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의 독서생활 - 고전부터 과학, 역사, 철학, 잡서까지 현대 중국을 건설한 위대한 독서의 비밀
꿍위즈 외 지음, 조경희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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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 혁명의 과정에서 보이는 마오의 독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말년에 보인 오류는 그 많은 독서들의 효과에 대해 의문으로 남는다. 인간의 한계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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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 역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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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형식은 서간문.... 책에서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어찌되었건 이 세상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세상의 평가와 지은이의 지식이 어우려져 서간체 특유의 친밀함과 더둘어 내적인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이 버무러져 새로운 사실로 이끌어간다.

 

그 새로움은 사실상 기존 역사에 대한 부정과 절단이다. 기존 역사라 함은 민족주의와 국민국가를 뼈대로 한 역사를 말한다.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지리적 경계로 인종과 민족을 나누고 나서 그 국가, 민족, 인종이 마치 최초부터 존재하는 원초적인 원형으로 제시되는 역사야 말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일종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자신의 정체성을 구하기 위해 보이는 동양국가들의 오리엔탈리즘의 내재화와 서양의 서양중심적인 시각들은 역사라는 것이 단순하게 과거의 사실들을 확인하는 것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역사적 행위의 배후에는 언제나 그 행위를 추동시키는 힘들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그 추동되는 힘들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 역사서라 할때 역사는 사실상 이데올로기의 전쟁터일 수 밖에 없다.

 

역사를 고정되거나 구획된 국가의 발전사로 보기 이전에 왜 하나의 국가는 역사를 편찬함에 과거의 사실을 '이렇게 취합'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점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민족주의 전통이 강한 이 땅에서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은 살아가기 참 척박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서 편지를 받는 대상들의 면면이다. 극우 민족주의자들 부터 좌파 사상가들까지 면면이 흥미로운데 편지를 보내는 저자는 이들에 대해 부정할 것은 부정하고 긍정할 것은 긍정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게바라에게 혁명적 인간성에 대한 과도한 주장이 미치는 억압적인 영향을 이야기하고, 민주집중제를 주창한 레닌을 비판하고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를 주창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서는 오히려 당내에서 억압적이고 독단적이었던 모습을 일깨워주고 있다.

 

흥미로운건 김일성과 박정희에 대한 편지글들... 이 두사람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고개를 끄덕일만한데 공통점은 결국 민족의 발전이라는 '환상'으로 하나는 정치종교를 창설하시고 또 한분은 자본주의 경제발전을 도모하셨다는 점..그런데 두 사람 모두 정치종교와 경제발전을 목표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채용하셨지만 ... 결국 그 바탕은 민족주의를 공유했다는 점이 날카롭게 대비되고 있다. 박정희의 입장에서는 경제는 살렸지만 정치종교는 실패했고, 김일성의 경우에는 정치종교는 성공했지만 경제발전은 실패했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그 둘이 이 땅에 미친 파괴적 영향은 현재 진행중이다.

 

어쩌면 이 편지글들을 좀 더 정확하게 읽기 위해서는 임지현 교수의 다른 책들을 좀 더 읽어야 할 듯 하다. 공감하면서 주억거리다가 그럼 출구는 어떻게 가야하는지 생각해보면 흐릿하게 어떤 상이 나오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국민국가 이상을 생각하지 못한 나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흥미롭고 유익하다. 연관된 독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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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 Unbowe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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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많은 모양이다. 현실이냐 허구냐?

 

허구라고 치부하기에는 이 사회에서 실제 벌어져 논란이 일고 있는 사안이고,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보기에는 픽션이 가미되어 있으니 100% 현실이라 주장하기도 좀 그렇다. 타협해서 중요한 공판 장면들은 현실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뭔가 좀 미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이면 어떻고 픽션이면 어떤가?

100% 허구의 소설 속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회의 단면을 캐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때 현실인가 허구인가 뒤져보는 것은 우습다. 오히려 난 영화속 주인공의 생각이 너무나 보수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법만 잘 잘 지켜도 세상이 살만하다는 주장은 왠지 뜬금없어 보인다. 법이란 분쟁을 해결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원천적으로 이 사회를 통치하기 위한 경계짓기의 도구이기도 하다.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분노한 교수가 그가 철저하게 신봉하는 법으로 싸우지 않고 석궁을 들고 판사를 위협하려고 했다는 그 근원적 불화에 대해서는 고찰하지 않고 오히려 법이야 말로 지고의 선처럼 뇌까리고 모든 행위를 법전의 형식적 논리로 풀려고 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이 무언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불편함이 영화를 보는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었나 보다.

 

그럼에도 마치 이 영화는 법치주의의 훼손에 대해 분노하는 현실고발 영화처럼 되어버렸다. 법 위에서 노니는 꼴들을 너무 많이 경험하다 보니 무조건 반사처럼 재판과정에 대한 비판들이 넘실 거린다. 물론 이야기 구조 상 분노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분노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 분노의 화살은 법치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돌아가야 했다. 오히려 현행 법률을 감싸고 돌아가는 폼새는 일종의 보수주의적 감수성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독한 보수성이 마치 진보의 길인것 처럼 여겨지는 것이 이상하다.

 

어쩌면... 가장 보수적인 사람마저도 이 땅에서는 차별받고 살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현실을 재현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에 촛점이 맞추어져야 하지 않을까? 법은 허상이고 원래 가진 놈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냉정한 현실대신 법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주인공의 고집....어쩌면 이 영화는 여기에서 환타지로 흐르는지 모르겟다. 다만, 가장 가까운 현실을 소재로 했기에 환타지로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논쟁도 하지 않고... 그냥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부조리한 현실로 보면 꽤 잘 만들었고 흥미진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현실이냐 아니냐의 경계로 진입해 버리는 순간 난 이영화를 찬성하기보다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법정이 공정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개개인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법 자체가 공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 무언가를 거스르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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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1-2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으로도 영화의 면면이 들여다보이네요. 법을 희롱하는 자들이 판을 치는데 그래도 법은 지켜야지라고 말하긴 애매하죠.

머큐리 2012-01-27 19:22   좋아요 0 | URL
안녕 아치님~~^^ 새해에도 여전한 미모 유지하세요...ㅎㅎ

Arch 2012-01-30 10:14   좋아요 0 | URL
하하 새해 덕담 감사합니다.

부러진 화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네요.
 
자전거 탄 소년 - The Kid with A Bik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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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된 사회에서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 처럼 허망한 것이 어디있을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절망과 구원이라는 두 단어가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아버지에서 버림받고 보육원에 위탁된 시릴의 절망.... 그 절망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전화번호도 바꾸고 주소지 마저 이전한 아버지를 끊임없이 찾는 소년의 마음은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를 인정도 용납도 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을 벗어나려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의 장벽을 부정하는 것 뿐이다.

 

이런 시릴을 안타까이 여기는 미용실 주인 사만다는 위탁부모로서 시릴을 데리고 간다. 시릴이 사만다를 따르는 이유는 보육원을 벗어나 아버지를 찾는 것... 그러나 사만다의 노력으로 다시 재회하게된 아버지는 시릴을 거부한다.

 

자신이 소망하는 아버지와의 동거가 불가능해 짐을 깨닫게 된 소년에게 남은 길은 위탁부모인 사만다와 함께 사는 것이다. 사만다와의 삶 속에서 시릴이 만난 불량 소년 웨스는 시릴을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는 최초의 사람이었다. 물론 웨스는 순진한 소년을 통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편법이었지만, 부모로 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소년에게 웨스의 존재는 삶의 새로운 빛이 되었을 것이다. 사만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웨스와의 약속을 위해 강도짓을 하는 시릴은 댓가가 아닌 웨스가 원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범죄 후 웨스에게 버림받은 시릴은 결국 누가 자신에게 진정한 애정을 쏟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던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시릴을 돌봐주는 사만다에게 마음을 열게되는데...

 

 

이 평범한 이야기가 전해주는 울림은 평범하기에  다른다. 누군가 개별화된 이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가감없이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다. 신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면 누가 구원할 것인가?

어쩌면 이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살기에 사람들은 수없이 방황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방황의 끝에는 허무와 절망이 자리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소통이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때.... 그때가 구원을 받는 순간이 아닐까?

 

 

그 평범함에 다다르는 길은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란 헛된 욕망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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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의 당대표를 뽑는 경선이 끝나고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되었다.

경선방식의 신선함과 과감한 개방이 이번 경선의 흥행을 이끌었다고 본다. 물론 그 기저에는 더 이상 MB정권과 한나라당의 불신이 시민들을 참여하게 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내가 개인적으로 지지했던 분이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지 못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통합당의 경선으로 통합진보당의 위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진보의 일정한 지분을 민주당이 선점함으로 차별점이 없어져 버린 통합진보당의 향후 전망이 어떨지 걱정스럽다. 더불어, 통합진보당마저도 자유주의자들에게 포획되어 버렸다고 비판하는 진보신당의 앞길은 어떨지...

 

이런 복잡한 생각 다 떨쳐버리고... 중학교 때 마루에서 뒹굴거리며 듣다가 깜짝 놀랬던 음악이 불현듯 떠오른다. 중성적인 보이스에 환상적인 전자음이 매력적이었던 노래...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철없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잠시 평화로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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