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안할 때에는 시 (詩)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에는 들어올지 몰라도 마음에 스며 들어오지 않는다.
읽던 책을 놓고, 옆의 시집으로 손이 가는 것을 보니, 마음을 달래줄 시를 찾는 것을 보니, 오늘 나의 마음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는가 보다.
'요즘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은가봐. 잠도 많아지고, 몸이 잘 붓고....갱년기 증상인가?'
오늘 아침 식탁을 차리면서 남편에게 그랬더니 몸이 붓는 것도 갱년기 증상이냐고 묻는다.
'갱년기 증상이라는 말은 내가 그냥 하는 소리지~' 하며 웃고 말았는데. 
언젠가 몸이 잘 붓는 것 때문에 병원, 그것도 대학 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데 이것 저것 검사해보더니 빈혈이 심하다고 그것에 대한 약만 잔뜩 처방해주는 바람에 정작 몸이 붓는 원인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변을 못 듣고 빈혈 치료만 받고 말았다. 
'엄마, 얼굴이 또 부풀었어요? (아이의 표현이다 ㅋㅋ) 그래도 예뻐요.'
아이의 말에 마음이 또 뭉클해진다.

큰 책꽂이 말고 책상 위의 작은 책꽂이에 꽂아 두고 요즘 수시로 보고 있는 시집은,   

 

 

 

 

 

 

 

 

 

 

 

나 자주자주 까먹어요 슬픔을 고독을 사탕처럼 까먹어요 여러 빛깔의 사탕처럼 여러 빛깔의 사랑을 까먹고도 나 배고파요 나 배고파 어느날은 몰래 사내의 꽃나무 열매를 까먹고선 까무룩 혼절해요 사랑은 혼절이 아니면 혼돈이에요 내가 틀린 걸까요? 나 자주자주 까먹어요 월요일을 예술가를 부엌을 생활을 까먹어요 까먹어도 까먹어도 줄지 않는 고독 까먹어도 까먹어도 돌아오는 계절들 까먹다 까먹다 마침내는 나까지 까먹고 나는 그저 우는 아이의 막대사탕 같은 엄마예요 내가 틀린 걸까요? 

안 현미 <이별의 재구성> 중에서 '뢴트겐 사진- 생활 全文

 

위 시의 '까먹는다'는 것은 잘 잊어버린다는 뜻의 까먹는다가 아니라, 하나씩 꺼내 먹는다는 뜻의 까먹는다 이다. 그렇게 까먹을 슬픔이 있고 고독이 있고 사랑이 있는 것이, 아무 것도 까먹을 것이 없는 사람보다 나은 것 아닌가?

나 이렇게 시집을 까먹어요 이 시인의 시를 까먹고 또 저 시인의 시를 까먹고도 나 배고파요 나 배고파요 아무리 까먹어도 혼절이 없어요 혼절을 바라는 내가 틀린 걸까요?
(이건 내가 따라해본 것)

'혼절이 아니면 혼돈이에요...' 안 현미 시인은 이런 말의 유희를 즐긴다. 참신한 표현 같아 좋았는데 자꾸 읽다 보니 좀 억지스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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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2-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편안할 때에는 시 (詩)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에는 들어올지 몰라도 마음에 스며 들어오지 않는다.
정말 그래요. 정말,
그런데 언제부턴가 잘 마음에 안들어오는 건 마음이 편안한가? ^^
안현미 시인의 시가 참 애절하군요. 시낭송이 하고파지는 시예요

hnine 2010-02-02 17:47   좋아요 0 | URL
저는 시를 읽으면서 한번도 낭송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하늘바람님 말씀 들으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잠 안올때나 마음이 허전할때 좋아하는 시들을 눈이 아닌 귀로 듣고 있으면 색다른 기분일 것 같아요.
안현미 시인의 시집은 이전에 나온 시집 <곰곰>도 좋아요.

비로그인 2010-02-0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시집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왜 이리 고마운걸까요? ^^.. hnine님 덕분에 시집 한 권 또 알아갑니다. 잘 만들어진 시를 읽는건.. 떨어져 있던 나와 다시 만나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과 낮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 시대에 살면서. 깜깜하지 않은 어둠을 잠시 느껴봅니다. 살짝 웃음을 머금고 말이죠.

hnine 2010-02-03 08:0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도 이 시가 마음에 들어오나요? ^^

프레이야 2010-02-0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맘이 불편할 때 시집에 손이 가더군요.
근데 나인님 빈혈이에요? 몸이 좋지 않으면 마음도 약해지더군요.
치료 잘 받으시기 바래요. 그래도 이뻐,라고 말해주는 아이, 참 예뻐요.

hnine 2010-02-03 20:41   좋아요 0 | URL
지금은 빈혈 증상 거의 없는데 가끔 검사해보면 저렇게 나올 때가 있더군요.
몸이 좋지 않으면 마음도 약해진다는 것을 요며칠 동안 또 확인했답니다 휴...

같은하늘 2010-02-0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계속 몸이 안좋아서... 아침이면 손이 붓고 하루종일 뒷목이 뻐근해서 한동안 알라딘에도 못 들어왔다지요.^^ 이거 한번 들어오면 몇시간 훌쩍 지나서~~~

hnine 2010-02-09 17:58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같은 하늘은 저 처럼 '찔끔찔끔형' 이 아니라, '몰입형'이신가봐요^^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붓고 찌뿌둥하면 참 기분이 그렇지요.
우리 함께 우리 몸 챙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