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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 남성문화에 대한 고백, 페미니즘을 향한 연대
박정훈 지음 / 내인생의책 / 2019년 9월
평점 :
한동안 리뷰나 페이퍼를 작성하지 않고 지냈다. 게으름이 첫번째이고 책을 읽어도 뭔가 내 생각을 정리하기 힘든 것도 있고... 정리가 안되니 더더욱 글을 쓰는 행위는 도저히 수행 하기 어려운 행위로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한동안 비어있는 서재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댓글이 달리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뭐 진중한 리뷰도 아니고 거창한 페이퍼도 아닌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라는 책의 200자 평인데, 200자 평의 내용은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일도 모르는 엉터리다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을 옹호하는 사람들 (혹은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책에 대한 비난에 분노 조절이 안되는 분들이 꽤 많았으니 말이다. (내 페이퍼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댓글이 달렸다)
사회적 위치로 보면 중년의 이성애자 남성이자 비장애인이고 토종 한국인인 나는 사실 페미니즘에 대해 뭐라고 언급하기도 어려운 위치이다. 일부 남성들이 페미니즘 이론서 좀 읽은 것으로 여성들보다 더 큰 소리로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치려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기도 해서 더더욱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사실 페미니즘에 대해 말 할 수 있는 내공도 없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차별 중에 가장 역사적으로 오래되고 고쳐지지 않는 (이 말에 분노할 사람 많겠다. 그런데 이게 팩트다) 성적 차별의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러한 문제는 신자유주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점점 더 첨예하게 대두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사고로나마 예견되는 것은 여성주의적 관점이야 말로 앞으로의 사회를 평등하게 전진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관점이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결국 도태되지 않으려는 남성들에게 꼭 필요한 관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남성이고 이성애자이고 비장애인이며 토종 한국인이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도 저자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사회생활을 했고 이 점에서 나름 다른 남자들에 비하여 스스로 깨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많은 여성들의 경험을 알게되면서 그것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상황인지 알게 된다. 저자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서 이 사회를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주의적으로 바라보며 쓴 글들을 모아서 펴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글 마다 자기 반성과 성찰이 안들어갈 수 없다. 나에게 험한 댓글을 다셨던 분들이 이 책을 보면 저자는 마치 적국의 넘어간 스파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ㅎㅎ
페미니즘으로 명명되는 수 많은 이론들이 백가쟁명식으로 떠도는 시대다. 솔직히 그 많은 논점과 논쟁들을 따라가기도 벅차고 그 차이점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힘들다. 최근 숙대 트랜스젠더 입학 문제를 놓고 페미니즘 진영이 나뉘어 논쟁을 했던 일에서 드러나듯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화두와 젠더 이분법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 대한 논의들, 그리고 여성을 단일한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기에는 민족, 인종, 계급, 기타 상이한 조건에 따라 단일 정체성으로 묶기가 너무 힘들어서 교차성을 주장하는 이론들까지... 따라가다 보면 숨이 가쁜게 사실이다. 더구나 이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고 아무런 불편없이 살아가는 남성들 입장에서는 굳이 자신의 권력을 빼앗아가는 이론을 치열하게 공부할 이득이 없는데다 논의마저 복잡한 페미니즘을 머리싸고 공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현재의 사회구조가 정말 문제가 많고 무언가 고쳐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겸허가게 뒤돌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여성주의적 시각이 가지고 있는 경계성과 진보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알아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여성해방은 남성억압과 동의어도 아니다.(잘 알아보지도 않고 억울해하지 말라는 말이다) 여성해방은 인간해방과 동의어다. 성적 격차와 차별은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고 인간차별의 문제이다. 기울어진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지금껏 여성들이 어떠한 처지에서 싸우고 있는지 알아 본다면 페니니즘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새로운 전망을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그런 의미에서 책을 썼으리라.
예전엔 몰라도 지금은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벌어진 디지털 성폭행과 성착취 사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길 원한다. 디지털 성폭행 영상을 제작한 사람만 문제일까? 이 영상을 돈까지 지불해가면 참여하고 공유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참혹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 여성을 대상화하고 물건취급하는 일에 26만명이라는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는 현실에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서 '한남'이라고 칭한다고 삐죽거리거나 화만 내면 모든 일이 해결이 될까? 나는 여성들이 말하는 '한남'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 찍으며 남성혐오를 들먹이기 전에 왜곡된 성폭력 문화를 지속하고 있는 남자들을 제재하는 남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페미니즘은 남성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앞으로 나서서 여성의 경험을 전유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성이 앞장서서 싸우면 방해하지 말고 옆에서 조용히 어깨걸고 나가자는 말이다.
이 책의 장점은 텔레그램n번장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그러나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 사례인가)뿐만 아니라 일상이 미세한 상황에서 관철되는 가부장적 남성주의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에게 좌절감을 주는지 반성하는 남성의 목소리다. 그 반성이 쌓이고 축적되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 중심 가붕장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이루어지면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히지 않아도 좋다. 최소한 내민 손을 잡아주는 사람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