로 갑자기 이사를 오게 되는데 이 집의 벽을 덮고 있는 곰팡이. 이 곰팡이 속에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이야기의 후반부에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아버지의 '곰팡이처럼 살아' 라는 느닷 없는 한 마디가 글의 주제를 짧고 강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손톱이 자라날 때>에서 담임선생님은 정작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온 미림이를 야단치려다가 그 화살을 원래 길어보이는 손톱을 가진 주인공에게 돌려 손톱 모양을 지적하며 무안을 주는 일이 일어난다. 학교와 밀착관계에 있는 부모님을 두고 있는 미림이의 배경때문에 맘 놓고 야단을 못치는 선생님을 보며 중학교 2학년생 주인공 한 유지는 위선적인 기정세대에 대한 반항심으로 손톱을 정말 길게 기르기로 결심한다. 길게 자라난 손톱은 다름 아닌 자기 보호 내지는 방어를 위한 무기 역할을 하여 실제 다른 사람의 얼굴에 상처를 내게도 하는데 이 손톱은 언제까지 그 역할을 다 해줄 것인가. 마지막에 실린 글 <고누다>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데 이름만큼 특이하고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다. 원하는 대상을 향해 '둘!'이라고 외치면 똑같은 개체 둘로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 주인공 아이 고누다. 이때 원본은 '진짜'가 되고 복사본은 '가짜'가 된다. 어느 날 이 진짜와 가짜 사이에 혼동이 오게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혼동 속에서 주인공 고누다는 결국 자기 자신 조차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을 못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자기가 속한 상황에 대한 불만과 불합리를 느끼고 벗어나고 싶어하며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지 행동으로 나타내 보인다.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반에서 제일 만만한 상대를 향해 따돌리는 행위를 하고 상처를 주고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와하는 <하얀 벽>의 조 민희, 자매간의 경쟁과 갈등이 이렇게 뿌리 깊은 흔적을 남기는구나 섬찟했던 <난 네가 되고>의 주영의 연극,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구차한 가난,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의지마저 꺾인 가족들의 무기력이었고 이것이 닦아도 닦아도 없어지지 않고 계속 퍼져나가는 곰팡이로 비유되어 그려진 <붉은 곰팡이> (왜 제목이 그냥 곰팡이가 아니라 '붉은' 곰팡이인지는 의문이다.), 누군가를 할퀴고 싶은, 할퀴어 피를 흘리게 만들고 싶은 속마음이 그저 속마음으로 감춰지는 정도를 넘어서 끝없이 자라나고 그 손톱이 결국 자신을 남들로부터 소외시키는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손톱이 자라날 때>는 참으로 특이한 발상이었다. 작가의 개성은 마지막의 <고누다>에서 절정을 이루어,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어 나중엔 어느 것이 진짜 자기의 모습인지 자기도 헷갈리게 되는 현대인들의 복잡 다단한 면을 주인공 고누다를 통해 잘 나타내고 있으며 그런 복잡한 자아가 결국 어디로 향할지를 은근히 제시하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잠시 생각해보았을까. 나의 '그' 손톱은 지금 어느만큼 자라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