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25. 한겨레   

한 시대의 종말을 애도함(김상봉)

http://www.hani.co.kr/arti/SERIES/156/356772.html  

 

내가 그에게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는 치열했다. 이를테면 그가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을 때, 나는 깊이 좌절하고 실망했으나, 생각하면 그것은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한계였다. 자본이 절대 권력이 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한계 앞에서 변절하거나, 세치 혀로 한계를 넘어갈 때, 그는 자기 방식으로 시대의 한계와 끊임없이 부딪혔고, 결국 좌절했다. 그가 곧 한 시대였으니 시대의 좌절이 그에게 치명적 타격으로 돌아온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라, 한때 우리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가 다른 것도 아니고 광주를 팔아 노벨상을 구걸하고 있을 때, 노무현은 모욕과 멸시 속에서 구차하고 더럽게 살기보다 깨끗이 파멸을 선택함으로써, 우리 시대가 비록 실패한 시대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비겁한 시대가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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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7-0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운 기억이 납니다...... 지금 읽어도 여전히 뜨거운 글이군요......
 

너무 놀라서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찾아간 광화문엔 이미 견찰들이 깔려있고, 시청쪽으로 향해가서 보니 덕수궁 앞 대한문에 시민들이 천막도 없는 초라한 빈소 앞에서 꽃을 들고 조문을 하고 있었다. 빈소가 너무 초라하다 보니 천막을 가져오다 원천봉쇄한 견찰들에게 뺏기고 더 기가 막힌 것은 조문오는 시민들을 인도에서 부터 막기 시작하여 조문행렬 자체를 막아버린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밉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원수가 죽었다고 해도 죽음 앞에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 법... 정말 막장이란 말이 딱 맞는 말이다. 빈소에서 조문객을 막는 견찰들의 행위와 법을 집행하는 주체가 시민들을 잠재적 상습 시위꾼 취급하며 인도를 봉쇄하는 행위 나아가 인의 장벽도 부족한 듯 차벽까지 세워 빈소를 지키는 시민들을 완전하게 고립하고 채증하며 협박하는 모습은 정말 이 시대에 바닥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  

다른 사안들처럼 의견이 틀려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었다. 자실이건..정권에 의한 타실이건 사람이 죽지 않았나...그리고 죽은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다. 죽음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 조문도 할 수 없는 이 시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말로는 예의를 다 갖추어 장례를 적극 도와준다고 하면서, 정작 시민들이 차려놓은 빈소를 유린하는 행위가 예의를 갖출 수 있는 최대치라면, 이 정권은 정말 체면이라 것이 있는지 의문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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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5-2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
 

책을 읽는 행위가 관성이 되어버렸다. 난 어디를 가던지 설사 한 줄 읽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책은 항상 들고 다녀야 한다. 이런 나를 보고 지인은 '일종의 병'이라고 말했고, 난 기꺼이 인정했다. 책도 1권 이상이어야 한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서적 하나, 소설이나 가벼운 에세이 하나. 이 어지러운 세상에 그런 병하나 쯤은 지니고 다녀도 큰 흠은 안될 것 같다. 병명은 '활자 중독증'이라나.... 

활자에 중독된 건 좋은데...책을 읽고 숙고하지 못하니 나의 외관에서는 책읽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향취가 전혀 없다. 역시 나를 잘 아는 지인은 이런 말을 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 사람이 되어야지 넌 어째 책읽는 것하고 나타나는 행동하고 그리 어울리질 않냐.... 너를 보면 책을 제대로 읽어야지 책읽는 다고 다 사람되는 건 아닌가 보다..." 신화적으로도 쑥하나 마늘하고 먹어도 언 놈은 사람이 되고 다른 놈은 사람이 되질 못하듯 책 읽는 다고 다 사람되면, 이 세상 사람개조하기 얼마나 쉽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를 만끽하는 분야는 역시 소비부문이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물론 일정 소득을 담보해야 누리는 이 자유는 쇼핑하는 인간을 만들어 내었고 쇼핑을 하기위한 행태는 인터넷을 통해 무한한 확장을 해오고 있다. 나 역시 알라딘에서 책을 고르고, 밁어보고 주문하고...심지어 노닥거리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활자중독증' 인간이라 책 말고는 다른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세상에 무수한 즐거움 중에 책을 보고 만지고 쓰다듬으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그러나 소유하고 읽고 나서 옛애인 버리 듯 게걸스럽게 다른 책들에 눈을 돌리는 카사노바적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으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골방에서 책읽으면 되지" 라고 대답했다가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하는건, 이젠 예사스러운 일처럼 되었다.  

문제는 관성적으로 왜 읽고 있는가를 이젠 내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냥 부지런히 읽다가 무언가 내공이 쌓이면,,,나도 불멸의 작품을 하나 내고 말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무언가를 쓰기위해 읽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읽는 책들이 워낙 다양하고 잡다해서 무슨 전문가가 되기위해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읽는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도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러니 책 굉장히 많이 읽은 것 같다...ㅎㅎ 사실 그렇지는 않다. ) 

책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올까? 관성의 책읽기에서 반성의 책읽기로 나아가야 하는데 나는 지금 관성의 금단증상에서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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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해맑게 웃으며 다니던 후배가 머리를 짧게 잘라 버렸다. 몇 일 전 사랑하는 사람이 헤어지자는 통보를 했다면서, 슬프게 웃던 녀석에게 사랑하는 만큼 끝까지 사랑하라고 충고했는데, 결국 끝이 좋지 않았나 보다.  

헤어지는 이유가 남자가 후배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던데...그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서 떠난다고 하고, 후배는 어디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했다는데... 그 미묘한 어긋남을 제 3자 입장에서 충고하기도 간섭하기도 어려웠다.  

사랑....이란 다 환상이라고 네 마음 속에 천국과 지옥은 결국 네가 만들어 내는 거라고 말하면서도 난 사랑을 잃어버려 방황하는 후배의 아픈 마음을 이해한다. 교회에서 찬송가만 듣던 녀석이 대중가요를 들으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며, 당장 사랑에 빠져 아파하는 사람에게 무슨 치료약이 있을지.... 

그러던 녀석이 머리를 잘랐단다. 머리를 깡총하게 잘랐다는 말을 듣고, 비오는 날 미용실에 잘려 버려지는 녀석의 머리를 생각하니... 녀석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나도 못하고 녀석도 잘 못하는 술이나 한 잔 하면서, 그냥 살아가는 얘기나 한 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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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 Angels & Demon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댄 브라운의 소설을 읽다 보면, 영화와 같은 생생함이 많이 느껴진다. 정말 영화로 제작하면 볼만하겠다는 느낌이 영화로 그대로 재현되었다. 첫번째가 '다빈치코드' 두번째가 '천사와 악마'다. 그럼 '디지털 포트리스'도 제작될까? 댄 브라운의 작품에서 무언가 새로운 인문학적 깨달음을 얻기에는 소설 자체의 한계가 많이 있다. 그러나 사실적으로 보이는 음모론과 그럴듯한 역사성에 기반한 추리와 반전은 독자들에게 '재미'하나 만큼은 보증하고 있다. 더구나 중세를 지배하고 근대로 넘어오면서 격렬하게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카톨릭이다 보니 허구라 해도 뒷얘기가 심심치 많은 않을텐데, 거기에 극적 추리적 요소까지 가미하니 독자들이 빨려들만 하다.  

자 여기까지다. 줄거리야 원작에 충실했으니..그냥 보면 되는 것이고. 흠 줄거리 이야기가 나온김에 마지막 장면이 원작에 충실했는지 영화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살짝 변형된 것인지... 책 읽은지가 하도 오래되어 가물가물하다. 내 기억에 따르면 마지막 마무리정도만 원작에 살짝 비껴나간 것 같고 나머지 대부분은 원작에 충실한 것 같은데...나도 내 기억은 신뢰하지 않는다.  

 

영화의 핵심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에 관한 큰 줄거리에 과학과 종교에 대한 화합을 사건의 해결을 통해 모색하고 있는 것인데...과학이나 종교나 그 맹목성이 지니는 위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아무리 대중적 오락영화라도 한 두가지 무거움을 던져주는 주제는 있는 법이다.  

우선 반물질을 생성시키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 과학으로 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한 카톨릭 궁정대신의 맹목적 신앙이 절묘하게 대립되면서 마치 과학과 종교의 평이한 대립처럼 구성되어 있고 카톨릭을 공격하는 주체가 18세기 카톨릭의 박해로 숨어들어간 과학자들의 비밀결사체로 나타나 마치 과학과 종교의 해 묵은 갈등이 사건의 축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적으로 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현대의 과학은 이미 카톨릭처럼 하나의 보편적인 종교처럼 숭앙받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새로운 성직자들로 그들이 하는 실험이나 행위는 사실 일반인이 통제하기는 너무 전문적이고 난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류에게 어떠한 치명적 해를 끼칠 수 있는 숱한 실험들을 지금도 어디선가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마치 사제들이 하나님께 인간의 죄를 구속하도록 기도하듯 말이다.  

 

과학과 종교의 맹목성 모두가 위험하다는 논거 속에서 '천사와 악마'는 그야말로 현대에서 누가 천사고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다는 말투다. 과학도 위험하고 종교도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냉철하게 살아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결국 인간이란 천사와 악마의 속성을 모두 가진 복합적 존재라는 의미인건지... 흠 어쩌면 오락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스스로 투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책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이미지들의 향연, 로마의 성당들, 도로들, 조각들, 그림들이 화려해서 배우의 연기보다 배경으로 나온 건축물과 예술품이 두 눈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별 세개는 거뜬하게 받고 갈 수 있겠다.  

과도한 액션을 바라는 분은 보지마시라... 좀 있다 개봉하는 터미네이터가  더 만족시켜 줄 것이다. 다만 역사적 미스테리를 즐기시겠다는 분들은 보면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덤으로 아름다운 에술품들이 그대를 유혹할 것이다.  

아 그리고 사제로 나온 이완 맥그리거는 정말 잘 어울리는 배역이고, 톰 행크스는 많이 노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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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1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