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소년 - The Kid with A Bik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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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된 사회에서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 처럼 허망한 것이 어디있을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절망과 구원이라는 두 단어가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아버지에서 버림받고 보육원에 위탁된 시릴의 절망.... 그 절망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전화번호도 바꾸고 주소지 마저 이전한 아버지를 끊임없이 찾는 소년의 마음은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를 인정도 용납도 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을 벗어나려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의 장벽을 부정하는 것 뿐이다.

 

이런 시릴을 안타까이 여기는 미용실 주인 사만다는 위탁부모로서 시릴을 데리고 간다. 시릴이 사만다를 따르는 이유는 보육원을 벗어나 아버지를 찾는 것... 그러나 사만다의 노력으로 다시 재회하게된 아버지는 시릴을 거부한다.

 

자신이 소망하는 아버지와의 동거가 불가능해 짐을 깨닫게 된 소년에게 남은 길은 위탁부모인 사만다와 함께 사는 것이다. 사만다와의 삶 속에서 시릴이 만난 불량 소년 웨스는 시릴을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는 최초의 사람이었다. 물론 웨스는 순진한 소년을 통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편법이었지만, 부모로 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소년에게 웨스의 존재는 삶의 새로운 빛이 되었을 것이다. 사만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웨스와의 약속을 위해 강도짓을 하는 시릴은 댓가가 아닌 웨스가 원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범죄 후 웨스에게 버림받은 시릴은 결국 누가 자신에게 진정한 애정을 쏟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던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시릴을 돌봐주는 사만다에게 마음을 열게되는데...

 

 

이 평범한 이야기가 전해주는 울림은 평범하기에  다른다. 누군가 개별화된 이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가감없이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다. 신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면 누가 구원할 것인가?

어쩌면 이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살기에 사람들은 수없이 방황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방황의 끝에는 허무와 절망이 자리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소통이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때.... 그때가 구원을 받는 순간이 아닐까?

 

 

그 평범함에 다다르는 길은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란 헛된 욕망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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