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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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 의 주인공은 102세 꼬부랑 할머니에, 페미니스트에, 연쇄살인범에, 괴팍하기 짝이 없는 독설가인  베르트 가비뇰이다.

 

한때, 남성들이 규정하는 여성성이 아닌 여성 자체로 기존의 여성성을 극복 또는 해체하고 새로운 여성성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안으로 많이 이야기 했던 주인공들이 있었다. 매드맥스에 나오는 퓨리오사나 캡틴 마블 같은 캐릭터들. 나는 개인적으로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대너리스 타가리엔이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그럼에도 대너리스는 아직도 나의 퀸이다)

 

솔직히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딱 두가지만 남성들에게 요구했다. "나를 위협하지 말 것, 그리고 존중할 것" 물론 다른 것들도 요구했지만 이게 가장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정말 쉬울 것 같은 이 두가지 요건이 남성들에겐 그리도 어려운 요건이었던 것. 그리고 이 두가지를 지키지 않은 남성들은 할머니의 총에 맞아서 죽었다. 그렇다 할머니는 자신에게 무례한 사람을 그냥 죽였다.

 

통쾌한 점도 있었지만 솔직히 불편한 점도 있었다. 아니 어성에 대해 폭력적인 것은 정말로 정말로 인간적이지 않고 찌질하며 충분히 교훈이 필요한 사항이지만 총으로 쏴 죽일일은 아니지 않나?

솔직히 낄낄 대면서도 (이 소설의 할머니는 거침없고 유쾌하고 시종일관 웃음짓게 만든다) 그래도 죽일 놈을 꼭 죽여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명 존중의 사고를 나는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사고를 한다고 거룩해지는 것도 아닌데 난 소설을 읽으며 뭐하고 있었던거냐...)

 

그 죽음의 사연은 참으로 버라이어티하며 (그 만큼 여려명이 죽는다는 말이다) 그 내용들은 이전 부터 남성들이 가진 여성에 대한 편견과 아집과 폭력의 범벅이어서 남성들이라면 자신이 혹시 가지고 있을지 모를 여성혐오에 대한 체크 리스트로 사용해도 괜찮을 듯 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게 과연 죽을 죄일까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역시 난 휴머니스트인가 보다.

 

그런데 이번 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 어쩌면 저런 놈들은 죽여버리는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난 휴머니스트가 아니라 아직도 여성이 처한 위치와 입장이 애매했던 것이다. 만일 여성의 입장을 정말 공감한다면 중립자적 입장에서 애매한 휴머니스트적 입장을 취하고 있을 겨를이나 있을까?

 

그렇다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할머니가 무시무시하며 잔혹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마녀 같은 인물일까? 그렇지 않다. 그녀도 뜨겁고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사람이고 그 사랑의 가치를 누구보다 믿고 응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포용, 뜨거운 정열만큼 상대에 대해 헌신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를 정복할 대상으나 여기거나 자신의 욕망을 해소할 물건으로 취급하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소설은 살인이 아니라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상대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예의에서 출발함을 보여준다. 예의가 없는 자에게는 죽음을 내리면서 권력행위를 사랑으로 포장하는 모든 억압을 거부한다. 그래서 난 새로운 여성 히어로로 베르트 가비뇰을 추천하다. (그런데 이미 고인이 되셨다. 마지막까지 영웅적으로 자신을 직시한 할머니께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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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3-2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이렇게 글을 쓰셨는지,,,미리 저장해 놓으시고 하나씩 푸시는 거에요??ㅎㅎㅎㅎㅎㅎㅎㅎ
암튼 ˝나를 위협하지 말 것, 그리고 존중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베르틀 가비뇰 할머니 뿐 아니라 모든 여자가 남자에게, 아니 인간에게 하고 싶은 경고,,,일걸요?

머큐리 2020-03-24 18:28   좋아요 0 | URL
읽은 책들이 좀 있는데... 게을러서 못 쓴 리뷰들이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