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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그녀의 작품을 한권도 읽지 않은 나도 그녀의 작품을 대라면 어렵지 않게 몇권 정도 댈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우리 나라에서 꽤 인기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그녀의 작품을 한권도 읽지 않은 데에는 단지 우연은 아닌 것 같고 웬지 나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고나 할까. 몇년 전이었던가, 그녀의 전작 '꽃게 무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표절 시비 문제로 신문 지상에 한참 오르내리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에세이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을 읽을 때에도 작품 자체 뿐 아니라 작가를 알아가는 재미를 찾는 나는 어디 한번 그녀의 세계로 들어가보자는 기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기대는 몇 페이지 안 읽고서도 그냥 이런 연애 소설이었나 하는 실망감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니. 30대 미모의 요가 강사겸 작가인 여자 주인공 '서인'과, 사진 작가이며 대학 강사인 남자 '선우'가 서로 끌리게 되어, 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정이 거의 소설의 초반부를 이루고 있었는데,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사랑의 감정 묘사등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그저 그런 통속 소설 이상으로 봐주기가 어려웠다. 책 표지에서 소설가 하성란이 소설의 중반부에 도달하기까지는 그 어떤 섣부른 예측도 하지 말기 바란다고 평해놓은 것을 보고서 그래도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저 그런 연애 소설로 시작되었던 스토리가 갑자기 무슨 스릴러물로 급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소 궁금증을 유발하여 계속 페이지를 넘겨 가게 하는 효과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달라진 소설의 분위기가 영 어색했다. 게다가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또 다중 인격 장애, 최면 요법을 통한 과거의 되살림, 천사와 악마 등, 심리 소설의 세계가 펼쳐 진다. 혹자는 다채로운 기법이 도입되었다고 긍정적인 평을 할 수도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다채로운 기법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기 보다는 시작과 끝의 경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다지 특별해보이진 않았고 오히려 소설의 깊이를 떨어뜨린 결과를 낳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랑에도 운명이 복선처럼 깔려 있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는 우리가 모르는 필연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주제로 한 연애 소설이라고 한마디로 말하겠는데 소설 중의 그 어느 인물들에도 완전한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도 아쉬웠다.
이 소설이 작가의 말만큼 그다지 애절하고 처절한 러브스토리로 와닿지 못한 데에는 무엇이 얼마만큼 빠져 있는 것일까.
그저 사는 일이 너무도 막막하고 쓸쓸해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도 공허하게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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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2-0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리뷰를 읽으려고 내용은 안 읽고 있지요 ^^;

hnine 2010-02-04 11:55   좋아요 0 | URL
잘 하셨습니다. 무스탕님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저도 다른 분의 감상이 궁금해요.

stella.K 2010-02-0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나 제목이나 나름 괜찮은 것 같아서 부러워하던 중이었는데 별로였군요.^^

hnine 2010-02-04 11:56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어요. 서평단 도서이니 다른 분들 리뷰가 올라오기를 기다려봅니다.

순오기 2010-02-0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지예는 2002년 이상문학상 받은 '뱀장어 스튜'하나 봤는데 내 취향이 아니라 다른 작품은 챙겨보지 않았어요. 나는 하성란이 더 끌려요.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 내 취향에 맞았거든요.^^
예전에 이상 문학상 받은 작품을 꼭 챙겨보려고 노력했는데 최근에 그것도 잊고 사는 듯.ㅜㅜ

hnine 2010-02-05 21:15   좋아요 0 | URL
저는 하성란 소설도 아직 한권도 안 읽어보았네요 ㅋㅋ
가끔 TV 방송대학이던가? (확실하진 않아요) 작가들을 인터뷰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더군요.

같은하늘 2010-02-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을 하다보면 별로인 책도 읽어야하지요.^^

hnine 2010-02-09 18:00   좋아요 0 | URL
예,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뱀파이어' 나오는 소설은 끝내 못 읽고 있답니다 흑흑...

하늘바람 2010-02-17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표지가 참 이뻐요

hnine 2010-02-17 18:22   좋아요 0 | URL
잘 보면 좀 섬뜩하기도 해요...
 

집에 감자만 몇개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간식거리인데, 파는 포테이토칩에 비하면 맛은 훨~씬  '없다'.
집에서 만들어먹는 것이 더 맛있다는 것은 요리 고수들한테나 해당하는 말.
김도 구운 김을 사서 먹다가 집에서 직접 기름에 재워 구워 먹으니 수고는 수고대로 하면서 맛은 파는 구운 김에 훨씬 못미친다. 파는 김은 도대체 무엇에 어떻게 재워서 굽는건지. 우리는 이미 파는 음식 맛에 너무나 길들여져 있나보다. 

우리집표 포테이토칩 만드는 방법은, 

감자를 얇게 썰어 소금 좀 뿌린 후, 나무 꼬치에 끼운다. 



 

 

 

 

 

 

 

 

 

 

 

 

이렇게 전자렌지에 들어갈 수 있는 그릇에 걸쳐서 넣고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전자 렌지 속에서 구워주면 된다. 10분 내외 소요. 



 

 

 

 

 

 

 

 

 

 

 

 

 완성된 후엔 꼬치에서 감자 슬라이스를 빼어 접시에 담아주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알아서 빼먹으라고 주었더니 닭꼬치 빼먹듯이 먹고 있다.



 

 

 

 

 

 

 

 

 

 

 

 

진짜 파는 포테이토칩 처럼 만들려면 감자를 소금물에 재워 놓았다가 튀기거나, 아니면 오븐에 굽는 방법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안 해보았고 앞으로도 안해볼 것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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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03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맛을 바꾸면 되지 않겠어요?
보기만해도 군침도네. 저도 해볼까봐요. ㅎㅎㅎ

hnine 2010-02-03 21:03   좋아요 0 | URL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표 포테이토 칩, 한번 해보세요 ^^

상미 2010-02-0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애들이 직접해보면 더 맛있어 하겠다.
병규랑 해봐야지~~
난 김은 아예 기름 없이 날김 구워서 양념장 넣고 싸먹어.

hnine 2010-02-04 07:38   좋아요 0 | URL
김에 기름 바르기 참 귀찮지. 그런데 양념장 일일이 만들기도 귀찮지 않은지? 맛은 그게 제일 맛있을 것 같구나. 나도 이번에 한번 그렇게 해봐야지 ^^

상미 2010-02-04 09:2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양념장을 갖은 양념 넣은 장도 맛있지만,
그냥 간장+참기름+깨소금만 넣어도 굳이야~~~

bookJourney 2010-02-0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자 세워넣고 포테토칩 구울 수 있는 틀 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어요.
이번 주말에는 만들어 먹어봐야겠어요. (저, 완전 알라딘 따라쟁이라니까요~ ^^)

hnine 2010-02-04 07: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 틀 저도 본적 있어요. 살까 말까 한참 망설였었지요. 그런데 감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슬라이스 하는 것도 저는 성질이 급해서 잘 못해요. 그래서 어떤 건 바삭하게 구워졌는가 하면 어떤 것은 아직 덜 구워지고, 이렇답니다 ^^

Mephistopheles 2010-02-04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보니까 '칩 메이커'라고 감자 얇게 썰어주는 채칼과 칩을 만드는 렌지용 그릇을 저렴하게 팔더군요. 사서 해볼까? 하다 귀차니즘 발동하여 그만 뒀었죠.

hnine 2010-02-04 07:41   좋아요 0 | URL
위의 책세상님 말씀하신 그런 틀 이름이 '칩 메이커'군요. 채칼까지 같이 판다니, 그것도 저렴하게...한번 검색해봐야겠습니다 ^^

비로그인 2010-02-04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델께서 나름 머리에도 신경을 쓰셨군요^^.. 컵으로 인해 적절히 가려진 얼굴입니다. ㅋ

'아! 맛있겠다 !!' 이 말씀 드리려했는데 이상한 얘기만 하고 있네요~

hnine 2010-02-04 07:42   좋아요 0 | URL
에구, 모델이 머리에 신경을 쓰기는 커녕 감은지 사흘이나 되었길래 어제 저 사진 찍고 나서 제가 목욕탕으로 밀어 넣었는걸요 ㅋㅋ

순오기 2010-02-04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우리도 감자 몇 개 남았는데 한번 따라해 볼까요?
그런데 감자 몇 개로 만들어서 누구 코에 부치노?ㅋㅋ

hnine 2010-02-04 07:44   좋아요 0 | URL
전 한번 만들때 중간 크기 감자 두개로 하거든요? 그러니까 일인당 두개 정도면 되겠네요. 아, 그런데 왜 이 댓글 쓰고 순간 갑자기 삶은 감자가 또 먹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네요 ㅋㅋ

2010-02-04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4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02-0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녕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쉬운 요리로군요! 먹기도 편하고 깔끔하고 뭐 따로 치울일도 없고 말이죠. 요리를 싫어하는 저로서도 썩 괜찮은 방법이에요. 아, 그런데요, 궁금한건요, 전자렌지에 저렇게 감자를 익혀도 괜찮은건가요? 이를테면 전자파가 감자에 투입된다든가, 뭐 그런 염려는 안해도 되는걸까요? 아, 왜 그런게 궁금해지는지.

hnine 2010-02-04 09:11   좋아요 0 | URL
전자파가 우리 사람 몸에만 투과되지 않으면 되요. 전자 렌지에서 음식을 데우거나 익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전자파이니까 감자에는 물론 전자파가 투입이 되겠지요 ^^

다락방 2010-02-04 09:13   좋아요 0 | URL
아, 우리 사람 몸에만 투과되지 않으면 되는거군요! 아, 고맙습니다, hnine님. 저도 이거 집에서 해먹어 볼래요, 그럼. 정말 신나요! >.<

hnine 2010-02-04 13:29   좋아요 0 | URL
일부에서는 전자 렌지 밖으로 전자파가 새어나오지 않아서 인체에 무해하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가급적이면 작동되는 동안에는 가까이 있지 않는 것이 좋지요. 이래 놓고 저는 성질이 급해서 초가 줄어드는 것 쳐다보면서 그 앞에 버티고 서있기 일쑤랍니다 ㅋㅋ

섬사이 2010-02-0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기름에 튀기는 게 아니라서 좋군요. ^^
그런데 결정적으로 전자렌지가 없어요...쩝~

다락방 2010-02-04 09:28   좋아요 0 | URL
섬사이님. 요즘엔 전자렌지가 저렴한게 많더라구요. 핸드폰은 몇십만원씩 하는데 전자렌지는 십만원도 안한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어요. 휴..

hnine 2010-02-04 12:00   좋아요 0 | URL
앗, 저 같이 밥도 하루에 한번 겨우 하는 사람은 식은 밥 데울때 부터 시작해서 전자 렌지를 애용하고 있는데...
다락방님 말씀대로 전자렌지는 정말 비싼 것 살 필요 없고 최소 기능만 되는, 저렴한 것이면 충분하지요.

섬사이 2010-02-04 13:10   좋아요 0 | URL
전자렌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전자파'라는 게 좀 기분이 나빠서요, 한 6개월 쓰고는 필요로 하는 다른 분에게 드렸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단 두 분이 사셔서 말마따나 간단하게 데워 드셔야 할 일이 많은 집이었거든요. 그런데 hnine님 페이퍼 읽고는 잠깐 전자렌지가 있었으면 한 번 해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에요.^^;;

하늘바람 2010-02-0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하면 많이 만들 수 있네요. 저는 그냥 접시에 놓고 일분 한뒤 다시 뒤집어서 일분 이렇게 해요. 그러면 아주 적은 양이라서 만들어 주는 족족 겐누 감추듯하지요.
태은이에게 과자를 잘 안 사주고 주로 이 포테토칩과 연근칩을 주어요.
연급칩도 아주 맛나답니다.

hnine 2010-02-04 12:01   좋아요 0 | URL
그런 방법도 있네요 ^^ 그런데 그렇게 할때 감자가 접시 바닥에 달라 붙지 않던가요?
연근칩! 아, 하늘바람님 덕분에 간식 메뉴가 한가지 더 늘었습니다. 연근이 몸에도 좋잖아요. 오늘 당장 연근 사러가야지~~ ^^

카스피 2010-02-04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어 보이기는 한데 이거 10분이면 전기값 좀 많이 나오는거 아닌가요? 먹고 싶어도 전기값 무서워서 절전중인 일인 ㅡ.ㅜ

hnine 2010-02-05 05:39   좋아요 0 | URL
아,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저는 기름 안써도 되고, 설겆이 거리 안 생겨도 좋다는 생각만 했네요.

세실 2010-02-0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방법이 있군요. 기름에 굽는 것보다 훨씬 담백하겠어요.

hnine 2010-02-08 06:10   좋아요 0 | URL
그리고 편하지요, 설겆이 거리도 줄고요 ^^

같은하늘 2010-02-0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해보겠다고 슬라이서 구입했는데...^^
연근도 좋고, 고구마, 사과 같은것도 한다더군요.

hnine 2010-02-09 17:59   좋아요 0 | URL
위의 하늘바람님 말씀 듣고 연근도 해보았어요. 고구마랑 사과는 저렇게 할 사이도 없이 금방 먹어치우느라 아직 못해봤네요 ^^
 

마음이 편안할 때에는 시 (詩)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에는 들어올지 몰라도 마음에 스며 들어오지 않는다.
읽던 책을 놓고, 옆의 시집으로 손이 가는 것을 보니, 마음을 달래줄 시를 찾는 것을 보니, 오늘 나의 마음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는가 보다.
'요즘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은가봐. 잠도 많아지고, 몸이 잘 붓고....갱년기 증상인가?'
오늘 아침 식탁을 차리면서 남편에게 그랬더니 몸이 붓는 것도 갱년기 증상이냐고 묻는다.
'갱년기 증상이라는 말은 내가 그냥 하는 소리지~' 하며 웃고 말았는데. 
언젠가 몸이 잘 붓는 것 때문에 병원, 그것도 대학 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데 이것 저것 검사해보더니 빈혈이 심하다고 그것에 대한 약만 잔뜩 처방해주는 바람에 정작 몸이 붓는 원인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변을 못 듣고 빈혈 치료만 받고 말았다. 
'엄마, 얼굴이 또 부풀었어요? (아이의 표현이다 ㅋㅋ) 그래도 예뻐요.'
아이의 말에 마음이 또 뭉클해진다.

큰 책꽂이 말고 책상 위의 작은 책꽂이에 꽂아 두고 요즘 수시로 보고 있는 시집은,   

 

 

 

 

 

 

 

 

 

 

 

나 자주자주 까먹어요 슬픔을 고독을 사탕처럼 까먹어요 여러 빛깔의 사탕처럼 여러 빛깔의 사랑을 까먹고도 나 배고파요 나 배고파 어느날은 몰래 사내의 꽃나무 열매를 까먹고선 까무룩 혼절해요 사랑은 혼절이 아니면 혼돈이에요 내가 틀린 걸까요? 나 자주자주 까먹어요 월요일을 예술가를 부엌을 생활을 까먹어요 까먹어도 까먹어도 줄지 않는 고독 까먹어도 까먹어도 돌아오는 계절들 까먹다 까먹다 마침내는 나까지 까먹고 나는 그저 우는 아이의 막대사탕 같은 엄마예요 내가 틀린 걸까요? 

안 현미 <이별의 재구성> 중에서 '뢴트겐 사진- 생활 全文

 

위 시의 '까먹는다'는 것은 잘 잊어버린다는 뜻의 까먹는다가 아니라, 하나씩 꺼내 먹는다는 뜻의 까먹는다 이다. 그렇게 까먹을 슬픔이 있고 고독이 있고 사랑이 있는 것이, 아무 것도 까먹을 것이 없는 사람보다 나은 것 아닌가?

나 이렇게 시집을 까먹어요 이 시인의 시를 까먹고 또 저 시인의 시를 까먹고도 나 배고파요 나 배고파요 아무리 까먹어도 혼절이 없어요 혼절을 바라는 내가 틀린 걸까요?
(이건 내가 따라해본 것)

'혼절이 아니면 혼돈이에요...' 안 현미 시인은 이런 말의 유희를 즐긴다. 참신한 표현 같아 좋았는데 자꾸 읽다 보니 좀 억지스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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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2-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편안할 때에는 시 (詩)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에는 들어올지 몰라도 마음에 스며 들어오지 않는다.
정말 그래요. 정말,
그런데 언제부턴가 잘 마음에 안들어오는 건 마음이 편안한가? ^^
안현미 시인의 시가 참 애절하군요. 시낭송이 하고파지는 시예요

hnine 2010-02-02 17:47   좋아요 0 | URL
저는 시를 읽으면서 한번도 낭송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하늘바람님 말씀 들으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잠 안올때나 마음이 허전할때 좋아하는 시들을 눈이 아닌 귀로 듣고 있으면 색다른 기분일 것 같아요.
안현미 시인의 시집은 이전에 나온 시집 <곰곰>도 좋아요.

비로그인 2010-02-0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시집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왜 이리 고마운걸까요? ^^.. hnine님 덕분에 시집 한 권 또 알아갑니다. 잘 만들어진 시를 읽는건.. 떨어져 있던 나와 다시 만나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과 낮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 시대에 살면서. 깜깜하지 않은 어둠을 잠시 느껴봅니다. 살짝 웃음을 머금고 말이죠.

hnine 2010-02-03 08:0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도 이 시가 마음에 들어오나요? ^^

프레이야 2010-02-0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맘이 불편할 때 시집에 손이 가더군요.
근데 나인님 빈혈이에요? 몸이 좋지 않으면 마음도 약해지더군요.
치료 잘 받으시기 바래요. 그래도 이뻐,라고 말해주는 아이, 참 예뻐요.

hnine 2010-02-03 20:41   좋아요 0 | URL
지금은 빈혈 증상 거의 없는데 가끔 검사해보면 저렇게 나올 때가 있더군요.
몸이 좋지 않으면 마음도 약해진다는 것을 요며칠 동안 또 확인했답니다 휴...

같은하늘 2010-02-0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계속 몸이 안좋아서... 아침이면 손이 붓고 하루종일 뒷목이 뻐근해서 한동안 알라딘에도 못 들어왔다지요.^^ 이거 한번 들어오면 몇시간 훌쩍 지나서~~~

hnine 2010-02-09 17:58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같은 하늘은 저 처럼 '찔끔찔끔형' 이 아니라, '몰입형'이신가봐요^^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붓고 찌뿌둥하면 참 기분이 그렇지요.
우리 함께 우리 몸 챙깁시다~
 

그 한가지.

대학원 4학기,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며 안되는 실험에 매달리고 있던 때였다.
학교와 집이라지만 학교에 가면 실험실 이외의 다른 곳은 발 돌릴 여유가 없었던 것은, 보통 4학기정도 되면 대부분 실험은 마무리해가며 졸업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인데 나는 마무리는 커녕 기본 데이터마저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었던 때 나는 며칠 동안 저온을 유지하며 진행해야 하는 실험을 해야했기 때문에 실험 장치를 아예 우리 과 공동 저온실에 세팅해놓고 수시로 가서 보고 있었다. 그 날은 주말이었고 밤 10시 쯤, 집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실험 상황을 점검하고 가려고 저온실에 들어갔다. 저온실은 저온 유지를 위해여 상당히 육중한 문으로 되어 있고, 한번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가 있고, 문이 하나 더 나온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실제 저온실이 있는, 즉 이중문으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날 두번째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웬지 심상치 않았다. 바로 뒤로 돌아 문을 다시 열어보니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아무리 손잡이를 이리 저리 돌려봐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갇혔구나...'
안에서 소리질러봐도 아무 소용없다. 그 문 밖으로 문이 하나 더 있기 때문에 복도에서는 내가 지르는 소리가 들릴리도 없고 내가 보일리도 없다. 더구나 주말 밤, 그 시간에 누가 복도에 지나가겠는가.
일단 실험하던 것 부터 봐주고...
저온실에서 해야하는 일을 다 하고 난 다음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봤자 방법이 없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던 때도 아니였고.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하고, 나는 어이상실, 멍하니 저온실 여기 저기 둘러보고만 있었는데, 그렇게 한 15분 쯤 지났나? 밖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 누군가 들어온다! 대학원 동기 중 하나가 다행히 그 시간에 학교에 나와있었던 모양이다. 내 실험실에 내려가봤더니 불도 켜 있고 내가 일하던 흔적은 있는데 사람은 없어서 집에 같이 가자고 나를 찾으러 다니던 중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난 그 친구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두번째 이야기,
 
이것은 위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면 자동적으로 함께 떠오르는 이야기이다. 위에 말한 실험은 한번 시작하면 최소한 1~2주 걸리는 실험이었는데 나는 그 실험 결과가 예상대로 안나와 똑같은 실험을 몇번이나 되풀이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실험실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새로운 실험을 해서 결과를 내는 것 보다는 같은 실험을 수차례 반복하는 일이다.) 마음은 급하고 아무래도 나는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나보다 낙심하며 밤이고 낮이고 실험에 매달리며 이번에도 결과가 안 나오면 이번 학기 졸업은 힘들지 않을까 초조해가며 실험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실험 중간에 필요한 용액을 급히 만들려고 보니 그 용액을 만드는데 필요한 시약통이 비어있는 것이다. 그때 우리 실험실은 내가 1기인 신생 실험실. 나 외에 동기 한 명이 있을 뿐이다. 동기에게 물어보니 며칠 전에 자기가 다 썼단다. 아...요즘 말로 '망했다...'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앞으로 1시간 내에 그 용액을 써야 하는데, 아니면 거의 2주일째 진행해오던 이 실험이 끝장나는데... 그때부터 여기 저기, 이 실험실 저 실험실, 나중엔 인근의 다른 학교에까지 전화를 해서 그 시약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 시약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었다. 그럼 이것 말고 아쉬운대로 대체할 수 있는 시약이 없을까 하고 실험 교재를 막 뒤져보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실험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네가 미리미리 알아보고 재고를 확인해 놓았어야했던 것 아니냐는 동기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나, 둘이 쓰는 시약인데, 자기가 마지막으로 썼으면 다시 주문을 해놓던가 아니면 최소한 그 시약을 다 썼음을 알려만 주었더라면, 최소한 빈 시약통을 그 자리에 다시 올려놓지는 말았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의 나는, 안그래도 신경이 예민해져있던 탓일까, 그대로 정면 충돌. 이후로 졸업할때까지 둘이 서로 말을 안했다. 둘이 쓰는 실험실에서 그 둘이 말을 안하고 지냈으니 참...  

어쩌다 '파스타'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떠오른 이야기들이다. 전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공효진이 저온실에 갇히는 장면이 나오더라.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못쓰게 된 요리 재료 때문에 그걸 구하러 다른 레스토랑 여기 저기 찾아 다니는 장면이 나오더라. 대학원 2년 동안 잊지 못할 두 사건을 뽑으라면 위의 두 사건인데, 한번에 그 사건들을 연상시키다니. 

그런데 드라마 중의 어떤 파스타 요리를 보아도 난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은 안든다. 예전에 3년 동안 그 파스타를 정말 얼마나 물리게 먹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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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타 저 장면 나오는 날 '딱' 봤어요.^^ 근데 언제 하는지 몰라서 못 봐요.
그런 일이 있긴 있는 거군요.
생명의 은인과 말 안하고 지낸 친구는 지금도 연락하거나 만나시나요?^^

hnine 2010-02-01 17:20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낮에 재방송하는 것 봐서 어떤 요일에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아무튼 요즘 그 드라마가 인기더라고요.
생명의 은인 친구, 그리고 말 안하고 지내던 친구, 지금은 다 연락하고 잘 지내요 ^^

이네파벨 2010-02-0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음 졸이는 에피소드네요.

저온실 사건은 정말이지......섬뜩!

친구분이 마침 거기까지 찾으러 오셔서 너무 다행이예요. 그에 비하면....그 당시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으셨겠지만....실험을 완수하니 못하니, 어쩌면 졸업을 하니 못하니 하는 일도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죠?

hnine 2010-02-01 17:23   좋아요 0 | URL
그 친구 아니었더라면 정말 어찌되었을지 정말 끔찍해요. 어쩌면 학교 졸업이 아니라 인생 일찍 졸업했을지도...ㅋㅋ

꿈꾸는섬 2010-02-0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조카는 과학이 제일 어렵대요. 과학 실험 결과가 꼭 정답처럼 나오질 않아서 너무 어렵다네요. 근데 정말 그 친구분 아니었으면 큰일날뻔 하셨어요.ㅎㅎ

hnine 2010-02-01 17:26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께서 공부하는 것 도와주기로 하셨다는 그 조카 말씀이신가요? 직접 실험을 자주 해봤나보네요. 실험 결과가 꼭 정답처럼 나오질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니 그것 부터가 대단한 것이라고, 그것이 과학의 출발이라고 전해주세요.

무스탕 2010-02-01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그 말 안하고 지낸 친구가 생명의 은인이라거나.. ^^;;

'파스타'가 '공부의 신' 하는 날이랑 같던가요? 울집은 공부의 신팬들이 많아서리 못봐요. ㅎㅎ

hnine 2010-02-01 17:29   좋아요 0 | URL
생명의 은인이라는 친구는 아이 둘 키우며 잘 살고 있고, 말 안하던 친구는 지금 대학 교수님이 되어 있으시지요 ^^
아, '공부의 신'도 요즘 인기 있던데, 전 아직 한번도 못 봤네요. 아무리 드라마 제목이라도 '공부'란 말이 들어가는 것은 싫어요 ㅋㅋ

비로그인 2010-02-0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 상황속에서도 실험을 하시다니 ~ 정말 놀랍도록 차분하십니다. 아마 그 문을 열고 들어간 동기도 놀라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휴 그 안에 갖혀있는 상상만해도 다리에 힘이 쫙 빠지네욥!!~

hnine 2010-02-01 17:31   좋아요 0 | URL
저 하나도 안 차분한데, 그 상황에서는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 다음부터는 그 저온실 들어갈 때 문을 꽝 닫지 않고 열어놓고 들어갔다 나왔지요. 원래 그러면 안되는데 겁이 나서요.

상미 2010-02-0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월,화 본 방송은 공부의 신을 보고, 어제 낮에 파스타 재방송 봤어.
네 기억속 사건이 다 나왔네.
두번째 사건은 내 기억 속에도 어스름하게 있는거 같아.벌써 몇년전이니...

hnine 2010-02-01 17:33   좋아요 0 | URL
너도 기억하는구나 ㅋㅋ
파스타의 셰프, 이 선진인가?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영 비호감이더구만. 나는 아무래도 '나쁜남자' 스타일이 안 맞나봐.

조선인 2010-02-0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삼촌댁에 놀러갔더니 다짜고짜 절 실험실에 데려가 일주일째 거기서 먹고 자고 '안 씻고' 있는 제자를 소개시켜주는 거에요. 삼촌은 그 제자가 정말 미더운데 아직 자기 딸이 어리니 조카사위라도 삼고 싶다는 거에요. 문제는 그 때 제가 겨우 중3. 3년 뒤 대학 들어가면 바로 사귀어보라고 삼촌이 너무 진지하게 권하시는데, 저보다도 그 제자분이 더 황당하셨을 듯.
실험실 에피소드 말씀하시니 저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끄적. ㅎㅎ

hnine 2010-02-02 15:10   좋아요 0 | URL
삼촌께서는 그 학생의 '장래'를 보고 소개시켜주시려 한 것이겠고, 처음 본 사람의 눈에는 '안 씻고' 있는 행색이 당연히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요.
실험실에 있다 보면 남학생들은 일주일 쯤 집에 안가고 숙식을 학교에서 하는 일은 다반사지요. 저는 끽해야 하루 밤샘 해본 것이 전부인데...
조선인님 그런 추억이 있으셨군요, 그리고 가끔 생각나시는군요 ^^

무스탕 2010-02-02 16:28   좋아요 0 | URL
꽤 예전에, 제가 한 22살이나 23살정도에 할머니께서 입원을 했었어요. 그 병원에 언니 대학 동아리 선배가 전문의 과정으로 있었는데 어느날 병실에 들어와서 정맥주사 놓으면서 할머니한테 '손녀 저 주세요' 그러는거에요. 전 옆에서 테이프 끊어주고 있었지요. 울할머니는 언니를 달라는줄 알고 대꾸도 안했는데(그때 언니가 연애중이었거든요) 저를 달라는 말이었다는.. ^^;
잘 하면 의사 손주사위 보시는거였는데 말이에요. 흐흐흐
조선인님의 황당추억을 들으니 저도 생각이 나서요 :)

hnine 2010-02-02 17:27   좋아요 0 | URL
아니, 할머니께서는 왜 언니를 달라는 얘기로 들으셨을까요.
그런데 이거 더 계속 이야기 해달라고 조르고 싶은 이야기인걸요? ^^

무스탕 2010-02-02 22:45   좋아요 0 | URL
더 없어요. 이걸루 끝이에요 ^^
그 의사샘이 언니 선배였으니 언니를 두고 말했다고 생각하셨나봐요.
할머니는 좋아지셔서 퇴원하셨고 그 의사샘이랑은 더 이상 본적이 없어요. ㅎㅎ
나중에 할머니는 그 샘이 말한 손녀가 저라는걸 알고 슬쩍 아까워 하셨다는 후문이.. 캬캬캬~~~

hnine 2010-02-03 08:05   좋아요 0 | URL
지금의 남편 분을 위해서는 잘 된일인지도 모르겠군요 ^^

같은하늘 2010-02-09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보지 않으니 모르겠고 나인님의 경험은 잊지못할 에피소드네요.
그래도 다행인건 말안하는 친구가 생명의 은인은 아니라는겁니다.^^

hnine 2010-02-09 17:55   좋아요 0 | URL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저 위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친구보다, 말 안하던 친구와 지금 더 자주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웃기지요? ^^
 

'한 우물을 파라'는 옛말에서 부터,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노력해야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좀 더 구체적인 최근의 말에 이르기까지, 이것 저것 건드리는 것 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우직하게 한가지 일에 전념하는 것이 성공의 근본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으로 한 우물을 계속 파지 못한 것에 대하여 지레 실패감 비숫한 것을 마음 한 귀퉁이에 안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며칠 전, 전공을 살려 학교에 남은 친구와 오랜 만에 전화를 하게 되어 안부를 묻다가 어떻게 지내느냐는 그 친구의 물음에 우스개 소리로 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 대해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친구: "그래, 집에서 뭐하며 지내니?"
나: " 뭐하긴, 학교에서 연구하는 것만 빼놓고는 다 하지. 넌 연구 한가지 하느라 다른 일 아무것도 못하잖아. 난 한가지 안 하는 덕분에 다른 것 다 하고 살아." 
나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주고 폭소를 터뜨려주는 친구가 고맙다. 

한 우물을 파고 싶었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박혀 있었다. 그런데 사람 일이 꼭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란 말이다. 나름대로 몇 년 동안 몸 담고 있던 일을 접기 까지의 과정도 힘들었지만, 그렇게 결정하는 일 자체도 쉽지 않았다. 당장 내 인생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배운 것도 많다. 내가 겪어 보지 않았더라면 이해하는데 훨씬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일들을 내가 겪어 보아 알게 된 것들,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는 것들.  

며칠 전에 남편이 하는 말, 요즘 동네 주택가에도 까페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그 주 고객들이 집에서 살림하는 아줌마들이란다. 나도 까페를 그리 자주 애용하는 사람은 아니고, 더구나 아이를 키우고 빠듯한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보통 아줌마이다보니 요원하게만 들리는 얘기이지만 남편에게 대답했다.
"집에서만 있는 주부들일수록 그렇게 일부러라도 바깥 바람을 쐬어 주어야 한다구. 집에만 있어봐.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고, 우울증도 오기 쉽고, 식구들과 대화도 쉽게 막히고. 집에 있는 주부들도 그렇게 까페에 나가 차도 마시고, 친구들과 얘기도 하는것, 나는 참 필요하다고 봐."
진심이다.  

내가 대학생일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앞 까페에 나와 친구들을 만나는 아줌마들을 이해 못했었다. 아이 키우랴, 직장 생활 하랴, 지각, 조퇴 잦고, 그러면서 미안해하지도 않는 직장내 아줌마 동료들을 보며 또 잘난 척 했었다. '아니,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걸 모르고 결혼하고 아이 낳았나? 대책도 없이...'  

나의 에너지를 한군데 집중시켜 일하고 있는 생활을 내 자의에 의해 그만 두고, 이것 저것  여러 가지 일에 그 에너지를 분산시켜야 하는 지금, 나처럼 multi-tasking 인간이 못되는 사람은 늘 머리 속이 복잡하지만, 그래서 예전에 눈도 돌리지 않은 곳들에 눈길이 간다. 대형 마트 대신 매일 장바구니 들고 장 보러 다니면서 길가의 채소 파는 할머니들과 얘기도 나누고, 반찬 만드는 방법을 요리책이 아닌 그 할머니들에게 물어서 해보기도 하며, 전혀 관심도 없던 떡이니 빵을 만들기도 한다. 영어, 수학 배우느라 학원 보내는 것은 최대한 미루자는 생각으로 내가 직접 아이에게 이것 저것 가르치느라 나름 공부도 한다. 대신 일주일에 한번 아이가 배우고 싶다는 중국어 선생님이 오시는 날은 나도 방문 너머로 들으며 중국어를 배워보기도 한다. 아이 데리고 다니면서 나도 새로 배우는 것들이 많아졌다. 읽고 싶던 책을 맘껏 읽고 있다. 이게 웬 생각지도 못했던 여유란 말이냐. 그러고도 너 실패감이니 어쩌니 하면서 불평할래?

내 맘속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실패감이 조금씩 극복되어 가는 것 같아 기쁘다. 아니, 내가 특별히 노력한 것이 없으니 '극복'이라는 말 보다는 그저 나이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여전히 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 분들이라고 중간에 위기의 순간들이 없었으랴.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 인생의 어떤 결점으로 볼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대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는 편이 우리 자신에게도 훨씬 좋다. 그리고, 지금 그 우물 파던 삽을 놓았다고 해서, 영영 놓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니까. 다시, 더 굳건한 손으로 놓았던 삽을 다시 잡을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인생은 그래서, 그런 예측불허성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신도 나고 하는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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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18: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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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2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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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30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1-31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12시 넘었으니..한 발은 저기에 있는 어제라고 해야겠죠?^^) 약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hnine 님의 깊은 속뜻은 제가 알 수 없겠지만 그냥 왠지 쓰신 글 보고 그런 생각이 드네요~ ㅎ

덕분에 뭔가 좀 힘이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D

hnine 2010-01-31 09:40   좋아요 0 | URL
제 생각, 비슷한 생각, 그런 생각...모두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
좀 힘이 나셨다는 말씀을 통해서도요.

2010-01-31 0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31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31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31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미 2010-01-3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애초에 한 우물 팔 생각도 못했던거 같아.
애들을 기르다 보니,
한 우물을 파기 전 ,우물을 파고 싶어 하는지, 어떤 우물을 팔건지에 대한
내가 아이가 파길 원하는게 아니고,
그 아이가 파고 싶어하는게 뭘지에 대해 알고 시작하는게 필요한거 같더라.

hnine 2010-01-31 21:24   좋아요 0 | URL
결혼을 하면 여자는 일을 계속 해나가기 어렵다고 엄마가 하도 그러셔서 나는 결혼도 안할 수 있으면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니까~ ㅋㅋ

하늘바람 2010-01-31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우물 파기란 쉬운 일도 아니지만 한우물 파지 않아서 더 좋은 점도 전 많았던 것같아요. 님이 다린이를 가르치시기 위해 공부하시는 것들 참 부러워요.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같아요.
엄마의 그런 마음 덕분에 다린이는 좀더 여유있게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같아요.

hnine 2010-01-31 21:28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도 그러시군요. 그런데 크게 보면 지금도 한우물을 파고 계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

같은하늘 2010-02-0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부터 무슨 우물을 파야하나 고민하는 사람인데요...

hnine 2010-02-09 17:54   좋아요 0 | URL
그게 한 순간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늘 염두에 두고 있다보면 어느 날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아이가 엄마를 제일 필요로 하는 시기에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며 보내는 시간도 '한 우물'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거든요. 주위 사람들이 나의 그런 소신을 알아주지 않을때가 많아 종종 흔들릴 정도의 내공 밖에 되지 않는게 저의 문제이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