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배신 - 무심코 차린 한식 밥상이 우리 가족 수명을 단축시킨다!
이미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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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한식을 먹지 말자는 내용의 책이 아닐까 단정하면 실수이다. 다 좋지 않으면 다 나쁘다고 단정짓기 좋아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감정적 경향은 서구화된 식사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한식이 가장 이상적이고 지향해야할 식단이라는 것으로 마무리짓는게 대부분이고 그런 정보에 접하다 보면 무의식중에 그렇게 받아들이게 하여 한식은 무결점 식단인 것으로 착각하기 쉬움을 일깨우는 책이다. 책 표지에 밥상 사진을 거꾸로 배치한 것은 제목의 '배신'이란 낱말과 같은 맥을 보여주고자 함일것이다.

소제목만 봐도 내용은 짐작이 될터이지만 내용을 읽어봐야 그 이유까지 이해가 된다.

 

-발효음식의 위험성은 단백질을 함유한 식품이 부패하거나 발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바이오제닉아민에서 유래한다.

 

-김치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약점이 있다. 김치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소금, 고춧가루, 젓갈이다. 매끼 김치를 먹는다면 김치만으로도 WHO 하루 나트륨 권장량인 2,000mg을 훌쩍 넘는다. 젓갈이 많이 들어간 김치는 익어가면서 니트로사민이라는 발암물질을 만들어낸다. 젓갈류에 많이 들어 있는 바이오제닉아민이 김치의 발효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김치의 발효 온도도 니트로사민의 생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김치를 발효시킬 때 실온보다는 0~4˚C 에서 보관하면서 시키는게 좋다. 적당히 익은 김치는 니트로사민이 거의 들어 있지 않지만 익어가면서 점점 증가해서 지나치게 익은 신김치는 니트로사민이 고농도로 검출된다.

 

-재래된장은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미생물 균종의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고 공기 중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방법으로 만든 재래된장의 경우 바이오제닉아민 중에서도 위험성이 높은 히스타민(Histamine)이 최고 925mg/kg, 티라민 (Tyramine)은 1,430mg/kg 들어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에서 '밥'은 식생활 전체를 의미한다. 쌀에 대한 집착, 밥에 대한 집착이 더해져 '쌀(혹은 쌀밥)이 최고'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하얀 쌀밥 위주의 식사는 탄수화물 과잉을 부르기도 하는데 비만이나 고지혈증의 상당부분은 탄수화물이 복병이다. 기름기 있는 음식을 즐겨 먹지도 않았는데 살이 쪘다거나 고지혈증이 나타난다면 범인은 바로 탄수화물이다.

 

-고혈압 최대의 적은 나트륨 즉 소금이다. 따라서 장아찌, 젓갈 등의 짠 음식을 피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염분을 과잉 섭취하게 되는 이유는 짠 음식이 아니라 바로 국물 요리에 있다. 밥과 함께 공식적으로 따라 붙는 '국'. 맹물이 국맛이 되기까지 투여되는 염분을 매끼 빼놓지 않고 먹는 것이 우리 나라 고혈압의 일등 공신이다.

 

-MSG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그것이 몸에 안좋다는 것은 대부분 다 알고 있다. 남녀노소 할것 없이 모든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 MSG, 즉 mono sodium glutamate (L-글루탐산 나트륨)는 '감칠 맛'이라고 하는 향미증진제의 일종으로서 중독성이 있어 한번 이 맛에 길들여지면 음식에서 이것이 빠지면 뭔가 허전하고 맛이 밍밍하다고 느끼게 된다. MSG가 몸에 안좋다는 것이 여기저기서 알려지고 나니 식품회사에서는 'MSG 무첨가'제품을 만들어팔면서 이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이것이 곧 '향미증진제 무첨가'를 뜻하진 않는다. MSG 대신 그와 비슷한 다른 종류의 향미증진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MSG대신 들어가는 향미증진제는 100퍼센트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국내용으로는 MSG무첨가 라면을 판매하는 한 라면회사에서 미국 수출용으로는 MSG가 들어간 제품을 만든다고 하는데 MSG무첨가 라면에 들어 있는 MSG대체 향미증진제를 미국에서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채소를 보관하기 위해 소금에 절이는 방법외에 전통적으로 많이 쓰는 방법으로 말리는 방법이 있는데, 말리는 것 보다 영양소를 더 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살짝 데친 후 물기를 제거하고 냉동실에 보관하는 것이다.

 

-과일과 채소의 구분을 가지고 왈가왈부해본 경험이 많을 것이다. 나도 어느 자리에서 토마토가 채소냐 과일이냐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 받은 적이 있다. 단 맛이 나지 않는 것을 채소라고 보면 쉽게 구별이 간다고 했더니 뭘 모르고 말한다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무안했었는데 이 책에 마침 그것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에 옮겨본다. 식물학적인 분류에 의하면 토마토는 분명 과일이다. 씨를 품고 있는 육질이기 때문이다. 원예학적으로는 나무식물의 열매만을 과일로 인정하고 줄기식물의 열매를 과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토마토는 채소가 된다. 식품학에서는 열매 중에서도 당분의 함량이 높은 것은 과일, 당분함량이 낮은 것은 채소로 분류하고 특별히 이런 채소를 과채류라고 분류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토마토는 과채류에 속하게 된다.

 

-전통이라는 이름에 약한 한국인의 습성에 상업주의가 더해져서 전통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복분자주, 막걸리등이 과대포장되고 있다. 복분자는 정력에 좋은 술로 유명하고 막걸리는 암을 예방한다고 떠들어대는데 알콜은 그 자체가 성기능을 약화시키고 암을 유발하는 작용을 한다. 복분자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건 간에 복분자주가 되어 알콜이 들어있는 한 정력에 좋을 수가 없다. 또 막걸리 속에 항암 성분이 미량 들어있다고 해도 어차피 발암물질인 알콜이 들어 있는 술인데 암을 예방한다니 말이 안 된다. 아무리 인삼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술이라도 약이 될 수는 없다.

 

이 밖에도 한식 차림의 공간전개형이라는 특징도 상을 차려본 사람은 공감을 할 것이다. 음식의 낭비를 초래하고 과식의 가능성이 있으며 음식마다 차게 먹는 것,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 것등의 차별화를 하기 힘들다. 공간전개형이 아닌 시간전개형으로 개선해보는 것도 생각해볼 만 하다. 하루 세끼를 꼭 '밥'으로 해야한다는 맹신, 국과 밥의 공식화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올바른 식생활 정보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썼고 한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바탕으로 더 건강한 한식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혹독한 자아비판이라는 각오로 썼다고 한다.

혼자 끼니를 해결하며 살때 나 역시 일년에 밥을 직접 해먹은 날이 열흘도 안되었다. 하지만 내가 식탁을 책임져야할 가족이 있는 지금은 다르다. 무엇을 입고 무엇을 보고 어디에 살고 이것보다도, 우리 몸 속으로 들어가 몸의 일부가 되는 식생활은 건강과 직결되고 그 책임을 내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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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4-01-08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정리해주셔서 마치 책 한 권을 공들이지 않고 읽은 것 같아요.고기도 즐겨 먹지 않는 제가 왜 고지혈증인가 했더니 역시 쌀밥이 문제였어요. 그런데 뭘 먹지요? ...채소를 살짝 데친 후 물기를 제거하고 냉동실에 보관하는 방법은 좋은데 공간이 문제가 되어요. 냉동고가 따로 있으면 좋겠지만요. 역시 엄마로서의 책임이 무거워지네요.

hnine 2014-01-08 10:06   좋아요 0 | URL
nama님, 저도 고기, 술 안먹는 고지혈증이랍니다 ^^ 운동하고 식습관 고쳐서 콜레스테롤 떨어뜨려놓았어요.
이 책 읽을만 했어요. 쉽게 써있어서 한나절에 다 읽었지요. 밥상 차리는 것도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편하면 편한 댓가를 치르고, 좀 더 수고하면 수고한 댓가를 받는 것 같아요.

2014-01-08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8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4-01-0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쌀'을 먹을 적에도 '씨눈'을 깎은 흰쌀을 먹느냐와 씨눈이 살아서 숨쉬는 누런쌀을 먹느냐도 크게 다르지요.
김치는 한겨레가 두루 먹은 지 아직 100년도 안 되는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예요.
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참 드물지요.
예전에는 으레 '버무리'나 '범벅'을 먹었고 '짠지'를 먹었어요.
무엇보다, 날푸성귀와 날나물을 먹고 풀죽을 먹고 풀국을 먹었지요.

옛날 사람들은 소금 얻기가 힘들어 소금을 쉬 못 먹었지만
오늘날 국이나 반찬에는 소금도 고추장도 간장도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요.

이런저런 대목을 잘 짚은 책이라면
여러모로 요즈음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hnine 2014-01-08 15:32   좋아요 0 | URL
현미가 백미에 비해 영양소가 살아있긴 하지만 쌀은 쌀이니까요. 뭐든 한가지에만 집착하면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김치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왜그리 김치 없으면 밥을 못먹는다고 생각할까요. 양념이 자꾸 강해져가는건 비단 김치뿐 아니고요.
날채소가 익힌 것 보다 모두 좋은 것도 아니랍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밥상이라고 해서 예전에 병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요.
함께살기님도 직접 밥상을 차리시니까 잘 아시겠지요. 올려주시는 사진 보면 함께살기님 댁 반찬에는 간이 많이 들어가있는 음식은 없어보여요.

섬사이 2014-01-0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치에 젓갈을 거의 넣지 않거든요.
그런데... 재작년 김장김치를 시댁에 좀 가져다 드렸더니
시아버님 말씀이.. "김치에 들어간 게 없어서 맛이 없다"고 하셔서
상처를 조금 받았더랬어요. ㅎㅎ
사실은 배추가 무르고 안좋아서 그랬던 건데 말이에요.

암튼 요즘은 김장할 때는 새우젓만 넣는 걸로 결정을 보았는데
나인님 페이퍼를 읽고 나니 그마저도 관둘까, 다시 고민하게 되네요.

국과 찌개는.. 나이들수록 더 좋아지니.. 그것도 문제예요. ㅠㅠ

hnine 2014-01-09 20:26   좋아요 0 | URL
전 그나마 새우젓도 안넣고 까나리액젓만 넣는걸요. 저도 아직 시도해보진 않았는데 젓갈대신 청각이나 갓 등을 넣으면 김치 맛이 한 급수 높아진다고 하더군요.
국과 찌개는 저는 없어도 먹는데 남편때문에 끓여요. 찌개보다는 국으로요. 찌개가 아무래도 염도가 더 높을테니까요.
밖에서 사먹는 횟수만 줄여도 안심 밥상인거죠. 밥 차리는 우리가 힘들어서 그렇지...^^

비로그인 2014-01-0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요.. 나인님.. ~~

"전통이라는 이름에 약한 한국인의 습성에 상업주의가 더해져서 전통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복분자주, 막걸리등이 과대포장되고 있다. 복분자는 정력에 좋은 술로 유명하고 막걸리는 암을 예방한다고 떠들어대는데 알콜은 그 자체가 성기능을 약화시키고 암을 유발하는 작용을 한다. 복분자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건 간에 복분자주가 되어 알콜이 들어있는 한 정력에 좋을 수가 없다. 또 막걸리 속에 항암 성분이 미량 들어있다고 해도 어차피 발암물질인 알콜이 들어 있는 술인데 암을 예방한다니 말이 안 된다. 아무리 인삼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술이라도 약이 될 수는 없다"

라고 쓰신 이 부분이요..
ㅠㅠ 그럼 인삼주도 마찬가지겠어요 ㅠㅠ


그렇군요... ㅠㅠ 그나마 술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좀 더 나은 정도.. 차선책 정도 일까요? ㅠㅠ

hnine 2014-01-09 20:27   좋아요 0 | URL
가끔 마시는거야 뭐 어떻겠어요. 이래 저래 이유 붙이면서 너무 자주 마시는게 문제겠지요.
새벽숲길님, 술 좋아하세요?? ^^

비로그인 2014-01-10 14:31   좋아요 0 | URL
네.. 아주 많이요 ^^

겨울이 이러다 갈 것 같아요.. 계시는 대전은 좀 나으신지 모르겠어요.
서울은 추워요.. 나인님~~^^

한 달 지나면 2월인데 2월지나면 또 봄.. 그러겠죠?
건강하시고 글로 또 뵐께요~~

hnine 2014-01-10 16:13   좋아요 0 | URL
전 지금까지 술 먹어본 기억이 두번 있는데 두번 모두 대형 사고 직전까지 갔었던지라 (ㅋㅋ) 정 떨어졌는지 이후로 술 안마시고 있어요. 그래서 사회생활에 문제가 많지요 ㅠㅠ
오늘 여기도 많이 춥네요. 그래도 작년 추위에 비하면 올 겨울은 아직까지 큰 추위 없다 했는데 이제 시작하려는지. 2월만 해도 어감이 벌써 다르지요? 봄이 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이 겨울 건강하게! 좋습니다.

세실 2014-01-12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미도 쌀이니 과하면 좋지 않은거군요^^
가끔 김치의 염분도 과하겠구나 생각했는데.......소식이 제일 중요하겠죠?

hnine 2014-01-14 11:28   좋아요 0 | URL
김치나 젓갈의 염분보다 매일, 매끼니 먹는 국이 제일 큰 몫을 한다는 것을 읽고 저도 밥 먹으며 식구들에게 얘기해주었답니다. 제 친정어머니께서 예전부터 국을 안드시는 습관이 있는데 그래서 건강하신가 생각도 들고요. 맛없는 음식 소식하는건 쉬운데, 맛있는 음식, 내가 좋아하는 음식 소식하기란 너무 힘들어요 ㅠㅠ

icaru 2014-01-1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유익한 리뷰 흐흐..
토마토의 효능이랄까, 위대함을 재인지합니다. 과일과 채소의 장점을 모두 취한 과채류일테니까요~

hnine 2014-01-18 19:42   좋아요 0 | URL
제가 다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우리나라만 토마토를 주로 과일로 먹는 것 같더라고요. 다른 나라에선 과일로서보다는 다른 채소처럼 요리재료로 주로 사용하는 걸 많이 봤어요. 어떻게 먹든 토마토가 몸에 좋은건 다 알려진 사실이니까요.
이 책 한번 읽어보실만 해요.

yamoo 2014-01-2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유익하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 책 안 사도 될 정도에요~ㅎ
저...이 리뷰로 이 책을 읽은 것으로 하겠어요!

hnine 2014-01-26 04:55   좋아요 0 | URL
리뷰레 포함시키지 못한 내용도 많아요. 기회 되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몸의 상상력과 동화 - 유영진평론집
유영진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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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 잡지를 보면 한 호에 한꼭지 정도 평론이 실리곤 한다. 그렇게 읽은 것을 제외하고 어린이문학 평론집으로 따로 나온 책은 이책 이전에 두어권 더 읽은 것 같다. 그래도 어린이문학에 대한 궁금증 몇가지는 늘 남기 마련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대부분의 궁금증이 말끔히 풀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평론집이라고 하면 어려운 단어, 문체,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의 향연이 펼쳐질 걸 예상하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으면서 날카로운 지적과 발견이 유감없이 드러나 있어서 감탄하며 읽었다.

저자가 말하는 평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찾아보았다.

어른문학 평론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문학 평론 역시 텍스트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한계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포착하여 텍스트의 의미를 풍부하게 한다. (17쪽)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일이라. 잘못된 곳을 포착한다는 말보다 좋다. 이런 자세면 더 좋을 것 같다. 평론은 작품에 등급 매기기가 목적이 아니며 더구나 어린이문학의 경우 학부모로 하여금 책 골라주기라는 부모의 욕망과 결합될 위험도 있다.

아이들은 세상을 몸으로 익혀가는 존재, 몸으로 부딪히고 몸을 통해 깨닫고 몸으로 쓰는 존재가 아이들이어서, 살아있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그려놓은 선을 따라 움직이다가도 어느 순간 몸에 내재된 원초적 생명력으로 도식을 훌쩍 뒤어넘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21쪽). 따라서 책 제목 속의 '몸'이란,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들은 어른의 눈과 잣대가 아니라 실제 삶의 현장 속에 살아있는 아이들의 몸과 몸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써나가야 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의 문장을 보면 무엇을 주의하여야 하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

현실의 아이들이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어른이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마치 아이들 삶의 전부인 양 그려진다. 작품 속 아이는 살아 있는 아이가 아니라 교화와 교육의 대상으로 연출된 종이 인형일 뿐이다. (29쪽)

이 속에 혹시 우리가 '동화'라고 하며 연상하는 것이 들어있지 않은지. 그것이 바로 '동화'를 쓰는 사람들이 경계해야할 사항인 것이다.

어떤 동화가 좋은 동화인가에 대해 말하는 장에서 저자는 왜 신화 모티프가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어린이문학 작품들이 신화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이때 건국 신화가 신화의 원형은 아니며 그 이전의 더 원초적인 신화가 있다는 것을 말한 대목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군 신화나 주몽 신화는 신화가 처음 만들어 질 때의 모습, 즉 원형적 모습이 아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신화들은 대부분 국가가 형성된 뒤 체제의 정당성과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창조된 것들이다. 국가, 즉 지배와 종속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초기 채취 수렵민들에게 건국 신화 따위는 필요도 없고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60쪽)

 

지배권력은 하늘에서 난 것이라는 이념을 보여주는 건국신화와 달리 국가 형성 이전의 원형적 신화는 이렇게 인간과 자연 간의 소박하지만 평등하고 깊이 있는 생태적 철학을 보여준다. (61쪽)

 

좋은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을 요구하고 신화와 민담은 이런 타자의 관점이 생생히 담겨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박물관에는 시대적 한계나 지배이념의 먼지를 털어내야만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전시품들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덧붙인다. (79쪽) 우리 나라 작가 중 '임정자' 작가의 작품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그녀의 작품에서 이런 예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건 동화라기 보다 '소설'이네."

이런 말을 종종 들으며 궁금했었다. 동화와 소설의 차이가 무엇일까. 누군가 대답을 해주었겠지만 시원하게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나중에 책에서 그것에 대해 말해놓은 부분을 읽기도 했지만 역시 시원하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통일된 기준이 없음만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더 이상 혼동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동화와 소설을 구분하는 여러 사람의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첫번째, 이원수 작가는 동화는 '공상성'을 특징으로 하며 추상적 공상적 줄거리에 치중하는 반면 정경, 심리등의 디테일 묘사가 없다고 보았다. 반면 아동 생활에서 취재하여 현실 상황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라면 이름을 동화라고 붙인다 해도 그건 단편 소설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동화라고 하면 '환상적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고, 여기서 출발하여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모든 서사물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그 개념이 많은 혼란을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원수의 뒤를 이어 이오덕은 아예 '소설'이란 말을 쓰지 않았으며 대신 공상동화와 생활동화로, 혹은 독자의 나이에 따라 유아동화, 유년동화, 소년동화로 나누었다.

2000년대 이르러 동화의 현실 외면 또는 도피적 성격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동화의 개념도 논쟁의 대상이 된다. 이중 원종찬은 독자 연령과 창작 방법을 축으로 하여 구분하였다. 이재복은 동화와 아동소설로 선명하게 구분하지 않는 대신 '소설정신'이란 말과 '동화정신'이란 말을 즐겨 사용한다. 김상욱은 그 어느것도 아닌 리얼리즘과 판타지로 구분한다.

저자는 이 장의 끝머리에 안델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예로 들어 동화적 결말과 소설적 결말의 예시를 보여주었다. 

제일 마음에 것은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소설이지만 동화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작품이 있고 동화지만 소설적 세계관이 승한 작품이 있다.

동화와 소설 사이에 얼마나 먼 거리가 있을까? 그 사이에 흐르는 강은 얼마나 깊고 넓을까? 내가 보고 있는 이 강은 그저 신기루에 불과할까? (110쪽)

 

임정자의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에 대한 평 속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이렇게 어린 시절은 어른이 되기 위해 '지나가는' 기간이 아니라 기억을 '축적하는' 기간이다. 어른이 되어가며 부딪힐 수밖에 없는 여러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 위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유년기 기억일지라도 그 속에서 꿈과 희망을 찾아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유년기 특징 중의 하나는 아무 걱정 없이 '놀기 위해 논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어린이일지라도, 잠시의 여유가 주어지면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아무 걱정 없이 즐겁게 놀 수 있다. 마치 내일이라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하지만 어른은 결코 어린이처럼 놀지 못한다. 어른들의 놀이는 그저 삶의 무게를 잠시라도 잊기 위한 도피일 뿐이다. 놀기 위해 노는 것이 아니라 어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혹은 내일 닥쳐올 걱정거리들을 잠시 잊기 위해 '노는 척'할 뿐이다. (130쪽)

아이들이 무엇보다도 잘 놀아야 하는 이유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결코 아이들처럼 놀지 못한다는 사실. 아이답게 놀 수 있을 때 놀게 하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자 권리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세상을 잘 버텨나갈 수 있게 하는.

 

아이들이 책 속에서 이야기 자체 보다도 그 속의 인물에 감동을 받는다는 것을 <몽실언니>를 예로들어 설명한다. 동화 공부를 시작하며 저자가 품었던 궁금증 중 하나가, 아이들은 <몽실언니>의 감동을 과연 어른이 느끼는 것 처럼 느끼는가 하는 것이었다는데, 아이들은 몽실이라는 '아름다운 인물'에 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 하며 주인공이 겪는 슬픔과 고통을 함께 해나간다고. 그리하여 우리 슬픈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과 경험 없이도 어린이들은 몽실이의 희생적이고 꿋꿋한 삶에 감동받아 어른들과는 좀 다르게 작품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한다. 어린이 책을 쓸때 인물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이다.

 

안미란의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은 우리 어린이문학사에서 보기드문 SF 장르의 작품이라서 동화를 공부해본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념비 적인 작품이기도 한데 저자는 이 작품의 아쉬운 점으로서,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농산물이 독점이 생기고 식량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하기보다 유전자가 조작되거나 오염된 농산물을 먹고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얘기하고 있는데 공감한다. 사회적,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항들을 아이들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방법으로 새겨둘만 하다.

 

그저 손 가는 대로, 느낀 대로 작품을 쓰겠다고 하는 건 영원히 아마추어리즘에 갇혀 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아이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당기고, 눈을 뗄 수 없게 하면서 작가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전달되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전략들을 탐색해야만 한다. (179쪽)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리가 다 경험해온 시기라고 해서, 혹시 동화 쓰기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일깨워주는 구절이다. 단순히 자기 어렸을 때의 경험을 풀어놓는다거나 (아마 어린 독자들이 어디선가 한번 다 들었을만한 내용이기 쉽다) 단편을 뻥 튀겨놓은 듯한 장편, 단편 단편을 조각조각 이어붙인 듯한 장편은 피해야 한다. 경험의 왜소화라는 장벽에 갇혀 있는 신인 작가들이 특히 명심해야할 점 이다. 사건을 던져줌으로써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어린이 스스로 묻게 하고 다양한 인물과 사건의 계열화를 통해 작품을 짜임새 있게 만들어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179쪽)

어린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을 전개했다가 마무리에 와서 고심 끝에 어쩔 수 없이 뻔한 미화로 정리하거나, 다른 작품 속 인용문 하나로 봉합 정리하는 것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리라.)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며 저자 역시 초등학생 학부모의 입장에서 요즘 아이들의 책읽기에 대한 의견도 들어볼만 하다. 정말 인상 깊은 책은 쉽게 몇줄의 독후감으로 정리하기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면서 금방 교훈이 떠오르는 책은 오히려 문학적 깊이가 얕은 책일수 있다는 점을 안다면 아이들로 하여금 느낌과 감동을 억지로 말로 표현하고 글로 남기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말은 우리 어른들도 생각해볼 말이 아닌지.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놀이이고 자연이고 자연 속 놀이라는 것이다. 문학적 감동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몸으로 어울려 노는 놀이가 더욱 중요하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책도 하나의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다가갈 때 그 작품이 갖고 있는 문학적 힘이 제대로 발휘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329쪽)

 

우리 모두 어린이 시기를 거쳐 왔다. 하지만 여전히 어린이들의 생각과 행동과 그들이 읽는 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우리 마음 속 어딘가엔 끝나지 않은 그 순수함과 감동이 남아있기 때문 아닐까.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싶고, 지금의 어린이들과 소통하고 싶고, 그들과의 끈을 놓지 않고 싶어 오늘도 어린이들 책을 읽고 또 가끔은 써보고 싶은 욕망도 느낀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어린이책에 대한 글로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 최고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동화에 대해 평소에 갖고 있던 궁금증을 많이 풀 수 있어서 다 읽고나서 느끼는 후련함도 어디에 비길바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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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1-07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놀이, 자연과 자연 놀이, 이 대목을 처음부터 짚고 이야기한 사람은 이오덕 님 한 분밖에 아직 없어요. 나중에 권정생 님과 임길택 님이 이 말씀을 거들었어요. 이오덕 님이 쓴 <시정신과 유희정신>이라는 1970년대 어린이문학평론도 바로 이 대목을 짚은 이야기인데, 이를 제대로 읽고 헤아릴 수 있으면, '동화쓰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동화란, 어린이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고 싶은 사랑을 그리는 이야기이거든요. 그러니 '동화쓰기가 어려울'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과 활짝 웃으며 싱그럽게 놀며 일하는 어른은, 동화를 '쉽게' 써요. 그러나, 아이와 놀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좋은 작품 선물'하려는 어른은 동화창작이 고되어, 창작교실이나 문학교실을 다니기도 하지만, 좀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빚지 못하고요......

hnine 2014-01-07 21:20   좋아요 0 | URL
예, 전 동화쓰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그만 두었어요 ^^

비로그인 2014-01-0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께서 최고였다고 하실 정도면 .. 정말 굉장하겠어요..

인용하신 구절 중에서 특히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놀이이고 자연이고 자연 속 놀이라는 것이다"
라는 부분은 정말 동의하고 싶습니다.. ~~


이 겨울.. 잘 지내시는 거지요? 나인님 ^^
건강한 다린이도 이젠 정말 총각 티가 나겠어요.. ~~

hnine 2014-01-07 21:25   좋아요 0 | URL
아이일때 아이다웠던 아이가, 나중에 커서 어른다운 어른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고등학생때 들은 말인데 그게 무슨 뜻인지 그땐 몰랐어요. 시기마다 꼭 필요한 영양소같은 것이 있어서, 아이일때는 그게 자유롭게 노는 것인가봐요. 무슨 놀이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노는거요.
다린이는 한동안 저랑 떨어져서 아빠랑 지내다 지난주에 돌아왔답니다. 밖에서 밥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많이 통통해져왔어요. 제가 관리 좀 해주려고요 ^^
새벽숲길님도 잘 지내시지요? 느긋하게, 여유롭게, 자유롭게, 그렇게 지내시고 있는 중이면 좋겠어요 ^^

섬사이 2014-01-0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는 어린이책을 한번 '공부'(?)해 보자, 하고 있었는데
좋은 책 소개받아 기뻐요.

hnine 2014-01-07 21:28   좋아요 0 | URL
섬사이님, 반가와요. 저도 한 몇년 어린이책 모임에도 나가고 하다가 작년엔 다른 일 좀 하느라고 손 놓고 있었어요. 올해는 다시 시작해볼까 하고 있는데 섬사이님 말씀 들으니 반갑네요. 좋은 책 있으면 많이 올려주세요. 이 책은 섬사이님께 꼭 권해드려요.

카스피 2014-01-07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려 동화가 어린마음에 더 커다란 울림을 주는 경우가 종종있지요.전 박완서님의 자전거 도둑을 읽고 그런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나저나 늦었지만 나인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용^O^

hnine 2014-01-08 04:14   좋아요 0 | URL
네, 카스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카스피님 읽으셨다는 자전거 도둑을 전 아직 못 읽었네요.

무지개모모 2014-01-08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몽실언니 어렸을 때 읽고 짠했던 생각나네요...

hnine 2014-01-08 04:16   좋아요 0 | URL
몽실언니를 저는 오래전에 TV에서 드라마로 해주던 걸 지나가며 몇번 봤던 기억이 나요. 몽실이로 나온 여자 아역 탤런트의 헤어스타일이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아마 대중에게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많이 알리는데 그 드라마가 한몫 했을거예요.

nama 2014-01-08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아동문학론을 들었었는데 아동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흥미와 교훈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었어요. 지금 그 교수님은 돌아가셨지만 참 많이 모자라는 얘기지요. 당시 아동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던 시절에 아동문학을 개척하여 대학 강단에 설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과정이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hnine 2014-01-08 10:12   좋아요 0 | URL
좋은 작품에 대한 기준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는 하겠지만 교훈도 드러내지 않게 이야기 속에 담겨있어야지 그것이 너무 뻔하면 아이들은 외면할 것 같아요. 억지로 읽게 시키면 읽기야 하겠지만요. 동화를 만만히 보면 안된다는 것은 사실 저 자신에게 한 말이랍니다. 그럴게 아니라는걸, 몇년 공부해보고 겨우 깨우쳤다고 할까요.

icaru 2014-01-1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꼭 읽어보고 싶습니당 ^^
어제 아이하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고뭉치 에밀인가? 하는 책을 읽으면서, 아이하고 배꼽 잡았는데요~
좋은 아동 문학,,, 아 '좋은'이라는 수식어는 빼도록 하고, 아동 문학은 무엇을 하는 물건인고? 하는 생각 살짝 했어요!
아이들을 위한 게 아동 문학이죠~ 어른의 훈게와 계몽이 걸러진 것들이면, 더 좋겠다는 ㅋ 애들 입장에서는요!

hnine 2014-01-18 19:49   좋아요 0 | URL
'무엇이 정답이다' 라는 선입관만 내려놓고 읽는다면 무슨 책을 읽든 더 많이 느끼고 즐길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도 그런 마음으로 읽는다면 더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 저자 이름을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참 글을 잘 쓴다 감탄했답니다. 강추! ^^)

마크툽 2014-01-2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책을 쓴 유영진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제 책에 대한 리뷰를 지금 막 보았습니다. 참 이렇게 쓰는 게 쑥스러운 일이지만. 저도 너무나 감동적이어서요^^ 아니 내가 언제 저런 생각을 했나 싶기도 하고. 올해 하반기쯤 두번째 평론집이 나올텐데 첫책만할까 걱정도 되고. 무엇보다 요 몇년 계속 슬럼프였고 특히 최근에는 지적 감성적 자극을

마크툽 2014-01-2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받고 있는 상태였는데hnnine님의 글을 읽고나니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입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제가 다시 씨앗이 담긴 글을 쓰게 된다면 방금이 리뷰를 읽은 게 큰 계기가 될 듯도 합니다. 제 책에 대한 코멘트에.. 뭐 별로 없지만요^^ 암튼 댓글 다는건 처음이네요 ㅎ 그만큼 제게는 감동이었습니다.^^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읽고써야 겠네요.

hnine 2014-01-25 07:03   좋아요 0 | URL
유영진 작가님, 반갑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책을 읽고 자극 받고 감동까지 받았는데, 작가님께서는 제 리뷰를 읽고 그러셨다니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평론을 위한 평론이 아닌, 정말 어린이책을 잘 알고, 그것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의 글이라는 느낌이 모든 페이지에서 살아있었습니다. 저도 이 책 이후에 나온 책이 있나 찾아보고 있었는데 올해 하반기에 또 나올 계획이 있다니 반갑네요. 그때까지 저도 좋은 글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넓히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있겠습니다 ^^

하늘바람 2015-01-07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서 읽고 프네요

유영진 2015-01-2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꼭 1년만이네요. 유영진입니다. 두번째 평론집이 2월 중에 나옵니다. 2월 10일 전후일 듯해요. 확정된 제목은 아니지만 `동화의 윤리,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란 제목이 될 듯 합니다. 책 나오면 보내드리고 싶네요. 성함과 주소 알려주세요. forestworld@hanmail.net 으로요. 다른 분은 몰라도 hnine님께만요 ^^

hnine 2015-01-22 05:07   좋아요 0 | URL
두번째 평론집이 곧 나온다니 저도 기대됩니다 어떤 내용일지요. 제목의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에서 뭔가 짐작이 되기도 하지만 며칠 참고 기다려야겠지요.
유영진 작가님 책이라면 제가 직접 구입해서 봐야지요. 제 리뷰를 기억해주시고, 책이 곧 출간된다는 소식 이렇게 알려주신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기쁩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일요일 오후.

 

어제도 집에서 꼼짝 안했고

생각해보니 그제도 집에서 꼼짝 안했기에

오늘은 바깥 바람을 좀 쐬자고 나갔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백화점에 가보기로.

큰 서점이 그 백화점 안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연말이니 백화점 가면 뭔가 사고 싶은게 있으려나 해서.

 

서점에 가서 1시간남짓, 책 네권을 들었다 놓았다 들었다 놓았다,

지하 식품코너 가서 이것 저것 들었다 놓았다 들었다 놓았다,

 

버스 타고 집에 오는 내 가방에는

집 앞 수퍼에선 팔지 않는, 튜브에 든 소스 하나 들어있었다

1,450원.

 

 

 

 

 

 

 

 

 

 

 

 

 

 

 

 

 

 

 

 

 

 

 

- 들었다 놓았다 했던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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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3-12-2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실격이란 책이 반갑네요 제가 못생겨서 아버지한테 야단맞은 얘기를 인터뷰 때 했는데, 담당 기자가 저한테 추천한 책이었어요. 근데.... 그 책의 주인공은 아주 잘생겼다는.... 그래서 크게 공감을 못했어요 남은 연말 잘 보내시고 내년엔 좋은 한해 되시길.

hnine 2013-12-30 06:03   좋아요 0 | URL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정확한 기준이 어디있겠어요. 나이 먹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평소에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가 인상에 더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것 같더라고요. 잘 생긴 얼굴이라 할지라도 그늘져 있거나, 늘 무슨 걱정거리가 있어보이는 표정보다는, 밝고 잘 웃는 표정이 더 사람들에게 매력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마태우스님 못생기지 않았어요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요 ^^ (아,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부모가 자식에게 야단칠 수 없는 항목 아닌가요? 생긴 것에 대한거요. 유전학적 입장에서...ㅋㅋ)
인간실격은 하도 많이 들어서 저도 읽은 줄 착각했었던 책이랍니다.

파란놀 2013-12-30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쪼록 바깥바람 즐겁게 쐬셨겠지요~
나날이 초승달 기울어 깜깜한 그믐달로 바뀌니
다가오는 새해 해돋이는
아주 예쁘리라 느껴요.
즐겁게 새해 맞이하셔요~

hnine 2013-12-30 06:06   좋아요 0 | URL
엊그제 달을 보니 정말 깎여나간 손톱 모양이더군요.
새해 해돋이 본적 있는데 예쁘다기보다는 무척 가슴 뭉클 하더군요.
자연은 늘 인간을 가슴 뭉클하게 하는 것 같아요.

서니데이 2013-12-3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 무척 추웠어요. 갑자기 눈도 내려서 더 추운 날 기분이더라구요.
네권 중에서 두 권은 다자이 오사무네요.^^ 나의 소소한 일상, 번역이 김춘미님이라서 저도 기회되면 읽어보고 싶어요.

hnine 2013-12-31 05:20   좋아요 0 | URL
네, 다자이 오사무 책이랍니다. <나의 소소한 일상>은 제목처럼 수필인데 가능하면 수필보다 소설을 먼저 읽어보고 싶네요.
저도 번역본 읽을땐 누구의 번역인지 챙겨보는 편입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여름의 흐름>이 김춘미 님 번역이었네요. 전 잘은 모르지만 김난주, 양억관님의 번역본이면 일단 안심하고 읽게 되더군요.
지난 주말 추웠지요. 기억하기론 작년 겨울보다는 그래도 덜 추운것 같은데 저는 지금 내복까지 입고 있답니다 ^^

마녀고양이 2013-12-3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야 하는데........
언니, 바보가 아니시구요, 저로써는 현재 가장 배워야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히힛.

저는 이틀반을 집에 콕 박혀 있습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나가기 싫어요. ㅠㅠ. 집에 꿀 발라놨나 봅니다.

건강하고 평온한 새해되셔요.

hnine 2013-12-31 05:24   좋아요 0 | URL
에궁, 마녀고양이님은 저처럼 저러지 마세요 ...
마녀고양이님도 집에 콕 박혀있는거 좋아하세요? 전 좀 심해요. 예전엔 가족들 집에 두고 혼자 외출할 일 있을땐 집에 있는 남은 가족들 생각에 그런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들도 나가고 없을땐 이젠 혼자 남은 강아지때문에 라며 구실을 찾고 있더라니까요 ^^
건강하고 평온한 새해가 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잘 닦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저절로 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어요. 마녀고양이님, 새해에도 여기서 계속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4-01-0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바보 한 사람, 여기 있어요.
책 고를 땐 장바구니에 넣었다 빼었다 하죠.
저도 방콕, 입니다. 방에 콕 박혀 지내죠.
꼭 나갈 일이 있을 때만 나가요. 외출을 즐기질 못해요.
아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외출로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어서가 아닐까요?

자주 오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첫 날입니다. ^^

hnine 2014-01-02 05:23   좋아요 0 | URL
어차피 한번에 한권씩 읽는데 네권씩 한꺼번에 살 필요 있을까, 네권이면 값이 얼마냐, 집에 들고 가기 무거울텐데, 지금 읽고 있는 책 다 읽고 인터넷으로 사도 충분한데, 한권만 살까, 그러면 이 중에 어떤 책을 살까...이렇게 갈팡질팡하다가 그냥 빈손으로 돌아온거죠 ㅋㅋ
새해가 시작되었는데 어제 밖에 나가보니 문 연 상점들도 많고 그냥 다른 공휴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새해엔 책도 좋지만 바깥으로 좀 더 자주 진출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솔직히 자신 없어요 ^^

2014-01-05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5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5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5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5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6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7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역열차 - 144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니시무라 겐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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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를 따로 읽을 필요가 없었다. 이 소설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니까. 이른바 '사소설 (私小說)'이라고 부르는 일본 고유의 문학적 방식이라고 한다.

두편의 짧은 소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것이 <고역열차>, 뒤의 것이 <나락에 떨어져 소매에 눈물 적실 때>. 같은 주인공, 시간의 차이가 있을뿐 이어지는 내용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아버지가 연쇄 성범죄를 일으켜 체포된 후로 열아홉살 주인공 간타는 그때 자기의 인생은 종치고 막 내렸다고 생각한다. 학교도 다니다 말고, 친구를 사귈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 나이에 이미 노동으로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생활을 한다. 돈이 좀 모이면 술을 마시고 여자를 찾는 바닥 생활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못받고 사회에도 이미 발디딜 구석이 없다고 생각한 그의 유일한 희망은 소설을 쓰는 것. 뒤의 <나락에 떨어져 소매에 눈물 적실 때>는 그렇게 30대가 된 주인공이 소설을 써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각종 문학상에 도전하며 당선을 갈망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끝까지 도전하는 원로 작가의 모습을 보며 불굴의 의지라고 해야 할 그 자세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뭐라 말하기 힘든 혐오감도 솟구쳐 오르며 그런 유의 헛된 집착에 참을 수 없이 비참함을 느끼고 만다는 구절에 나는 왜 밑줄을 그었을까.

2011년, 144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이라는데,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을 받을만한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거칠고 되는대로 사는 듯한 그의 바닥생활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것 외에, 내가 놓친 무엇이 더 있는것인지.

자기 고백을 넘어서는 어떤 문학성이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끝까지.

자기 얘기로 시작은 하더라도 거기에 머물면 안된다고, 그게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동화나 소설을 쓸때 주의점으로 배웠는데 아마도 이 '사소설'이라는 방식은 예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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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3-12-28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 문학상 수상한 책들도 우리 나라에 많이 나오지만, 어떤 책은 그래서인지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지는 책도 있긴 한 것 같아요. (그건 저만 그런 걸까요?) 그래도 리뷰 읽고 보니까 한 번 읽어보고 싶긴 해요. 2011년 수상작이면 우리나라판으로는 상당히 빨리 나온 책인데요.^^

hnine 2013-12-29 09:14   좋아요 0 | URL
2011년에 144회였다니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문학상인지...저는 이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집어든 책이랍니다. 도서관에 갈때마다 여러번 제 시선을 붙들던 책인데 계속 다음으로 미루고 있었거든요. 한동안 일본 소설, 수필등 읽어보고 제 취향과 다르다고 생각하여 멀리 했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 조금씩 다시 읽어보고 있답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폐허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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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우선 저자 소개를 찬찬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사유한 모든 것을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로 옮겨놓은 허무주의 철학자, 수필가.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최고의 지성으로 불린다.

우수적 기질을 보이긴 했으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 이미 그때부터 불면증과 자살에 대한 충동에 시달렸다.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심취, 20대에 첫작품 <절망의 끝에서>를 펴낸다. 이 책이 바로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고 번역된 위의 책이다. 이 책으로 장래 촉망되는 작가의 대열에 서게 되고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젊었을 때부터 자살의 충동에 시달렸다고 하나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5년 84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생을 마감할때까지 문단의 교류도 인터뷰도 사양한 채 철저한 고독 속에서 살았으며 두 차례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삶의 위축을 뜻하며, 수많은 고독의 시간과 고통의 연장을 의미한다. 정신을 통해 우리가 구제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가? 정신을 통해 우리 내면의 번민을 극복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오히려 정신은 우리에게 내적 불균형을 가져다주지만 어떤 위대함을 부여하기도 한다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삶을 찬미한다는 것이 정신적 불안의 표시이듯, 정신을 찬미하는 것은 의식이 없다는 표시이다. 정상적 인간에게 삶은 자명한 현실이지만, 병든 인간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병든 사람은 무너지지 않으려고 삶을 찬미하며 그 속에서 뒹군다. (23쪽)

그렇다. 삶을 자명한 사실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응한 사람은 굳이 삶을 찬미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불안의 표시이고, 찬미함으로써 그 불안을 잠재워보고자 하는 몸부림임을.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형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은 삶 속에 이미 내재하므로 삶 전체가 거의 죽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마지막 고통의 시간이란 단지 삶과 죽음의 다툼이 가장 치열해지는 순간, 죽음을 의식적이고 괴롭게 경험하는 순간일 뿐이다. (29쪽)

이 책에는 죽음, 고통, 절망, 슬픔, 무의미 등의 말들이 차고 넘친다. 그가 두려워 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고통, 절망 등에 대해 쉼 없이 써내려 가며 그 슬픔과 삶의 무의미성에 적응해보려 한 것이 아닐까. 죽음과 관련되지 않은 슬픔, 절망으로 괴로와 하는 사람은 당장 육신의 고통과 맞서보라고 했다. 머리 속에서가 아니라 눈 앞에서 죽음과의 대면을 체험해보라고. 결국 정신의 고통은 육신의 고통을 다스리지 못한다. 육신의 고통은 정신의 고통을 지배한다. 내 경우에도 아무리 무의미하고 절망스런 밤을 보내고 난 후라도 아침에 온전한 육신으로 눈을 뜬 순간 일단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왜 나는 자살을 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나는 삶만큼 죽음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왜 이 지상에 존재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98쪽)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져, 나름의 삶의 방식-자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을 찾도록 선고받은 불행한 동물 (120쪽)

하이데거였던가? 인간은 던져진 존재라고 말한 철학자가.

 

이성간에는 정신적인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 그것이 내게 정신적이라는 환상을 주는 물리적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151쪽)

이성간의 우정이란 단지 사랑으로 승화하는데 실패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 평소 생각이니, 저자의 이 말에도 동의할 수 밖에.

젊었을때부터 에밀 시오랑을 괴롭혀온 것은 자살의 충동과 불면증이라고 했다. 불면증은 실로 인간의 몸과 정신을 갉아 먹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다. 혹시 잠이 많은 것을 고쳐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다. 불을 끄면 잠을 못자는, 주위가 조용해도 잠을 못드는 사람으로서.

신은 잠을 빼앗고 대신에 깨달음의 시간을 주면서 인간에게 벌을 내린다. 잠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은 가장 무서운 형벌이다. (153쪽)

 

각기 혼자 노력으로 살고 있는 동물들은 비참하다는 것을 모른다. 계급이나 착취를 모르니까. 비참함이란 동류를 예속시키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에게서만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 정도로 자신을 스스로 멸시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168쪽)

비참함이란 자기 멸시에서 비롯한 느낌이라는 것.

 

이러한 절망과 회의, 무의미, 슬픔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어떤 위대한 철학자의 깨우침도, 발견도, 종교도 아니었다. 이 책에서 한줄 의외의 문장을 보았다.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이 우주의 궁극적 목적을 충분히 보상해주듯,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작은 구름 조각이 나의 우울한 염세주의를 즐겁게 해주는 순간들을 경험했었다. 내면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지극히 미미한 자연의 광경에서도 상징적 의미를 발견한다. (198쪽)

한 송이 꽃, 작은 구름 조각.

 

번역본으로 읽었으니 그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겠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저자의 문체에 열광한다고 한다. 그의 이런 극도의 염세주의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시적인 문체가 가진 아름다움은 그가 전하는 삶의 비극까지도 용서하게 만든다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속에 들어있는 온갖 비극적인 생각들,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어져서 구경하듯이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것은 실로 새로운 느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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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2-26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해가 저무는 자리에서,
또 새해가 찾아오는 자리에서,
언제나 새로운 빛과 노래를 누리시기를 빌어요.

hnine 2013-12-26 18:27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3-12-2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 소개 한줄부터 마음에 드네요. 담아갑니다.
나인님, 차분히 한해 마무리하고 계시지요^^

hnine 2013-12-26 18:3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자에 대한 정보 없이 읽을 수가 없더라고요.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어요. 뒤에 역자 해설에도 천천히 음미하며 삭여야 하는 귀족적 독서를 요구한다고 했더군요.
한해가 또 이렇게 저무네요. 그냥 모른척 하고 보낼까요? ^^ 서운해서요.

oren 2013-12-2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 시오랑이 20대의 그 예민한 때에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심취했다니 이런 작품을 쓸 만 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저는 "어떠한 이치라도 그 반대의 이치가 없는 것은 없다고 철학자들 중의 가장 현명한 학파(피론 학파)는 말한다. 나는 방금 옛 사람(세네카)이 인생을 경멸하며 "언젠가는 없어질 것으로 생각되는 것밖에는 어떠한 보배도 우리에게 쾌락을 주지 못한다", "한 사물을 잃어버렸다는 비통과 그것을 잃을 것이라는 공포심은 똑같다"(세네카)고 한 이 묘한 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 말은 그것을 잃을 근심이 있으면 생을 즐긴다는 것이 진실한 재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뜻이다."고 말한 몽테뉴의 말을 떠올리며, 그가 '배운 꾀가 탈이 된다'며 '극도의 철학'에 대해 충고했던 말을 여기에 덧붙여 보고 싶네요.

* * *

플라톤에 나오는 칼리클레스는 극도의 철학은 해롭다고 하며, 이익이 있는 정도를 넘어서 거기 빠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철학을 절도 있게 대하면 유쾌하고 유익하지만, 마침내는 사람을 황당하고 악덕스럽게 만들고, 일반의 종교와 법률을 경멸하고, 사람들과의 교섭을 회피하며, 인간적인 해학을 적대시하고, 모든 정치적 사건의 처리나 남을 도와주는 일이나, 자기를 지키는 일도 불가능하게 되며, 빰을 얻어맞아도 대항 못하는 인간이 되게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옳다. 왜냐하면 철학이 과도하고 지나치게 풍부하면 우리의 타고난 자유를 속박하며, 배운 꾀가 탈이 되어서 오히려 자연이 우리에게 그어 준 좋고 탄탄한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hnine 2013-12-26 18:40   좋아요 0 | URL
20대에 썼다는 것을 알고 저도 놀랐지만 또 한편 생각하면 20대의 예민한 때이니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잃었다는 비통, 잃을 것을 알고 있을때 느끼는 것은 '공포심'.
말씀하신 것 처럼 잃을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재를 더 즐겨야 마땅한데 대부분 인간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공포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지요.
극도의 철학을 경계하라는 말도, 배운 꾀가 오히려 탈이 되는 경우도, 모두 마음 속에 담아둘 수 밖에요. 어차피 정답은 없는거 아닐까요.

착한시경 2013-12-2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신간으로 나온 지금, 이순간 나는 아프다를 얼마전에 읽었어요~ 사실 문장이 쉽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반복해서 읽을수록 더 좋더라구요^^ 인용해주신 문장을 다시 읽으니 더 좋았어요~감사합니다...

hnine 2013-12-26 18:43   좋아요 0 | URL
착한시경님 서재에서 보고 이 책 구입한거랍니다. 어떻게 보면 극단으로 치닫는 내용임에도 그의 문장을 사랑한 프랑스 사람들. 다양함을 인정하는 분위기니까 가능하겠지요. 책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답니다. 읽어볼만한 책이었어요. 제가 감사드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26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사람도 아닌 시오랑이 프랑스어를 그렇게도 유려하게 썼다는 점에서 대단하죠.하지만 자기 조국어인 루마니아어로 책을 냈다면 그만큼 유명해지진 않았겠죠.불편한 진실이지만...

hnine 2013-12-27 06:07   좋아요 0 | URL
프랑스어로 언어를 바꾸게 된 계기도 궁금하지만 말씀하신 것 처럼 이 사람 문체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좋아해주고 유명해지게 한 프랑스 사회, 프랑스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13-12-27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마니아어를 아는 사람이 유럽에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습니까...특히 서부유럽 사람들은 발칸반도 나라들을 은근히 무시하니까 시오랑으로서도 프랑스어로 쓰는 게 낫다고 생각했겠죠.체코 출신인 카프카나 릴케가 독일어로 글 쓴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hnine 2013-12-27 13:53   좋아요 0 | URL
한국어를 쓰는 나라는 전세계에 오로지 우리나라뿐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가네요. 우리나라와 루마니아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비로그인 2013-12-2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친구가 에밀시오랑을 참 좋아해요.. 쓰신 글을 읽으며 고개만 끄덕 끄덕.. 했어요.. 아.. ~~ 날카롭네요.. hnine님.. 두려워질만큼이요~~~..

비로그인 2013-12-27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경우에도 아무리 무의미하고 절망스런 밤을 보내고 난 후라도 아침에 온전한 육신으로 눈을 뜬 순간 일단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흑... 아.. ~~

hnine 2013-12-28 07:43   좋아요 0 | URL
아침이, 또는 새벽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절망은 한편 사람에게 감사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 모순이지요? 모순적인 존재가 바로 사람이니까요.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2014-01-03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4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